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좋은 글을 쓰게 되면 복귀하려 했지만 계속 미루기에는 도저히 나아지질 않아 그냥 써서 올려버릴 생각이다 고로 아쉬운 점도 의아한 점도 투성이겠지만 양해 바람
지이잉, 지이잉. 짙고 귀에 거슬리는 진동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얇은 이불 속에서 꿈틀꿈틀 나와서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징징 울던 범인은 내게 글자를 보여주었다.
‘’. 그 글자를 보자마자 3초 동안 뇌가 행동을 멈췄다. 폐도, 아니 어쩌면 심장도 멈춘 것 같았다. 그러다 곧 뇌가 다시 움직였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귓가에 대자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정말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려왔다.
“일어났어?”
일단 놀랐다. 김독자, 그가 내게 잘해준 게 하루이틀은 아니다. 새벽에 한 전화도 바로 받아주었고, 굶고 있는 내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고, 혼자던 내 옆에 있어준 것도 그였다. 그런 그가 내게 말할 때는 정말 순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랑? 아니 그 이상이었다. 멎은 것 같던 심장이 그 동안 뛰지 않은 걸 채우려는 듯 빠르고 강하게 뛰었다. 그와 함께 온몸에 화하고 뜨거운 감각이 돌았다. 이 감각을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행복하고, 황홀하며, 심각하게 즐거웠다. 하지만 너무 강한 감각들이 온 몸을 강타하자 오히려 괴로울 따름이었다.
많은 감각에 빠져 미처 답을 못하자 그가 다시 물었다.
“한수영?”
“나 일어났어!”
그가 나를 다시 부르자 나도 모르게 답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가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맑게 웃었다. 그러더니 그가 말을 이었다.
“어디야? 같이 가자.”
쾅!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듯 한 번 크게 뛰더니 멎은 것 같았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예전에 한신영과 교제를 할 때도 직업 특성 때문에 같이 등교해본 적은 없었기에 뭐라 답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야, 먼저 가. 나 오래 걸려.”
“나도 이제 일어났어. 그러니까 같이 가자.”
“아니······”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질 않았다. 차라리 아프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아니, 그라면 또 간호하겠다고 올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머리가 복잡하다. 싫은 건 아닌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 그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둥둥 뜨는 기분이다. 한신영과 있을 때의 그 편안함과 안정과 다르게 무슨 자이로드롭을 수십 번 연속으로 탄 듯 숨 쉬는 것도 종종 잊을 정도로 아찔했기에 그를 지금 만나는 건 내게 큰 자극이 될 것 같았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딱 30분만 기다려.”
그 후 전화가 끊겼고 나는 즉시 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
놀랐다. 그래도 제법 속도를 냈다고 생각했다. 그가 씻고 올 시간을 생각했기에 어떻게 해도 그가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릴 거라는 가정조차 하지 않았다. 거기다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르게 씻었고 옷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빨리 입었다. 그리고 운좋게 내가 나오자마자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까지 겹쳤기에 내가 그를 기다리는 그림도 그렸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내 그림과는 정 반대인, 정갈하게 교복을 입은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
김독자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인사를 했다. 그걸 본 내 감상은 의외로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반응할 정도로 기운이 남질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숨을 잊을 정도로 머리가 멈춰버렸기에 반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날 인지하자마자 토도독 달려오는 게 무슨 강아지 같기도 했다. 젠장, 심장이 아프다. 심장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는 그의 아침인사에 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고, 멀끔한 그의 얼굴을 잠깐 감상했다. 그 덕분에 원래 하려던 질문을 잊을 뻔했다.
“언제 왔어?”
‘나도 되게 급하게 씻고 나온 건데 어떻게 벌써 여기 있어?’ 라는 말을 함축한 말이었다. 그가 그걸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피식 웃더니 내 손가락 끝을 잡았다.
“이거라도 잡으려면 빨리 나와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아까 전화 할 때는 이미 집 나온 시점이었어.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다가 말았다. 아니, 일단 보통 모닝콜은 일어나자마자 하거나 씻고 나서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듣고보니 확실히 조금 목소리가 울렸던 것 같기도 했다.
적당한 말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가 내 손을 깊게 감싸고는 말했다.
“손 잡아도 돼?”
“······이미 잡아놓고?”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잡아놓고 뭘 물어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거절할 일도 없다. 물론 손가락이 닿은 시점부터, 손을 잡은 시점부터 이미 잡힌 부분이 저릿할 정도로 좋았기에 이젠 안 잡으면 섭섭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긍정을 입에 담기보다 그의 손을 깊숙이 끼는 걸로 표현했다. 그러자 그가 잠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싱긋 웃었다.
“안 놔줄 거니까 알아둬.”
그는 진짜 내 손을 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는지 꼬옥 붙잡고 있었다. 그건 학교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까지 지속되었다.
겨우 떨어진 손은 긴장했던 걸 표현하듯 묘하게 촉촉하고 차가웠다. 등굣길 내내 손을 잡았던 탓에 심장이 빠르고 강하게 뛰는 건 조금 잦아들었지만 역시 아직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거기다 꽤 인기가 많던 김독자와 손을 잡고 오순도순 왔기에 시선도 제법 끌었다. 창피하진 않았지만 반 년 동안의 여파인지 아직도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김독자는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손을 놓기 직전까지 나를 끈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다른 애들보다 그의 눈빛이 더욱 부담되었다. 그의 연심 어린 눈빛이 내게 들러붙었기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로맨스를 자주 접하고 이번 것이 첫 연애도 아닐뿐더러 로맨스 소설을 써보기도 한 나였지만 역시 지금의 감각은 새로웠다.
“······있어?”
“응? 아,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줘.”
정말 못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때면 언제나 이런다. 김독자가 다시 물어본 나조차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다시 말해주었다.
“학교 끝나고 선약 있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집에 가서 할 거라고는 신작 투고를 위해 달리는 초고작업인데 그걸 할 바엔 차라리 그와 하루종일 놀러다니는 게 낫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그가 내 손을 다시 잡아 손등에 입을 살짝 가져다 떼며 말했다.
“그럼 오늘 데이트 하자.”
두근.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내가 지금 뭘 당한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진짜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굳어버리다는 말이 왜 나온 건지 알 것 같았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김독자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볼렀다.
“수영아?”
“아, 응. 어디 갈래?”
“글쎄, 도서관 갈까?”
그 다운 생각이었지만 어딘가 평범했기에 아쉬웠다. 뭔가 더 그다운 느낌이 있을 것 같았다. 짧은 시간동안 여러 곳을 떠올렸다. 무언가 좋다는 느낌이 드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를 좋아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어도 난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내게 자신을 보인 적은 별로 없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말을 뱉어냈다.
“너는 어디 가고 싶어?”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부드러운 말투였다. 나도 이런데 그라고 어련할까. 급하게 입을 닫고 그를 흘끔 보았다. 그러자 김독자의 얼굴에는 당혹감이나 그런 감정이 아닌 그저 깔끔하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살짝 말려 올라간 그의 입꼬리가 보였다. 그가 즐거운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진짜 여기에 나 같은 애 데려와도······.”
“너 아니면 데려올 사람도, 와줄 사람도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위로 올렸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를 따라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작은 사물함 같은 곳에 고이 들어있는 흰 도자기 같은 것이 있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유골함, 시신을 화장시켜서 남은 뼛가루를 모아놓은 도자기다. 한신영도 저런 유골함에 들어있기에 나도 제법 알기는 하는 것이었다.
김독자가 그립다는 듯 쳐다보다가 문득 말했다.
“내가 다섯 살 때였어. 그 새······ 아니 아버지는 계속 폭행했지만 그렇게 심하다 라는 느낌은 없었어. 뭐 술만 안 마시면 손을 올리지도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심하게 깨졌는지 들어올 때부터 만취해서 온 날이 있었어. 그 날, 아버지는 날 죽이려 했거든.”
그는 무덤덤하게, 심지어는 희미한 미소를 띈 채 뒷 말을 망설였다. 거기서 끊겼기에 순간 아버지란 사람의 유골인가 싶었지만 금방 이어진 말에 그런 생각은 쏙 사라져버렸다.
“그 날, 부엌에 꽂혀있던 과도까지 드는 걸 보니까 진짜 눈물도 안 났어. 온통 진짜 죽는 건가 싶은 생각만 들었고. 아버지가 칼을 든 손을 높게 들어서 찌르려고 휘두르자마자 나는 눈을 질끔 감았어.”
또 끊었다. 이번에는 웃음기는 온데간데 없고 슬슬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그가 힘든 얘기를 하듯 한 번 삼키고는 이었다.
“몇 초 후에까지 아프질 않으니까 슬쩍 눈을 떴어. 그러니까 내 눈앞에는······.”
이번이 마지막 끊음이었다. 잠깐 숨을 쉬듯 끊고 다시 이었다.
“어머니가 있었어. 그것도 날 대상으로 휘두른 칼에 맞아서. 나는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순간적으로 아버지를 밀어버렸어. 다섯 살짜리 애가 성인 남자를 밀어 넘어뜨린다는 것부터 이해가 안 되는 게 정상이지만 그때 난 밀쳐낼 수 있었어. 그러자 아버지는 그대로 마룻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렸어. 업보에 비해 편하게 죽어버리더라.”
그가 아버지란 인간이 우스운 듯 실소를 뱉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구하지 못했어. 너무 깊게 찔린데다, 내 패닉이 너무 길었던 나머지 골든타임을 놓쳤대.”
김독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내렸다. 그를 위로해줄 생각이었으나 그의 눈웃음에 그것도 실패했다. 복잡했다. 물론 평범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어머니는 자기를 감싸다 죽고, 아버지는 자신이 밀쳐서 죽였단 사실 자체를 들은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당사자인 김독자 본인은 웃고 있었다. 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도 있었기에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다.
“안 슬퍼?”
툭, 하고 내 입이 뱉어냈다. 내 손이 자기 맘대로 그의 손을 꼬옥 쥐었다. 김독자가 놀란 듯 눈썹을 올렸다가 다시 내리며 말했다.
“슬펐는데, 이젠 괜찮아.”
그의 말투는 정말로 괜찮다는 느낌을 주었다. 뭔가 신기했다. 나는 아직도 한신영을 잊지 못했다. 아직도 기억의 한 편은 그로 가득 차 있기에 그와 관련된 물건을 발견하면 하루종일 울적하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유골을 보면서도 괜찮다는 듯 웃고 있었다.
“힘내.”
그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는데 묘하게 부족해서 손등이 최대였다. 부드러운 손등을 쓰다듬으니 그가 그걸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수영아, 나 딱 한 마디만 해도 돼?”
“응?”
분명하지 않은 답이었음에도 그는 바로 알아듣고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나 진짜 너 아니면 못 살 것 같아······.”
나보다 큰 그가 작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의도한 일은 아니겠지만 덕분에 내 손이 그의 머리에 닿을 수 있었다. 부드럽고 윤기나는 머리카락 위에 손을 올려 슥슥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가 그 자세 그대로 말했다.
“진짜 사랑해. 수영아.”
뭐라고 답해야 할까. 너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많았다. 이걸 다 말하기에는 시간은 너무 짧다. 평생 말해도 부족할 정도의 양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고르고 골라 그의 머리를 안고 말했다.
“······나도 사랑해. 독자야.”
*
“안 데려다줘도 되는데.”
“내가 데리고 다녔으니 내가 데려다줘야지.”
김독자가 굳이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나도 흔들까 고민하다가 안 흔들었다가는 그가 또 시무룩 해 하진 않을까 싶어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내 생각이 맞았는 듯 그의 표정이 밝게 펴졌다.
“이제 돌아가도 돼.”
내 말에 그가 작게 고개를 흔들고는 답했다.
“너 들어가는 건 보고 갈게, 먼저 들어가.”
약 3분 간의 티키타카 끝에 결국 내가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손을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층수를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누르자 그때 서야 오늘의 후폭풍이 몰아쳤다. 심장이 무리한 듯 아프고, 온 몸이 너무 들떴었는지 뻐근했다. 서 있을 힘도 없었기에 봉을 잡고 겨우겨우 집까지 도착했다. 5분 전까지만 해도 내 귓가를 머물던 그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조용한 집에 들어서자 뭔가 어색했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보다 이렇게 조용한 집에서 살던 시간이 더 길 터였고, 이런 집을 좋아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어졌다.
나는 급한대로 가방과 교복을 던져두고 침대에 누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더니 금방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여보 맞는데요.”
철 지난 농담을 치자 그가 재밌다는 듯 쿡쿡 웃었다. 거의 안 해본 농담을 던진 것이었기에 긴장한 건 무색해졌다.
“나도 전화하려 했었는데, 통했나보다.”
그가 아쉬운 듯 말했다. 나도 그가 웃은 걸 따라하듯 쿡쿡 웃었다. 역시 낯설다. 하지만 좋았다. 그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자 그도 내게 진심을 다해 답해주었다. 힘들 게 분명하고 귀가 중이었기에 조금의 대충은 넘어가줄 생각이었지만 그는 그 조금의 대충도 허용치 않았다. 우리의 통화는 그가 집에 들어와 옷을 벗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그럼 이따 다시 전화 걸게.”
“응, 그때는 내가 받을게.”
“끊을게, 사랑해.”
“역시 익숙해지질 않아······. 나도 사랑해.”
길었던 통화가 거짓인 듯 종료음은 짧게 들렸다. 5초 전까지도 그의 목소리에 심취했으면서도 또 다시 듣고 싶어져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배려해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
“내일은 맞춰서 모닝콜 해줄게.”
“으응. 고마워.”
“수영아, 졸려?”
정답이었다. 한신영이 죽고 난 이후로는 수면 규칙이 깨지긴 했지만 원래라면 지금 즈음 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와의 전화를 끊어가면서까지 자고싶지는 않았다.
“아니, 안 졸려.”
단호하고 깔끔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졸음을 헤엄치며 겨우 한 말 정도로 들렸는지 그가 부드럽게 제안했다.
“그럼 슬슬 잘까?”
“아니! 나 아직 안 졸려!”
절대로 싫었다. 자면 그와의 전화를 끊게 되니 싫었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김독자가 제안 하나를 했다.
“전화는 안 끊을게. 그러니까 내 목소리 듣다가 자.”
그의 제안에 나는 이정도 타협점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답했다. 충전기에 스마트폰을 꽂고 침대에 눕자 그가 말했다.
“잘 때까지 계속 얘기해줄테니까 잘 들어.”
그가 목을 가다듬듯 헛기침 몇 번 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감이었다. 하필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에 빠져버렸다.
*
눈을 떴다. 배경은 지하철 안, 몽환적인 게 보자마자 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번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멀쩡한, 내가 기억하는 한신영의 모습 그대로였다. 많은 감정이 온 몸을 꿰뚫고 나서야 그가 내게 다가왔다. 전이었다면 뒷걸음질 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그에게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금방 그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보다 키가 훨씬 컸기에 그와 눈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런 걸 그도 아는지 살짝 수그려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드디어 돌아왔네.”
들렸다.
잘못 들은 건가 싶을 정도로 작았지만 확실하게 들렸다.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웃고 있었다. 그는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더니 빛에 바스라졌다. 잡아보려 손을 뻗어보았지만 손틈 사이로 빠져나가 결국에는 나 혼자 서 있었다. 전철도 바스라져 사라졌다. 그러자 넓은 꽃밭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 곳의 꽃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그 꽃은 물망초야. ‘나를 잊지 마세요’ 라는 꽃말을 가졌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자 그가 있었다. 김독자. 분명 내가 자기 직전까지 듣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한신영 대신 네 옆에 있을 테니까 너도 내 옆에 있어줘.”
역시 꿈이다. 그가 한신영을 알 리도 없고, 그가 저런 오글거리는 멘트를 칠 성격도 아니었다. 물론 가끔 비슷한 말을 하기는 하지만.
꿈에서라도 그가 저런 말을 하니 묘하게 기분이 좋긴 했다. 나는 그에게 걸어가 그의 품 속에 폭 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었다. 역시 그는 내가 자고 조금 있다가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나는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대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그도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벌써 일어났어?”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또 꿈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그 웃음기를 그대로 머금은 채 그에게 말했다.
“우리 독자 보고 싶어서 얼른 일어났지?”
역시 어색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감수해도 좋지 않을까?
좀 더 좋은 글로 돌아오려 미뤘는데 나아지지 않은 채로 와서 미안하다
아마 이런 식으로 몇 번 와서 글 싸고 도망갈 것 같다
다음 글은 흡혈귀나 얀데레중혁이 될 것 같다
다음에도 재밌게 봐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