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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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끝내자 모략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백색 코트의 핏을 다시 잡았다.

"그럼 점심때 보지."

그걸 듣고 눈을 깜박이자 내 방으로 돌아왔다. 볼때마다 감탄하지만 이번에는 감탄할 겨를은 없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이 책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13년간 멸살법을 읽었고 분명히 멸살법에는 수위 높은 장면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묘사도 둘이 몸을 섞었다고만 되었기에 수위가 있는 소설은 내 손에 들린 이 제목부터 음탕한 소설이 처음인거다.
나는 의도치 않게 부풀어 오르는 꿈을 안은 채 문을 잠궜다. 어차피 모략가의 명령이 내려오거나 999, 666이 오면 억지로라도 열릴 문이지만 이 책을 읽는단게 그리 떳떳하진 않았다. 비록 허락까지 받았음에도 말이다.
찰칵하는 맑은 소리가 문의 잠금기능이 문제 없이 움직였단걸 알려주고 있었다.

어째선지 싱글대는 입꼬리를 누르지 않고 책을 침대위에 올린 후 몸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메트리스 위에 눕기 직전 옷을 벗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서적으로 나온 시점에서 그정도 수위일 수는 없단걸 깨닫고 푹신한 하얀 색 베개에 턱을 올린 채 책의 표지를 넘겼다.

['하아! 오빠, 너무 좋아."]

쾅!
내가 뭘 본걸까. 아니 이게 정상적인 흐름인가? 아무리 수위가 높아도 스토리가 있고 개연성이란게 있다.근데 첫줄부터 저런···.

부글대는 얼굴을 차가운 두 손으로 겨우겨우 식히자 그때서야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갔다. 평생을 책과 거리를 두고 살았을게 분명한 그다. 그렇기에 수위가 높은 로맨스란 단어에서 수위만 캐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모든걸 감안하고 본다면 볼만 할지도 모른다. 다시 책을 펴 보기 시작했다.

[그의 길고 두껍고 흉흉한게···]

쾅!
도저히 못 읽겠다. 이게 소설일까 아니면 춘화의 글버전일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 책을 어디다 버려야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굳이 버려야 한다면 한번만 더 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펼쳤다.

*

"얼굴이 왜 그러지? 네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10년은 늙은 얼굴이군."
"그런가? 누구 덕분에."
"유중혁들을 벌해야하나."
"그럴 필요는 없어."
"알겠다."

이번에는 파스타였다. 설화도, 이계의 신격의 힘도 들지 않은 그냥 오일파스타. 역시 유중혁은 유중혁이구나 하며 입에 파스타를 밀어넣는걸 모략가가 조용히 보다 말했다.
 
"배가 고팠나? 아침이 부실했나보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이야!(아니야!)"

그러자 모략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천천히 먹어라, 안 뺏어먹는다."

나는 웃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흉터가 있고 생기가 쫙 빠졌어도 유중혁은 유중혁이구나.

그 후로 꽤나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식사를 했다. 방은 어떠냐, 필요한건 없냐, 999와 666이 귀찮게 하진 않냐.
모두 물어보는건 그였고 답하는건 나였다.
모략가가 잔에서 굴리던 붉은 와인을 들이키고 말했다.

"그럼 저녁 때 보지."

방으로 돌아오자 침대에 놓여져 있던 책은 다른 책으로 바뀌어 있었다.

[와인의 색은 장열한 붉은 색]

그리고 그 위에는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그 책보다는 이 책이 나을거다. -999-]




내가 쓰고픈걸 다 써봤는데 영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