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스트림을 구성하는 것은 이야기다. 삶이든, 죽음이든 누군가 그것을 이야기해야 비로소 그것은 존재 한다.
헌데 이야기는 혼자 설 수 없다.
판소리를 예로 들 수 있다. 고수가 북을 쳐야 박자가 생 기고, 소리꾼이 소리를 해야 가락이 흐른다. 애절한 소리에 거리를 배회하던 엿장수가 이끌리고 그렇게 인파가 몰려드면, 판소리는 그제야 성립한다.
스타 스트림도 이와 같은 맥락 이다.
시나리오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매정한 고수고, 인파는 성좌들의 은하수다.
그럼 소리꾼은 누구인가?
조선 시대 명창들은 한복에 부채를 들었지만, 이곳 이야기꾼들은 머리에 뿔을 달았다. 털북숭이 외견은 처음 봤을 때 순진해 보이는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천진한 외형에 속여 화신들을 농락하는 이물.
화신도 성좌도 마왕도 아닌 세계의 방관자들.
세간에서는 그 치들을 이렇게 불렀다
도깨비.
간혹 그 앞에 여러 수식어구가 붙곤 한다.
염병할 도깨비.
망할 털북숭이.
개새끼 . . .
그리고 랜덤 아이템 박스 건으로 상부의 호출을 받은 비형은 현재 이렇게 불리는 중이다.
'이 혹부리같은 놈!'
혹부리.
지평선의 악마라고도 불리는 족속들은 도깨비 숙적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혹부리같은 놈이란 문구는 도깨비들 사이에서도 가장 치욕스러운 욕설로 각인된 지 오래였다.
비형은 입을 꾹 다문 채 입고 있던 거적때기를 움켜잡았다.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분함에 열이 뻗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수치심에. 분노에. 붉그스름 해진 비형을 본 상급 도깨비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당분간 근신이다. 가서 이야기 꾼의 덕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상급 도깨비가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승진이 물 건너간 만년 과장의 한 이랄까. 그의 추락을 조롱하듯 조금 전 충격으로 비상한 서류가 얄밉게 나풀거렸다.
상급 도깨비는 세상이 자신을 미워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스타스트림의 모든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꿈의 비극에서 시작되었으니까.
물론 한낱 도깨비가 이를 알리는 없기에, 그가 발출한 격은 단지 화풀이에 불과했다.
- 츠츠츳!
7급 괴수종의 손톱에라도 스친 듯, 서류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비형은 공중에 흩날리는 쓰레기를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그의 멘탈도 함께 찢기는 중이었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 탁.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무실 밖으로 퇴장한 비형은 긴 복도를 둥둥 떠다니며 생각했다.
분명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가 말하긴 뭣하지만 비형은 하급 도깨비들 중에서도 꽤 엘리트에 속했다. 그는 성좌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고, 시나리오가 느슨하게 흘러간다 싶으면 적당한(도깨비 기준으로) 시런도 던져 줬다.
교육받은 그대로, 나무랄 데 없는 운영이었다.
하루는 그가 담당한 화신이 입소문을 타 비형의 시청좌가 일의 자리수를 돌파했다. 비형은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관리국 중앙, 명예의 전당에 오른 불멸의 기록들. 방주를 타고 세계선을 넘어 영원히 기억될 이야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이매망량. 도깨비 왕. 최고의 이야기 꾼.
천진한 미물들이 닿을 수 있는 지고의 경지를 비형은 어려서부터 열망했다.
랜덤 아이템 박스는 그 욕망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 . . 처참했다.
하위 아이템을 넣으면 무조건 상위 아이템을 뱉어내는 말도 안 되는 기능은 시나리오의 긴장감을 추락시켰다. 사태는 랜덤 아이템 박스가 도깨비 보따리에 등록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세력간 밸런스가 무너지고, 공들여 화신을 키우던 배후성들이 반발했다. 후원 시스템을 먹여 살리던 콘크리트 층의 분노는 관리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솔직히 근신도 관대한 처사였다.
[에휴. 내 팔짜야.]
현실을 자각한 비형이 풀이 죽을 무렵, 어디선가 쿵 소리가 울렸다. 놀란 비형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뒤를 돌아봤다. 상급 도깨비가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표정엔 분노가 아닌 의아함이 가득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자네 . . . 하아 . . . ]
비형과 마주 보고 호흡을 가다듬은 상급 도깨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혹시 빽 있나?]
[. . . 네?]
*
[이걸로 됐네. 그 어수룩한 도깨비의 근신도 금방 풀리겠지.]
[고맙군요. 무리한 부탁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양산형 제작자는 관리국과 밀접한 커넥션을 맺은 성좌. 그의 주머니에 넘쳐나는 코인은 콧대 높은 관리국마저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설화니까.
하급 도깨비의 근신을 푸는 것 즈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 . .
[뭘 이 정도 가지고 고마워하나. 겨우 50만 코인밖에 안 들었구먼.]
. . . 생각하던 때가 제게도 있었죠.
뉘 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툭 뱉은 단위에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 보는 성좌한테 50만 코인을 뜯은 셈이다. 어째 원작 보다 더 미친년이 돼 버렸다.
[새로운 설화가 발현했습니다!]
[설화, 노인 폭격기가 '양산형 제작자'를 보고 흥분합니다.]
[설화, 마계의 이단아가 노인 폭격기를 견제합니다.]
어째 설화 이름도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
내가 제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양산형 제작자가 소탈하게 웃었다.
[껄껄. 걱정 말게나. 갚을 필요는 없어. 넘쳐나는 게 코인이라네.]
그래?
[그럼 혹시 용돈도 줄 수 있나요?]
자신만만하던 양산형 제작자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음. 그건 좀 . . .]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후훗. 농담이랍니다.]
[아닌 것 같다만.]
어떻게 알았지? 나는 고민하다가 헤픈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는 노릇. 양산형 제작자는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었다.
대신 호기심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상한 일이야. 알지도 못 하는 도깨비를 돕다니.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건 자네가 처음 이었어.]
자꾸 처음 처음 거리니까 이상하다.
[설화, '동정 사냥꾼'이 이야기를 시작 - ]
시작하긴 뭘 시작해!
[설화, '마계의 이단아'가 '동정 사냥꾼'을 억누릅니다.]
그래. 계속 붙잡고 있어라. 내가 뇌내 투쟁을 벌이는 사이, 양산형 제작자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덕분에 이번 미식협은 즐거웠네. 전에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이야기였어.]
[그런가요.]
[그리고 한 가지 영감도 떠올랐고.]
[영감이라 하면?]
[. . . 내가 이번에 새 차를 뽑았네. 곧 판매할 예정이고.]
[축하할 일이군요. 제 권속도 스포츠카를 좋아하는데.]
[사실 아까 봤다네. 차 옆좌석에서 자네가 내리더군. 그 붉은 스포츠카도 내 작품이야.]
[그건 몰랐네요.]
[보아하니 자네는 차에 관심 없구만.]
맞다. 솔직히 그거 살 돈으로 화신들 후원이나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화신 없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본편에 진입하면 나도 배후성 짓이나 할 계획이긴 한데. 딱히 정해 둔 후보는 없다.
[스포츠카는 낭만일세. 삶의 진리가 닮겨져 있지.]
[농담인가요?]
[진담일세.]
양산형 제작자가 창문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유리창 너머에 긴 도로가 있었다.
[저 도로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 같나?]
[음 . . . 잘 모르겠네요.]
[나도 몰라.]
[네?]
"순간 이 노인이 날 놀려 먹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하기엔 그의 표정이 진심이었다.
[도로가 지평선을 넘어가면 우리는 끝을 볼 수 없지.]
[하늘을 날아도요?]
[그렇다네. 왜냐면 이 도로는 무한하거든.]
양산형 제작자의 대답에 나는 도로가 일종의 비유임을 깨달았다.
[스타 스트림처럼요?]
그가 씨익 웃었다.
[거대한 이야기 처럼.]
제작자가 지팡이를 툭툭 두드렸다.
어째 이야기가 본 주제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카의 낭만이 우주 전역에 펼쳐진 시나리오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세상 그 누구도 이야기의 끝은 몰라. 하지만 도로 중간중간에 셋길이 생기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살다 보면 선택이라고도, 간혹 운명이라고도 부르는 순간들이 때때로 찾아온다네. 안타깝지만 우리는 하나만 고를 수밖에 없지. 이는 저 위대한 별들도 마찬가지야.]
맞는 말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갈림길에서 당황하고 누군가는 멈추고 말아. 용기 있는 자는 고민 끝에 하나를 택해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걸어가지. 물론 선택한다고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선택은 연쇄적이기 때문이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빙의 후, 내게 주어진 것은 선택의 문제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흑염룡을 구했고, 라파엘과 인연을 맺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전지적 독자 시점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헌데 신기하게도. 아주 가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을 내리는 자들이 있네. 꿈이 확고한 자들이지. 나는 한때 그들이 혈기가 왕성한 탓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내가 틀렸어. 그들은 변하지 않더군. 운명을 거스르는 이단아란 그런 것이겠지.]
[. . . ]
[스포츠카는 그들을 닮았다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도저히 셋길로 틀 수 없지. 다시 말해 처음 품은 뜻을 끝까지 고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그게 낭만이 아니고서야 과연 뭐겠나?]
[. . .]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네.]
그가 말을 끝맺자 나는 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코인의 빛깔에 가려진 양산형 제작자의 진면목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가진 수많은 코인으로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자랑했다.
[전용 스킬, '벽을 넘은 자'가 발동합니다.]
[현재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아련함' 입니다.]
이 세계에 빙의한 이후.
내가 이렇게 정연한 문장들을 본적이 있었는가.
답지 않게 감상에 젖는 날이었다.
[껄껄. 혼이 쏙 빠진 것을 보니 설득된 모양이구먼.]
[들켜 버렸네요.]
[좋아.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내가 순순히 수긍하자 양산형 제작자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그것은 흡사 웃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 양산형 제작자가 느끼는 감정은 '즐거움 입니다.']
왜?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신차 모델을 해볼 생각 없나?]
[. . .]
나는 잠깐 정신이 망연해졌다.
그러니까 인생이니 낭만이니 하든 게 다 빌드업이고, 이게 본론이라고?
정정한다.
양산형 제작자의 진면목은 코인, 자본주의 그 자체다. 한겨울에 내놓은 호빵처럼 싹 식어 버린 감상에 나는 한마디 쏘아붙였다.
[돈으로 낭만을 사는 건가요?]
[돈으로 뭔들 못 사겠나. ]
그렇지. 이렇게 나오셔야지. 이게 내가 아는 성좌지.
철저히 이기적이고 설화에 미친 자들.
지난 1년간 방안에 틀어박힌 나머지 아득해져 버린 현실감각이 덕분에 깨어났다.
[대신 보수는 2대 8로 나누겠네.]
[. . . 3대 7.]
[콜.]
그래도 코인 앞에 장사는 없었다.
*
[이야기는 다 끝난 모양이군.]
자본가가 떠나니 이번엔 건물주가 찾아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지만 말이죠.]
헤아릴 수 없는 엄격과 내 시선이 무대로 향했다.
내가 양산형 제작자와 담소를 나누던 사이, 올해의 명작 소개는 벌써 막바지에 이르었다. 고딕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에우프로시네가 무대에서 마지막 열정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 메인 이벤트만이 남았군요! 과연 무슨 이벤트 일까요? 지금 바로 공개합니다! 두구두구두구. . . 마지막 이벤트는 바로 '설화대전' 입니다!]
설화 대전이라.
성마 대전이 아니라?
생소한 명칭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엄격이 설명을 덧붙였다.
[간단히 말해 입씨름이다.]
참으로 명료한 설명이었다.
구체적인 룰은 에우프로시네가 설명했다.
[이번에 선정된 설화는 '망치 먹는 드래곤'과 '운명을 마시는 새'네요! 둘 다 쟁쟁한 설화인지라 접전이 예상 됩니다. 토론은 총 두 팀으로 나눠 진행합니다. 양측은 설득력 있는 근거로 자신이 선택한 설화가 최고임을 입증해야 하며, 관객 여러분 과반수의 표를 얻어야 승리합니다. 팀 당 최대 참가좌 수는 다섯이니 이점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엄격은 룰을 곱씹더니 내게 물었다.
[참가 할 건가?]
[흥미로워 보이지만, 직접 해 보고 싶지는 않군요. 원래 이런 건 구경하는 쪽이 더 재밌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무대를 관람하려고 했다.
첫 번째 지원좌가 누군지 몰랐다면 말이다.
['운명을 마시는 새'로 부탁해요. 에우프로시네.]
[앗!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님께서 지원하셨네요!]
명계의 여왕, 페르세포네.
그녀는 미식협의 간부이자 작중 등장하는 네임드 성좌들 중 하나 였다. 위엄 서린 진언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어두운 금발을 찰랑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격으로만 따지면 특출날 것은 없으나, 특유의 아우라와 기품, 그녀가 속한 성운의 이름이 압도감을 주었다.
워킹 점수 98점. 부족한 2점은 순전히 복장 탓이다.
[차이나 드레스가 아니라니.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군요.]
[갑자기 여기서 무림이 왜 나오지?]
[알 것 없어요.]
에우프로시네의 말이 이어진 것은 그때였다.
[참고로 우승팀은 패배한 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이는 미식협의 개연성이 허락한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터무니없는 명령은 불가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헤아릴 수 없는 엄격이 의문을 표했다.
[이상하군.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들었는데.]
[엄격. 소녀의 마음은 갈대처럼 변덕스러운 법이랍니다.]
[. . . 표독스러운 게 아니고?]
[시끄러워요. 아, 에우프로시네? 저는 '망치먹는 드래곤' 편에 서죠.]
페르세포네. 난 당신이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