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잊어주세요…”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한 존재에 대한 조각이 있었다. 그것은 ‘김독자’의 파편이었다. 그는 지금 점점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제발…잊어주세요…”
그는 그리워 하였다. 그의 동료들을, 그의 기쁨이었고 슬픔이었으며 사랑이었던 존재들을. 그러나 닿을 수 없었다. 그져 멀리서 볼 수 밖에 없는 이 운명에 절대자는 울었다.
한 존재의 의지가 움직였다.
“김독자 컴퍼니 여러분…정말 죄송합니다…그리고…네 소설 못 읽어줄 것만 같아. 미안해 수영아.”
김독자는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의 마지막 힘으로…세계에서…내 기억을 지우겠어…”
기억을 지우는 것. 이것이 그가 다른 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이었다.
자신이 구원 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김독자는 헛된 희망으로 고통받는 자신의 일행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힘을 다한 그가 마지막으로 웃었다.
그러곤 부서졌다. 마치 원자 하나하나마저 전부 부서지는 듯. 더욱더 작게 부서진 파편들은 온 우주로 흩어졌다.
그리고 세상이 누군가를 잊었다.
누군가 말했다.
잊힌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김독자가 온 우주로 흩어졌*%^&%
가장 오래된 꿈이 온 우주로 흩어졌다.
*
“어?”
한수영이 빠르게 치던 키보드를 멈추었다.
“뭐지…?”
그녀가 하얗게 펼쳐진 스크롤을 가만히 들어다보았다.
“김독자가…누구더라?”
한수영은 다시 스크롤을 내려보았다. 방금 막 퇴고를 끝마친 듯한 화면. 주인공이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제목은 [전지적 독자 시점] 551화 였다.
“또 잠결에 소설 쓴건가? 나 진짜 왜이러지?”
한수영이 노트북을 덮고선 밖으로 나갔다. 산뜻한 햇살이 공단을 비추고 있었다.
“뭔가…중요한 걸 까먹은 것 같은데…”
[설화 파편, ‘레몬사탕의 추억’이 흩어집니다.]
“아 씨, 이거 어떻게 좀 안되나?”
한수영이 짜증을 내며 레몬사탕을 물었다.
생각 날 것 같기도 한데…
*
곧 이어 유중혁이 돌아왔다. 하는 말을 보니 자신이 왜 우주선에 탔는지 도저히 생각이 안났다고 한다.
“너도 그렇지? 이상하다니까…”
김독자 컴퍼니 모두가 이 상황을 당황스러워 하였다. 누군가를 잊었다.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었다.
“누구였지…”
그러나 까먹은 것을 보면 그리 중요한 사람은 아닐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흩어졌다.
*
몇십년 후, 한수영 코퍼레이션의 단톡방
-야 오랜만에 모이자!
-좋네요, 어디로 할까요?
-당연히 셀레나네지.
-아싸! 오늘 지옥 산장의 곱창 볶음 먹을 수 있는 거죠?
-그 대신 비용은 네가 내라 이길영
-뭐야 신유승 너무해!
몇 시간 전에 단톡방에 올라온 문자들을 보며 한수영이 길을 걸어갔다. 조금 걷다보니 셀레나와 마르크가 운영하고 있던 가게가 눈에 띄었다.
“여어~오랜만이야”
“오 한수영! 다른 사람들은 저기 있어.”
한수영을 알아본 셀레나가 손가락으로 다른 일행들을 가르켰다.
“어어, 주문은?”
“이미 했어”
“알았어 수고하고.”
셀레나와의 대화를 마친 한수영은 다른 일행들에게로 걸어갔다. 그곳은 이미, 이야기 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길영이가~”
“야야 신유승, 그 예기 하지 마~”
얼마 전부터 사귀기 시작했다던 이길영과 신유승이 서로의 귀여웠던 일을 떠들고 있었고. 유상아는 그 앞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현성씨, 요 녀석들 보면 우리 연애 초반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귀여워요.”
“누가요?”
“…?”
쾅!
살벌한 소리를 내면서 이현성의 머리에 정희원의 주먹이 날아갔다. 몇십년이나 살면서 눈치가 조금은 생긴 이현성 이었지만 아직 많이 부족했다.
“우리 왔다.”
“저희 왔어요~”
마지막으로 중혁설화 커플까지 모이니 한수영 코퍼레이선 멤버 모두가ㅡ
“아악, 늦었지? 미안해”
…아 맞다 장하영
“나도 왔다.”
공필두에
“저…저도 왔습니다.”
“나도 왔어!”
한명오와 그의 딸 한다름 역시 가게에 도착했다.
“다…모인 것 같지?”
그리고 식사는 속전속결로 끝이 났다. 다들 워낙 오래 본 사이여서 할 말도 많이 없었고, 오래 본 사이인 만큼 가끔씩 얼굴을 비춰서 어색해 보이는 사이도 있었다.
그래도 화목했다. 그런데
‘뭔가…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희미한 기억 속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자신이 일행들에게 노트북을 보여주고 있었다. 노트북의 화면은 하얀 스크롤이었다. 한수영은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꼈다.
하나의 존재를
“…김독자…”
나지막하게 읅은 한 이름, 이 이름에 모두가 잠시 멈췄다.
한수영은 도리질을 반복하며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 이름을 되뇌이니 머릿속이 어지러워 졌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이 약간 떨렸다. 그 이름이…그 이름이…
그리워졌다.
흐릿한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온 세상이 버린 존재의 조각을 간직한 듯 한 이 느낌…잊고 싶었다.
“그냥 마시고 죽자!”
한수영이 병나발 째로 소주를 물고선 벌컥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시기 시작한지 어언 3병째, 결국 완전히 취해버린 한수영은 미리 가게를 나왔다.
“졸리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간 한수영은 문을 열고 침대에 눕자마자 힘이 풀리더니 잠에 빠졌다. 그러곤 꿈을 꾸었다.
흑백
온 세상이 흑백이었다. 한수영이 천천히 눈을 뜨자 검은 색과 흰색으로 되어있는 세계가 그녀의 눈 안으로 들어왔다.
주위를 살펴보니 눈에 익었다. 그녀의 집 앞 사거리.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는 그곳에 한수영은 누워있었다.
‘꿈이구나’
소설을 쓰는 작가인 그녀는, 이 안이 꿈 속인 것을 단번에 알아맞혔다. 그런데, 그곳에 흑백이 아닌 존재가 있었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심장이 뛰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눈물셈이 폭발헀다고 느낄만큼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의 앞에 섰다.
이제 그의 얼굴이 보인다. 웃고 있었다, 그가 웃었다, 왠지 우는 것 같았다.
그가 말없이 뒤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넌 누구야)
그녀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것이 스산함을 더해주었다.
결국 그녀는 그를 따라갔다. 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 그 얼굴이 보고싶어져 뜀박질을 하며 달려갔다.
천천히 걸어가는 그 사내가 거리의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 곧 하나의 서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천천히 문을 열고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문학]쪽으로 발을 돌리더니 ㅈ-열로 발을 움겼다. 그리고 그곳에 작은 스마트폰이 있었다. 그 화면에는 한 소설의 프롤로그가 있었다.
한수영은 그 소설을 읽었다. 한 자도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쓴 소설을 읽었다. 작가가 독자가 되어 자신의 책을 읽었다.
그 남자는 한수영이 이 소설의 끝을 볼 때까지 그녀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한수영은 그 소설을 보며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우리’가 ‘우리’라 부를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든 별들을 부수고 자신마저 부서진 사람. 김독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수영은 결국 551화의 그 장대한 이야기를 전부 보았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의 끝을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무언가 이상했다.
(넌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니?)
“응”
한수영이 스마트폰만 보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는 대답했다. 그를 바라보니 능글맞은 웃음을 하고 있었다.
“지금에야 이런 말 해서 미안해…나…찾아줄거지?”
(…당연하지)
한수영이 웃었다. 그러곤 잠에서 깨어났다.
*
“어떻게하죠…수영씨가 못 일어난 것도 벌써 나흘짼데…”
“괜찮을 거에요, 설화씨도 괜찮다고 했스니까…”
“언제 괜찮다고 했어요! 그냥 증세가 없다고 했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지 않앗나요?”
“저…저기 기다려 봅시다. 곧 일어나실 거에요.”
한수영 코퍼레이션의 대표가 4일째 못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열렸다.
“뭐야, 여기 내 집이야 나가!”
“네, 넵”
그동안 했던 걱정들이 무심하게도 한수영은 멀쩡했다.
“…다들 모이자,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
“자 필독 독서다.”
“한수영 나는 오늘 장난치자고 이곳에 온게 아니다.”
“이건…명령이야 읽어.”
“넵”
한수영이 성좌의 격을 보이자 다들 스크롤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너무 슬프잖아…”
“예전에…김독자라는 사람이 우리랑 같이 있었나? 왜 기억이…기억이…”
아마도 이들은…그를 기억해 낸 것 같았다. 희미한 안개속에 작은 흔적을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 였지만 말이다.
“김독자는…우리를 구했어…그러니 이제 우리가 그를 구해야해, 잘 알겠지만 유중혁이 온 우주에 클라우드 시스템들을 걸어놨지”
한수영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붇는다는 느낌으로.
그녀의 주먹에서 핏줄이 솓았다. 입에는 선짓피가 고였다.
“쿨럭, 컥”
결국 그녀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수영은, 멈추지 않았다.
[성흔, ‘클라우드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나는 이 이야기의 외전을 쓸거야. 모두가 다시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또 상상할 수 있도록”
*
그렇게 한수영은 외전을 썼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간단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일행들에게 김독자와 하고 싶은 일을 쓰게 하였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저는…독자씨하고 단 둘이 술이나 한 번 마셔보고 싶…”
“안돼 돌아가.”
“아니 하고싶은거 말하라면서요!”
“그건 안돼”
유상아를 돌려보내고 나니 정희원 이현성 커플이 찾아왔다.
“우리는 독자씨를 패고 싶습니다.”
“글 읽어보니 독자씨 조금 맞아야 겠더라고요”
한수영은 이건 마음에 들어 내용에 넣었다.
“한강!”
“바다!”
“치킨!”
“피자!”
“둘 다, 불만 없지?”
“”네“”
아이들…아니 이젠 아이들이 아니지. 유승이와 길영이도 불렀고
“그…구원의 마왕 친필 싸인 좀…”
“…넌 김독자를 보고 싶은 거야 구원의 마왕을 보고싶은 거야?”
“당연히 구마지!”
…장하영 분량은 이번에도 없을 것이다.
“팬다”
“응?”
“죽기 직전까지 팬다”
“뭐 마음에 드네”
유중혁의 의견과
“다쳤다면 제가 치료해 드리죠. 다 나으면 다시 때려주세요.”
“알았스”
외전 내용이 김독자가 많이 맞는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리고
“내가…김독자랑 사귀는 것도…”
로맨스를 조금 가미하려고 했는데 그 대상이 자신이다보니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우여곡절 끝에 외전을 완성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외전을
이젠…김독자가 돌아오는 것만이 남았다. 이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온 우주에 퍼질 것이다. 김독자를 잊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며, 그를 다시 한 번 상상할 것이다.
가장 오래된 꿈이 김독자를 상상할 것이다.
이제…기다리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