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피폐물 채널

편지. 혹은 수기.

이 글을 나의 피해자, 나의 학생, 나의 불륜녀, 나의 계절꽃,

    에게 보냅니다.





2월 29일.

4년에 한 번 있는 2월의 여느 날.

나는 한 여학생을 강간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오후 12시 35분, 잘 쓰이지도 보이지도 않는 구관창고, 먼지의 냄새와 문구점에서 파는 향수냄새, 사타구니에 있는 야들한 피부점막. 무언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와 가쁜 여인의 숨소리, 찰랑이는 두 덩이 젖가슴, 어깨, 여인의 몸에서 흐르는 땀, 정액, 그리고 눈물.


내 이성을 휘어잡던 오감은 좆됐다라는 감정을 부추겼다. 표현이 천박하다만, 당시 상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정신을 차린 난 그녀의 목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멍이 든 자국이 어지러운 날 한층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했다.

아. 손목에도 그런 자국이 남아있었던 걸 기억한다. 가슴엔 손찌검의 흔적이 있었다.


“선생님..”


몇 번 콜록이던 그녀가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솔직히 그 때의 난 완전히 패닉상태였다.

아예 도망칠까도 생각했다. 아니다. 주춤주춤 발이 뒤로 멀어졌으니,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앞섰었지. 그렇게 뒤로 가다가 자지가 뽕- 하며 꽃잎에서 떨어진 순간에 결국 넘어져버렸으니.


낡은 책상, 삐걱이던 책상에서 일어난 여학생은 엉망인 채로 내게 다가왔다.


떡이진 긴생머리, 땀범벅인 몸, 여체의 다리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정액보다 더 무서웠던 건 내 머리 바로 옆에 있는 폰을 들었을 때, 그리고 녹화가 중지되었을 때 나오는 특유의 김빠지는 효과음이었다.


한 순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사람은 도리어 차분해진다. 나는 이 사실을 그 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여학생이 폰을 토독토독 두드렸다.

얼마 안 가 내게 그 화면을 보여주었다.


112? 119? 계좌번호? 카메라?

어느것이라도 내 인생은 끝장날 것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이 내게 보여준 화면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동영상이었다.

타임라인은 시작부분.

지금과는 달리 말끔한 여학생이 보였다.


화면 속 그녀는 주민등록증과 우리 학교 학생증을 얼굴과 함께 보여주곤 또박또박 무언갈 읽듯 신상정보를 모조리 꺼냈다.


“저는 1X살 이고요. 쓰리사이즈는 33-22-34입니다. 사는 곳은 주민등록증에 적혀 있는 대로고요. 공동현관문과 현관 비밀번호는 똑같이 172839입니다. 아빠는 없고, 엄마는 출장안마사입니다. 아파트가 최신식이라 방음이 잘되어 있습니다. 밤에 비명을 질러도, 우퍼를 최대로 틀어도 끄떡 없었습니다. 친구가 없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저를 걱정해줄 친구도 없습니다. 저를 따돌리는 친구도, 밤에 심심해서 저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해서 괴롭히는 친구도 없습니다. 성병 없습니다. 엄마가 따로 준 카드가 있습니다. 비밀번호는 4자리 0104, 6자리 172839입니다. 한도 없습니다. 안에 있는 돈이 많아서 한도걱정도 없습니다. 처녀는 곧 따이지만, 뒷구멍은 괜찮습니다.”


영상 속 여학생이 다리를 벌린 채로 들어올렸다. 교복치마엔 보통 속바지가 있기 마련인데, 단면이 엉성히 잘린 듯 안 쪽엔 거적대기가 나풀거렸다.

팬티도 없는 검은 스타킹 안엔 민둥한 꽃잎이 어렴풋이 보였다.


“털이 나지 않는 몸이지만, 심을 수 있습니다. 문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피부입니다.”


일어선 여학생은 옷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기 시작했다. 셔츠 넥타이부터 스타킹까지 전부.

알몸이 된 여학생은 민증을 입에 물었다. 그리곤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몇 번 취했다. 이후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이 영상은 저와 그 분, 둘이 서로 합의한 플레이임을 밝힙니다. 이 영상이 밖으로 노출되어도 괜찮습니다. 이 영상의 정보를 토대로 저를 따먹으셔도, 돈을 갈취하셔도, 살점을 먹으셔도, 죽이셔도 됩니다. 서로 합의한 플레이입니다.”


안내사항같은 말을 끝으로 꾸벅 인사한 여학생은 화면 밖으로 나갔다.



얼마 안 가 숙덕숙덕 소리가 들려온다. 화면 밖에서 두 사람이 들어온다. 하나는 여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태어나서 처음보는 사람의 등짝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에, 그것이 나였음을 깨달았다.

이후의 영상은 내가 그녀에게 했던 짓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 밖에 없었다.


“여차할 땐 이걸 인터넷에 풀어.”


카톡!


여학생이 눕던 책상 옆에 널부러진 외투에서 소리가 났다. 내가 입던 외투다.

이어 여학생은 가방에서 입구가 넓은 보온병을 꺼냈다. 그것을 자신의 다리사이에 두더니 자신의 다리 사이에 하염없이 흐르는 정액을 씹질해서 쏟아냈다.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급기야는 제 아랫배를 주먹으로 쿵쿵 내려찍었다.

그렇게 질 속 정액을 남은 분숫물과 함께 보온병에 터뜨린 여학생은 가방 속에서 휴지를 찾아 몸을 닦았다.


“미안해. 죄책감 갖게 해서. 선생님같은 착한 사람이, 나 같은 년과 휘말려버려서.”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내가 홧김에 덮쳤는데, 도리어 여학생이 사과를 하다니.

무언가 잘못됐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이게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그러나 영상 속 여학생은 자신을 따돌리는 친구도, 괴롭히는 친구도 없다고 말했다.

즉, 이 모든 과정은 그녀 스스로 꾸몄다는 소리다.


..대체 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기초적인 심리상담교육을 받을 때에도 이럴 때에 대처하는 방법따윈 나와있지 않았었다.

정말로. 대체 왜였다.


“선생님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냥 재난을 맞았다 생각하면 편해. 음..기왕이면, 기분 좋았었으면 좋겠어.”


교복을 다 입은 여학생. 넥타이를 목 끝까지 올려 멍을 가린 그녀는 다리사이에 흘린 자국을 남긴채로, 가디건과 그녀의 머리에 정액을 놔둔채로 그냥 가려했다.


“가지 마!”


여학생을 강간한 이후, 그녀에게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왜? 더 해줘?”


교실 미닫이문 앞에 선 여학생이 다시금 나를 쳐다봤다. 복잡한 머리를 가까스로 정리하고서야 다시 말을 내뱉었다.


“그런 꼴로 가면 안 돼.”


여학생은 자신의 용모를 이리저리 봤다.


“아니야. 이런 꼴이어야 해.”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안 돼.”

이제와서 생각하지만, 참 이기적인 말이었다.

내 눈 앞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띈 여학생은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아무도 나를 신경써주지 않으니까.”


문을 여는 여학생.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가르쳐줘.”


여학생이 멈칫했다.

못 들을 것이라도 들은 것처럼.


“영상에서 네 학생증도, 주민등록증도 전부 다른 이름이야. 만 18세 이상이여야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잖아? 고삼이라는 소리잖아. 내가 너 나이의 학생들과 함께 1,2,3학년 올라가며 담임을 맡았어. 근데 너는 지나가면서도 단 한 번을 보지 못했어. 혹시 전학생이야? 그렇다면 이름을 가르쳐줘.”


“나는 이름이 없어.”


“뭐? 그럴 리가..”


“선생님은 3반이지?”


“..어떻게 안 거야?”


“네가 그 반에 배정받았어. 출석부같은 곳에 학생 정보는 있는데 이름은 없는 란이 있지 않았어? 그게 나야.”


“오류인줄 알았더니..”


“오류 아니야. 사실이야. 나는 이름이 없어. 다른 이름들을 돌려쓰지만, 내 이름은 없어.”


“더 물을 건 없지?” 하며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여학생.


“그럼! 지금부터라도 이름을 만들자!”


여학생이 멈칫했다. 산책가자는 말을 들은 개의 느낌의 멈칫이었다.


“이름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면 되지. 뭘로 할래? 쌤은 민하, 예인, 서아가 좋을 거 같아.”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다는 발언은 교육자로서 도저히 지나갈 수 없었다. 패션우울증에 걸린 애들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짜로, 이 학생은 그 누구에게도 불리지 않아도 괜찮았을 정도로 이름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신경을 써주면 될 일이다.

늦지 않았다. 교육자로서의 의무도 아직 유효하다.

아니. 유효하지 않아도 나는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붙잡는 이유는 단 1초라도 함께 있어주기 위함이다. 그래도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여학생이 겨우 입을 떼었다.


“..시든.”


“시든?”


“응. 시든으로 불러줘. 성 없이, 이름만. 시든.”


“시든. 알겠어. 시든.”


“..응. 좋아.”


“잠깐 가기전에, 그래도 머리의 정액만큼은 닦아야 할 것 같아.”


“괜찮아.”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써주지 않으니까.”

활짝 편 웃음꽃이었다.


“선생님 빼고는.”


그렇게 내가 강간한 여학생은 달아났다.


이 날,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어떻게든 저 여학생을, 시든을 돌려놓겠다고. 보통의 여학생들처럼, 시든도 꽃을 보고 좋아하고, 또래의 남학생을 보고 두근거리며, 누군가에게 고백받고 고백하는 나날을, 수행평가와 시험에 골머리를 앓는 청춘을 즐기게 해주겠다고.

보통을 알려주리라고, 나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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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써봤는데, 계속 볼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