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마왕님? 잠깐 나 좀 보지?"


김독자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컵을 떨어트릴 뻔 했다. 뒤를 돌아보니, 한수영이 팔짱을 낀 채 눈을 부라리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김독자는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평소에는 진명으로 그를 부르는 한수영이였지만, 그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면 그녀는 그를 수식언으로 부르곤 했다. 딱 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이다. 


옆에 있던 비유와 서아는 이미 빠른 속도로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딸들을 따라 도망가고 싶은 김독자였지만, 그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어제 성좌들이랑 술 마시고 너무 늦게 들어왔나? 디오니소스, 그 자식이 3차 가자고만 안 했어도... 아니야. 그랬으면 오늘이 아니라 어젯밤에 집에 들어왔을 때 혼났겠지. 뭔가 다른 이유 같은데... 서아한테 외우주의 이계의 신격들 구경시켜준게 들킨건가? 아니야. 그랬으면 둘이 같이 불렸겠지. 저번에 우리엘한테 지구 구경 시켜줄 때 재미로 찍은 인생네컷 때문인가? 그래, 사진에서 우리엘이랑 너무 가까이 붙어 있긴 했어. 그거 봤을 때 수영이 표정이 좀 안 좋아보였는데... 지금 갑자기 다시 생각하니까 화난건가? 아니야. 수영이가 뒷북치는 성격은 아니잖아. 나 뭐 까먹고 안 한 거 있나? 바닥에 늘어져 있는 빨래도 없고... 어제 화장실 청소도 깨끗하게 했어. 최근에 마지막으로 수영이랑 섹스한게... 2주전.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는데. 아. 까먹고 이번 화에 댓글 안 달아줬다. 그거 때문에 삐진건가? 아니야. 저번에 한 번 까먹었을 때 저렇게 수식언을 부르지는 않았잖아. 그냥 가볍게 토라진 채로 얘기 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꽤 최근이네. 짧은 시일 내에 두 번이나 까먹어서 많이 화난건가? 아니면...


그러나 마땅한 해답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결국 김독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한수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왜 그래 수영아?"


그가 최대한 불안감을 숨긴 채 말했다. 한수영은 여전히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 식은 땀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풉."


한수영이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그냥,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김독자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며 힘이 풀렸다. 이런 짖꿎은 장난을 준비한 그녀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고 있는 한수영은 한 대 쥐어박기에는 너무 귀여웠다. 


결국, 그 역시 그녀를 따라 웃을 뿐이었다. 


"나도 많이 사랑해, 수영아."


뭐, 혼내주는 거는 오늘 밤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김독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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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우울한 독수 쓰다가 최근에 외전도 우울해져서 잠깐 멈추고 뭔가 행복한게 쓰고 싶었어

이제 피폐 김독자 쓰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