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실 마누라 수영이 드디어 다그려옮…


배경 이야기:


”후…드디어 한시름 놨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은 공중정원에서 보급온 군수품을 텐트속에 마저 집어 넣고는 허리를 피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지휘관의 전술 단말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단말기를 꺼내들어 화면에 적힌 텍스트를 읽어보았다.


”너, 지금 지상이지?“ - [발신인 알수없음]


‘허….’ 


지휘관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발신인 알수없음] ”흥, 너에게 내 정보수단을 일일이 설명할 의무는 없어“


”그럼 나도 너의 질문에 대답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발신인 알수없음] ”칫...좋아, 너랑 마인드 표식이 잠깐 연결되었었는데 수송기 엔진 소리로 한창 시끄럽더니 방금 공중정원 수송부대가 착륙하는걸 보았을 뿐이야.”


“보았다니…혹시 근처에 있는거야?”


[발신인 알수없음] “마음대로 생각해. 수송부대의 편성을 보아하니 일선 전투임무는 아닌가봐?“


이미 알파는 지휘관의 위치, 파견 목적도 대충 다 꿰고 있는 눈치였다. 더 이상 숨겨봤자 득이 없을거란 결론을 내린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로 했다.


”…..그래. 파괴된 보육구역 재건 및 민간인 구호임무야“


[발신인 알수없음] ”그럼 잘 됐네. 내일 5시까지 이 좌표로 와.“


”내가 너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는거같은데“


[발신인 알수없음] ”명령이 아니라 제안이야. 수락 할지 안 할지는 너 마음이고.“


익명의 신호는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끊겼다. 지휘관은 화면에 빛나는 붉은 점의 좌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 지휘관은 알파가 찍어준 좌표로 혼자서 이동 중이었다.


“크르르르ㅡ륵…..”


괴상한 기계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지휘관은 침식체의 새빨간 광학장치와 눈이 마주쳤다.


’이건 예상 못 했는걸…‘


전투 임무도 아니였고, 전투 구역도 아니였기에 지휘관은 경무장만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탕, 탕, 탕


지휘관은 근거리까지 접근한 침식체의 양쪽 광학장치를 무력화하고 세번째 사격으로 침식체의 코어에 납탄을 때려넣었다.

비틀거리던 침식체는 그대로 쓰러졌지만 그 뒤로 침식체가 셋 더 나타났다.

‘상황이 좋지는 않은데…’

지휘관은 빠르게 주변 지형과 남은 탄창 수를 계산하며 견제용 제압사격을 하고는 반대방향으로 달려 큰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침식체에게 들키지 않도록 재빠르게 눈에 남은 발자국을 흐트러뜨리며 지휘관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혹시 어제의 그 연락은 함정이었던 걸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 연락이 알파라는 보장도 없었다. 다른 승격자나 세력이 얼마던지 사칭은 할 수 있었다…그런 것 치고는 너무 말투가 비슷했지만…

”…알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지휘관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치 불러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나타난 붉은 섬광이 지휘관을 뒤쫓던 침식체 셋을 전부 일격에 양단했다.

상하체가 분리된 침식체들은 이내 고철로 변해버렸고 알파는 오토바이를 지휘관 앞에 멈춰세웠다.

그녀의 휘날리는 하얀 머리카락과 설원, 그리고 붉은 태도와 오토바이가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게 사람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건 ‘그쪽 루시아’ 한태나 해. 난 너가 부르면 달려와주는 루시아가 아니야.“


알파가 시동을 끄고 내리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방금 상황은 내 책임도 있으니 사과할게. 너가 하도 안 나타나길래 심심풀이로 사냥하던 침식체 몇마리가 널 찾아버린 모양이야.”


알파는 그러더니 씨익 웃었다. 


“어때? 이제는 승격자를 무턱대고 믿어버린걸 좀 후회 해? 내가 전부터 넌 그게 문제라고 했었잖아”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난 승격자도 적도 믿지 않아. 알파를 믿는거지”


“흥, 또 잘도 그런 소리를….”


알파는 콧방귀를 꼈지만 기분이 별로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날 믿어서 온건 알파 너도 피차일반 아니야?”


“뭐?”


“너랑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실제로 올 것이라고 어떻게 알았어? 나를 믿었기에 온 거 아니야?”


“…그야 넌 그런 부탁을 거절할 사람이 못 되니까.”


“그럼 언젠가 내가 부탁한다면 알파는 와 줄거야?”


“……”


알파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잠시 뒤 입을 연 알파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너 지금 승격자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기나 해?”


“승격자가 아니라 알파한테 묻는거야”


“…말했을텐데, 난 너의 곁에있는 그 착한 루시아가 아니라고.”


“다시 말하지만 난 ‘너’에게 묻는거야.”


“….”


알파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서 피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말 나온김에 그녀….그 루시아는 어째고 온거야?”


“루시아라면 지난번 사태 이후로 의식의 바다 정밀 검진중이야. 별 문제는 없겠지만”


“…나머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리랑 리브는 다른 임무로 나가있어”


“…그래?”


알파는 휙 다가와 지휘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럼 내가 이대로 널 데리고 사라져버려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네?”


알파는 그대로 지휘관의 손을 잡고 오토바이로 성큼성큼 걸어가 앉혔다.


“너가 날 믿는다고 그렇게 말했었지? 이번엔 내가 믿어 볼 차례야“


그러고는 자신은 지휘관 뒤에 앉았다.


”나한테 뭘 하라는거야?“


”지난번엔 내가 태워줬잖아. 갚는 셈 치고 이번엔 너가 태워줘“


”그때는 임무중이었…“


”시끄러워“


알파는 그대로 지휘관의 등에 기대어 팔을 지휘관의 허리에 둘렀다.


”뭐 해? 안 가고“


아무래도 놔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아보였다.


지휘관은 작게 한숨을 쉬며 오토바이의 쓰로틀을 올리기 시작했고, 비록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설원을 질주하는 오토바이 위, 차디찬 눈바람 속에서도 지휘관 등에 기댄 알파의 조용한 숨소리가 확실하게 전해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