기계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한바탕 조작 끝에 스위치를 내리자 발전기가 작동하면서 놀이공원의 전력이 되살아났다.


【디젤 발전기가 정말 믿음직스럽네】


막 떠나려는 찰나, 옆에 있는 포대 속에 뭔가가 들어 있는 것 같은 것을 발견했다.

이런 게 있다니...…



루나에게 돌아왔을 때, 놀이공원의 일부 지역에서 전기가 돌아왔지만 불행히도 관람차는 그 안에 없었다.

기계 신과 행운의 여신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디젤 발전기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네】



루나

배선 문제일거야, 발전기를 탓하지 마.

게다가 이 정도로 낡은 관람차는 이미 위험해.


루나는 감정 기복이 별로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걸 한번 써 볼까】


뒤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포대에서 발견한 바로 그것이다.

가죽 주머니가 잘 밀봉된 덕분인지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아직 쓸만해 보인다.


【인화지도 하나 있고 배터리도 있는데 사진 찍지 않을래?】


루나

폴라로이드?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폴라로이드 하나를 주셨어.

그때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아버지가 주신 인화지가 항상 부족했을 정도였지.

하지만 그 후로는…. 사진을 찍지 않았어.

이 카메라는 이미 오래됐으니까 더 이상 쓸 수 없을 거야.


【아무튼 일단 해 보자】


배터리를 카메라에 꽂자 이번에는 행운의 여신이 축복을 내렸다. 배터리가 한 칸도 안 되지만,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인화지 상자를 삽입하면 보호 필름이 자동으로 튀어 나온다. 한 손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루나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루나

잠깐 기다려...뒤돌아 봐.


【(몸을 돌리다)】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1분여 만에 멈췄다.


루나

자.


다시 몸을 돌려 루나를 바라보니, 순백의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예전과 비슷한 순백의 옷을 입은 소녀는 미소를 지었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눈이 더 이상 황금빛이 아니었다.



루나

어때?


【정말 아름다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루나는 회전목마를 가리켰다.


루나

나 회전목마 가서 사진 찍을래!

앗...


자신의 추태를 의식한 듯, 루나는 얼른 말투를 바꾸었다.


루나

내 말은 거기가 사진 찍기에 좋아 보인다는 거야.


제아무리 루니라도 가끔 소녀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루나도 그냥 평범한 소녀인 것 같다.



루나는 회전목마에 기대어 셔터가 눌리기를 기다렸다.

찰칵.

플래시가 터지자 동체에서 사진이 천천히 출력되었다.


루나

어때?


루나는 재빨리 다가와 손에 든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손에 든 인화지에는 아무런 모습도 비치지 않았다.


루나

...이 인화지는 이제 못 쓰게 됐나 봐.


말을 마치고 그녀는 손을 들어 인화지를 버리려고 했다.


【기다려】


루나

음?


인화지에는 아주 옅은 색이 있어 사람의 형상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다.


【아직 쓸 만해 보이는데, 그냥 현상 속도가 좀 느릴 뿐이야】


【그럼 이제 내 사진 찍어줄래】


루나

응!


같은 장소, 비슷한 포즈로 또 한 번 플래시가 터졌다.


루나

이번에… 우리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


【좋아】

【당연히 되지】


카메라를 들고 루나에게 다가갔는데,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루나

좀 더 가까이 와.


옆에 있는 루나를 힐끗 바라보니,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볼은 살짝 빨개져 있었다.

셔터를 눌렀지만 이번에는 플래시가 터지지 않았고, 동체를 돌려보니 배터리가 바닥났다.


루나

...


소녀는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고 계단으로 나가 앉았다.


【안 찍을거야?】

【근처에 배터리가 있을지도 몰라】


루나

안 찍어도 돼. 이미 만족했어.


루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그녀 옆에 앉았다.

어깨가 살짝 눌렸다. 소녀는 머리를 기댔다.


【?】


루나

움직이지 마. 말도 하지 마.


두 사람은 잠자코 먼 곳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루나

만약 이 세상에 너 혼자 남는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표정도, 그녀의 감정도 알 수 없었다.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들었던 노이즈, 이상한 기후, 예전과는 조금 다른 루나를 떠올리며 그토록 많은 단서를 떠올리면 답은 이미 자명하다.

다만… 좀 잔인하다.


【...】



【최선을 다해 살아남을 거야】

【누군가는 끊임없이 전진해야 해】


【좋은 결말이 아닐 수도 있어】


【그래도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대로 놀라운 일이니까】




【아마 못 살 것 같아, 금방 죽겠지】

【나는 모두의 힘으로 끊임없이 전진할 수 있었어】


【만약 나 혼자 남는다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루나

음...


세상은 고요하고, 바람은 휘몰아치고, 두 사람의 숨결만 있을 뿐이다.

황금빛이 곁에 비출 때, 비로소 지금이 이미 동틀 무렵이라는 것을 알았다.



루나

봐봐.


두 장의 사진이 건네졌다.

언제부터였는지, 사진의 형상이 뚜렷이 표시되어 있었다.


【톤이 좀 이상하네】


【그래도 이뻐】


유통기한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현상약은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한다.

사진 속 이미지는 자잘한 노이즈로 가득 차 있고, 전체적으로 청색을 띠고 있어 마치 한 초보 컬러리스트의 첫 번째 조색에 힘을 준 작품 같았다.

대비는 높지 않지만, 이 때문에 일부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루나

오래된 것치고는 꽤 잘 해냈네.


소녀는 눈앞에 있는 두 장의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자신은 이것이 루나의 변신 후 처음으로 찍은 사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다음에는 더 좋은 카메라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루나

응.

【지휘관 이름】


【음?】


루나

전에 내가 거짓말 한 것 같지 않다고 했잖아.

사실, 거짓말을 했어.


【설마 나한테 사과하려고?】


루나

응...


루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왔고, 더 심한 통증이 뒤따랐다.

몸을 걷잡을 새도 없이 쓰러졌다.


루나

【지휘관 이름】!


【아니야...】






응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