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피폐물 채널

태그는 판타지

다른데에 올렸던건데 반응이 별로더라고

왜지? 하고 다시 읽어보니 여기 올리는게 맞겠더라

여기서 좋아하면 너무 암울해서 그런거고 아니면 내 글에 문제가 있던 것 같은데




§




우리는 사이좋은 남매였다.

나이 차이가 꽤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어서 그런 것인가?

친구들은 자신의 형제, 자매를 '호적메이트', '그것', '우리 엄마 아들' 등등으로 부르며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오빠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오빠는 나를 진심으로 아껴 주었다.


사람들은 오빠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몇 백 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던가.

부모님을 이른 나이에 떠나보낸 우리 남매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던 것은 오빠를 향한 어른들의 후원 덕분이었다.

우리 남매를 입양하겠다는 어른들도 있었지만, 오빠가 모두 거절했다.

귀족이 될 수도 있었다는 아쉬운 마음도 있어서 오빠에게 칭얼거렸는데

오빠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초콜릿을 사 주었다.


평소에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포장부터 남달랐던 초콜릿이었다.

내가 무슨 애냐며, 겨우 이런 걸로 마음이 풀릴 것 같냐며 오빠에게 툴툴거리며 한입 베어 물었다.

분하게도 마음이 풀렸다.


나는 이 행복한 시간이 평생 지속될 것 같았다.

어느 날 오빠가 방안에 틀어박히고, 후원들이 끊기기 전까지는.

그런 시간이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




오빠를 몇 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같은 집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몇 년 만에 다시 본다는 것이 이상한 얘기지만.

그 강대했던 마력으로 내가 밀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으니 어쩔 수 있나.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문 앞에 음식을 두고 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절반도 채 먹지 않았지만.


몇 년 만에 만난 오빠는 심히 초췌한 몰골이었다.

어쩌면 이미 죽은 시체가 돌아다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은 죽어있고, 몸은 말라 있었다.

"엘라, 잠깐 얘기 좀 할까?"

현실감이 들지 않아 여러 생각을 하다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 내가 좀 큰 실수를 했어. 응... 그 많던 후원들이 한순간에 끊길법한 큰 실수."

"..."

"겨우 결심하고 엘라에게 털어놓으려고 했는데 차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털어놓을 엄두가 안 나네... 자세히 말 못 하는 것은 이해해 줘."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자 물을 한 모금 삼키더니 오빠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후원받았던 재산들, 남아있지? 엘라가 전부 가져가. 나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어, 몇 년 동안 겨우 짜내고 짜낸 용기가 겨우 이 정도인걸."

"뭐...?"

"여태까지 한심한 모습만 보여줘서 미안했어."

"내가 떠나면 오빠는 뭘 할 건데?"

"응? 아하하..."


오빠가 대답을 회피한다. 결코 좋은 일을 할 거란 예감이 들지 않는다.

"싫어."

"엘라..."

"내 8살 생일로 줬던 소원권 기억해?"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시던 시절, 오빠가 재능을 깨우치기도 전의 시절.

오빠가 용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려 내 생일 선물을 사지 못해 대신 주었던 소원권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

오빠의 표정이 굳는다. 이런 표정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이 소원권, 지금 사용할게. 예전의 오빠로 돌아와 줘, 방으로 틀어박히기 전, 빛나고 존경스러웠던 오빠로."

말을 내뱉고 나니 오빠에게 상처를 줄만한 말 같아서 아차 싶어서 사과를 내뱉으려고 했다.

지금도 오빠를 존경하는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뭔가 말이 심했던ㄱ..."

"알았어." 

".... 응? 진짜?!"
"응... 엘라가 원하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일자리 좀 알아봐야겠네."


그 말을 하더니 오빠는 터덜터덜 욕실로 들어간다.

청결 마법으로 관리한 것인지 딱히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마음가짐의 일환으로 보였다.

오늘은 인생 최고의 날인 것 같았다.




§




"엘라 양, 상담실로 와 주실 수 있나요?"

이번 주도 자크 교수님이 나를 상담실로 불렀다.

자크 교수님은 평민이었지만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아카데미 교수로 부임 받을 정도로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거기에 더해 오빠에게 관심이 많았다. 매주 나를 상담실로 불러내 오빠의 근황을 물어볼 정도로

교수님과 나는 어느새 꽤 친해져 있었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성 때문일까? 교수님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둬서 너무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그러니까... 데미안이 드디어 마음을 다잡고 취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죠?"

"네! 아직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요."

"마침 우리 딸의 가정교사를 알아보던 중인데, 혹시 관심 있다면 연락해 주세요. 저희 집에 데미안을 한번 초대해 보고 싶었거든요."

"진짜요?! 그럼 우리 오빠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뭘요, 제가 고마워해야죠"




§




"오빠! 내가 오빠 일자리 알아왔어!"

"응?"

아르바이트 전단지를 보던 오빠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런 힘든 일보다 훨씬 편한 일! 우리 교수님이 가정교사를 구한다는데 평소에 오빠를 좋게 보시던 것 같거든!"

"나는 그런 일자리 필요 없는데..."

"에이... 이미 교수님께 말해뒀는걸 그러지 말고 한번 가봐! 같이 저녁식사라도 하고 싶다고 하셨거든 맘에 안 들면 일 안 해도 괜찮다면서 말이야."


오빠가 알아보던 아르바이트들은 하나같이 힘들고 위험한 일, 나는 오빠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곳에서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혹시 모른다. 자크 교수님의 따님분과 오빠가 눈이 맞을지.

혹시가 아니지, 오빠 정도의 얼굴이면 분명 반할 거야. 친동생인 내가 봐도 오빠보다 잘생긴 사람은 못 봤으니 틀림없다.

그런 얼굴로 연애 한번 안 하는 건 죄가 아닐까?

자크 교수님도 꽤나 훈훈하게 생기셨으니 따님도 분명 아름다우시겠지


그런 사심을 담아 오빠의 외출 준비를 마쳤다.

자크 교수님의 주소를 확인한 오빠의 얼굴이 침울해진다.

"여기는... 좀... 아니... 아니야...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다녀올게."

"아, 맞다. 오늘 날씨가 좀 춥더라."

오빠의 목에 머플러를 둘러준다.

"그럼 잘 다녀와!"

오빠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크 교수님의 집으로 향한다.

기분 탓인지 오빠의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나는 죄인이다.

모든 게 내 뜻대로 풀리고 있었으니

2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경험 많은 마법사들을 제치고 아카데미의 교수를 임명받았으니

나는 약간, 아니 무척이나 오만해졌다.


많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아카데미에서 또래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에 돌아오면 착한 여동생이 반겨주는 일상

그것이 쭉 반복될 것이라 믿었다. 나는 그런 능력이 있었으니

한순간의 오만이 모든 것을 뒤엎었다.


실험을 했었다. 꽤 위험한 실험을 강의 내용에 넣었다.

원래대로라면 시간을 들여서 안전성을 검증한 뒤 실험을 진행해야 했지만

혼자 있는 여동생이 걱정되는 마음과, 내가 구상한 실험에 위험한 요소가 있을 리가 없다는 오만한 마음이 섞여서

그냥... 실험을 강행했다.


결국 한 아이가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나는 처벌을 기다렸지만, 나를 후원한 귀족은 죽은 아이는 평민이었으니 그깟 사고가 무슨 대수냐는 태도였다.

나는 아카데미 교수직을 그만두고 방안에 틀어박혔다.

귀족들은 이에 반발했지만 그동안 모아두었던 그들의 비리를 이용해 협박하니 금방 조용해졌다.


죽은 아이의 가족에게 사과를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까 봐, 나는 제압할 수 있으면서도 제압하지 않고 순순히 죽어줄까 봐, 그로 인해 엘라가 혼자 남게 될까 봐...

한심하게도 몇 년 동안 내가 한 것은 방안에 틀어박혀서 사과하러 갈 용기를 내고, 살아 돌아올 용기를 갖는 것뿐이었다.

아이의 가족의 주소를 알고 있으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해 쭉 미뤄왔다.

그러니까,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이렇게 되어야만 했다.


피로 인해 흐려진 시야 사이로 아이의 아버지가 보인다.

당연하겠지만, 그는 몇 년 만에 찾아온 죄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대체 왜 그랬던 것이었나."

몇 번이고 반복한 말을 내뱉는다.

"죄ㅅ...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ㅎ... 쿨럭!"

"사과는 이제 됐네. 충분히 들었으니."

"......"

"사과 말고는 할 말도 없는 건가."

"......"

"그럼 죽기 전에 고해성사라도 들어주게."


아이의 아버지가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사실 자네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고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네. 아카데미에서 실험이나 과제로 죽는 아이가 한둘인가. 귀족이 죽었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우리 집안은 평민이지 않은가?"

아이의 아버지가 한탄한다.

"물론 나도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아이가 원했기에,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아카데미에 보낸 것이지."

아이의 아버지가 후우, 하고 연기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자네가 용기가 없어서 사과가 몇 년이고 늦어진 것도 이해하네. 내가 자네라도 그랬을 것 같거든."

아이의 아버지가 일어선다.

"하지만 내가 자네를 용서하고 넘기면 나는 평생 이 일을 후회하며 살게 될 것 같군. 아직도 내 딸의 꿈을 꾼다네... 아내도 일찍이 죽었고, 나에겐 딸아이 하나밖에 없었거든... 여동생 하나밖에 없던 자네도 이해하지?"

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여동생이 꽤나 총명하더군, 본심을 숨기느라 꽤나 애먹었네. 마법사로서도 자네와 비슷한 경지까지 올랐어."

아이의 아버지가 연초를 짓누른다.

"조만간 모든 진상을 알아채고 나를 죽이러 오겠지, 곧 뒤따라 가겠네. 그동안 저세상에서 내 딸아이에게 사과라도 하고 있게나. 내 딸이라면 아마 용서해 줄걸세."


내 머리에 잠깐 격통이 피어오르고, 이내 의식이 잠잠해진다.




§




오빠를 꾀어내 죽였던 살인범, 자크를 죽였다.


자크는 살인 현장을 수습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내가 찾아왔을 때 자크는 소파에 앉아 연초를 피면서 "왔나."라는 말을 내뱉었다. 오빠의 시신을 옆에 앉혀둔 채로.

범행 동기를 설명해 줄 기색도 없었고, 설명을 듣는다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자크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나는 자크와 오빠의 피가 뒤섞인 피웅덩이에 주저앉는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오빠가 죽었다. 그것도 꽤 참혹한 상태로.

차가워진 오빠를 무릎 위에 눕힌다.

"오빠."

당연하지만 대답은 없다.

"그... 미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르바이트하게 두는 건데."

"아니... 그냥 그때 소원권을 쓰지 말고 떠났어야 했나..."

'그랬으면 적어도 나는 상처받지 않았을 텐데...' 하는 역겨운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어쩌다가 오빠는 이렇게 참혹한 몰골이 되어버린 걸까? 그렇게 빛나고 존경스러웠던 오빠가.

탁자 위에는 초콜릿이 놓여있다.

포장을 보니 좋았던 시절에 먹었던 초콜릿이었다.

고급스러운 포장지를 벗겨서 입에 넣었다.

분명 그때는 무척이나 달았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씁쓸했다.


초콜릿 옆에는 연초가 놓여 있었다.

평생 펴본 적 없었지만, 왠지 피면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 같아서, 

피에 젖어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입에 물고 불을 지펴보았다.

당연하게도 피에 젖은 연초는 불이 붙지 않았다. 입에서는 피 맛만 날 뿐이었다.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제 다시는 오빠를 보지 못하겠지.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저승이거나 꿈속일 거다.

다시는, 현실에서 오빠를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난로가 꺼져있었다.

어쩌면 절망스러운 현실 때문일지도.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추위 때문에 연기가 섞인 한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