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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죄송해요! 저분이 제 남자친구라 번호는 조금...!"
말을 끝낸지 3초 후, 그녀는 자신이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았다.
그냥 친구도 아닌 '남자'친구. 이 말이 가지는 의미를 그녀가 모를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대상이 멀리 있어서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
그 발언을 들은 남자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얼굴이 발갛게 물들여진 채로 자리를 피했다.
어느새 음료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온 김독자가 물었다.
"상아 씨 저분은 누구시길래 왔다가 가시는 겁니까?"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앉으세요!"
".....?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못 들은 듯 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김독자의 눈빛이 일순간 달라졌지만, 금새 바뀌었기에 유상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음료가 도착하고,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유상아는 그녀의 발언 때문에 김독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김독자는 그냥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던 와중, 먼저 말문을 튼 것은 김독자였다.
"카페에 같이 오는건 벌써 두번째네요."
"그러게요. 처음 카페에 간게 일주일 전이었죠?"
"그럴겁니다. 처음엔 상아 씨 같은 분이 저 같은 사람이랑 같이 커피를 마실 줄은 상상도 못했죠."
싱긋 웃으며 말하는 김독자의 얼굴에 유상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틀었다.
그녀의 발언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이 왠지 잘생겨보였기 때문이었다.
"...상아씨 얼굴이 붉으신데 어디 아프신가요?"
"아,아뇨 아무것도 아닌..."
툭.
그녀의 이마에 순간 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처음엔 차가웠지만, 이내 따뜻해지는 감촉이 그녀로 하여금 느껴본 적이 없던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흠....열은 없는데. 혹시 모르니까 약을 사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김독자는 서둘러 옷을 정리하고 카페 문을 나섰다.
김독자가 나간 그 문을 한참을 바라보던 유상아는 이내 자신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내 그녀는 어린아이같은 웃음을 지었다. 김독자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인지한채로.
***
나는 카페 근처에 있던 약국에서 해열제를 비롯한 감기에 드는 약 여러가지를 결재했다.
바깥 날씨가 조금 쌀쌀하긴 했지. 혹시 마음에 안 드신 건 아니겠지?
여러가지 걱정을 떠올린 나는 재빨리 약국의 문을 나섰다. 카페와 약국에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었기에 서둘러야했다.
그렇게 나는 카페를 향해 달리던 와중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나의 주변에서 지독하리만치 끈적하고 불쾌한 기운이 일렁거리기 시작했기에.
"...이만 나오지? 그렇게 기운을 내뿌리고 다니면 모르는 게 이상할거 같은데?"
[이런..들켰네.]
마치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는 어둠 속에서 한 청년이 걸어왔다.
아까 카페에서 본 그 남자였다. 그를 처음 봤을때 느껴지던 기운과는 비교가 불허한,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기운을 가진 채 그의 입에 조소가 머물렀다.
[인간 여자를 이용해야 하는 꼴인 신이 있다던데. 직접 보니 참으로 우습군.]
"입 닥치지? 혹시 너가 그녀를 죽인 악귀냐?"
[그렇다면? 아 혹시 너가 기대한 건 이 얼굴인가?]
그 청년은 내가 알던 얼굴로 모습을 바꾸었다. 한때 사랑했고, 지금도 그리워 하고 있는 얼굴들.
그는 나의 인연을 비웃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들의 얼굴을 보인다면 너는 이곳에서 소멸한다."
천천히 눈을 깜빡인 나는 신의 격을 발휘했다. 시간을 끌었다간 저 존재를 소멸시킬 확신이 없었기에 최대한 빨리 끝내야한다는 판단에 근거해서였다.
[왜 분노하는 거지? 너의 목적을 위해 그녀가 필요하니까. 내가 그녀를 죽인 것에 화가 난 거야? 아니면 그저 내가 그들의 얼굴을 흉내 냈기에 화가 난 거야?]
"...닥쳐."
[너의 그 위선의 대가를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그들이 아직도 그리워?]
점차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인과는 언젠가 돌아오기 마련이지.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지만, 이미 악한 기운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정신을 차린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그 누구십니까? 제가 왜 여기에 있죠?"
나는 그에게 눈을 맞추고 진언(眞言)을 사용했다.
[술에 취한 겁니다. 술에 취해 이곳에 쓰러진 것이고. 이내 정신을 차린 당신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눈빛이 몽롱해진 그는 이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주변에 떨어진 약들을 줍고 카페로 마저 향했다. 카페를 향한 나의 발걸음이 조금은 무거워진채로.
***
딸랑.
카페의 분위기에 맞춘 종소리는 카페가 내는 소음에 금새 묻혀 사라졌다. 나는 재빨리 유상아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상아씨. 많이 기다리셨죠? 신호가 막히는 바람에 조금 늦었네요."
"아뇨 괜찮아요 많이 안 기다렸어요."
"약 여기 있습니다. 식후 30분에 꼭 한 알 씩 드세요."
"...고마워요 독자씨. 독자씨를 볼때면 제가 어릴 적 만난던 선생님이 생각나요."
"...선생님이요?"
"네 어릴 적에 만난 선생님이셨는데 참 좋은 분이셨거든요."
"어릴 적에 만난 선생님을 기억할 정도면, 굉장히 좋은 분이었겠군요."
"네 언젠가 그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좀 웃기죠?"
"웃기긴요. 어떤 말씀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 '사람에겐 그 사람만의 삶이 있다.' 아직도 제 마음 깊이 간직한 말씀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기침을 했다. 너무 당황한 탓에 사레가 들렸기 때문이다.
"도,독자씨 괜찮으세요?"
"아,네 괜찮습니다...사레가 들려서 그만."
"조심하세요..."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니 그의 과거,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약 14년전에 있었던 일들이 점차 떠올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때 교사직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사람에겐 그 사람의 삶이 있어. 그러니 주변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는거야."
"네 선생님!"」
그 아이가 어린애 답지 않은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잠시 조언(?)같은 걸 해준 기억이 있는데.
그때 그 아이가.....유상아 씨라고?
소설로 쓰면 참 욕먹을 만한 설정이었다.
말이 되냐고 그게.
운명을 믿진 않지만, 참으로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혼란에 빠진 나를 바라 본 유상아는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냈다.
"...이게 뭔가요 상아씨?"
"아..그 독자씨가 가면 좋을 거 같은 책 박람회인데요. 어쩌다 보니 표를 구해서 그런데...."
잠시 뜸을 들인 유상아는 결심한 듯, 나에게 말했다.
"혹시 다음주 토요일날 시간 되시나요...?"
"전 주말이면 시간이 비워져 있습니다.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동행해도 될까요?"
나의 대답에 만족해서 였을까, 그녀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그럼 토요일날 다시 뵙는 걸로 하고 이만 자리에서 일어날까요?"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9시. 서점에서 만난 게 오후 5시 쯤이었으니 벌써 4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나와 유상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문을 나섰다. 그런데 머리 위로 한 방울 한 방울 물이 떨어지더니, 이내 큰 폭우가 되어 우리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몸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비가 막 오네요..."
"우산은 여기서 사면 될 것 같은데. 집까지 어떻게 돌아갈 지 걱정이군요."
갑자기 내린 폭우 탓에 버스가 운행이 종료 되어버렸다.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야하는 유상아에겐 악재였다.
그나마 나는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자취방이 있었기에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버스가 운행 종료면 자취방에 못 가는데..."
유상아의 혼잣말을 들은 나는 무심코 유상아에게 물었다.
"상아 씨. 제 자취방이 근처인데. 거기로 가서 몸 좀 녹이시겠습니까?"
나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여져 갔다.
몇 초 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을때는 이미 물은 엎질러져버렸다.
내가 미쳤지. 무슨 소리를...!
"아..저 상아 씨 그게 아니라..."
"...가요."
"...네?"
"가자구요. 독자씨 자취방...."
얼굴이 발갛게 물들여진 유상아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후기 : 부족한 글 항상 잘 읽어줘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