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영은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얼굴로 김독자에게 뛰어갔다. 

분명히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김독자 이 망할 새끼야..”


김독자는 천천히, 들리지 않는 팔을 들어 한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마른 손에 만져지는 한수영의 부쩍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에 김독자는 겨우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샴푸 하나 사 줘야겠네. 좋은 걸로.”


“지금 그게 중요해? 이 미친 새끼.. 또.. 또 너만 이기적이게.. 너만 그렇게 가면 우리는 어쩌라는 건데.. 이 망할 새끼야..”


울먹이는 한수영은 이내 김독자의 품에 안겨 눈물을 줄줄 쏟아냈다. 

지금까지의 설움을 모두 풀어내듯, 김독자의 팔을, 그 비쩍 마른 가슴을, 몇 번이고 퍽퍽 쳐가면서. 

왜 이제 왔냐, 얼마나 그리웠는지 아냐.

평소의 한수영답지 않게 정제되지 않은,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 그대로를 쏟아내면서, 한수영은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수영아.”


“.. 왜.”


한수영은 김독자의 가슴께에 머리를 파묻은 채 그저 묻는 말에 대꾸만 할 뿐이었다. 

문득 그녀의 우는 얼굴을 보고 싶어진 김독자는 아이를 달래듯 한수영에게 말했다. 


“수영아. 고개 들어봐.”


“싫어 이 나쁜 새끼야..”


“그러지 말고. 보고 싶었어. 기껏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한수영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볼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직 촉촉하게 맺힌 눈물이 남아있는 눈가를 쓰윽 닦아 주며, 김독자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쾅- 


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고, 김독자는 한수영의 어깨 너머로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씩 마주했다. 

유중혁, 유상아, 이현성, 정희원, 이길영, 신유승, 이지혜, 이설화, 공필두, 장하영, 한명오까지. 

김독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원래 자신이 하던대로 대하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오랜만이야, 중혁아.”


유상아와 정희원에겐 뻔뻔한 인사를. 


“되게 오랜만이죠, 우리.”


자신의 침대로 올라와 달라붙어 있는 이길영과 신유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지혜에게도 생긋 눈인사를 건넸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우두커니 자신을 향해 목석처럼 서 있는 이현성에게도 인사를 건넨 김독자는 이내 장하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금발벽안의 그 미소년은 자신을 등진 채, 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영아. 장하영.”


“..”


[성좌, ‘구원의 마왕’이 화신, ‘장하영’을 쳐다봅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화신, ‘장하영’을 부릅니다.]


그 간접 메시지에 반응한 건 다름아닌 다른 성좌들이었다. 


[성좌, ‘해상전신’이 전우와의 해후를 반가워합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감동합니다.]


[성좌, ‘흥무대왕’이 당신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성좌, ‘천제의 풍신’이 성좌, ‘구원의 마왕’의 귀환을 반깁니다.]


한반도의 여러 성좌들. 

그리고, 그 성좌들 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성좌까지. 


[성좌, ‘고려제일검’이 당신을 보고 씩 웃습니다.]


“장하영?”


김독자의 목소리에, 장하영은 마지못해 돌아본다는 듯 그를 향해 돌아섰다.

너무나 희미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눈가에도 붉은 울음기가 남아있었다. 

그런 장하영을 향해, 김독자는 말했다. 


“나, 다녀왔어.”


바로 다음 순간, 김독자의 귓전에 간접 메시지가 폭발적으로 띄워졌다. 


[성좌,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가 눈물을 닦으며 웃습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믿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성좌, ‘가장 오래된 해방자’가 집 나갔다 돌아온 막내를 반깁니다.]


명계의 페르세포네, 그리고 가장 오래된 꿈의 권능을 사용해 다시 되살려낸 하데스의 간접 메시지도 있었다. 


[성좌,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이 명계의 후예, ‘김독자’를 바라보며 미소짓습니다.]


[성좌, ‘부유한 밤의 아버지’가 명계의 후예, ‘김독자’를 반깁니다.]


예전엔 적이었지만, 그럼에도 김독자의 귀환을 축하해주는 올림포스 소속의 몇몇 성좌들의 간접 메시지가 이어졌다. 


[성좌, ‘술과 황홀경의 신’이 기쁜 날엔 술이 빠질 수 없다며 술을 꺼내러 갑니다.]


[성좌, ‘하늘 걸음의 주인’이 감개무량하게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사랑과 미의 여신’이 축배를 듭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반가운 성좌가 있었다.


[성좌, ‘양산형 제작자’가 성좌, ‘구원의 마왕’을 두 팔 벌려 반깁니다.]


지금까지 만난 이들 외의 다른 성좌들도 내게 간접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좌, ‘무저갱의 지배자’가 성좌, ‘구원의 마왕’을 바라봅니다.]


[성좌, ‘물병자리에 핀 백합’이 당신의 귀환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성좌, ‘지고한 빛의 신’이 웃습니다.]


가장 오래된 꿈이 되었을 때 무리해서라도 죽은 성좌들을 모두 되살려낸 김독자는, 수많은 간접 메시지를 보며 부끄러워했다 행복해하며, 울다가 웃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윽고 비유마저 아바앗- 하고 울며 그의 품에 안겼다. 


“왜.. 왜.. 왜 이제 왔어.. 나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장하영을, 한 팔로 안은 채 김독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뒤늦게 밀려온 죄스러움이리라.

자신은 얼마나 그들에게 걱정을 시켰고, 누를 끼쳤는가. 

그가 없어진 몇 년 간 김독자 컴퍼니의 설움과 고통을 김독자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독자 씨..”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정희원의 눈빛에 어린 그 슬픔을, 감히 김독자는 들여다보아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누를 끼친 사람이 지켜야 할 예의이자, 그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일이었다. 


“미안해요 희원 씨. 그리고 여러분들. 저,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