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reader/87867738?category=%EC%B0%BD%EC%9E%91&p=1


 Episode 3. 주인공과 주인공


 누군가가 본다면 저항 없이 웃음을 터트릴 만한 광경이었다.

 

 다 큰 성인이 목덜미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끌려가는 꼴이라니…….

 

 유중혁은 내 멱살을 잡은 채 짝수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내가 짝수 다리 건너편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이미 안전선을 건넌 이현성, 유상아, 이길영, 한명오가 보였다.

 이현성과 유상아, 이길영은 이쪽을 보며 뭐라 뭐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너무 멀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다. 아마 이미 안전지대 안쪽이라서 이쪽이 안 보일 거다. 그러니 저렇게 소리치고 있는 거겠지.

 

 나는 이번엔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방금 내 이름을 부른 남자가 유중혁의 일격을 맞고 난간 끝까지 날아가 있었다.

 남자의 외견을 ‘멸살법’식으로 묘사하자면 유중혁한테 뺨 세대 후려맞을 것 같았다. 강조하지만 후려맞는 거다, 후려치는 게 아니라.

 그 남자는 잠깐 혼절한 듯 보였지만, 이내 다시 일어나 자신을 둘러싼 마인들 사이에서 피 튀기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무려 그 ‘주인공’의 일격을 맞고도 잠깐 기절한 정도로 끝나는 걸 보니 이미 코인 사용법을 익혔거나 정신력이 어지간히도 좋은 듯했다.

 

 “이름…….”

 

 뭐?

 

 순간 뱃가죽을 통해 격통이 전해져왔다. 내 동체는 움푹 파였고, 유중혁의 주먹은 내 뱃가죽에 닿아 있었다.

 분명 나이프도 제대로 베지 못하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유중혁의 일격은 혼절할 듯 아팠다.

 이 녀석, 근력이 한 18레벨쯤 될 것 같다.

 

 “몸이 꽤 단단한 걸 보니 벌써 코인 사용법을 익힌 모양이지?”

 “그건 당신도 마찬가―, 큽!”

 

 다시 한번 내 복부와 유중혁의 주먹이 충돌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대비하고 있던 탓에 혼절할 뻔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저 이름 모를 남자를 향한 존경이 생길 것 같았다. 무려 이 정도의 공격을 맞고 날아가 잠깐 기절한 정도로 끝나다니. 나보다 체력 레벨도 낮아 보이던데.

 

 “질문은 나만 한다. 네놈은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

 “대답.”

 “싫은데?”

 

 유중혁이 주먹을 장전하는 것을 보며 나도 양손을 교차해 주먹을 막았다. 주먹을 대신 맞은 손목에서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내가 막을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 유중혁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당신을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름은?”

 “김독자.”

 “이름 한 번 이상하군.”

 “뭐, 그런 소리 많이 듣는 편이지.”

 “존댓말로 해라.”

 

 유중혁은 그리 말하며 다시 한번 공격했다. 나는 그걸 또 막았다.

 네가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할지라도 당하고만 사는 건 내 성미에 안 맞거든.

 

 “존댓말은 그쪽이 해야지. 내가 그쪽보다 나이도 많은데.”

 

 실제로는 나와 유중혁은 28살로 동갑이지만, 내가 먼저 태어났으니 내가 더 나이가 많은 셈이다.

 

 “……네놈은 내가 누구인지 아나?”

 “그럼, 당연하지. 프·로·게·이·머 유·중·혁 씨. 내가 이래 봬도 게임회사 직원인지라 프로게이머 정도는 알아본다고. 그리고 한땐 당신 팬이기도 했고.”

 

 사실 거짓말이다. 내가 비록 게임회사 직원일지라도 프로게이머를 하나하나 외우고 다니지 않을뿐더러 방금 전까지 ‘유중혁’은 내게 소설 속 캐릭터였다.

 

 “당신 꽤 유명하잖아.”

 

 유중혁이 프로게이머로 유명하다는 것도 소설 속 ‘설정’일 뿐이다. 하지만 팬이라는 말까지 거짓말인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로 유중혁의 ‘팬’이니까.

 

 나는 유중혁의 이야기를 읽고, 그를 싫어하기도, 원망하기도, 어떨 때는 응원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3천 편의 이야기를 유중혁의 ‘팬’으로서 함께 했다. 그러니 이런 나를 ‘팬’이 아니면 뭐라 부를 수 있을까.

 

 “……팬이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 말이군.”

 

 유중혁의 눈빛은 오랜 추억에 잠긴 사람의 눈빛이었다. 아마 유중혁은 멸망 전 프로게이머 시절을 회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 빌어먹을 시나리오가 시작된 뒤 그는 몇십 년 만에 ‘팬’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예의 없게 군 것은 용서해주지. 그렇다고 네 처지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뭐, 그런 것 같네.”

 

 유중혁이 짝수 다리 위를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내 다리가 연 꼬리처럼 흩날렸다.

 

 “그래서…… 지하철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대답하면 살려주려고?”

 “하는 짓 봐서.”

 

 거짓말이다. 분명 거짓말이다. ‘멸살법’의 유일한 독자인 나는 유중혁의 눈빛만 봐도 저 녀석이 죽일지 말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회귀자 놈에게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말로 설득해야 할지 생각했다.

 젠장, 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만 알아도 설득이 훨씬 쉬워질 텐데.

 

 [등장인물 ‘유중혁’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해당 인물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이미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뭐지? [전지적 독자 시점]인가?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의 사용 조건에 도달하였습니다!]

 [전용 스킬을 발동하시겠습니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용 스킬을 발동했다.

 

 「분명 3807칸에서 살아남았어야 하는 건 이 녀석이 아니라 김남운과 이현성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김남운은 어디 가고 다른 녀석들만 살아남았지?」

 「이번 회차는 시작부터 변수가 넘치는군. 아까 그 이상한 녀석부터 시작해서 이 녀석과 이미 다리를 건너간 녀석들까지.」

 「일단 정보를 캐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방해될 낌새가 보이면…… 죽인다.」

 

 유중혁의 생각이 둑 터진 댐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하기에 전력으로 막았다.

 

 이렇게 되면 일이 너무 쉬워졌다.

 

 나는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다.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핵심만 담아서 말했다.

 지하철에서 도깨비가 나타난 일, 시나리오의 클리어 조건을 보고 벌레를 죽인 일, 그리고 시나리오가 끝나자마자 지하철에서 탈출한 일까지.

 

 물론 내가 얻은 스킬 같이 들켜서 안 되는 것들은 모조리 배제하고 말했다.

 이런 세계에서 자신의 스킬을 떠벌리고 다니는 일은 죽여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곤충이라…… 곤충을 죽여 시나리오를 클리어했다는 건가?”

 “그래 맞아.”

 

 유중혁은 놀란 나머지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미래가 바뀌었다. 그것도 완전히. 어째서지?」

 

 유중혁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유중혁은 세 번의 회귀 동안 그런 생각은 조금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지하철에서 곤충은 어떻게 찾았지?”

 

 유중혁의 눈에서 살기가 감돌았다.

 아마 내가 지하철에서 곤충을 찾았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폭발.”

 “……?”

 “폭발 때문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똑바로 말해라.”

 “내가 곤충을 찾을 수 있었던 건 폭발 때문이라고.”

 

 유중혁의 눈빛이 폭발이라는 단어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곤충을 찾는 것과 폭발이 무슨 상관이 있지?”

 “앞칸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아이가 들고 있던 채집통이 내 앞으로 굴러왔어. 곤충을 죽여서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생각을 한 것도 그걸 보고 떠올린 거야.”

 “……수상하군. 겨우 그런 걸로 설명하기에는 운이 너무 좋아.”

 “수상할 수밖에. 순전히 우연이었으니까.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저~기 있는 꼬마한테 가서 물어봐봐. 저 꼬마가 채집통을 들고 있다가 떨어뜨린 애거든.”

 

 유중혁의 시선이 이길영한테 향했다. 아마 내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유중혁의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 녀석의 말이 맞다면…….」

 「미래가 바뀐 건 나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녀석이 회귀자인가 의심했지만, 지나친 생각이었군.」

 「그저 내가 그들을 죽이고 시작했기 때문에 미래가 달라진 거야.」

 

 유중혁은 지하철에서 폭발을 일으킬 때를 생각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영향인지 나 또한 그가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보았다.

 

 “그건 그렇고 질문 다 끝났으면 이것 좀 놔주지? 물어보는 것도 대답해줬잖아. 빨리 안전선 넘어가자고 제한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말이야.”

 “그건 안 돼. 네놈은 너무 위험한 거든.”

 

 유중혁의 눈이 황금빛을 내뿜었다. 나는 저게 뭔지 안다.

 

 [현자의 눈]

 

 유중혁은 저 눈으로 상대방의 특성창뿐만 아니라 임의로 숨겨둔 정보까지 열람할 수 있다.

 

 저 SS급 [현자의 눈]을 발동한 이상 녀석에게 내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꼭 나에게 나쁜 일은 아니다.

 어쨌든 나도 내 특성창을 볼 수 없으니 이걸로 나도 내가 가진 특성과 스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제4의 벽’이 ‘현자의 눈’을 차단하였습니다!]

 

 유중혁의 눈에서 금빛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당황했다.

 유중혁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은 오직 [현자의 눈]이 탐지에 실패했을 때뿐이니까. 네게 그 [현자의 눈]을 방어할 스킬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유중혁이 스파크가 튄 눈이 아픈지 손으로 감싸며 물었다.

 

 “네놈의 정체는 대체 뭐지?”

 

 나도 그걸 알고 싶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당신을 경계합니다.]

 

 유중혁의 눈에서는 이제 호기심 같은 감정들이 아니라 경계심만이 남아 있었다.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 많군.」

 「한 놈은 특성과 스킬이 모조리 필터링되어 있고, 한 놈은 [현자의 눈]을 방어한 다라…….」

 

 잠깐만 특성과 스킬이 필터링되어 있다고? ‘멸살법’에 그런 등장인물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특성과 스킬이 필터링된 적이 있던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상황이 복잡해졌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유중혁은 이제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계획이 틀어졌으니 나도 그에 맞춰 계획을 틀어야 한다.

 

 “유중혁, 당신은 믿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해.”

 “……그게 무슨 헛소리지?”

 “46번 시나리오는 혼자서 깰 수 없어. 알고 있을 텐데?”

 

 유중혁의 눈에서 경계심보다 당혹감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역시 이놈은 회귀-」

 

 “지금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야.”

 

 유중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동자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회귀자?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 대체 이놈의 정체는 뭐지?」

 「회귀자가 아니면서 미래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건…….」

 「설마-」

 

 이쯤까지 왔으면 반은 성공한 거다. 이제 마지막 패만 꺼내면 된다.

 

 “유중혁, 나는 ‘네가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거짓 간파’를 사용합니다.]

 [‘거짓 간파’가 당신의 발언이 진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멸살법’을 통해 녀석이 겪을 미래를 알고 있다. 즉, 나는 녀석이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는 셈이다.

 

 유중혁의 표정은 마치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안나 크로프트 말고 예언자가 또 있을 리가.」

 

 예언자.

 

 유일하게 미래를 볼 수 있는 특성인 동시에 모든 특성을 통틀어 유일하게 ‘탐지 스킬 무효화’가 패시브인 특성.

 

 「예언자만이 미래의 정보를 알고, 내 [현자의 눈]을 방어할 수 있다. 그렇다는 건 이 녀석은……」

 

 “미래시未來視…….”

 “뭐라고?”

 

 유중혁이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해서 들을 수 없었다.

 

 “미래시를 사용할 수 있나?”

 “그 비슷한 것 정도는.”

 “내가 이곳으로 올 것도 알고 있었나?”

 “맞아.”

 

 「이 자가 예언자라면……모든 게 설명이 된다.」

 

 유중혁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제 승부를 봐야 할 지점이 찾아왔다.

 

 “유중혁, 나는 당신이 특별한 힘을 통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걸 알아.”

 

 유중혁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힘의 약점도 알지.”

 

 회귀자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바로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회귀자는 현재를 바꾸는 순간 미래도 바뀌기 때문에 ‘바뀐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회귀자는 언젠간 ‘자신이 모르는 미래’를 살아야 한다.

 

 “나를 동료로 삼아. 내가 당신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어.”

 

 그러니 회귀자인 유중혁에게 예언자는 매우 매력적인 동료다. 실제로 나라면 예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중혁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언자는 도움이 된다.」

 「앞으로 있을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차라투스트라’에 있을 그 ‘녀석’과의 싸움에서도. 하지만…… ‘예언자’를 믿을 수 있을까?」

 

 여기가 제일 중요하다. 지금의 유중혁이 가장 필요한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예언자다. 그는 전회차에서 예언자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몰입으로 정신력이 심각하게 소모되었습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강제로 해제됩니다.]

 

 이런 큰일 났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스킬이 해제됐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유중혁을 쳐다봤다. 유중혁은 아직도 고개를 내리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저 고민의 결과에 따라 내 목숨은 좌지우지된다.

 

 “결정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너를 동료로 삼겠다.”

 

 그 말 하나에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피로감 때문일지도 안도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유중혁이 마침내 짝수 다리 끝에 다다랐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뭔데?”

 “네가 정말 예언자라면 네 미래도 볼 수 있겠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녀석의 시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느껴졌다.

 

 “끅!”

 

 동시에 목에서 느껴지는 악력이 더더욱 강해졌다. 유중혁이 내 멱살을 더 강하게 쥔 것이었다.

 

 “지금 내가 이 손을 놓을까, 놓지 않을까?”

 

 유중혁의 손이 다리 바깥으로 향했다. 이제 내 발아래는 한강이었다. 한강에서는 어룡들이 떨어지는 마인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렀다. 여러 상황을 가정해 보았고,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역시 이 녀석이라면 그 선택을 하려나?

 

 “딱 두 가지만 말할 게.”

 “안 돼.”

 “하나, 나는 당신의 부하가 아니야. 그러니 나를 동등하게 대해줘.”

 “…….”

 “둘, 나도 당신에게 협력할 테니, 당신도 네게 협력할 것을 약속해.”

 유중혁의 표정은 이제 감정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서 네놈의 대답은?”

 

 나는 씩 웃어주며 말했다.

 

 “그만 이 손 놓고 꺼져, 빌어먹을 새끼야.”

 

 순간 내 몸이 유중혁에게서 멀어졌다. 유중혁이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놓은 것이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착실히 따르는 내 몸은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개자식.

 

 떨어지는 나를 바라보는 유중혁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환하게.

 

 “믿겠다. 확실히 너는 예언자가 맞군.”

 

 추락하는 나를 한강에서 튀어 오른 씨-커맨더가 집어삼켰다. 동시에 내 몸에서 격렬한 충돌이 느껴졌다.

 

 중간에 ‘난 버리고 가냐, 이 개자식들아!’ 같은 소리도 들린 것 같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

 

 

 김독자가 죽었다.

 

 장난이고, 김독자는 아까 유중혁에게 멱살을 잡힌 채 짝수 다리 끝까지 끌려간 뒤 다리 아래로 떨어져 씨-커맨더에게 잡아먹혔다.

 

 뭐, 그리 많이 걱정되지는 않는다. 아마 김독자는 대량의 코인을 얻으면서 씨-커맨더에서 탈출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김독자가 아니라 나다.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게 물든 손톱을 몸을 비틀고 자리를 이동해가며 피했다. 꼴사납게 자동차 위를 넘어 다니고 난간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며 마인들을 최대한 다리 아래로 떨어뜨려 어룡의 먹이로 줬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호구력에 혀를 찹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의 희생정신을 기꺼워합니다.]

 [2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호구인 것도, 희생정신인 것도 아니다. 그저 계획의 일부였을 뿐이다.

 ……쯧, 사실인데도 왜 이렇게 변명 같지?

 

 마인은 아직도 많았다. 사실 마인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시야가 없고 행동도 느린 일반인을 숙주로 한 마인은 손톱만 조심하면 되기에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문제는 내가 저 짝수다리를 건널 방법이 없다는 거다.

 혼자만 이곳에 버려지는 바람에 짝수다리를 건널 방법이 없다.

 

 나는 착실히 마인의 수를 줄여가며 생각했다. 비행 계열 스킬이라도 쓸까 했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정말로 개연성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어서 그만뒀다.

 

 [다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역경을 재밌어합니다.]

 

 재밌어할 거면 돈, 아니 코인이나 내놓으라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미루고 미루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인들 사이에서 가장 가벼워 보이는 마인을 찾았다. 마인 하나를 제압해 들쳐멘 상태로 다리를 건널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안 가 마인들 사이에서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맹이 마인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당장 그 녀석을 옆구리에 낀 상태로 짝수 다리로 달렸다.

 

 제발 김독자가 벌레로 첫 번째 시나리오를 통과했듯 이번에도 꼼수가 통하기를.

 

 그러나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을까. 내가 짝수 다리에 발을 올리자마자 금빛으로 빛나던 짝수 다리는 순식간에 먼지로 화化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짝수 다리의 조건과 마인의 분류가 떠올랐다.

 

 「오직 짝수의 ‘인人’원만이 다리를 건너갈 수 있다.」

 「9등급 ‘인외人外’종, 마인.」

 

 그래, 그러고 보니 ‘전독시’에 그런 문장이 있었지…….

 

 비록 종명은 마인魔人이지만, 인人이 붙은 이유는 그저 인간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엄연히 인간 외의 종족이다. 즉, ‘인원人員’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몸은 뉴턴의 떨어지는 사과처럼 한강 물을 향해 확실하게 추락하고 있었다. 다행히 날씨를 보니 한강 물은 차갑지 않을 것 같았다.

 

 “개 같은 시나리오! 빌어먹을 <스타 스트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차가운 물의 기운이 내 전신을 감쌌다.



 -후기


 나 : [화신 '강지원'이 '무시당하기 Lv.???'를 발동합니다!]

 친구 : 그런 스킬이 있어?

 나 : 있을걸? 쟤도 자기 스킬이 억 단위가 넘어가면서부터 대부분 까먹어서 뭐가 있는지도 제대로 기억못해.


 이게 뭐라고 8500자씩이나 되지?


 이번 편은 본편과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아서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을까 걱정되네......


 추천과 댓글은 창작에 많은 도움이 돼. 그러니까 제발 댓글 좀. 귀찮으면 추천이라도......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