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어디지?


다시 눈을 뜬 신유승의 시야엔 칠흑처럼 어두운 암흑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세계선의 미궁을 부유하는 중이었다.


'아직 죽을 수 없어...'


신유승은 김독자의 말을 기억하며 다짐했다.


부유 1주째


'이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니 조금만 더 버티자.'


부유 1달째


'이 세계의 나는 잘 지내고 있을까...'


부유 1년째


'......조금만 더'


부유 4년째


'......반드시 구하러 오는거지?'


부유 7년째 이변이 생겼다.


'......이 빛은 뭐지?'


신유승의 눈 앞에 작은 빛이 생겼다. 새카만 어둠속에서 7년만에 보인 빛


신유승은 필사적으로 그 빛을 향해 다가갔다. 그 빛이 가까워지자 어떤 남자가 보였다.


ㅡ당신은......아,아아......


'왔어...정말로...날 잊지 않았구나.'


ㅡ아저씨.


'언제 한번...불러보고 싶었어...'


ㅡ나,나도 그렇게 불러도 되지? 아니,...되죠?


"지금은 네가 나보다 연장자인데 괜찮겠어?"


'...얼마든지 불러 줄 수 있어.'


"미안, 당장은 구해줄 수 없어."


ㅡ무리하지 마요, 내 이야기는 이제......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나 오랜 세월을 고통받고 이렇게 끝내선 안돼."


신유승의 영혼은 김독자의 확고한 눈을 보고 순간 말을 멈췄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아."


ㅡ어째서...


'어째서......나 같은 걸 위해...이렇게 까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며 해후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ㅡ...날 구원해줘요,......제발.


김독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허공에서 빛이 사라져간다. 신유승의 영혼은 그 빛을 또렷이 기억했다.


***


김독자와의 재회 이후, 신유승은 다시 한번 정신을 붙잡았다. 그녀에겐 확신이 생겼다.


그가 자신을 반드시 구원해 줄 것이라는 것.


신유승은 다시 기다리기 시작했다.


부유한지 10년이 넘어가고 20년 가까워져 갔다.


'......아저씨'


신유승은 자신을 구원해 줄 사람의 호칭을 낮게 중얼거렸다.


또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무슨...일이지...'


기나긴 세월을 기다린 그녀의 정신은 이미 닳고 닳아 있었다. 그녀의 정신력도 이제 한계였다.


그때 자신을 감싸는 손길이 느껴졌다.


'! 이 느낌은...아아......'


ㅡ아저씨?


그 말에 김독자의 생각이 신유승의 영혼으로 전해져 왔다.


ㅡ정말, 정말로......


김독자는 약속을 지켰다. 다시 살려주겠다는 약속도 ,중급 도깨비를 죽도록 패주겠다는 약속도, 모두 지켰다.


이윽고 김독자의 또 다른 생각들이 전해져 왔다.


앞으로 신유승이 도깨비가 될 것이라는 것 자신만을 방송해주는 이야기꾼이 될 것을 전해왔다.


"기억이 더 사라질지도 몰라, 정말 괜찮겠어?"


김독자가 다시한번 물었다. 하지만 신유승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ㅡ괜찮아요...두렵지 않아요. 아저씨가 이야기 해줄거라 믿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신유승의 영혼은 도깨비의 알로 들어갔다. 아마 다시 눈을 뜨면 어엿한 도깨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구원자를 위한 이야기꾼이 되었다.


***


부들부들, 뀨륵


도깨비의 알이 태동했다. 세상을 향해 뻗어나갈 준비를 하듯, 활기차게 움직였다.


이윽고


쩌저적


알이 갈라졌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신유승의 시야엔 너무나도 슬픈 표정의 김독자가 있었다.


'오랜만이다, 유승아'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독자와 눈을 마주친 신유승은 이제 비유가 되었다. 비유는 다가오는 김독자의 손가락을 잡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베시시 웃어주었다.


[설화, '도깨비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뒤로 비유는 김독자와 마왕 선발전을 끝냈다. 지쳐 누운 김독자의 품에 안겨 달래주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바앗'이라는 옹알이 비슷한 소리였지만 김독자는 그 마음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을 감싸주는 설화가 있었기에


ㅡ바앗

'수고했어요 아빠.'


"...고맙다, 비유야."


[설화, '도깨비의 아버지'가 도깨비 비유에게 옛날 이야기를 읊어줍니다.]


설화의 힘으로 비유는 자신의 전생을 깨달았다. 자신을 이루던 수천년의 세월과 단 한 사람을 기다렸던 세월의 이야기가 잔잔히 흘러들었다.


그렇게 김독자의 품에 안겨 잠에 들었다.



얼마 후...73번째 마계의 하늘을 찢으며 넘어오는 이계의 신격을 향해 김독자가 날아갔다.


비유는 무서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슬피 우는 것 말고는......


ㅡ아바앗. 바앗...바아아앗.

'가지 마요...너무나 위험해요...'


"안돼. 돌아가...사람들을 부탁해."


김독자가 차원문을 통해 사라진 후 비유는 비형이 구출하러 올때까지 구슬프게 울었다.


ㅡ바아앗...바앗...바앗

'제발! 가지마!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ㅡ비유야! 위험해!


어느새 나타난 비형이 주변의 혹부리들을 경계하며 재빨리 관리국으로 비유를 대피시켰다.


비유는 비형의 품에 안겨 울다 지쳐 잠들었다.


ㅡ하...김독자...제발 살아돌아와라.


비형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


3년 동안 비유는 비형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자신을 다시 부활시키는데 도움을 준 존재이기 때문에 도깨비이지만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리고 비형이 말했다.


ㅡ비유야. 좀 있으면 김독자 온다는데...마중 나갈래?

ㅡ바앗?


'김독자'의 이름에 비유의 얼굴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비유는 비형의 도깨비 감투에서 재빨리 튀어나갔다.


ㅡ엇! 비유야! 천천히 가!


비형은 당황하며 비유를 따라나섰다.


ㅡ자...여기 있으면 곧 올거야. 그때까지 같이 연습할까?

ㅡ바앗!

ㅡ자, 따라해봐...'아버지'

ㅡ아바앗.

ㅡ아이 참...그게 아니라 '아,버,지'.

ㅡ아,바,앗

ㅡ으휴...아직 말문이 트기엔 좀 이른가?


그렇게 '아버지'란 단어를 연습하고 있던 사이, 진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형, 너 지금 뭐하냐?"

ㅡ앗...너 벌써 왔냐?

ㅡ아바앗!

'아빠!'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비유가 뛰쳐나갔다. 마치 방금 일터에서 돌아온 제 부모를 반기듯 김독자의 품으로 날아갔다.


ㅡ바아앗!

'살아있었네요...다행이다...'

"많이 기다렸지?"

'기다렸죠...하루도 빠짐없이...'


비유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김독자의 손을 마구 쳤다.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내가.'


울분을 담아 치는 그 손을 김독자는 가만히 맞아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꽈악 끌어안아 주었다.


'이제부터...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마음을 진정시킨 비유는 곧 김독자의 머리 위로 올라가 바앗 하고 작게 울었다.


***


비유는 그때를 회상했다. 3년을 떠나있었던 자신의 못된 아버지를...하지만 다시 돌아와 말갛게 웃어주던 상냥한 아버지를...


그리고 오랜시간이 지나 마침내 인간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을 때 비유는 잠시 울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신의 아버지와 닮아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이 모습을 어서 보여드리고 싶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들려오는 유중혁의 목소리에 끊겼다.


"비유, 이제 얼마나 남았지?"

"다음이 마지막 세계야...수고했어 대장."


비유는 유중혁과 방주를 타고 세계선을 돌아다니며 김독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절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김독자를 위해


그렇게 그들은 무사히 김독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다시 지구로 돌아온 비유를 못 알아본 사람들이 서운했지만 반갑게 맞아주니 너무나 기뻤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리고 그때 비유의 힘이 되돌아왔다.


'이 느낌은! 분명히!'


[설화, '도깨비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비유는 즉시 패널을 펼쳐 무언가를 조작했다.


그리고 패널확인을 마친 비유는 웃었다.


'관리국의 힘이 돌아왔어! 아버지가 돌아온거야!'


순식간에 달려간 그들을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방엔


김독자가 있었다.


사람들의 울음을 한참을 받아주던 김독자가 비유와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김독자는 늘 그랬듯 자신의 이야기꾼을 향해 웃어주었다.


"오랜만이다. 나의 딸."


비유가 인간모습으로 변해 김독자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정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아버지."


[설화, '시간을 초월한 구원'이 두 사람을 감쌉니다.]


둘은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마주해 처음 만났던 그때 처럼


베시시 웃어주었다.



ㅡㅡㅡㅡㅡ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내 최애케가 비유여서 언제 한번 꼭 써보고 싶었어

다른 소재가 생기면 또 찾아올게

조금 늦었지만

 김독자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