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혹시 천사이십니까? (3)







“감당해 볼 만한 위험이라. 그거참 웃긴 말이군요.”


위험도 이런 위험은 없을 거다.


그는 당호엽이다. 겨우 약관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타 문파의 장로들조차 감탄할 만한 능력을 갖춰 기재(奇才)라고 불리는 이. 그런 이에게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당호엽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내를 흘겨보았다.


‘게다가 무림 쪽 사람도 아닌 거 같고.’


어정쩡한 검은 무복부터 노란색으로 물든 머리색. 눈에 띄는 것들을 제외하고 보아도, 저 사내는 너무나 생소하다. 무림뿐만이 아니라 <스타 스트림>의 정세에도 다식(多識)한 그가 모를 정도다?


‘볼만한 업적도 없다는 거지.’


사내가 지겹다는 듯이 궁시렁 거렸다.


“뭐, 언제 싸울 건데?”


우드득. 우드득.


사내의 주먹에서 뼈마디가 맞춰지는 소리가······. 잠깐, 뭐?


‘검도 없이 싸우겠다는 건가?’


당호엽은 자신의 옆에 있는 나무에 꽂혀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너무 깊게 박혀 뽑히지도 않을 거 같은 그 검은, 처음부터 쓸 생각이 없었다는 것처럼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당호엽이 사내에게 묻는다.


“정말 그 상태로 싸우시려는 겁니까.”


“너 정도 상대하는 데 무기를 쓰면 그게 더 이상하지.”


“······생전 검을 쓴 적도 없으시면서. 별 말은ㅡ”


“어허. 조용.”


당호엽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괜한 걱정이었군.’


그를 앞에 두고도 태연히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자니, 한시라도 빨리 저 미간에 비도를 박아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급할수록 그 실수는 더 잦아진다. 그것을 알고 있던 당호엽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


한 번 심호흡을 한 그는 사내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반대로,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이러다가 날 다 지나겠네.”


“······.”


“뭐해? 가만히 있어 주잖아. 선공을 넘긴 건데, 이걸 못 알아보는 건가?”


“······후회하지 않으시렵니까?”


“나보다 약한 녀석한테 후회는 무슨 후회.”


우득.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죠.”


당호엽의 손에 핏줄이 새워졌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는,


“······그렇게 죽기를 원하신다면.”


오직 독기(毒氣)만이 존재했다.


‘기본만으로도 충분하다.’


당호엽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아엽아. 암기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느냐?


- 음······. 글쎄요. 막 던져도 알아서 가던데요?


-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도 알아야 된다. 기본 없이 행해지는 모든 암기술은 어린아이가 던지는 비도 만큼도 못 된다는 것을. 잘 봐둬라. 기본이란······.


천천히 다리를 뒤로 뺀다. 자세는 최대한 낮추되, 시선은 적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게의 중심은 하체로. 팔은 정확한 각도를 유지한다.


가장 기본적인 당가의 암기술 자세. 어린아이들도 따라 할 수 있을 법할 정도로 하찮게 보이지만, 당가의 모든 암기술의 근원이라 칭해지는 자세이다.


하지만 말만 기본일 뿐, 누가 그 자세를 취하냐에 따라 그 위험성은 천차만별이다.


당호엽이 눈을 뜨며 사내를 응시하였다. 그리고는 그 사내를 향해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 입을 놀린 걸 후회하게 해주지.”


당호엽은 비도를 쥔 손끝에 더욱 신중을 가하였다. 일격. 단 일격에 끝내는 것이다.


물론 이 일격으로 인해 저 사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어쨌는가? 관객이라고 해봤자 저 사내와 비슷한 나이의 여협만이 있을 뿐이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길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가를 욕보인 죄. 분명 기회를 주었건만, 이것은 그 기회를 차버린 이가 받을 죗값이니라.


[스킬, ‘섬전탈명(閃電奪命) Lv.4’이 발동합니다.]


쉬이잉.


팔을 휘두른 당호엽의 손에서 비도가 발출되었다. 그저 아무런 속임수 없이, 부드럽게 날아가는 비도.


마치 독니를 가진 뱀이 사냥감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듯한 그런 모습은, 마음만 먹더라도 피할 수 있을만큼 느리게 날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아아아아아앗!


공기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가공할 속도로 사내를 향해 비도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속임수?’


그딴 건 필요도 없다.


오직 속도. 위력도, 그 무엇도 아닌 속도만이 이 기술의 중심이 된다.


파아아앙!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서 사라진 비도. 그리고 사라진 비도가 만들어낸 모래폭풍이 둘 사이의 시야를 가렸다.


그로 인해 사내가 죽은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당호엽의 입에선 웃음이 나왔다.


그의 ‘'섬전탈명'’은 그보다 한참을 더 수련한 당가의 장로들조차 당황하게 만든 암기술이다. 하지만 그들이 당가이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눈을 깜짝할 새에 이미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안타까울 따름이지.’


하필이면 그를 만났다는 게.


“그저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시죠.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만났다는 게 가장 불행이었으니깐요.”


당호엽이 걷히지 않은 모래폭풍을 향해 말했다.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다가 운명을 맞이했다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다만.


휘이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천천히 모래폭풍이 걷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든, 승리를 확신한 당호엽은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시하군.’


앞으로는 저런 녀석들이 뭔 짓을 한다고 해도 무시해야 할까. 시간도 아깝고. 무엇보다ㅡ


“어딜 가냐.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걸어가던 당호엽의 걸음이 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순간 그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자, 잘못 본 건가?’


뭐, 뭐지?


눈을 비빈 당호엽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콜록. 콜록. 어으, 망할 모래들.”


생채기조차 나지 않은 미카엘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 어? 네가 왜······?”


[전용 스킬, ‘섭리를 거스른 자’가 화신 ‘당호엽’을 한심하게 바라봅니다.]


“어떻게 살아있냐고?”


미카엘이 가볍게 웃었다.


“항상 똑같은 짓부터 하니깐 그렇지.”


‘섬전탈명’이 좋은 기술이기 하다만, 쟤는 가르침을 받을 때부터 그 본질을 잘못 이해했다.


멋있게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팔을 휘두른다. 


그렇게 날아가는 비도는 항상 머리만을 노린다.


이 간단한 세 문장에 저 당호엽의 비기가 나타나 있다.


암존(暗尊)일 때의 그는 전투의 양상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엄청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저 경험이 적은 소가주일 때의 그는 항상 반복되는 기술로 전투 초반에 끝을 보려고 한다.


‘쟤가 그 습관을 버리려면 한 20년은 족히 지나야될 거다.’


주르륵.


미카엘의 뺨에 생긴 얇은 선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아직은 이정도인 건가.’


[전용 스킬, ‘섭리를 거스른 자’가 당신을 하찮게 바라봅니다.]


직접 싸우지도 않는 녀석이 말은 많다.


뭐, 그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미카엘'이라는 성좌가 저 하찮은 공격에 피를 흘렸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같은 반응을 할 거 같긴 하다.


‘근데 내가 싸움을 못하는 걸 어떡해.’


나는 미카엘이기 이전에 일반인이다. 싸움의 ‘싸'자도 모르는 일반인.


아무리 미카엘에게 빙의하였다 하더라도, 그의 모든 전투 지식과 경험들은 습득할 수는 없었다.


만약에 당호엽이 진심으로 비무에 응했다면······ 글쎄다, 그대로 당했을지도?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당호엽의 얼굴에는 황당함 그 자체가 쓰여있었다.


“어, 어떻게 피한 거지?”


“아아. 그거? 그냥 고개만 돌려도 피해지던데?”


물론 나도 몰랐다면 이미 시체가 되었겠지. 근데 어쩌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걸?


“근데, 그거 속도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ㅡ”


샤악.


그가 움직였다는 것을 인지도 하기 전, 미카엘의 모습이 긴밀하게 사라졌다. 마치 그가 사용했던 ‘'섬전탈명'’처럼 말이다.


당호엽은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치, 침착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면······.’


그리고 그의 앞에, 미카엘이 빛처럼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는 빛과 함께 나타났다.


또한 아주, 아주 강하게 쥔 주먹과 함께.


“힘도 실려야지. 속도만 빠르면 뭐해.”


자신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드는 걸 바라본 당호엽이 흐뭇하게 웃었다.


“······음.”


조졌네.


콰아아아아아아앙!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안면에 주먹을 얻어맞고는 나무로 날아가 그대로 처박혔다.


쿠웅!


“카하악!”


생전 느껴보지 못한 고통에 당호엽의 입에선 괴성이 흘러나왔다.


“끄아아······”


미카엘이 손을 휘저으며 당호엽에게로 향했다.


“어우. 먼지야. 이러니깐 기관지가 안 좋아······. 너 괜찮냐?”


“끄으으으으으으응······.”


미카엘은 진심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강하게 때렸나?’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던 초록색 장포와 무복이란 무복에는 온갖 흙이 다 묻은 채로 널부러져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당가에 서식하고 있는 한 명의 거지와도 같았다.


“아, 아직 끝난 건 아니······.”


“아이고. 야, 야. 그냥 누워있는 게 어떠······. 아이고.”


후두두두둑.


당호엽이 겨우 일어서자, 그의 장포 속에 있던 암기부터 시작해 독까지.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


허탕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던 당호엽이 나지막이 말했다.


“······식.”


“뭐라고?”


“······마, 망할 자식.”


이게 다 누구껀데······.


쩌저적.


툭.


그 순간, 나무가 벌어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그의 앞으로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땅에 ‘박혔다'가 알맞은 표현이다. 적어도 그의 애병들처럼 굴러가진 않았으니까.


당호엽은 있어도 없는 듯한 정신을 집중시켜 떨어진 무언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자, 그의 입에서는 오직 웃음만이 나왔다.


“······하, 하하하······.”


검이네. 검.


저게 뽑히긴 하는 거였구나.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세상이 흐려져 가는 사이, 당호엽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시발.”


푹.


그것이 그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



수우우우······.


콱!


“우와······.”


수많은 비도가 꽃힌 과녁. 그 과녁을 바라보던 당호엽은 단순한 호기심에 비도를 던진 이에게 물었다.


“아부지.”


“음? 왜 그러냐, 호엽아?”


“아부지는 왜 그러케 강해요?”


당호엽의 아버지, 당장평(當張平)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고?”


당장평은 잠시 턱을 잡고 고민하였다.


“음······. 나는 아직 강한 게 아니란다. 오히려 강함으로 따진다면 내 아버지, 그러니깐 네 할아버지가 더 강하지.‘


“할아부지?”


당호엽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 멀리서 초록색 장포를 입은 한 노인을 중심으로 한 무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 무리를 바라보고 있던 당장평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가주님 말이다.”


그리고 걸어오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장로님과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호엽을 바라보았다.


“아엽이랑 놀고 있던 거냐?”


“그······.”


당장평이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애가 암기술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하도 보여달라 졸라서 말입니다. 독에는 관심도 크게 없어서 문제죠.”


“허허. 너도 어릴 때 그러지 않았느냐. 어찌 지 아비랑 똑 닮아······.”


“그, 그건 비밀입니다!”


평화로운 부자의 잡담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당호엽은 가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할아부지다.’


다다다닥.


그리고는 작은 발걸음으로 총총 뛰어가 가주의 초록색 장포를 끌어당겼다.


“할아부지.”


“호, 호엽아!”


기겁하는 당장평을 만류한 가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호엽을 바라보았다.


“괜찮다. 괜찮아. 무슨 일이냐, 아엽아?”


“할아부지는 비도 잘 던져요?”


그 질문이 재미있다는지, 가주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우리 아엽이가 당가의 무공에 관심이 많나 보구나.”


멀뚱한 표정으로 당호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이 할아버지가 당가에서는 제일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단다.”


“정말요?”


“물론이란다.”


“그러면 보여주실 수 있어요?”


바삐 장로들의 눈치를 살피던 당장평이 급하게 당호엽을 끌고는 말했다.


“호, 호엽아! 가주님께서는 바쁘시니깐 나중에······!”


“장평아. 나는 괜찮다 하지 않았느냐. 우리 아엽이가 원하는 데 안 보여줄 수는 없지 않겠느냐.”


가주는 등을 돌려 자신의 일행들에게 말했다.


“장로들은 이만 물러가도 괜찮네.”


“하, 하지만 가주님. 이번 사항은 한시가 급한······.”


“내 손주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렇다네. 어찌 이번만은 안 되겠느냐?”


“······알겠습니다. 가주님.”


장로들이 몸을 돌리면서 당장평을 노려보았다. 당호엽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장로들의 눈초리를 한 번에 받게 된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아, 참. 아버지도 많이 순해지셨습니다. 옛날이었으면 바로 그 담뱃대로 때리셨을······. 아악! 왜 때리십니까!”


“너는 안 가느냐?”


“저는 왜 갑니까?”


“단 둘이 있고 싶다고 했잖나. 그리고 너 또한 소가주라 할 일이 더 많을텐데? 여기서 아엽이랑 농땡이를 피우고 있겠다, 이 말이냐?”


“제가 언제 농땡이를 피웠다고 그러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말은······.”


“장로들한테 사과도 해야될텐데.”


“그건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 아닙니······. 히익!”


그의 아버지가 눈빛에서 살기를 뿜어대자, 당장평은 깨갱거리며 장로들이 걸어갔던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주는 그런 당장평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옛날에는 말도 잘 듣던 녀석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왜 저러는지 몰라.”


하지만 그러던지 말든지, 당호엽은 그의 초록색 장포를 끌어당겼다.


“비도. 암기술 보여줘요. 멋있는 거 슉슉.”


“허허. 그래. 우리 아엽이가 보고 싶다는데, 이 할아버지가 보여줘야겠지.”


가주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까 전, 당장평이 비도를 박아놓았던 과녁을 바라보았다.


‘장평이 녀석도 실력이 많이 늘었군.’


아직 그한테는 한참 못 미치지만 말이다.


가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후우······.”


그리고 자세를 잡은 그 순간. 그의 온화했던 그런 모습은 다 사라지고, 흉흉한 기세가 뿜어나왔다.


“잘 봐두거라, 아엽아.”


샤악!


[스킬, ‘섬전탈명(閃電奪命) Lv.10(+5)’이 발동합니다.]


그렇게 팔을 뻗어 비도를 날린 그 순간.


파아아아아아앙!


발출된 비도가 빛과 같이 모습을 감추자, 동시에 일대를 휩쓰는 폭발 소리가 당가에 울려 퍼졌다. 


후우웅······.


한차례 먼지바람이 지나가자, 과녁······ 아니, ‘과녁이었던’ 박살난 나무판자가 당호엽의 눈에 들어왔다.


“······우와.”


한 번 벌려진 당호엽의 입은, 그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야 다물어졌다.


‘멋있다.’


그의 할아버지의 것은 당장평이 보인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의 위력도, 속도도.


가주의 손에 던진 비도가 자동으로 제 손에 되돌아왔다. 


“어떠냐. 이 할아버지의 ‘섬전탈명’은. 다른 누구, 심지어 네 아비한테도 보여주지 않는 기술이란다.”


당호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섬젼탈령?”


“그래. ‘번개와 같이 반짝이는 순간에 목숨을 빼앗는다.’ 이것이 바로 '섬전탈명'이란다.”


당호엽은 ‘와아.’ 하더니, 이내 눈을 반짝이며 그의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나도 크면 저런 거 할 수 있어요?”


“지금도 할 수 있단다.”


“정말요?”


“그래. 이 할아버지가 알려줄까?”


당호엽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가주는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평생을 일궈낸 것이지만, 우리 아엽이가 이어만 줄 수 있다면 이 할아버지는 못할 게 없지.”


“헤헤.”


“자, 그러면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우선 암기라고 하는 것은······.”



*



가주의 특훈이 거듭되면서, 당가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 날은 어린 당호엽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나.


- 아엽아. 이 술은 말이다······.


- 아, 아니! 아버지! 호엽이는 아직 충년(冲年 : 10세)도 안되었다고요!


어느 날은 혼자서 연습하겠다는 당호엽을 두었더니, 당장평의 처소에 비도가 날아와 꽂혔고.


- 가, 가주님······? 호엽아?


- 허허. 우리 아엽이가 힘이 더욱 강해졌구나. 곧 있으면 이 할아버지를 뛰어넘을······.


- 저 죽을 뻔 했······. 저, 그냥 가시면 어떡하십니까? 가주님? 아버지!


그렇게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 이렇게 하는 거에요?


- 오냐.


- 이건 어때요?


- 나쁘지 않구나.


- 할아버지. 제가 생각해 봤는데, 이 부분에서는 이런 식으로 던진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비도를 던지는 횟수는 더욱 많아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아다니는 비도는 부드럽게 떨어지는 벚꽃잎을 지나가고, 매섭게 내리쬐는 햇빛을 통과한다. 


낙엽 또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쳐내고는, 매섭게도 모든 걸 덮으려는 눈조차 뚫고 지나간다.


그렇게 날아드는 비도를 따라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단 한 번. 비도가 자리에 멈춘 날. 당호엽이 지학(志學 : 15세)이 되던 그 날이었다.


"흐음······. 벚꽃이 이쁘게 피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제 손에 내려온 벚꽃잎을 만지던 당호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주는 미소를 짓고는 시선을 돌려 벚꽃나무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저 벚꽃도 지는 날이 올거란다.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지."


"······." 


"그저 내가 원하는 건 그때가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거뿐이란다."


슬프지 않겠느냐. 그런 아름다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이.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던 가주는 담뱃대를 물고는 곁에 있던 당호엽에게 물었다.


“아엽아.”


“네, 할아버지.”


“너에게 당가란 무엇이냐?”


"당가 말이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당호엽은 세심하게 고민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시무룩하며 말했다.


“끄응······. 저에겐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직 저는 그걸 깨달을 만큼 오래 살지도 못했고요.”


그의 답에 가주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오래 살지 못했다라······. 그래. 너에게는 너무 이른 질문일지도 모르겠구나.‘


“······.”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몸도 깨우치지 못했으니. 참 웃기지 않느냐? 이제 미수(米壽 : 88세)가 다 되어 죽어가는 데도, 가문의 주가 되는 사람이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


“할아버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당호엽을 바라보며, 가주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거라. 어차피 오게 될 일이다. 언젠가는 네 아비가 이 자리를 잇게 되겠지.”


후우.


가주의 입에서 검은 독연(毒煙)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네 아비가 그렇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아비 대신 가주에 올라······.”


“하, 할아버지!”


“허허. 농담이다. 농담.”


“······.”


가볍게 던진 농담에도, 당호엽의 시무룩한 표정은 풀릴줄을 몰랐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지.’


잠시 눈을 감은 가주는, 천천히 눈을 뜨며 당호엽을 바라보았다.


“아엽아.”


“······네.”


“언젠가는 당가에도 변화가 찾아오게 될 거란다. 그러면 네가 알던 모습이랑 많이 바뀔 수도 있겠지.”


가주가 당호엽의 어깨를 힘겹게 잡으며 말했다.


“이 할아버지······ 아니, 당가의 가주로서 너에게 부탁하마.”


“······.”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식솔들이 너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이 당가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어쨌든 이곳은 네가 태어난 곳이자, 너의 전부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가주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부디 나를 위해서라도, 네 아비를 위해서라도 이 당가를 부탁하마.”


“······.”


“가주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네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네 아비를 보좌하고, 당가를 도와주거라. 이것이 이 늙은이가 바라는 부탁이란다.”


당호엽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대답하기에는 너무 까마득하고, 먼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주는 그런 당호엽을 바라보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 평생을 일궈낸 것이지만, 우리 아엽이가 이어만 줄 수 있다면 이 할아버지는 못할 게 없지.


- 헤헤.


텁.


그리고 그때와 같이, 그는 다시 한 번 당호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호엽이 볼 수 있던 그의 할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


쏴아아아아.


폭우가 내린다. 얼마 안 가 당가를 집어삼킬 듯한 정도의 폭우가.


당호엽은 그의 할아버지의 처소, 지금은 당장평의 처소가 된 그곳으로 가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 왔느냐. 아엽아.


평소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언제나 웃으며 반겨주던 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점. 그것뿐이었다.


당호엽은 그의 할아버지의 유품인 담뱃대를 입으로 가져가 한 대 피웠다. 검은 연기가 올라오면서, 그의 입가에 독향이 가득히 퍼져나갔다.


후우.


“할아버지.”


그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할아버지께서 떠나신 이후로 당가가 많이 변했습니다.”


- 아, 아버지.


- 아버지가 아니라 가주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 ······죄송합니다. 


“항상 웃고,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던 그런 모습들이 전부 사라졌죠. 마치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모든 것이 차갑게 변했습니다. 아버지 또한 많이 엄해지셨고요.”


그리고······.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저를 아니꼽게 보더군요.”


- 당호엽 저 녀석은 맨날 이상한 암기술만 연습하더군.


- 그러게 말이다. 심지어 장로님들도 터득하기 어렵다던 ‘만천화우(滿天花雨)’조차 완벽하게 행한다고 하던데. 그런 녀석이 뭐가 부족하다고 저 이상한 것만 연습하는지······.


- 더욱 뽐내려고 하는 거지. 이제는 완전히 당가에서 벗어난 짓을 하다니. 쯧.


“사람들은 전부 다 할아버지의 '섬전탈명'을 보고 이상한, 심지어 당가의 것이 아닌 암기술이라고 합니다.”


당호엽은 고개를 돌려 항상 그의 할아버지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 말을 들었으면 노발대발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피식 웃은 당호엽은 다시 한 번 입가에 담뱃대를 갖다 대었다.


“왜 그들에겐 안 보여주신 겁니까? 저에게는 좋다면서 마음 껏 보여주시고, 심지어 가르쳐주셨던 그 기술을요.”


도대체 제가 무엇이 예뻤다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후우.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저를 원망하는 겁니다. 나 자신을.


“아까 전에 아버지······ 그니깐, 가주께서는 말씀하시더군요. 장차 너는 가주가 될 아이이니, 강해지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당가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소가주라는 직책, 가주라는 직책은 당가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오직 강함에만 집중한다면, 가문은 그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게 될 뿐이다. 그저 당(當)이라는 성씨만 쓰는 가문만이 말이다.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식솔들, 심지어 저의 아버지······ 아니, 가주님조차 저를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가주가 되어봤자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지를요.”


다들, 경멸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쩌면, 제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당가에게는 독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해독(解毒)할 수 없는 독이.


당호엽은 뒤를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 당장평이 무언갈 쓰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주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가 볼까 합니다.”


당호엽이 담뱃대에 붙은 불을 호, 하고 불었다. 불은 작은 불씨만을 남기더니, 이내 그 작은 불씨조차 사라졌다.


“어쩌면 말이죠, 이런 저의 행동으로 인해 식솔들은 더욱 저를 안 좋게 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버려질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런 제가 당가의 이름을 빛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당가를 위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당호엽은 그의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비도를 꺼내들었다.


“언젠가는 할아버지의 '섬전탈명' 또한 깨우칠 겁니다. 그리고 그 비기를 세상에 알릴 겁니다. 그러니.”


나머진 저에게 맡기시고.


“부디, 편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당호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할아버지가 즐겨 입던, 등에 당(當)이 크게 적혀있는 반짝이는 초록색 장포가 이제는 당호엽의 품에서 휘날렸다.


등을 돌려 당장평을 바라본 그는, 다시 뒤를 돌아 비가 휘몰아치는 저 밖으로 향했다.


터벅. 터벅.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가슴을 쿡쿡 찔러오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까 피웠던 담배의 독 때문일까? 아니면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글쎄.’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의 의문증은 풀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더 이상 그의 질문을 해결해줄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러니 이건 내가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그날 이후.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호엽은 자취를 감추었다.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글귀만을 남겨두며.


그는 그저 끝이 어디일지도 모르는, 그런 길을 향해 갈 뿐이었다.



*



“아니, 그러니깐 이게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조용히 해요! 갑자기 싸워놓고 다치면 어떡하냐고요!”


“그······ 내가 대천사인데······.”


“아! 그게 인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고요! 여긴 에덴이 아니라니까요!”


“하하······. 세상이 말세네. 이제는 다쳐왔다고 하급 천사한테도 까이······. 어우, 씨! 놀래라!”


“······끄응.”


당호엽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오래 전 꿈을 꾼 거 같은데······.’


모르겠다. 이제는 지나갔을 과거일 뿐이니깐.


것보다······.


“일어났냐?”


“히이이이익!”


당호엽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저 구석진 자리로 달려갔다.


“여, 여긴 어딥니까?”


“마차 안.”


“마차는 왜······.”


“당가주 보러 가야지. 네가 졌잖아.”


“내가 졌다고요?”


지끈거리는 머릿속, 어렴풋이 생각나는 한 기억의 단편을 당호엽은 떠올렸다.


- 그저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시죠.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만났다는 게 가장 불행이었으니깐요.


- ······시발.


화악.


당호엽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자젤이 미카엘에게 물었다.


“저분은 왜 저러실까요?”


“몰라. 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나 보지.”


와. 내가 진짜 그 말을 했다고?


이겨놓고서 하는 말이면 모를까, 그 말을 해놓고 신나게 얻어맞은 자신을 바라보며 당호엽은 심한 자책감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잠깐.’


“우리 어디 간다고 하셨죠?”


“니네 가주 보러 간다니깐?”


“왜요?”


“어?”


“아니, 그러니깐 왜요?”


“······.”


미카엘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생각 없이 때렸나? 오히려 저 녀석의 생각이 없어진 거 같은데.


“와. 진짜 어떡하지?”


하지만 아무리 그가 작가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알 일은 없었다. 당호엽은 기가 죽은 모습을 보여주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집 나왔는데······.”


할아버지······.


- 오냐.


이것도 꿈인 거죠? 그렇죠?


- 허허.


제발요. 네?


하지만 그의 애절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마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가 떠났던 곳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