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을 내쉰 이지혜가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슬쩍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수학 기호들이 하얀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하필이면 필수과목인 미적분의 숙제였다. 고등학교 때에도 어렵기만 하던 그 미적분 말이다. 수학과는 영 연이 없을 체육과로 들어갔건만 필수과목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돌겠네."
이지혜는 종잇장들을 움켜쥐고 노려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초중고 교육과정 상에서의 미적분의 위치는 말 그대로 최종 보스라던가. 그러나 대학과정에서도 여전히 최종보스로만 보였다. 애꿎은 연필만 막연히 붙들고 있을 때 방의 문이 두들겨졌다. 이지혜는 익숙하게 들어오라 말했다. 무언가 꾸지람을 들을 때마다 마냥 네, 네 거리던 것과 같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많이 힘들었어?"
캔커피를 들고 온 한동훈이 문을 열며 들어왔다. 다른 손에는 정체 모를 종이 가방이 들려 있었다. 힘 없이 늘어져 있던 이지혜가 한동훈을 보고 해맑게 웃었다.
"아냐, 하나도 안 힘들어."
"조금 도와줄까?"
"어, 어? 진짜? 고마워!"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이지혜가 한동훈을 껴안았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껴안은채 기쁘게 웃는 이지혜를 본 한동훈도 따라 웃었다. 이지혜가 껴안았던 손을 풀자 한동훈은 종이 가방을 건넸다.
"이건 뭐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이지혜가 머리를 긁적였다. 답을 찾지 못한 이지혜는 헤실헤실한 웃음을 멋쩍게 지으며 달력을 집어 들었다.
"모르겠는 데... 달력이라도 볼까?"
"3월 13일이 어제였지."
"아, 화이트 데이!"
놀란 이지혜를 보며 한동훈이 작게 웃었다. 하얀 종이 가방 안에 담긴 작은 사탕들은 알록달록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함대 모양을 닮은 사탕과 오백원 동전을 닮은 모양의 사탕. 독특한 모양의 사탕들이 특별한 주문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동훈은 사탕이 가득 담긴 유리병을 건넸다.
"화이트 데이 선물이야."
하늘색 리본으로 장식된 유리병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지혜는 한동훈을 와락 껴안았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고서도 선물 하나 준비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면서도, 바쁜 건 마찬가지였을 터이나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나는 준비 못 했는 데... 미안해."
미안한 표정을 지은 이지혜가 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2월의 14일에 선물을 받은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웃으며 초콜릿을 건넨 손 위에는 또다른 초콜릿이 올려졌었다.
"괜찮아. 받고 좋아해 주면 그걸로 되는 걸."
한동훈이 이지혜의 등을 감싸듯 안고서 한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저 받고 좋아해 주면 된다. 정말로 당연한 것만을 바랐다. 그것이 정말로 고마워서, 이지혜는 잠시나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탕 하나 꺼내서 먹어볼래? 마음에 들 거야."
"두 개 꺼내서 하나 씩 먹자. 너 하나, 나 하나."
포옹을 풀은 이지혜는 병에서 사탕 두 개를 집었다.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에 오백원짜리 동전의 모양을 한 사탕을 손가락 몇개로 집은 이지혜는 한 개를 한동훈의 입에 밀어 넣듯이 넣었다.
"...다음 발렌타인 데이랑 화이트 데이때는 각오해. 두 손으로는 다 들고 가지 못할 만큼의 초콜릿이랑 사탕을 안겨줄거니까."
퍽 당황스러울만한 행동에 놀랐을 한동훈이 말을 하기도 전에, 이지혜는 약간의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것이 미안함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한동훈은 조용히 웃었다.
"...맛있다."
사탕을 입에 넣은 이지혜가 놀란 눈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전에 준비 할 때부터 바랐던 반응이여서, 한동훈은 이지혜를 향해 웃었다. 한동훈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모습도, 웃는 것도 본 적 없는 다른 사람들로서는, 봤다면 퍽 놀랄만한 일이였다. 물론 둘에게만큼은 익숙하다 못해 당연한 일상일 터였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온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어둑해진 하늘을 보면서 이지혜가 중얼거렸다. 입에 넣은 사탕을 아직도 녹여내면서.
"...시간이 꽤 됐네."
"숙제 다 하고 나면 산책이라도 같이 갈래? 주변에 야시장도 있는 데."
한숨을 쉬며 천천히 감기던 눈이 한동훈의 말에 동그래지더니 기쁘게 휘어졌다. 이지혜는 환하게 웃으며 종잇장들을 집어들고 작은 간이의자 하나를 책상 옆에 놓았다. 책상 바로 앞의 의자에 앉은 이지혜는 작은 간이의자를 손짓으로 가르켰다. 한동훈은 얇은 웃음을 걸며 간이의자에 앉고서 책상 위 두개의 연필 중 하나를 집었다.
햐얀 종잇장 위에서 두 연필이 갖가지 선을 그려낸다. 짧거나 긴 선들이 모여 때로는 의문도 답도 되는 문자와 강조를 뜻하다던가 등의 표시를 만들어갔다. 이지혜는 한동훈의 듣기에 편안한 설명을 들으며 수업 내용을 하나씩 회상했다. 입안의 사탕이 굴러감에 따라 손에 쥔 연필도 한바퀴를 돈다.
"...이건 이렇게 풀면 쉬워. 한번 해 볼래?"
고개를 끄덕인 이지혜는 수식들을 적으며 문제를 풀었다. 연필이 선들을 그어냄에 맞춰 사탕이 입안을 돌았다.
입안을 맴도는 사탕이 달았다. 단순히 사탕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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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사탕 등의 달콤한 것들(명사)
-달콤한(형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