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이 밝았다. 평소 집안에서 뒹굴대다가 일어나는 아침이 아닌, 오늘은 각이 잡힌 아침을 맞이했다. 담당자와의 미팅이 12시, 김독자와의 약속이 3시다. 그런데도 아침부터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사랑한 남자와의 이별을 위해서다. 밤 새 고민을 조금 했지만 결국 답은 이것이었다. 그와의 추억이 담긴 것들을 들고 집을 나섰다. 길은 기억한다. 아무리 반년을 안 간 납골당이라 한들 잊을 리 없었다. 몸이 기억하듯 길을 걸었다. 그의 바람대로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납골당이었다. 그 납골당에 가까워질수록 한신영과의 추억도 떠올라 괴로웠다. 

 오랜만에 보는 납골당에 도착하자 가슴이 옥죄어 오는 게 느껴졌다. 

 후우, 숨을 내뱉으며 잘 닦아져 투명한 유리 문을 밀자 오래 된 문인 걸 증명이라도 하듯 녹이 슨 철의 소리가 났다. 섬뜩한 소리였지만 신경 쓸 건 못 됐다.

 걸음을 옮겨 내부로 들어가자 하나같이 새하얀 도자기로 가득했다. 정확히는 유골함이었으나 하얀 도자기 같은 형태에, 하나 같은 문양이 없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꽤 큰 납골당 내부를 걸어 도착한 곳에는 그리운 얼굴이 있었다.

 평소 아주 조금의 미소를 머금던 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종종 보이던 저 정말 행복한 것 같은, 사진이 담은 그의 미

소였다. 그의 유골함에 붙은 스티커 사진에 있던 나는 지금의 내가 평소 짓던 미소와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와서 다른 남자 생각이라니, 천벌 받아 마땅할 정도였다. 그의 흔적들이 조금씩 보였다. 나와 찍은 스티커사진 여러 장, 나와 맞춘 커플링.

 장식되어 있는 모든 게 나와 관련되어 있었다. 멍하니 쳐다보다가 눈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뭐랄까, 무미건조한 기분이었다. 

 슬픈가? 지금은 울 정도로 슬프지 않다. 그렇다고 그립나? 울 정도로 그립지 않다.

 감동을 먹었나? 감동 먹을 부분이 없다. 그렇다면, 안타깝나?

 마지막은 답하지 못했다. 어딘가 텅 빈 기분이었다. 흐느끼는 소리도, 훌쩍이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입고 있던 후드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저 나와의 추억으로 덮혀있는 유골함이었으나 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눈물이 거의 다 마른 걸 느끼고 여기 온 목적을 실행한다.

 "어··· 안녕? 잘 지냈어?"

 어색하다. 벽을 보고 하는 게 더 쉬울 것 같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돌아오지 않는 답을 기다리는 건 미련한 짓일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그를 상상했다. 내 얘기를 들어주던 그를, 무슨 얘기든 흥미롭게, 즐겁게 들어주었던 그를 상상한다.

 그의 모습이 뇌리에서 나타나자 그때 서야 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신영아, 일단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말을 삼킨다. 뱉을 수 있을 것 같았음에도, 뱉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곱씹고, 곱씹고, 곱씹어서 말을 뱉어낸다. 또 눈물이 흘렀다. 이제 서야 눈물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향해 말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

 "김독자, 나 왔어."

 서점에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그가 나를 올려다 보고 웃었다. 매일 보던 그 웃음이 오늘따라 더욱 설레게 느껴졌다. 그가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적으로 늘어난 키가 그와 나의 눈높이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를 올려다보고 있자 김독자가 눈가를 가렸다. 무슨 짓일까 생각할 때 즈음 김독자가 자그맣게 말했다.

 "너무 예쁘잖아···."

 그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매일 듣던 말이 저리 다르게 들린다니, 듣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긴 한가보다.

 나는 붉어진 뺨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어디 갈건데."

 그러자 김독자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오늘은 그냥 놀러 다니자."

 그리고는 약하게 당겼다. 나는 그 힘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타닥거리며 발을 바삐 움직였다. 그러자 김독자가 나를 배려하듯 느리게 걸어주었다. 덕분에 안정적인 속도로 그의 옆에서 걸을 수 있었다. 문득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보고 싶었다 같은 로맨틱한 이유는 아니었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올려다 본 것이었다.

 그의 얼굴이 잘생겨 보였다. 예전에는 그저 평범한 얼굴이라 생각했지만, 이리 바라만 봐도 심장이 뛰는 얼굴이라니.

 멍하니 쳐다보다 당사자에게 걸렸다.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왜? 내가 너무 잘 생겨서?"

 "응."

 "···어?"

 어라? 나 뭐라고 했지? 순간 내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 나온 건지 의심했다. 그리고 이내 얼굴이 화륵 불타올랐다. 다급하게 그의 시야를 손으로 가렸다. 이런 작은 손으로 가려질 지 만무하지만.

 내 예상이 맞았는지 김독자가 내 손을 약하게 잡아 내리고 말했다.

 "그거, 고백 받을 준비 된 거로 알아들어도 되지?"





달달한 요소가 안 들어갔다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