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한수영의 손이 문고리를 잡았다.
두려웠다. 만약 이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떨까.
그저, 이 모든 것이 달콤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곁을 돌아보자, 유중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너머에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든, 이제 그들은 그것을 볼 준비가 되었다. 삐걱거리며 열리는 문. 활짝 열린 창밖으로 희미한 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밤새 수정하던 원고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눈부시게 흩어지는 활자들. 그녀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쓰고 싶었던 문장. 그 문장을 생각하며, 한수영은 바보처럼 웃었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그 독자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저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오랜만..."
김독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수영은 김독자를 끌어안았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김독자가 돌아오면 꼭 해야겠다고 다짐한 말이 수십 가지는 되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머릿속에서 글자가 뒤엉키는 느낌이었다.
"왜... 대체 왜..."
"미안해."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한수영은 의자에 걸터앉아 눈물을 닦았다.
유중혁은 언제 들어왔는지 침대 옆에 서서 김독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
"독자 씨!"
유중혁이 뭔가 말하려 하는 순간 이현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희원과 이길영, 신유승, 유상아가 뒤따라 들어왔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수 년만에 김독자 컴퍼니가 전부 모였다.
*
"전지적 독자 시점?"
"읽지 마. 너 보라고 쓴 거 아니야."
이설화가 한동안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 탓에 나는 일주일이 넘도록 방을 나가지 못했다. 한수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한수영도 하루종일 붙어있을 수 없었고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심해 한수영의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 얘기야?"
"거의 네 얘기지. 자기 분량 적다고 난리친 사람이 몇인지 아냐?"
지하철에서 시작해 왕좌를 부수고 재앙을 제압한 일.
마계로 가 73번째 마왕이 되고 얻은 첫 거대설화.
성운을 세우겠다고 선언하고 성좌가 된 일.
기간토마키아에 참가에 두 번째... 응?
"이것도 적었냐?"
"응?"
「"근데, 그거 내가 먹던 건데."
"그래서?"
"······재미없네, 진짜."」
"어... 그러니까 이건..."
"이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
얼굴이 새빨개져 아무 말도 못하는 한수영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맛에 놀리지.
"그나저나 언제 말할 거야?"
"뭘?"
모른척 했지만 돌아온 순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당연히..."
"좋아해."
"뭐?"
시나리오가 끝나지 않았을 때는 부담이 될까봐 하지 못했던 말.
시나리오를 끝난 후에는 함께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었던 말.
"좋아한다는 말이 지닌 모든 의미에서 너를 좋아해. 나랑 사귀어줘."
한수영의 표정을 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말하라는 게 이거 아니었어?"
"너네 엄마한테 너 돌아온 거 언제 말할거냐는 거였지!"
"아... 그래서 대답은?"
"...아"
"응?"
"싫을리가 없잖아, 멍청아. 나도 좋아해 김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