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리들 모여봐봐-"

아침부터 난리법석을 떨던 한수영이 일행들을 불러모았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있는것인가,  찌뿌둥하게 일어나 한수영을 내려다 본 순간,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 사이 불어온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미약한 찬기운이 피부를 스쳐지나가는 10월 말, 상강(霜降)이라는 이름 답게 서리가 내려 유독 별빛이 오래 머물던 날이었다. 김독자가 돌아온지도 어언 3주째. 짧다면 짧은 시간이였지만 한수영에겐, 무의미했던 지난 4년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었다.  아니, 무의미했다 볼 순 없다. 비록 그녀에게 있어 지난 4년은 비애와 인내의 시간이었지만, 그 노력으로 그가 돌아왔으니까.


김독자가 돌아왔을때 한수영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휘둘렸고, 어떤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랬냐고, 어떻게 그럴수가 있었냐고 평소처럼 욕을 하고 흑염을 내뿜으며 따지고 싶었지만, 새하얀 설화조각을 걷어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김독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한수영은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 그를 꽉 끌어안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행들 또한 - 김독자의 사지를 나눠가지려는 이길영과 신유승(유승:5대5로 해!)(길영:누가 5야?)을 제외하면- 그녀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누구보다도 크나큰 그리움과 설한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몇분의 시간을 둘만을 위해 양보해주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 부둥켜 안고있다가, 자그마한 욕설을 내뱉으며 한 말이 이것이었다. 


"...이제 내 소설... 읽어줄거지?"


그의 병원복을 온통 눈물로 적신 한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김독자는 카이제닉스에서 그녀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언젠가 시나리오가 끝나고 나면, 다시 소설을 쓰고싶을지도 몰라-

-그때가 되면, 가장 먼저 내 소설을 읽어줘.-

장장 50여년동안 오직 그만을 기다리며, 그를 잊지 않기위해 계속해서 글을 썼던 한수영. 그때 그녀는 별다른 표현도 하지 않는 그에게 화를 내거나 섭섭함을 표출하는 대신, 그에게 자신의 첫 독자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멍 청한 김독 자는 약속을 지 키지 못했다]


"...제 4의 벽?"

한수영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의식속에 무언가 나타나는 글귀에 화들짝 놀랐다. 사벽이는 '가장 오래된 꿈'이 되어 떠났을텐데.. 


[하지만 김독자는 알고 있었다. 제4의 벽은 이제 없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는 독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물론 나의 정신방벽이자 심리 상태를 대변해주던 제 4의 벽은 없었지만, 독자였던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데 능했다.

그 말은 즉, 자기 자신의 의식을 읽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뜻이다. 물론 그걸 제대로 표출하는 법을 몰라, 혹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해 시나리오 내내 애를 먹은적이 많았지만.



"야, 아까부터 멀뚱멀뚱 서서 뭐해? 어서 내려오지 않고."

어느새 인기척을 느낀 한수영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 어.."

대충 얼버무린 나는 대충 냉수 한잔을 마시고 한수영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왜 불렀어?"

한수영은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끌어다가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전지적 독자 시점 말이야...드디어 1억뷰 찍었어!"

"정말? 축하한다 야"

"그래 인마, 축해해줘야지. 너때문에 쓴 글인데. 정작 넌 아직 다 읽지도 않았지?"


여느때처럼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는 우리였지만, 오늘따라 난 가슴 한켠이 씁쓸했다. 첫번째 독자는 개뿔, 1억명이 '전지적독자시점' 을 읽는 동안 나는 수많은 파편이 되어 동료들에게 커다란 마음의 짐으로 남아 텅빈 공허를 떠돌았다.  특히 저 한수영에게는.

 칼을 휘두르게 만들어 또 한번 상처를 준 49% 김독자의 기억이, 미지의 결말을 찾아 어떻게든 자신을 만류하려던 한수영을 뿌리친 이학현의 기억이, 그리고 수없이 많은 세계선에서 자신을 애타게 찾고있는 한수영의 소설을 본 기억이 나를 더욱 자책하게 만들었다.


"야, 너 뭘 그렇게 얼빠진 얼굴을 하고있어? 너 이새끼 또 이상한 생각하는거 아니지?"

한수영이 조금 화난것 같기도, 걱정하는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시발 4년동안 너 하나 데려오려고 글을 썼는데. 아 생각해보니깐 그 전에 13년동안 멸살법도 썼구나? 암튼 그런데도 안돌아오길래 아예 딴 세계선으로 빙의까지 하고..이 고생들을 해서 드디어 이 망할 김독자를 잡아왔는데, 너 진짜 또 없어져버리면..."


너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래, 이제 나도 돌아왔고, 너무 많은걸 희생해준 한수영에게,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어머니들, 나를 믿고 끝까지 조력해준 성좌들, 또 모르는 자리에서 나를 도와준 수많은 이들...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때가 됐다.


"없어지긴 무슨.. 앞으론 진짜로 니가 쓴 소설 첫번째로 읽을게."

미소를 지어보며 옆에 있는 한수영을 본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나쁜새끼..저,저번에도 그랬으면서..."

한수영이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숨기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한수영."

"수영아"

"흑..흐윽.."


나는 조용히 그녀를 끌어다가 토닥거려주었다.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으면 그랬을까. 나같은 것을 위해 삶을 할애하였던 그녀의 심정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시나리오 때가 생각이 난다.

비록 첫만남은 그닥 좋지 않았고, 살릴까 말까 고민까지 하며 잠시 동행하고 끝날 줄 알았지만,, 어느새부터 그녀와 있을땐 '멸살법'을 아는 존재가 있다는 위안을 받았고, 이해자가 되어 주었으며, 암흑성에서부터는 녀석에게 완전히 마음을 풀게되었다. 마계에서 돌아온 후 부터는 완전한 동료로서 한수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순간을 헤집어봐도, 그녀가 내게 많은것을 내어주었지 내가 그녀에게 해준것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기만에서 비롯된 빌어먹을 구원 정도랄까. 

그녀의 노력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에게 해준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흐윽..흐흐윽...가지마라 김독자..다시는.."

미약한 무게감에 한수영을 보니 아예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조금 차갑던 바람이 가시고 위로 길게 난 창 사이로 따스한 볕이 우리를 비추었다.


.

.


"독자씨..거기서 뭐해요...?"


적막을 깬것은 정희원이었다. 

"네?? 아니, 그.."

내가 당황해서 몸을 퍼덕거리자 울고있던 한수영도 기척을 느끼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몸을 뺐다.

체구가 작은탓인지 내 팔에 가려있던 한수영이 나오자, 상황파악을 마친 정희원은,

1초.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며

3초. 왠진 몰라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으며

5초. 음흉한 미소를 띄웠다.


"어 정희원씨 저희는 그런게 아니라.."

"흐흐, 됐어요. 뭐 우리 한수영이도 독자씨 때문에 지난 4년간 고생꽤나 했는데, 안그러는게 이상한거죠."


이쯤 되면 한수영이 소리를 빽 지를 법도 한데, 의외로 정희원의 시선을 피한채 눈물을 닦으며,

"시발 김독자.." 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부터 무슨일이냐"

"세분 벌써 일어나셨네요?"

"아바앗.."

조금 소란스러워진 거실에 다른 일행들도 눈을 비비며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언니, 울었어? 왜 눈이 퉁퉁 부어있지.."

이지혜가 졸린 발을 질질 끌며 한수영에게 말을 걸었다. 


"우, 울긴 뭘 울어. 어제 좀 무리해서 다래끼 난거야."


나는 다시 얼굴이 빨갛게 물들며 말을 더듬는 한수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은근히 귀엽네. 솔직히 아까 울던 한수영이 정희원에 의해 저지당했을때,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거지?


"그래서 아까 왜 불렀나 한수영"

"아, '전지적 독자 시점'이 1억뷰를 넘었대."

부끄러워 제대로 고개를 못 드는 한수영을 대신해 내가 대답했다.


일행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축하해주었다.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아침부터 사단을 피운건가? 너에게 아침밥은 없다."

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유중혁은 빼고.



이제야 좀 정신을 차린 한수영이 본론을 꺼냈다.

"야, 너희 그동안 내가 쓴 글만봤지 독자들 반응은 못봤잖아. 요구사항이라던가 창작물이라던가.. 사실 나도 바빠서 못봤고."

"그래서 마침 1억뷰도 달성한 기념으로, 우리 전독시 팬덤 한번 살펴보는게 어때? 너희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그러고는 한수영은 <아카라이브>의 <전지적독자시점 채널>과 <디씨인사이드>의 <전지적독자시점 갤러리>를 동시에 접속했다.


어느새 화하게 들어오는 볕을 맞으며, 한수영은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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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서

다음편:https://arca.live/b/reader/82779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