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센터를 갓 졸업한 뜨내기 성좌가,
채널 이동을 하던 한 성좌에게 물었다.
[첫번째 시나리오에서 죽은 자는, 화신으로 선택 못하는거에요?]
[글쎄, 그런 미친짓을 누가 해보기는 했을까?]
<배후(背後) 선택>
―당신의 배후를 선택하세요.
―선택한 배후는 당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1. 긴고아의 죄수
별 다른 방법이 있는가.
나는 쇼크사로 사망했고, 배후를 선택 하라는데.
홀린듯이 활자 너머로 손가락을 뻗었다.
[그냥 도망가면 재미 없잖아요? 분위기를 좀 연출해보자구요!]
[죽은 자의 사념이 돌아옵니다.]
[주변의 대지가 검은 에테르로 차오릅니다.]
[마인(魔人)들이 깨어났습니다!]
무슨일이 있었던건가.
지하철 의자 밑에 처박혀 있던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
나는 죽었다. 헌데 왜 움직이는가.
부러진 목뼈가 천천히 맞춰지고, 지하철 창문쪽을 바라본다.
지하철의 새카만 창문에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내 얼굴이 아니다. 이건 내가 아니다.
딱히 잘생겼다고도, 못생겼다고도 할 순 없지만, 이목구비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다. 왜, 미용실 거울로봐도 잘 보이는 그런느낌.
확실한건, 이건 내 얼굴도, 몸도 아니라는것.
이런걸 생각해봤자 뭐하겠는가. 현실이 판타지가 되었는데.
빙의? 환생? 그런게 아닐까. 아니지, 꽤 중요한 문젠가?
지하철 칸들을 둘러본다. 뒷칸부터, 앞칸까지.
핏자국들이 선명한데, 시체는 어디에도 보이지않는다.
3707칸. 칸 전체가 새까맣다. 뭔가 터진것만 같은 흔적.
- 야.
머릿속에서 살랑거리는 울림.
왠지 익숙한, 그리운 느낌이다.
"배후성님?"
- 그래 임마. 참나. 이게 되는지도 몰랐지만, 시나리오대로 행동 안하는것도 신기하네"
"네?"
- 좀 익숙한 냄새가 난단말이야, 너한테선, 너 나랑 만났었냐?
"죄송한데, 지금 어떤 상황이고 제가 어떤 상탠지 저한테 설명 좀 해주실래요?"
- 흥. 그런거 해 줄 여유 없거든. 내가 잘못 봤나.
너 근데 정체가 뭐냐? 나한테만 솔직하게 말해봐.
작은 솜뭉치들한테는 조용히 해줄게.
"저도 모르죠,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 넌 죽었는데, 살았어. 정확히 반만 죽었다고.
아니지, 몸은 죽었는데 정신은 살아있다고 해야하나.
나는 내 팔을 쥐였다 폈다 해봤다.
딱히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조금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기도.
"이게 뭐가 뭔지, 처음부터 설명 좀 해주실래요. 부탁드립니다."
배후성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방대한 내용이었지만, 딱히 어렵진 않었다.
배후성이 말을 단순하게 했거든.
"그러니까 이세계는 이야기 그 자체이며, 당신은 서유기의 제천대성이고, 저는 지금 죽어서 마인이 되었다는겁니까?"
- 그래. 근데 왜 살아있냐고. 아까 성류 방송으로 봤는데 첫번째 시나리오에서 죽은 화신들은 전부 두번째 시나리오에 사용되고 폐허로 떨어진단 말이지.
"아까 제가 익숙했다는 이야기는 뭔데요."
-정확히는 네가 익숙한게 아닌데, 니가 아까 죽을때.... 아니, 설명하기 귀찮다.
진짜 손오공이네.
"그래서, 이젠 뭘 해야하나요?"
- 다음 시나리오를 수행해야지. 근데 나는 단순 호기심으로 너랑 계약한거야.
첫번째에서 바로 죽은놈을 화신으로 삼고 싶지는 않은데.
"뭐라도 해주고 그렇게 말하세요."
- 말하는거 봐라. 그래.
니가 내 도움 없이 두번째 배후선택까지 살아남으면,
너랑 정식으로 계약 해줄게. 그때까지 다른 배후성이랑 계약은 안되는거고. 물론 중간에 궁금한것들을 답변해주거나 팁같은건 알려주지.
이때는 몰랐는데. 원숭이 같은놈. 차라리 계약 파기를 하자고 해라.
"좋아요. 까짓거 한 번 해보죠."
- 내 기억에 너는 결국에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야해.
근데, 다리는 이미 전부 끊어졌고. 남은건 어룡들이 득실득실한 강을 건
배후성의 말을 끊고 메세지가 갑자기 나타났다.
[시나리오 클리어에 실패했습니다.]
[히든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