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제야의 종 타종식에 김독자 컴퍼니의 김독자 대표이사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김독자씨는 개인 사정 상 불참한다는 뜻을 알렸습니다. 한편 연말 콘서트의 오프닝을 담당할 예정이었던 JUS의 멤버 제천대성이 갑작스럽게 잠적한 가운데…”

 

“하여튼 형님도 막무가내시라니까, 분신이라도 세우고 도망가시지.”

 


백수처럼 소파에 기대 저녁 뉴스를 보던 김독자는 제천대성의 소식에 혀를 찼다. 연말을 맞아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전국에서 왔었지만, 그런 자리를 즐기는 김독자도 아니었고 임신 4개월째인 한수영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오예! 마감 끝났다!”

 

 

뭐, 정작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은 한해의 마지막 날까지도 소설 연재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임신한 지 제법 됐으니 휴재를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김독자가 권유했었지만, 한수영은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서도 연재를 했었다며-이 대목에서 김독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연재를 계속했다. 다행히 한수영의 연재처는 창작자에 대한 복지가 좋아 새해 일주일은 무조건 휴재를 하게 했다. 한수영이 내는 기쁨의 환호를 들은 김독자도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한수영의 방문을 열었다.

 

 

“다 끝났어 수영아?”

 

“어! 이제 일주일간 자유다!”

 

“수고했네.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떡국 끓여줄게 맛있게 먹자.”

 

 

김독자는 한수영을 조심스레 품에 앉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음…떡국도 좋지만, 지금은 다른 게 먹고 싶은데.”

 

“그래? 우리 수영이 뭐 먹고 싶어?”

 

 

김독자는 평온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긴장했다. 한수영의 입덧이 토하거나 몸살 같은 게 아닌 단순히 식욕이 돋는 거란 사실에 처음에는 안도했지만, 어느 날엔 새벽에 마르크&셀레나의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해 한창 자고 있던 마르크와 셀레나를 출근하게 만들거나 또 언젠가는 본토 북경오리가 먹고 싶다는 말에 중국까지 날아가 면식이 몇 번 없던 페이후에게 다짜고짜 북경오리 맛집을 수소문했던 등의 일들을 겪으며 김독자는 한수영이 뭘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임전테세를 갖췄다.

 

 

“조개구이 먹고 싶어.”

 

“조개구이?”

 

“응. 키조개랑 가리비랑 굴이랑, 그리고 홍합탕도!.”

 

 

한수영의 주문에 김독자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이면 근처의 조개구이 전문점은 장사를 마감했을 시간이고, 술집에서 파는 안주 수준의 조개구이로는 한수영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었다.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직접 요리해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김독자의 눈에 뉴스에서 나오는 연말 축제의 광경이 들어왔다.

 

 

“여행 갈까 수영아?”

 

“여행? 갑자기?”

 

“이제 새해니까 바닷가 쪽 가서 조개도 먹고, 해돋이도 보고 오자. 어때?”

 

“좋아! 그럼 준비하게 잠깐 나가 있어.”

 

“옷 입는 거 도와줄게, 이제 배도 제법 나와서 움직이기 힘들 텐데.”

 

“변태 X끼.”

 

 

한수영은 김독자를 한번 째려봤지만, 순순히 김독자가 옷을 갈아입히게 했다. 한수영을 도와주고 김독자도 옷을 갈아입은 후, 두 사람은 집 밖에 나와 X급 페라르기니에 탔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

 

“보령.”

 

“엥? 거긴 녹차 유명한 곳 아니야? 조개 먹으려면 포항이나 울산 같은 데 가야지.”

 

“녹차는 보성이고 수영아. 보령도 바닷가라서 조개구이 집 많고, 집에서 훨씬 가까우니까.”

 

“그래, 그럼. 빨리 출발해 김기사!”

 

“예 사모님.”

 

 

김독자가 액셀을 밟자 X급 페라르기니가 앞으로 나아갔다.

 

 

*

 

 

X급 페라르기니의 속도에 힘입어 두 사람은 1시간 30분 만에 보령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내리니 해안가를 따라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식당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참을 걷던 김독자와 한수영은 그나마 사람이 적은 식당이 보이자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두 사람을 맞았다.

 

 

“사장님. 조개구이 2인분이랑 홍합탕 하나 주세요.”

 

“술은 안 먹고? 지금 소주 3병 시키면 맥주 1병 서비스로 드리는데.”

 

“지금 아내가 임신 중이어서 술은 끊는 중이에요.”

 

 

김독자의 말에 한수영을 바라본 사장이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새댁이 너무 젊어서 임신한 줄도 몰랐네.”

 

“괜찮습니다 사장님.”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하던 사장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한수영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봤냐? 이 천재 미소녀 작가님의 외모가 어느 정돈지”

 

“그래 그래.”

 

“어쭈? 제대로 칭찬 안 하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사장이 철판을 가져와 불판 위에 올렸다. 김독자의 팔뚝 길이보다 긴 키조개에 치즈와 버터를 올린 가리비, 양념한 소라와 석화에 통통한 전복까지, 철판을 가득채운 각양각색의 조개들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김독자가 다 익은 가리비를 하나 집어 들어 살을 발라내 치즈에 휘휘 감았다. 김독자의 젓가락질에 따라 한수영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자 수영아, 아~”

 

“아~”

 

 

한수영이 입을 벌리자 김독자는 한수영의 입안에 가리비를 놓아줬다. 가리비를 꼭꼭 씹어 음미하던 한수영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어…”

 

“많이 먹어 수영아, 충분히 있으니까.”

 

 

김독자는 그 뒤로도 조갯살을 발라내 한수영에게 먹여줬다. 한점 한점 맛있게 먹던 한수영은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젓가락을 들어 직접 발라먹기 시작했다. 한수영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독자는 숟가락을 들어 뽀얀 홍합탕 국물을 한입 떠먹었다. 칼칼한 국물을 음미하고 있을 때 한수영이 김독자를 불렀다.

 

 

“여기까지 와서 국물만 떠먹냐? 입 벌려 봐, 김독자.”

 

 

한수영이 내민 젓가락에 전복이 들려져 있었다. 김독자가 고개를 가까이 가져가 전복을 베어 물자 버터를 발라 고소하고 탱글탱글한 전복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네.”

 

“그럼, 누가 먹여주는 건데.”

 

 

그 뒤로 두 사람은 한참을 더 먹었다. 홍합탕이 바닥을 드러내고 조개구이를 4분의 3쯤 먹었을 때 사장이 냄비 하나를 들고와 내려놓았다. 새우, 낙지, 꽃게, 전복, 오징어 등이 산처럼 쌓인 해물탕이었다.

 

 

“사장님, 저희 해물탕은 안 시켰는데요?”

 

“서비스여. 임신했을 때는 잘 먹어야 해. 별로 안 맵게 끓였으니까 새댁 먹는데도 지장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한수영이 사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동안 김독자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걸 서비스로 받아도 되나…이 정도면 어림잡아도 4-5만원 어치는 될 거 같은데.”

 

“야, 서비스로 주신다는데 그냥 먹어. 이런 거 거절 하는 것도 실례야.”

 

 

그 말을 하는 한수영은 어느새 접시에 새우를 쌓아놓고 껍질을 까고 있었다. 당당한 건지 뻔뻔한 건지 모를 한수영의 태도에 김독자도 피식 웃으며 꽃게의 등딱지를 열었다. 그렇게 남은 조개구이와 해물탕까지 해치운 김독자와 한수영은 계산을 하고 나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천막과 사람들로 가득한 모래사장의 모습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와, 사람들 진짜 많다.”

 

“다들 연말을 즐기러 나왔나 보네.”

 

“우리도 가보자!”

 

“잠깐 수영아 천천히 가!”

 

 

해수욕장에서는 사람들이 노점상에서 먹거리를 먹거나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한수영은 노점상을 보자마자 언제 조개구이를 먹었냐는 듯 김독자에게 간식을 사달라고 졸랐다. 곧 두 사람은 타코야끼, 오징어 버터 구이, 닭꼬치, 붕어빵 등등 각종 주전부리가 담긴 봉투가 양손 가득 들려 있었다. 붕어빵을 입에 물고 있던 한수영은 다른 곳보다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천막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긴 뭔데 사람이 저렇게 많냐?”

 

“어디 보자…현수막 보니까 풍선 다트라는데?”

 

“겨우 다트에 사람이 저렇게 몰려 있다고? 아까 오면서 다트 천막들 많았잖아.”

 

“글쎄, 뭔가 특별한 게 있나 보지. 우리도 줄 한번 서볼까?”

 

“그래, 그러자.”

 

 

김독자와 한수영은 길게 늘어져 있는 줄의 끝에 섰다. 줄이 점점 줄어들고 곧 두 사람의 차례가 되었다. 표지판을 보던 김독자는 사람들이 몰려 있던 이유를 알았다. 다른 가게가 5발에 3000원 내지 4000원 할 때 그 가게는 2000원이었고, 1발만 맞춰도 인형을 주며 5발을 다 맞추면 거대 인형을 주는 것이었다. 김독자가 표지판을 읽고 있을 때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두 사람에게 왔다.

 

 

“다트 하시게요?”

 

“예. 그런데, 이렇게 해도 남는 게 있습니까?”

 

“이런 날에 남기자고 장사하나요, 사람들 즐겁게 하려고 하는 거지.”

 

 

김독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 하시네요.”

 

“좋은 일이랄 것까지는 없고요, 그래서 하실 겁니까?”

 

“예, 저랑 제 아내 각자 5발씩 주세요.”

 

 

김독자가 4000원을 청년에게 내밀자 청년은 2000원만 받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내분이 미인이시네요. 커플 할인으로 아내분은 서비스로 해드리겠습니다. 자, 다트 받으세요”

 

“오예!”

 

 

한수영이 신나서 다트를 받는 동안 김독자는 청년을 바라보며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웃는 표정에서 뭔가 기시감이 든 것이었다.

 

 

‘이상하다, 내가 저 웃음을 어디서 봤지?’

 

“야 김독자, 누님 하는 거 잘 봐라!”

 

 

김독자의 상념이 깨며 한수영이 호기롭게 다트를 던졌다. 하지만 던지는 다트마다 끝이 아닌 몸통이나 날개가 맞고 튕겨저 나가거나, 풍선이 채우지 못한 모서리에 맞았다.

 

 

“우씨, 이거 왜 이래!”

 

 

한수영이 열불을 내며 마지막 다트를 던졌지만, 다트는 받침대에 꽂혔다. 청년이 싱글벙글 웃었다.

 

 

“이런, 안타깝게도 한발도 못 맞히셨네요!”

 

“씨이…이거 조작한거 아니에요??”

 

“사격도 아니고 다트에 어떻게 조작을 합니까? 보세요, 평범한 다트잖아요.”

 

 

가게 주인이 받침대에 꽂힌 다트를 뽑아 한수영에게 건네줬다. 한수영은 이리저리 뜯어봤지만, 아무런 특색이 없어 보이는 플라스틱 다트였다. 그 모습을 보던 김독자는 자신 몫의 다트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가장 오래된 꿈의 힘을 조금 사용했다. 그러자 다트에 숨겨진 무언가가 드러났다.

 

 

“꼭 인형 따 김독자! 못 따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김독자가 다트를 관찰하고 있을 때 한수영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빨개진 얼굴을 보아, 여간 분한 게 아니었나 보다. 김독자는 한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알았어. 인형 따올 테니 무슨 인형 받을지 생각이나 해둬.”

 

 

발판에 선 김독자가 청년을 바라봤다.

 

 

“저기 주인분, 저랑 내기 하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내기요?”

 

“5발이 아닌 10발을 던지겠습니다. 그래서 그중 1발이라도 못 맞춘다면 현금으로 10만 원을 드리죠.”

 

“호오?”

 

“하지만 제가 10발을 다 맞춘다면, 여기 있는 큰 사이즈 인형은 다 제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받아들이죠. 여기, 5발입니다.”

 

 

청년은 김독자에게 다트 5발을 더 줬다. 10발의 다트를 왼손에 쥔 김독자가 한발을 들었다. 김독자는 정확히 위치를 재어 다트를 던졌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일을 더 했다.

 

[꿈 장악력을 사용합니다]

 

다트는 정확히 날아가 풍선 하나를 터뜨렸다. 이어서 한발을 더 던졌고, 다트는 이번에도 풍선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발씩 던질 때마다 풍선은 터져나갔고, 어느새 9개의 풍선을 터뜨린 김독자는 마지막 다트를 쥐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사라졌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뭡니까?”

 

“혹시 요즘 들어...탈모 때문에 고민이 있다거나 하지 않으세요?”

 

 

김독자의 질문에 청년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무, 무슨!”

 

“아, 다른 건 아니고 제가 아는 형님이 생각나서요. 그 형님도 탈모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거든요.”

 

“그런...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청년은 이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쌩쌩 불고 있음에도 말이다.

 

 

“주인분 머리카락이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길래 걱정이 돼서 물어봤어요. 예를 들자면...이 다트에요.”

 

 

김독자는 굳어버린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고 한 번씩 웃은 후, 그대로 뒤돌아서 다트를 던졌다. 이번에도 다트는 풍선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은 김독자의 오른손에는 황금색의 머리카락이 쥐어져 있었다.

 

 

“장난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형님?”

 

 

김독자의 말에 청년은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겸연쩍게 웃는 제천대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여튼 막내는 못 당해내겠구나. 얘기 나누기에 이곳은 사람이 많으니 자리를 좀 옮기자. 죄송하지만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천대성이 머리털 한 가닥을 뽑아 불자 천막과 세 사람이 인적 드문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모든 정황을 깨달은 한수영이 제천대성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사기꾼아! 내 돈 내놔!”

 

“미안해 제수씨! 그래도 제수씨는 서비스로 해줬잖아! 막내가 인형도 가득 땄고!”

 

“그건 내 알바 아냐!”

 

“수영아 진정해 진정…화내면 애한테도 안 좋아…”

 

 

길길이 날뛰는 한수영을 김독자가 잡아 떼어내며 말렸다. 한수영은 아기에게 해가 된다는 말에 진정했고 한숨 돌린 김독자가 제천대성에게 물었다.

 

 

“근데 형님, 여긴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으응, 그건 말이다…”

 

 

이어지는 제천대성의 설명은 이러했다. 연말 콘서트에 참여하기 귀찮은 제천대성은 그대로 탈주했고, 숨을 곳을 찾아 김독자의 집을 찾아갔다. 그때 막 차를 타고 나가는 김독자와 한수영을 발견하고는 근두운으로 조용히 미행했다가, 두 사람이 해수욕장 근처에서 주차하고 조개구이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다트 천막을 세우고 두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하여튼 형님도...”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

 

“아하하...그보다 여기 인형들 가져가렴.”

 

 

제천대성은 인형이 놓인 가판대에서 대형 사이즈 인형 십여 개를 모두 집어 김독자에게 넘겼다. 김독자가 코트 주머니에 인형을 집어넣고 있을 때,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엥-데엥-

 

 

“이 소리는…”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구나. 새해 복 많이 받거라 막내야, 제수씨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형님.”

 

“복 받든가 말든가. 넌 이제 뭐 하냐?”

 

“숙소로 돌아가야지. 안 그래도 도망쳐서 우리엘이랑 흑염룡이 벼르고 있을 텐데, 외박까지 했다가는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

 

 

제천대성이 근두운을 불러 그 위에 올라탔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형님!”

 

“오냐, 제수씨랑 데이트 잘해라 막내야.”

 

 

그 말을 남기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 제천대성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김독자의 볼에 온기와 촉감이 전해졌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는 한수영이 보였다. 한수영이 입술을 떼어내며 활짝 웃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김독자.”

 

 

활짝 웃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바라본 김독자가 마주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가 떼어냈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수영아.”

 

 

그리고 김독자는 한수영을 안아 들었다.

 

 

“이제 해돋이 보러 갈까?”

 

“응...”

 

 

김독자에 품에 안긴 한수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김독자는 천사화를 발동해 하얀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

 

 

잠깐의 비행을 한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해안가 절벽에 내려섰다.

 

 

“그냥 해변에서 보자니까.”

 

“아까 해변에서 그 소동을 벌였는데 다시 가면 사람들에 파묻혀서 해돋이는 보지도 못할걸? 그리고 여기가 경치는 훨씬 좋잖아. 여기 앉아 수영아.”

 

 

김독자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다음 한수영을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런 다음 코트 주머니에서 담요를 꺼내 한수영의 온몸에 덮어주었다. 언젠가 마감에 지쳐 잠든 한수영에게 덮어주었던, [새끼 불사조 솜털로 만든 담요]였다. 추운 날씨에 담요가 자동으로 열을 발산하며 한수영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넌 안 둘러도 돼?”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더 추운 것도 견뎌봤는데”

 

 

김독자는 청빙환을 먹고 온몸이 반쯤 얼어붙을 뻔한 적을 회상하며 말했다. 자신만만한 김독자의 말에 한수영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의 이마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 눈송이가 하나 둘 씩 내리고 있었다.

 

 

“눈이네.”

 

“응, 올해에 처음 맞는 눈이네.”

 

 

흩날리는 눈을 조용히 맞고 있을 때,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눈 맞고 있으니까, 시나리오 때 생각난다.”

 

“응?”

 

“왜 있잖아, 환생자의 섬에서.”

 

“아아.”

 

 

환생자의 섬이라고 하니 김독자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작가인 녀석에게 묻고 싶었다. 이야기를 쓰는 너라면, 혹시 알겠느냐고. 나는 지금까지 잘해 온 것인지,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는지, 이 모든 이야기의 끝에 도달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결말을 볼 수 있을지.’

 

그때의 나는 개연성의 눈송이를 보며, 내가 쌓아온 이야기가 정말로 맞는 길이었는지 상념에 젖어 울고 있었다.

 

‘야. 뭘 울고 그래. 알았어, 알았어. 뚝.’

 

그리고 한수영은 그녀 나름대로 나를 위로했었다. 한수영이 내 입에 레몬 사탕을 넣어주며 뭐라고 했더라.

 

‘이렇게 좋은 날 왜 울어. 모처럼 눈도 내리는데...내가 나중에 더 좋은 수식언 지어줄게.’

 

그때의 나의 고민을 해결하진 못했던 위로였지만 그럼에도 가슴속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수영은 내가 돌아오고 나서 그 약속을 지켜줬다.

 

‘김독자, 난 너만을 위한 작가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리고 남은 인생동안, 네 여자가 되어서 너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어.’

 

한수영이 한 것 치고는 서툰 고백이었지만, 그 말을 할 때까지의 한수영의 고민과 말로 표현된 것 이상의 감정을 알았다. 그래서 나 또한 그녀의 진심에 답해줬다.

 

‘나도, 오직 너만을 위한 독자가 될게. 그리고 너의 남자로서, 오직 너에게만 헌신할게.’

 

그리고 첫 키스를 했을 때 우리 둘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스타스트림이 당신들의 새로운 수식언을 공표합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의 새로운 수식언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독자’입니다.]

 

[성좌, ‘거짓 종막의 설계자’의 새로운 수식언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작가’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기억중 하나였다.

 

 

“야 김독자,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상념에 젖어 있던 김독자는 한수영의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한수영을 보며 김독자는 옅게 웃었다.

 

 

“그냥, 이것저것 옛날 일들 좀.”

 

“하여튼...말하다가 갑자기 고개 숙이고 있길래 어디 문제 있는 건가 걱정했잖아.”

 

“하하 미안ㅎ...에취!”

 

 

김독자는 연달아서 재채기를 했다.

 

 

“야 괜찮아?”

 

“눈을 맞아서 그런가 크흥, 좀 춥긴 하다. 나도 담요 하나 둘러야겠네”

 

 

김독자가 도깨비 상점을 열려 할 때, 한수영이 김독자의 팔을 잡았다.

 

 

“코인 아깝게 뭘 하나 더 사냐? 그냥 같이 두르면 되지!”

 

“아니 수영...”

 

“잔소리 말고!”

 

 

한수영이 김독자의 팔을 잡은 그대로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담요를 김독자와 함께 덮었다. 김독자가 처음 살 때 가장 큰 사이즈로 산 덕분에 모자람 없이 덮을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1mm의 거리도 없이 딱 붙어 있었다.

 

 

“저 수영아 그냥 내가 담요 하나 더 살게, 딱 붙어 있어서 불편하지 않아?”

 

“하나도 안 불편하거든? 그리고 이렇게 붙어 있어야 서로 체온 나누면서 더 따뜻해진다고. 그러니까 잔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김독자는 한수영의 말에 더 말하지 못했다. 사실 김독자도 딱히 불편한 건 아니었지만, 한수영과 딱 붙어 있어 팔을 통해 한수영의 감촉이 느껴진다는 게 부끄러웠던 것이었다. 김독자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한수영에게 계속 말을 걸었고, 한수영도 그에 대답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은 어느새 빠르게 흘렀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김독자와 한수영은 동시에 말했다.

 

 

“야 저것 좀 봐!”

 

“이제 해 뜨려나 보다.”

 

 

구름 한 점 없는 깜깜한 바닷가 너머,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 옅은 주황색 여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주황색 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해지며 그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그 빛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쯤, 수평선에서 마침내 태양이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냈다.

 

 

“예쁘다...”

 

“응, 예쁘네.”

 

“우리 소원 빌자 김독자.”

 

“그래.”

 

 

김독자와 한수영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다시 눈을 뜬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원 빌었어 수영아?”

 

“너부터 말해 김독자.”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쩨쩨하네 진짜. 뭐, 거창한 건 안 빌었어.”

 

 

한수영은 자신의 배를 내려다 보았다.

 

 

“우리 서아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볼 수 있기를. 그리고...”

 

 

한수영은 다시 고개를 들어 김독자를 노려보았다.

 

 

“김독자가 더 이상 헛짓거리 안 하고 혼자서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기를, 이라고 빌었어.”

 

“이제 어디 안 간다니까 수영아. 내가 처자식을 두고 어딜 가겠어.”

 

“너 지하철에서 내릴 때도 비슷한 소리 했던 거 알지?”

 

 

한수영의 말에 김독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미안하면 진짜 다시는 그런 짓 하지마, 알겠어?”

 

“응, 약속할게. 존재맹세도 할게.”

 

“그럴 필요는 없고. 그래서, 네 소원은 뭔데?”

 

“내 소원은...”

 

 

김독자는 한수영의 배를 짚으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 순간, 김독자의 손을 통해 무언가 진동이 느껴졌다.

 

토옹

 

김독자가 깜짝 놀라 손을 뗐다. 한수영 역시 갑작스럽게 느껴진 진동에 놀란 눈치였다.

 

 

“수영아 방금...?”

 

“설마...?”

 

 

한수영은 자신의 배에 손을 댔고 김독자 역시 그 위에 손을 올렸다. 한수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아야?”

 

 

토옹

 

한수영의 말에 대답하듯, 아까보다 더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경험한 태동에 한수영과 김독자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김독자! 우리 서아가, 서아가 움직여!”

 

“나도...나도 느껴져 수영아.”

 

“서아야, 엄마 목소리 들려?”

 

 

토옹, 토옹

 

 

뱃속의 서아가 또 한 번 움직였다. 한수영은 이제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서아야 엄마야...우리 딸,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지? 뱃속에서 힘들진 않아? 서아 태어나면, 엄마랑 아빠가 정말 예뻐 해줄게, 맛있는 거 많이 해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우리 서아 좀만 더 엄마 배 속에 있다가 건강하게 만나자, 응?”

 

 

한수영은 자신의 배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계속 이야기했고, 그때마다 태동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김독자는 조금 전 빌었던 소원을 다시 한번 속으로 빌었다.

 

 

‘부디, 이 행복한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더 이상의 비극은 없기를.’

 

 

어느새 완전히 떠오른 태양이 세 사람을 축복해 주듯 밝게 빛났다.

 

 

 

*

 

 

 

새해 기념 축전...인데 백신 부작용 다 안 나아서 오락가락한 상태에서 쓴거에다 검수도 제대로 못해서 좀 저퀄일수 있음. 전붕이들 새해 복 많이 받고 올 한해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