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 '구원의 마왕'의 ■■는 종장(終章)입니다.]

의식이 흩어짐을 느끼며, ■■가 바뀌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종장(終章)이라..

언제나 내가 바라왔던 이 이야기의 끝. 딱 적당하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침잠해간다. 그러다 문득, 그리워하던 얼굴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살고 싶다..."

더이상 어떠한 감각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스위치가 내려간 전등처럼 내 의식도 꺼졌다.

그렇게, 지하철에는 어린 김독자의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김독자의 영혼은, 김독자의 설화는, 수 많은 세계선으로 갈라져 새로운 김독자를 만들어 내었다.

새로운 소설을 업로드하던 한수영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끊어진 필름 이론에 의해 김독자가 돌아온다면 그건 정말 우리가 알던 김독자라 할 수 있을까? 김독자가 정말 돌아온다면, 무어라 말을 해야할까? 일단 묶어놓고 패야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추스리고 소설의 업로드를 마쳤다.

클라우드에 올라온 소설을 보던 유중혁은 문득, 하나의 의문을 가졌다. 수많은 세계선으로 각각 흩어진 김독자의 영혼은 김독자의 영혼일지라도, 높은 확률로 본질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김독자를 김독자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달라진 이야기를 통해, 다시 돌아온 김독자는 내가 기억하던 김독자가 맞는 것인가.

'알 수 없군.'

결국, 유중혁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난 언제나 네가 싫었어. 항상 후회했어. 왜 너같은 인간의 이야기를, 내 손으로 썼을까."

그녀의 말은, 사실 유중혁이 아닌 스스로에게 하는 자조어린 말은 아니었을까. 분한 마음을, 자기혐오를 털어낼 곳이 없었기에.

"네 이야기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은 그의 진심과 함께,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였다.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김독자가 가장 되고 싶어했던 자신의 입으로 전달하는 것. 그러나 유중혁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한수영이 원하는 결말이 아니다. 또한 김독자가 원하는 결말도 아닐 것이다. 유중혁은 한수영의 독기 어린 슬픈 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 다시 한집에서 살면 어때요?"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다시금 실감했다. 이것이 그들에게 준 김독자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츠츠츳...

순간,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은 잡음과 함께 시스템이 천천히 복구됨을 느꼈다. 

[설화 '왕이 없는 세계의 왕'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한수영은, 자신의 심장이 이리도 크게 뛸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다급히 외쳤다.

"유상아!"

그들은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속도로 공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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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끊어졌던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고, 신체가, 설화가, 영혼이 재구성 됨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다. 아직, 시력이 회복되지 않은 듯 앞은 보이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만들어 낸 환상같은 건가? 우습다.

"그렇군, 이것이 이 이야기의 종장인가..."

문득, 어딘가에서 유중혁의 아니, '은밀한 모략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상이 아니야...?

"가장 오래된 꿈. 김독자. 작별이다."
"안녕, 어린 나의 신."

은밀한 모략이, 살아있는 불꽃이, 은빛 심장의 왕이, 가라앉은 섬의 주인이, 위대한 심연의 군주가. 가장 오래된 꿈, 어린 김독자,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의식은 다시 꺼져간다. 그리고 곧장,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낯설게 느껴지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보였다.

'여기는...?'

나는 최대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내 영혼은 세계선으로 흩어졌다. 나의 ■■는 종장이다. 은밀한 모략가와 이계의 신격들이 나에게 작별을 건넸다.

퍼즐의 조각들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어린 나의 영혼을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구나. 이것이 <김독자 컴퍼니>의 종장이구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살아 있어..."


그토록 바라왔던 모두와의 행복한 종장. 비극만이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행복한 결말이 나를 맞이했다. 이것이 꿈이라면, 결코 깨고 싶지 않은 그런 결말.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을 때 불현듯.

끼이익--

문이 열리며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얼굴이,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왔다. 나는 다시 눈물이 터져나옴을 느끼며 그녀를 반겼다.

"한수영."

나는 눈물을 닦으며 한수영을 꼭 안고, 지금껏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건넸다.

"지금껏, 네 이야기 덕분에 살 수 있었어."


[성좌 '구원의 마왕'의 ■■는 영원과 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