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또 밤새 책 읽었니?]
페르세포네가 책들과 너부러져있는 김독자를 깨웠다. 독자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하품을 한번 늘어지게 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일단 아침부터 먹자꾸나,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
페르세포네와 독자는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명계>, 저승 또는 지옥이라고도 불리는 이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성좌들이 살고 있었다.
부유한 밤의 아버지인 하데스와, 그의 아내인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 페르세포네, 그리고 그들의 아들 구원의 마왕 김독자와 다른 하위 성좌들......여타 성운에 비하면 턱없이 빈약해 보였지만, 하데스와 독자는 어엿한 신화급 성좌였다.
그런데 신화급 성좌도 졸음은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음냐...음냐..."
[......아들아, 식사를 하는거니? 아니면 잠을 자는거니?]
독자는 여전히 비몽사몽한 눈으로 음식을 우물우물댔다.
[하아......오늘 선악의 이중주 있는 건 안 잊었지?]
"!!!"
'선악의 이중주'라는 말에 독자는 화들짝 놀라 포크를 내려놨다. 그러고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하아......꼭 가야해요?"
[그럼, 너도 이제 어엿한 마왕이잖니......천사이기도 하고.]
"그게 문제에요...천사도 아니고, 마왕도 아니고."
선악의 이중주는 에덴의 천사들과 마계의 72마왕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거나 경쟁을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독자는 마왕인 동시에 천사였다.
게다가 양측에서는 서로 독자를 가져가려고 안달이었다. 독자는 피곤했지만, 더욱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자, 이제 어서 준비해야겠지?]
"...알겠어요."
페르세포네는 등을 토닥여주었고 하데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
.
이곳은 선악의 이중주 연회장, 이미 천사들과 마왕들이 서로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었다.
천사들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성마대전은 하르마게돈에서 진행하도록 하는게 가장 나을 듯. 암튼 그럼.]
10대 소년의 외양을 가지고, 구름 위에서 나른하게 늘어진 채 이상한 말투를 쓰는 대천사 '라파엘'이 말했다.
[성마대전? 마성대전이 언제부터 성마대전이 되었죠? 마성대전은 반드시 73번째 마계에서......]
이에 질세라, 길다란 흑발에 피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색욕적인 모습의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반박했다.
[지■하고 있네! 마성대전보다 성마대전이 훨씬 어감이 더 좋거든! 성! 마! 대전!]
필터링된 목소리가 섞여서 흘러나왔다.
금발에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진 대천사 '우리엘'이었다.
[어머,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텐데요? 천사라지만 너무 돌대가린 거 같군요. 아니, 닭대가리가 훨씬 어울리겠네요.]
[저 ■■■이 진짜!]
우리엘이 그녀의 칼에 흉흉한 지옥염화를 두르며 일어서자 다른 천사들이 달려들어 말렸다.
[아니면 지금 당장 이곳도 괜찮겠군요.]
아스모데우스는 날카로운 손톱을 까딱거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두 집단의 수장들이 아가레스와 메타트론은 그저 무덤덤해보였다.
그렇게 점점 개판으로 치닫던 그때,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아하하...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늦잠을...컥!"
독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인사하자 그의 가슴팍에 무언가가 돌진했다.
[독자야....왜 이제왔어...]
"하하...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엘."
[아니, 독자가 없어서 잘 못 지냈어......그러니까 독자! 이번에도 에덴에 올거지?]
"아, 저 그게......"
우리엘이 독자의 품에서 얼굴을 부비자 그는 더욱 당황했다.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 곤란해하던 찰나.
[에덴의 천사들은 예의도 없나보군요. 구원의 마왕이 곤란해 하는게 보이지 않는가요?]
[아■리 ■쳐, 독자야, 내가 불편해?]
"그,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자, 독자 너 줄려고 음식도 차려놨어! 가자!]
우리엘이 독자의 손을 억지로 잡아 끌었다.
그러나.
[이제 천사들은 도둑질까지 하는군요.]
[뭐! 도둑질?]
[제 것을 빼앗아가는데 그게 도둑질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우리 독자가 왜 네년 거야!!]
[구원의 마왕은 수식언부터 마왕입니다. 당연히 저희 것 아니겠습니까?]
[얘가 어딜봐서 마왕이야!]
"성좌님들......"
우리엘과 아스모데우스는 이마를 맞대고 으르렁거렸다. 독자는 중재하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구원의 마왕은 살인에 약탈에 농간까지 했습니다, 그가 진정 에덴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까?]
[웃기고 있네! 그런 건 나도 다 해봤거든!]
멀리서 메타트론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얼핏보니, 가브리엘과 요피엘이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구원의 마왕은 마왕입니다.]
[아냐! 천사라고!]
'인생......'
독자는 인생무상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가레스는 궐련을 태우며 '오늘의 성좌 운세'를 보고 있었다.
메타트론은 심호흡을 하며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스토라스는 식탁에서 자신의 발톱을 다듬고 있었고, 미카엘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검풍에 식기와 음식들이 날아가버렸다. 라구엘은 울상이 된채로 음식을 다시 주문했다.
천사들과 마왕들이 모인 이곳 선악의 이중주는
개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