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이게 뭐야?!]

우리엘이 욕설을 내뱉었다. 요새 그렇고 그런 쪽에 관심이 생긴 그녀지만, 조금 전 사건은 충격을 넘어 어이를 상실할 정도였다.

아이라니. 그것도 마왕종의 . . . 미카엘과 함께 악마 학살자로 불리는 대천사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 모태가 된 남자는 평소 우리엘이 싫어하던 화신이었다. 저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애당초 저것은 저주의 산물이다.

저주는 곧 악.

대천사 우리엘의 입장에서 자신의 불꽃으로 멸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허나 . . . 

- 응애! 응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기는 인간을 숙주로 한 탓에 외형은 인간을 닮아 있었다. 지금까지 사냥한 벌레 같은 마물들과는 달랐다.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우리엘의 머릿속을 스쳤다. 

저것은 저주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생명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 심지어 자신의 근본이 어디서 기원했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니까 백지 같은 존재였다.

선도 악도 아닌, 그 어떤 이야기도 적히지 않은 공백.

그래서 더욱 애매했다.

멸마의 겁화로 저것을 벤다는 상상을 하자 묘한 불쾌감이 스쳤다. 선인지 악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야 . . . ]

당연한 말을 되네이며, 우리엘은 패널을 뚫어져라 쳐다 봤다. 아이를 낳은 남자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 대체. 이건 . . . 

고통에 헐떡거리면서 아기를 바라보는 한명오.
눈에서 복잡한 감정이 비춰졌다.
두려움과 공포, 당혹스러움과 거부감.
그리고 아주 약간의 호기심. 

[호기심은 예로부터 인간의 가장 큰 죄악이야. 안 그래?]

[가브리엘 . . . ]

우리엘의 욕설을 듣고 찾아온 가브리엘. 그녀 역시 비형 채널의 구독좌였다. 두 대천사의 시선이 패널로 향했다. 한명오가 엉걸겹에 손을 뻗자 아기가 한 명오의 손가락을 잡았다. 가브리엘이 턱을 궸다.

[기분 묘하네. 원래 우리가 축하해 줘야 하는데.]

[그러게 말이야 . . . ]

천사로서 생명의 탄생은 축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생명의 절반 이상이 악마 종의 것이라면? 최전선에서 악을 배제하는 대천사의 입장상 여러모로 난감했다. 

이를 일목묘연하게 정리하자면. . . 

'좆같다.'

'좆같네.'

좆같음. 
마왕에게 한 방 먹었다는 불쾌함. 
덕분에 자존심에 단단히 스크래치가 났다.
우리엘이 마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 우리 ■먹으라고?]

가브리엘이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잘 모르겠네. 도대체 뭔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32번째 마계의 주인. 아스모데우스.

그녀는 존재 맹세로 여태껏 에덴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뭐, 협력이라 해봤자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지만. 비즈니스도 천 년 정도 하다 보면 좀 더 깊이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미운정이라고 해야 할까?

성마대전 도중 뜻하지 않게 마왕의 도움을 받은 대 천사들은 만날 때마다 살갑게 구는 아스모데우스를 끝내 내치지 못했다.

그때 가브리엘이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너 그 얘기 들었냐?]

[뭐?]

[서기관이 저 ■한테 선악과 준 거?]

[■쳤나 . . . ]

우리엘이 격하게 반응했다.

[치매야?]

[안 그래도 그 말했다가 잔소리만 듣고 왔어. 반성문 10장 써서 내래. ■발.]

선악과. 

최초의 인류가 따먹은 금단의 사과에서 유래된 아이템. 그것은 복용자의 성향을 반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선이면 악으로. 
악이면 선으로. 

그러니까 메타트론이 선악과를 건넸다는 것은 아스모데우스 보고 이제 완전히 절대선의 편에 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우리엘이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 받긴 받았나 봐. 하지만 조금 전 수식언을 보니 아직 안 먹었나 보네.]

마왕은 간접 메시지를 띄울 때, '마왕'과 '성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전 한 명오에게 저주를 내린 주체는 분명 '마왕'이었다.

우리엘은 마왕의 행동거지를 되세기며 생각했다. 은근히 수집욕이 강한 녀석의 특성상 선악과를 일종의 전리품으로 간직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싼값에 되팔거나.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엘이 홧김에 말했다.

[에잇! 도깨비 보따리에 올라오면 그땐 내가 ■친다. ■가지를 ■야지!]

이에 가브리엘이 답했다.

[하여간 성질 드러운 ■.]

우리엘이 가브리엘을 째려봤다. 일변에 바뀐 기도.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방금 뭐라 했냐 ■발?]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친 ■아?]

결국 대화는 에덴식으로 귀결됐다. 서로를 향한 쌍욕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소리다. 메타트론이 보면 뒷목 잡을 광경. 물론 짬이 찰 때로 찬 두 대천사에겐 알 바가 아니었다.

[왜 ■랄이야!]

[니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쌍■아!]

- 콰앙!!

[큰일이다! 대 천사님들이 또 싸우셔!]

[빨리 말려!]

[누가 요피엘님 좀 불러와!]

[미카엘님은?]

[에덴 망하는 꼴 보고 싶냐?!]

기어코 성유물까지 꺼내는 대천사들을 떼어놓느라 정신이 팔린 에덴의 성좌들은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적대심을 보이는 것마저 깜박 잊고 말았다.

.
.
.

[이상하게 에덴이 조용하군요.]

[조용하면 좋은 것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 . . ]

그래도 이쯤되면 한번 노려볼 텐데. 무수한 아부와 애정공세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던 대천사들을 떠올리며 차를 홀짝였다.

엄격이 부리를 열었다.

[저것은 어떻게 할 작정이지?]

나는 유상아가 안고 있는 아기를 바라봤다.
붉으스럼한 종이가 잔뜩 쪼그라든 형태였다.
미약한 숨소리만이 그것이 살아 있음을 방증했다.

[내 권속으로 삼아야죠.]

엄격이 히히덕거렸다.

[몹쓸 취향은 여전하군.]

망할 소아성애자 프레임.
이럴 때마다 몸의 원주인이 원망스러워진다.

[설화,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지금처럼만 하라며 기뻐합니다!]

시끄러. 

아직 완전히 종속시키지 못한 설화를 나무라며, 후원금을 전송했다.

- 성좌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화신 '김독자'에게 10000코인을 후원합니다.

화면 속에서 김독자가 깜짝 놀랐다. 뭉게진 얼굴 탓에 한 마리의 넙치가 모래밭에서 팔딱이는 것처럼 보였다.

- 어, 그 . . . 감사합니다. 

김독자가 마지못해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멸살법 완독자답게 마왕을 꺼리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한 고갯짓에는 갑자기 후원한 까닭을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성좌,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절반은 아이를 위해 써달라고 말합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보살핌에 의아해합니다.]

내가 태어나게 한 생명이다.
그러니 책임도 내가 져야지.
단지 그뿐이었다.

- 그럼 한명오씨에게 직접 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 성좌,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화신 '김독자'라면 코인을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라 믿습니다.

- 유용하게 쓰라고 해도 . . .  

독자야.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하렴. 

너 도깨비 보따리 있잖아. 그거 쓰라고.

나는 옆에 풍선처럼 떠다니는 비형을 가만히 응시했다. 내 시선을 느낀 비형이 섬칫 놀라더니 뿔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채널은 별일 없으니 분명 도깨비 통신을 사용 중인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김독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 . . . 알겠습니다.

머뭇거림에서 고민이 느껴졌다. 나는 김독자의 심리를 한번 예측해 보았다.

[스킬, '잔머리 Lv.10'이 발동합니다.]

초반 시나리오에서 김독자는 등장인물보다 독자에 가까운 존재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보기 위해 시나리오의 전개를 뒤틀고 훗날 강자로 거듭날 등장인물들을 포섭했다. 이는 전부 그가 아는 하나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줄여서 멸살법.

김독자의 모든 설계는 멸살법에 근본을 둔다. 따라서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멸살법의 설정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면 김독자는 분명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방금 전 후속조치와 내가 간간이 일행들에게 거액을 후원하는 모습은 원작의 아스모데우스답지 않은 행위. 위화감을 느끼고도 충분히 남았다.

나는 방금 비형에게 온 도깨비 통신을 확인했다.

- 김독자에게 저와 마신님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비형이 전한 정보는 '나와 자신의 커넥션'과 '고로, 아스모데우스는 네가 스트림 계약을 맺었음을 알고 있다.'라는 문구. 

김독자는 이를 통해 아스모데우스 같은 마왕이 일개 도깨비를 신경 쓴다는 사실에서도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자고로 위화감의 반복은 의심에 불을 지피는 법이다.
멸살법의 유일한 완독자의 사고회로가 어디로 향할지 벌써 뻔히 보였다.

'이것은 내가 아는 전개가 아니다.'

[전용스킬, '벽을 넘은 자'가 씨익 웃습니다.]

그래. 
딱 그 정도. 

내 정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자그마한 파문. 그것은 김독자가 아스모데우스라는 마왕에게 재평가를 내리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이상성욕 사이코 마왕에서 어딘가 수상한 마왕으로.어딘가 수상한 마왕에서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왕으로. 그때쯤 되면 나는 이 수식언을 다른 의미로 인정받게 되리라.

'예정된 비극에 '격노' 하고 이야기를 '욕망'하는 마왕'

그것이 전독시의 표절에 불과한 내 이야기가 오롯해지는 법이라고 . . .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가슴 한복판이 허전했다.

[나의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 . .]

엄격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 것은 그때였다. 검은부리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그가 말했다.

[아직도 새로운 이야기가 고픈가보군.]

[보다시피 욕심쟁이라서 어쩔 수 없군요.]

[이해한다. 나도 그러니까.]

엄격이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 나이에 설레는 것도 오랜만이군.]

곧바로 내게도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5명의 성좌가 당신을 지지합니다.]
[당신은 성운의 개설권을 획득했습니다.]
[밤하늘에 새로운 성운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마왕, '불화의 조성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왕, '별과 논리학의 군주'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왕, '무자비한 역천의 사냥꾼'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왕, '대지의 마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를 지지하는 마왕들
그리고.

[마왕, '헤아릴 수 없는 엄격'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저들을 모은 내 다섯 번째 지지자. 

아몬.

그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많고 많은 별들이 모여 만든 맥락 속에서, 스타스트림의 은하수가 오연히 반짝였다.

[다수의 성좌들이 성운 <게티아>를 경계합니다!]
[성운 <에덴>이 당신의 결정에 경악합니다!]
[성운 <베다>가 마왕들의 성운에 적의를 드러냅니다!]
[성운 <파피루스>가 성운 <게티아>를 노려봅니다.]
[성운 <올림포스>가 성운 <게티아>를 경계합니다.]

성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나보다 강한 성좌들의 격이 피부를 찔렀다. 나는 전독시에서 그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되세겼다.

<에덴>은 묵시룡을 불렀고.

<베다>와 <파피루스>는 화신들의 비극에 축배를 들었으며. 

<올림포스>는 잔혹한 운명을 강제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가 조금은 더 행복해졌을까?'

엄격의 진언이 또 한번 잡념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나머지 마왕들도 내게 답을 구했다.

[성운, '게티아'의 구성윈들이 당신의 답을 기다립니다.]

내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생각해 보니까 나와 저 마왕들 역시 똑같은 악역이었기 때문이다. 아, 저열한 모순. 결국 스타스트림의 모든 존재들은 다 똑같은 년놈들이다. 

'내가 원하는 결말을 보고 싶다.'

그 한 문장에 꽂혀 세월을 허비하는 족속들이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그 욕망에 홀려 남을 해치는 자들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내가 나아가야갈 길은 정해진 것이었다.

*
나는 살아갈 것이다. 

먹고, 자고, 놀고, 싸우고, 죽이고, 탐하고, 관망하고, 개입하고, 쌓고, 적어가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소설의 에필로그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로

*

그것이 내가 이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별빛을 받아 휘영청 빛나는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스테이크를 썰어 한입에 삼켰다. 그것은 나의 욕망이고, 각오였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살겠다.'

그리고 이를 위한 첫걸음은 앞으로 나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막아설 치들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입술이 달싹였다.

[일단,]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밤하늘에 별이 너무 많아.]

스타스트림의 정경은 조금은 어두워질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