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전지적 독자 시점'을 통해 일행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그렇듯,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문장을 남기고는 종장(終章)에 다다랐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영원(永遠)한 종장(終章)이 남았으니까.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
"우리, 2세 계획 가질래?"
평화로운 어느 오후.
"그래, 나도 이제 우리 아이를 보고싶다."
그날, 나와 한수영은 2세 계획을 세웠다. 나와 한수영은 술과 담배같은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피했고, 이설화에게 날짜를 받아, 그날은 하루종일 섹스에 전념하고는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임신 테스트기의 줄은 단 하나였다.
"수영 씨, 혹시 어릴 때 잠 제대로 못잤어요?"
"그렇.....지? 아무래도 '멸살법' 연재를 했었으니까."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수영 씨의 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난임이 온 것 같네요."
이설화는 우리에게 난임 판정을 내렸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노력했다. 성좌는 '가장 오래된 꿈'인 나 말고는 모두 일반인이 되어버렸지만, 그 격들이 어디 가는것은 아니라서 성좌였던 한수영은 노화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은 많았다.
"괜찮아?"
"하, 씨발. 왜 안되는거지?"
그럼에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난임의 원인이 나를 위한 '멸살법'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한수영에게 미안했다.
"수영아, 당분간은 우리 둘이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어때?"
"안돼. 난 너와 내 아기를 꼭 낳을거야. 반드시."
한수영은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가 2세 계획을 가진지 3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2줄을 볼 수 있었다.
"야, 김독자! 이거 봐!"
"수영아, 드디어.....흑....흑....."
나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울기는 왜 울어, 응? 김독자, 태명 지어줘야지."
작명센스가 없는 내게 태명을 맡기다니, 참 한수영 답다 생각했다.
"그럼, 복덩이라고 하자.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 줄 아이니까."
"야, 복덩이가 뭐냐?"
대놓고 킬킬대며 웃는 한수영의 모습에 왠지 심술이 나서 한수영에게 되물었다.
"야, 난 이름 그대로 독자라고 독자. 그럼 천재 미소녀 작가님은 태명을 뭐라고 지을건데?"
"모모. 이름은 미르라고 할거야."
젠장,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크흠, 암튼 설화 씨께 가보자. 결과는 확실히 봐야지."
우리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S급 페라르기니의 엑셀을 밟았다. 물론 최대한 살살 말이다.
*
"축하해요, 임신되셨어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의사에게 확답을 들으니 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내 아버지처럼 못난 인간이 되지는 않을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는 벅차오름이 있었다. 한 생명의 아버지가 된다니, 나는 좋은 아빠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수영아, 우리 잘 키워보자."
"야, 난 잘 키울 수 있거든? 암튼 진짜 읽어주게 되었네? 내 로멘스 소설."
"읽기만 하냐? 앞으로도 너랑 같이 써내려갈거야."
"그 얼굴에 그런 말은 사기지 미친 노....헙."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아기가 뱃속에 있는 상태. 나는 '내가 지금 뭔말을.'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수영이 귀여워서, 얼어있는 한수영의 볼에 살짝 뽀뽀해준 뒤, 한마디 해주었다.
"수영아, 예쁜 말 쓰자."
"그....그래, 알았어."
나는 한수영과 함께 S급 페라르기니에 몸을 실었다.
*
거짓말.
내 눈 앞에 한수영이 피를 흘리고 있다.
"살......꼭......아......독....."
안돼,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우리는 그냥 집에 가고 있었는데.
-쾅!
왕복 일차선의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트럭. 한수영은 그 한순간, 오른쪽으로 헨들을 틀었다. 누가 그랬던가, 운전자는 사고날 때 본능적으로 조수석쪽으로 헨들을 틀어버린다고.
그러나, 한수영은,
자기쪽으로 헨들을 틀어버렸다.
"뭐라는지 안 들려."
귀가 먹먹하다.
한수영을 지키기 위해 뻗었던 왼손엔 감각이 없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조차 모르겠다.
날 깔고 엎어진 한수영의 몸에서 진득한 무언가가 베어나오고 있었다. 무너진 차체에서, 한수영이 등 뒤의 잔해를 지탱해고 있었다.
".........."
-애애애애앵
밖에서는 앰뷸런스 소리가 시끄러웠다.
조용히좀 해봐. 수영이 얘기 하잖아.
-툭
한수영이 내 위로 떨어졌다.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다음 생에도 너를 위해 글을 쓰고싶어."
듣고 싶지 않았던 말. 보고 싶지 않았던 결말.
"아냐, 아냐, 아니라고......"
눈 앞이 흐려졌다.
그날, 나는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천천히 식어가는 한수영을 붙들고, 흐린 시야와 먹먹한 귀를 가진 채, 그렇게 한 시간 동안이나 있었다.
*
일주일 뒤, 나는 공단 병실에서 깨어났다.
"독자 씨, 운이 좋았어요. 눈이랑 귀가 다친 건 완치됐구요, 왼손은 파편이 신경을 건드리긴 했는데 종종 떨리는 것 빼면 지장 없을거에요.
깨어난 내게 이설화가 말했다.
"수영이는요. 설화 씨, 수영이는....."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었어요."
뭔가가 툭 끊긴 것 같았다. 앞이 새카맣게 변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그렇게 행복했는데, 더없이 현실인 것 같았는데.
"수영아......수영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건 네 이름을 부르는 것 뿐이구나.
*
그 후로 몇년이 지났다. 나는 그날 이후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집안 곳곳에 그녀와의 추억이 가득해서, 집에 있으면 그녀가 그리워 질 것 같아서.
-독자 씨! 제발 답장이라도 해줘요, 제발.
휴대폰에는 문자만 수천 통이 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일행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내가 이렇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다. 나만 놔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초라해질까봐, 추할까봐.
그렇게, 가장 밝았던 별자리에서 가장 빛나던 별은 사그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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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시리즈물.
제목은 한 2화정도에 필터링 풀릴듯.
이런 글이라도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