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30평 정도 되는 아파트의 어느 한방의 침대, 그 위에서는 한수영이 마른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계속된 기침으로 쉬어버린 목, 고열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통 젖은 머리카락과 오한으로 연신 떨리는 몸까지 감기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겪고 있는 한수영이었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오늘이 화이트데이라는 점이었다. 지난달 발렌타인데이 때는 김독자와 한수영 둘 다 일이 있어서 만나지 못했고, 김독자의 생일에는 김독자 컴퍼니 모두가 함께 축하했기에 기념일 날 데이트를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 화이트데이에는 두 사람 모두 일정을 빼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건만, 한수영에게 찾아온 감기몸살 때문에 눈물을 삼키며 이번 데이트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감기에 걸려 데이트를 할 수 없을 거 같다는 문자를 보냈을 때 김독자로부터 온 답장이 아직까지도 한수영의 머릿속에 남았다.
[난 괜찮으니까 푹 쉬어 수영아. 다 나으면 그때 데이트하자.]
'괜찮긴 무슨...신유승한테 다 들었는데.'
김독자는 한수영을 배려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말했겠지만, 오늘을 위해 며칠씩 야근을 하고 옷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 하나 하나 입어보면서 큰집 사람들에게 자신의 차림을 물어봤다는걸 신유승에게 들어 김독자가 자신보다도 더 데이트를 기대했다는 걸 알고 있는 한수영에게는 그 말이 더 큰 미안함을 주었다. 한수영이 상념에 젖어들고 있을 때, 방 밖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딩동-딩동-
초인종이 두어 번 울렸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던 한수영은 베개로 귀를 덮으며 그 소리를 무시했다.
'안에서 반응 없으면 사람 없는 줄 알고 그냥 가겠지.'
딩동-딩동-딩동-딩동-
하지만 한수영의 생각과 달리 초인종은 계속해서 울렸고, 쉬지 않고 고막을 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질려버린 한수영은 베개를 집어 던지며 벌떡 일어났다.
“X발! 도대체 어떤 새X야!”
기침하느라 다 쉰 목으로 소리를 지르며, 문밖에 있는 게 방문판매원이라면 흑염으로 태워버리겠다 다짐한 한수영은 바닥에 발을 디뎠다. 침대맡에서 핸드폰이 울렸지만, 그 소리를 무시한 한수영은 벽에 손을 짚어 기운 없는 몸을 지탱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 인터폰 앞에 섰다.
띠리리릭-
그 순간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한수영은 뒷걸음질을 치다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으악!”
“수영아?”
꼬리뼈 근처를 문지르던 한수영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녀의 눈앞에는 오늘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양손에 커다란 종이백을 하나씩 들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현관에 서 있는 김독자가 들어왔다.
“김독자?? 너 지금 회사에 있을 시간 아니야? 여긴 어떻게...”
“어차피 난 바지CEO잖아, 하루쯤 빠진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리고 네가 아픈데 당연히 간호하러 와야지.”
“하여튼간에...”
“그것보다, 집에 있었는데 왜 안 나왔어 수영아? 전화도 안 받길래 난 어디 나간 줄 알았잖아.”
“힘들어서 문 열어 주기도 귀찮았고...이 시간에는 다들 출근하거나 학교에 있을 시간이라 택배나 잡상인인 줄 알고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면 그냥 갈 줄 알았지.”
“수영이 너 답네.”
쉬어진 목소리로 말하는 한수영의 말에 김독자는 작게 웃었고, 김독자의 반응에 한수영은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 한수영을 귀엽다는 듯 잠시 쳐다보던 김독자는 종이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신발을 벗은 다음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몸을 숙여 한 손으로는 한수영의 어깨를, 다른 손으로는 한수영의 허벅지를 받쳐 그녀를 들어 올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치솟자 한수영은 비명을 질렀다.
“꺄악! 뭐, 뭐 하는 거야!”
“걸을 힘도 없어서 안 나왔던 거라며. 그러니까 내가 침대까지 데려다 줘야지.”
뻔뻔하다면 뻔뻔한 김독자의 말에 한수영은 말문이 막혔다. 그때 김독자가 고개를 살짝 꺾어 그의 이마를 한수영의 이마에 대었다. 맞닿아진 이마를 통해 자신에 비해 낮은 김독자의 체온이 느껴지자 한수영은 반작용인 듯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한편 눈을 감은 채 한수영의 체온을 어림짐작하던 김독자는 눈을 띄며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한수영을 쳐다봤다.
“이마가 불덩이네...얼굴도 빨갛고...많이 아파 수영아?”
“....”
한수영은 얼굴이 빨간 건 열이 나서가 아니라 김독자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상태를 걱정하는 김독자의 얼굴 때문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답답한 가슴만 쳐댔다. 한수영의 침실에 들어간 김독자는 한수영을 침대에 눕혔다.
“물수건이라도 이마에 올려줄게, 잠깐만 기다려.”
그말을 하고 방에서 나가는 김독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한수영의 속은 여러모로 복잡했다. 김독자가 자기 집에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고, 엉망진창인 자기 꼴을 김독자에게 보여준다는 게 부끄러웠고, 무엇보다 김독자가 자신을 걱정해서 직접 와줬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 이럴게 아니라 머리라도 좀 정리해야 하나.'
오래된 빗자루처럼 부스럭한 머리를 만지려 아무 데나 던져놨던 휴대폰을 찾던 한수영은 문밖에서 나는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다시 침대에 누웠고, 동시에 어깨에 수건을 몇장 걸치고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들어있는 대야 두 개를 손에 든 김독자가 방에 들어왔다.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은 김독자는 수건들을 차가운 물이 담긴 대야 안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몸살 때문에 목욕도 못했을 거 같아서, 얼굴이랑 팔다리만이라도 좀 씻겨줄게. 괜찮지?”
“마음대로 해.”
한수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김독자는 이불을 걷어낸 다음, 물을 충분히 짜낸 수건을 들어 한수영의 목에 갖다 대었다.
“읏...!”
“많이 차가워?”
갑작스럽게 느껴진 냉기에 한수영이 신음소리를 내자 김독자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갑자기 닿아서 그랬어. 계속해도 돼.”
한수영의 말에 김독자는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수건의 온도를 조금 올린 다음 깨지기 쉬운 유리병을 다루듯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목과 얼굴, 팔과 다리를 씻겼다. 그런 다음 마른 수건 한 장으로 한수영의 몸에 있는 물기를 닦아냈고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잠깐만 일어나볼래 수영아?”
한수영이 순순히 일어나자 김독자는 주머니에서 노란색 손수건을 한장 꺼내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매어줬다.
“목이 많이 쉬었길래. 이러면 좀 나을 거야.”
그리고 다시 한수영을 눕힌 김독자는 도깨비 상점을 열고 이불 하나를 구매해, 땀에 흠뻑 젖은 이불 대신에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 그런 다음 남은 수건 한 장을 차가운 물이 담긴 대야에 넣었다 꺼내 물을 짜내고, 자신의 손보다 조금 더 크기로 접어 한수영의 이마에 올려줬다.
“시원하네...”
차가운 기운이 이마를 따라 온몸으로 퍼지자 고열로 힘들어했던 한수영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침대 옆 바닥에 앉은 김독자를 바라보던 한수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어릴때 감기 진짜 많이 걸렸었다? 지하철에서 읽었을지 모르겠지만...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밤에 잠 안 자고 멸살법 썼더니 몸이 약해져서 시시때때로 감기에 걸렸거든...감기 걸려서 산 날이 1년 중에 3달은 될걸? 그런데도 부모란 인간들은 와서 걱정해주기는커녕 쪽지 하나도 없이 약만 달랑 보내고, 날 그저 골칫거리 아가씨로 생각하는 경호원들도 나한테 무관심했고...가정부 아줌마는 감기 걸린 날에는 밍밍한 흰죽만 달랑 끓여놨었다...? 아픈데 주변 사람도 다 그따위니까 짜증이 많이 나더라...”
김독자는 한수영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썩 좋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기에,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그녀가 과거 이야기를 하는 때가 있다면 그건 아마...
“그런데...지금 이렇게 너한테 정성스레 간호받고 있으니까 이게 꿈인가 싶다...”
지금이 그때와는 비교도 행복하기 때문이겠지, 라고 김독자는 생각했다. 김독자는 양손으로 한수영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
“너 아플 때마다 계속 이렇게 옆에서 간호해줄게, 약속할게.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도 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거고.”
“됐어...그게 연애하는 거냐 상전을 모시는 거지...”
“그런가?”
김독자가 씩 웃으며 말하자 한수영도 옅게 마주 웃어줬다. 그 뒤로 김독자와 큰집에서 있었던 일, 소설에 달린 악플러 욕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한수영은 시야가 두어번 점멸하더니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고 김독자도 그걸 발견했다.
“졸리면 한숨 자도 돼, 수영아.”
“김독자랑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 어디 안 가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자. 일어나면 내가 죽 끓여줄게.”
그말을 하며 김독자는 한수영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고, 김독자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한수영은 천천히 잠이 들었다.
*
꼬르륵-
“으음...”
그로부터 2시간쯤 지났을까, 한수영의 침실 안으로 살금 들어온 냄새가 그녀의 코에서 맴돌았고, 그 냄새를 맡은 한수영의 배가 텅 빈속을 채우고 싶다는 걸 알리려는 듯 작게 울리자 한수영은 몸을 뒤척이며 천천히 일어났다. 잠에서 깬 한수영이 이마에 손을 대니 아직 열감이 있긴 했지만, 아침과 비교했을 때는 훨씬 온도가 내려갔다. 안 보이는 손이 쥐어짜는 거 같던 머리도, 쉬지 않고 간질거리던 목도 한결 편안해졌고, 물먹은 솜에 깔린 거 같던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한수영이 몸을 허리를 돌리며 굳은 몸을 풀고 있을때 김독자가 침대 위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은 탁자 위에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그릇과 컵 하나를 올리고 들어왔다.
“벌써 깼어? 조금 더 자고 있지.”
“딱 맞춰서 일어난 거 같은데? 그리고 네가 간호해 줘서 좀 괜찮아졌어.”
빈말이 아나라는 듯 아까보다 기운이 도는 한수영의 얼굴을 본 김독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고개만 두어번 끄덕이며 침대 위에 탁자를 내려놓고 그릇에 덮인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하얀 쌀 사이로 부드럽게 풀린 연노란색 계란, 식감과 색감을 살리기 위해 뿌려진 당근, 부추, 양파 등 각종 채소와 김, 통깨, 그리고 그릇 외곽을 따라 한 바퀴 둘린 고소한 참기름으로 마무리 한 계란죽 한 그릇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을 본 한수영이 절로 감탄을 토해냈다.
“우와, 이거 네가 직접 한 거야?”
“응. 여기 오기 전에 어머니한테 연락드려서 레시피 듣고 만들었어. 간을 보긴 했는데...처음 만드는 거라 맛이 없을지도 몰라.”
한수영이 옆에 놓인 숟가락을 들어 죽을 작게 한 숟가락 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을 후후 불어 적당히 식힌 한수영이 그대로 죽을 한입 먹었다. 한수영이 오물오물 씹는 동안 김독자는 옆에서 숨죽인 채 경연 대회 참가자 마냥 그녀의 반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한수영의 목젖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고,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맛있네.”
“정말?”
“응, 유중혁 그놈이 한 요리보다 이게 훨씬 맛있어.”
물론 김독자의 솜씨로 유중혁의 요리를 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김독자도 일반인 기준으로는 꽤 요리를 잘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아픈 자신을 위해 해줬다는 것이 가산점이 붙어 한수영은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한수영의 말을 들은 김독자는 거의 입꼬리가 귀에 붙기 직전이었다.
“다행이다...냄비 가득 만들어서 냉장고 안에 넣어뒀으니까, 한번 먹을 때마다 먹을 만큼만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면 돼.”
“나참, 진짜 엄마가 따로 없네.”
김독자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수영은 그릇을 비워갔고, 이내 그릇은 밥알 한 톨도 없이, 물로 한번 씻어내면 설거지가 끝날 정도로 깨끗하게 비워졌다. 한수영이 포만감 가득한 배를 문지르는 동안 탁자를 내간 김독자는 작은 꾸러미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김독자는 한수영이 앉아 있는 침대 자리의 맞은편에 앉아 노란 리본으로 묶인 검정색 꾸러미를 한수영에게 건냈고, 한수영이 꾸러미를 받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게 뭐야?”
“오늘이 화이트데이잖아. 원래는 데이트하면서 주려고 했는데...상황이 이렇게 돼서 지금 줄려고.”
한수영이 리본을 풀어 꾸러미를 열었다. 꾸러미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수많은 막대기 중 하나를 꺼내자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 전체적으로 투명한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는 꼬리와 동공을, 파란색으로 눈동자를, 흰색으로 흰자와 입가, 귀를 색칠한 고양이 얼굴 모양의 사탕이 모습을 드러냈다.
“디오니소스가 성좌들한테 나눠준다고 술 들어간 사탕을 만든다길래 그거 도와주면서 사탕 만드는 방법 배워서 만들었어. 거기엔 술 안 들어갔으니까 걱정하지 마.”
김독자의 설명을 들은 한수영이 비닐봉지를 뜯어 사탕을 물자, 은은한 레몬 향과 함께 탄산처럼 살짝 톡 쏘면서 새콤한 레몬과 달콤한 설탕의 맛이 한수영의 입안 가득 조화롭게 퍼졌다. 그리고 한수영이 김독자를 칭찬하기 위해 물었던 사탕을 다시 빼낸 순간. 김독자가 기다렸다는 듯 한수영의 손에 들린 사탕을 낚아채 제 입에 물었다. 한수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김독자를 쳐다봤다.
“뭐하냐?”
“그거 만들면서 혹시나 부족할까 봐 난 한 개도 안 먹었거든. 그런데 너가 너무 맛있게 먹길래 맛이 궁금해져서.”
한수영은 김독자의 말이 거짓말이란 걸, 단지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저러는 것이란 걸 알았지만 뭐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설화, '레몬 맛 사탕의 추억'이 작게 웃습니다.]
지금 메세지 창이 보여주듯 한수영도 이 상황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수영이 사탕을 먹으면 김독자가 뺐어 먹는 상황은 시나리오 시절 기간토마키아때 처음 그랬던 이후로 지금까지 쭉, 이렇게 설화가 될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에 아주 깊게 남아있었다. 김독자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왼손으로 막대사탕에서 빼낸 하얗고 가느다란 사탕 막대기를 흔들며 한수영을 바라봤고, 한수영은 코웃음을 치며 손으로 침대 바닥을 짚고 김독자 쪽으로 다가갔다. 검지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김독자와 한수영이 서로를 마주 보길 잠시, 한수영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너...내가 감기 환자인 거 까먹은 거 아니지?”
“수영아, 나 가장 오래된 꿈이야. 이 정도로 감기에 걸리겠어.”
“입만 살아서는, 너 감기 걸려도 난 책임 안 진다?”
한수영은 그 말만 남긴 채 김독자 쪽으로 몸을 숙였고, 한수영을 맞이하려는 듯 김독자는 앙다문 입술을 살짝 벌렸다. 두사람의 입술은 종이 한장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딱 맞붙었고, 그 안에서 한수영은 사탕을 다시 가져가려는 듯, 김독자는 사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각자 혀로 사탕을 감쌌다. 사탕을 녹이며 이리저리 움직이던 두 사람의 혀는 어느 순간 굳게 엮였고, 절대로 놓지 않으려는 듯 김독자는 한수영의 허리를 팔로 감싸 안았고 한수영도 김독자의 옷 앞섬을 꽉 잡았다. 그 뒤로 시간이 지나 사탕은 녹아내렸지만, 두 사람은 상관없다는 듯 떨어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서로를 탐했다.
*
그리고 다음 날,
에, 에, 으에취!!!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인 XX병원, 의선이라 불리며 별명에 걸맞게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 이설화의 진료실에는 아침부터 우렁찬 재채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러, 니, 까, 감기걸린 수영씨랑 키스하다가 독자씨까지 감기에 걸렸다 이 말씀이세요?”
그리고 그 진료실의 주인인 이설화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앤티누스에게 조종당하던 독희 시절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독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재채기 하느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김독자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한수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 우리가 키스한게 아니고 김독자가 사탕을...”
“변명은 됐어요 수영씨.”
싸늘한 이설화의 목소리에 한수영은 다시 입을 닫았고, 이설화의 폭풍과도 같은 잔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총알처럼 박혔다.
“두 사람 다 생각이 있는 거에요 없는 거에요? 약 강한걸로 지어드릴 테니까, 두분 다 하루 3번 꾸준히 복용하시고 다 나을때까지 일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수영씨는 그만 집에 돌아오세요. 소설에 쓸 자료 얻는다고 자취 경험 하는것도 3달이면 많이 했으니까요, 아시겠어요?”
“알, 알았어. 이번달 까지만 채우고 아파트 방 뺄게.”
한수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이설화가 내민 처방전 두장을 챙겨 김독자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서 후다닥 나왔다. 닫힌 문을 한참동안 본 이설화는 차트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