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레스 레이드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작전을 짰다. 근접전이 특기인 나와 아몬이 직접 충돌하고 안드라스는 불화의 겁화로 우리 둘을 보조.

장총이 주 무장인 바르바토스는 짤짤이 사격으로 견제. 원전 설화대로 회복 능력을 갖춘 부에르는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게임으로 치면 나와 아몬이 메인 딜러. 안드라스가 서포터. 바르바토스가 원거리 딜러. 부에르가 힐러 겸 사령탑이었다.

이렇게까지 포메이션을 짠적은 처음이라(성마대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왕들은 의아해했지만 나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우리는 지금 신화에 맞서는 겁니다.]

아가레스. 마계의 2인자. 그 강함이 신화 급 성좌에 필적하는 유일무이한 마왕이다. 그 점을 상기시키자 전략에 대한 불만은 쏙 들어갔다. 

다만 싸움 자체에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는 종종 보였다. 한량처럼 생긴 바르바토스가 장총을 꼬나쥐며 말했다.

[그냥 아랫서열부터 족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나중 시나리오가 곤란해지겠죠. 채널이 없다고 다들 귀머거리는 아니니까.]

우리가 재현할 마계 대통합 시나리오는 마계전역을 향한 유례없는 선전포고다. 아직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지금이야 비밀리에 움직일 수 있지만, 시나리오를 진행할수록 변고를 눈치채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기존에 누리던 권세에 위협을 느낀 마왕들이 누구를 구심점으로 뭉칠지는 안 봐도 뻔했다.

[우리보다 높은 서열의 마왕들도 아가레스의 편으로 돌아서겠죠.]

[그 자식이 신경이나 쓸까? 매사 무심한 녀석인데.]
[분명 움직입니다.]

내 확신에 찬 발언에 바르바토스의 눈이 동그레졌다.
나는 이유를 덧붙였다.

[그 주동자가 '아스모데우스'이기 때문이죠.]

[. . . 너 뭐 돼냐?]

[한 500년 전쯤인가. 아가레스의 궐련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도망쳤죠.]

[미친년 . . . ]

바르바토스가 욕지거리를 뱉으며 궁시렁거렸다.
그리고 아몬에게 따졌다.

[이런 미친년인 줄 알고 있었소?]

아몬이 근엄하게 웃었다.

[진작에 알고 있었지.]

할 말을 잃은 바르바토스 였다. 나 또한 진심 가득 담긴 발언에 할 말을 잃었다. 나 정도면 곱게 미친 거 아닌가? 적어도 원작처럼 성좌를 뜯어먹지는 않는다고? 

그 대신 다른 쪽으로 기행을 좀 저지르긴 했지만 . . .
다 미래를 위해서인걸?! 

아스라이 떠오르는 기억들을 휘휘 물리기 위해 헛기침을 뱉었다. 무안함을 감추기 위한 나름의 시도였다.

[크흠,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아가레스를 먼저 포섭해야 합니다. 적어도 무력화는 시켜야죠.]

[이 전력으로 가능해?]

안드라스가 올빼미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이중 순위기 가장 낮아서 그런지 묘하게 위축되어 보였다. 나는 그가 힘을 팍팍 낼 수 있도록 한 가지 동기를 마련해 주었다.

[가능하게 해야죠. 아니면 다 죽은 목숨이라고요?]

[. . . ]

가만히 있던 모략스가 말했다.

[엄격.]

[음?]

[우리가 평소 너를 섭하게 대했나?]

[. . . ]

말없는 엄격 대신 부에르가 대답했다.

[아니지. 오히려 엄격이 우리를 섭하게 대했도다.]

[그럼 아무 잘못 없는 우리가 왜 이 개고생해야 하는 걸까?]

이번엔 내가 답했다.

[그야 나를 섭섭하게 대했으니까. 만날 때마다 구박하고, 위협하고. 가녀린 마왕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요!]

그러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엄격이 말했다.

[애교부리지 마라. 역겹다.]

[하아 . . . 이래서 남자들이란.]

고스로리 복장의 미소녀가 성심성의껏 발랄하게 웃어 주면 "고맙습니다"라고 해도 모자랄 망정인데 말이다. 목석처럼 저러는 꼴을 보니 가뜩이나 칙칙한 마계의 미래가 영국 스모크 저리가라였다. 앞날이 어둡다. 어두워.

[엄격은 평생 혼자 살아요.]

그러자 엄격이 코웃음 쳤다.

[너도 그래라.]

[. . .]

그렇게 우리는 서로 덕담을 두고 받으며 황야 근처에 위치한 '두 번째 마계'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성운 <게티아>는 긴장을 풀기 위해 맛탱이가 갓던 것 같다.

내로라 하는 마왕들이 긴장할 정도로 무모한 도전.
우리가 개척하려는 이야기는 그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는 미지의 대륙이었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
.
.

[온다.]

아몬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아가레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클로를 휘둘렀다. 클로의 경로가 단단한 무언가에 막힌 순간, 나는 공중으로 치솟았다. 검은 깃털이 휘날리는 자리에 아가레스의 정권이 작렬했다.

- 파앙!!

[호오.]

아가레스가 짤막한 감탄사를 흘렸다. "이걸 피해?"라는 느낌이었다. 좋아할 게 아니다. 첫타를 무리 없이 흘렸으니 다음 공격은 더 인정사정 없을 터. 얻어맞기 전에 먼저 공격에 나섰다. 자고로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 콰앙!

- 콰앙!

클로와 마검의 합주. 나와 아몬의 합공이 허공에 불씨를 수놓을 때마다 기파가 터져 나왔다. 마검이 아가레스의 품을 예리하게 파고들면 핏빛 손아귀가 그 빈틈을 노려 쇄도했다. 세 마왕의 춤사위가 어지럽게 이어졌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실수가 생사를 가르는 죽음의 무도회였다.

- 콰아앙!!!

커다란 굉음이 터지자 춤사위가 잠시 멈췄다. 짧은 시간에 벌써 수십합이 오고 갔다. 호흡을 고르며 앞을 바라봤다. 마검과 클로를 붙잡은 아가레스가 씨익 웃고 있었다.

[좋다. 나도 전력을 다하지.]

좆됐네. 섬뜩한 예고에 클로를 회수하고 뒤로 물러났다. 곧바로 아가레스의 추적이 이어졌으나 모략스가 막아섰다. 대지의 힘이 담긴 장창이 모래폭풍을 일으켰다. 아가레스는 의연히 전진했다. 마치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처럼. 패도적인 움직임이었다.

- 츠츠츳!

폭풍은 더 큰 폭풍에 삼켜지는 법. 아가레스가 발출한 격이 모략스의 일격을 패퇴시켰다. 당황한 모략스의 안면에 여지없이 작렬하는 정권. 공기를 가르고 소리마저 삼킨 진격은 부에르의 결계마저 뚫어 버렸다. 

나는 재빨리 나섰다.

- 콰아앙!!!

[제법이다.]

[ . . . 칭찬 고맙군요.]

제기랄. 팔이 저릿하네. 하지만 방금 그 공격을 허용했으면 모략스는 최소 전투 불능이었다. 전력손실은 곧 패배로 직결되니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핏빛손아귀로 아가레스의 팔목을 붙잡은 채 모든 설화를 전개했다. 동귀어진 정도는 아니나 그에 버금가는 기세. 부에르가 힘을 보탰다.

[설화, '별의 진혼곡'이 노래합니다.]

[설화, '마계의 이단아'가 포효합니다!]

[설화,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마지못해 동참합니다.]

[설화, '불패의 헙잡꾼'이 패배는 용납할 수 없다며 참전합니다!]

[설화, '즐거운 미식가'가 당신을 보호합니다.]

[설화, '운명을 부정하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
.

덕분에 어찌저찌 힘겨루기를 이어졌으나 아가레스 역시 가만있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얼굴을 굳히더니 곧이어 세상의 모든 악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화, '가장 오래된 악'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츠츠츳!!!

내가 쌓아 올린 이야기를 짓밟는 압도적인 시간. 가히 파괴적인 격에 억눌리자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큭!]

[버티게!]

부에르 역시 안간힘을 쓰는 사이, 모략스가 다급히 격을 발출했다. 아몬도 동참했다.

- 츠츠츳!

텁텁한 모래향과 지독한 엄정함이 코끝을 스쳤다. 
지리멸렬한 설화였으나 아무튼 내 편이었다. 

[설화, '공양이 깃든 대지'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설화, '지옥에서 가장 엄격한 마물'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네 명의 설화가 하나의 신화와 대치하는 상황.

신화쪽이 좀 더 우세했으나 당장은 교착상태가 지속되었다. 덕분에 압박이 약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아직 '은둔자의 망토'를 벗지 않은 둘에게 신호를 줬다. 

- 화르륵!

갑작스러운 불씨에 궁전의 온도가 치솟았다. 아가레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쥐새끼가 더 있군.]

[알고 있었나요?]

['은둔자의 망토'로는 격을 감출 수 없다.]

[오. 그건 오늘 처음 알았군요.]

아가레스는 내 대답을 귓등으로 듣곤 몸을 빼려 했다. 허나 그러지 못했다. 핏빛 손아귀로도 모자라 모래늪과 엄격의 마검이 탈출을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사이좋게 '가장 오래된 악'에게 짓눌릴 터.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로부터 찰나의 시간이 생사를 가르는 법이렸다. 나는 뿌드득 소리를 내며 변형과 복구를 반복하는 팔목을 부여잡은 채 웃었다.

[쥐새끼가 마계서열 2위의 목을 물겠군요. ]

- 화르륵!

궁전 한복판에 화염이 치솟았다. 아가레스는 화염의 규모를 보더니 비웃음을 머금었다.

[저걸로는 무리야.]

[알아요.]

안드라스는 50위권의 마왕. 그의 화력으로 아가레스를 잡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바르바토스는 다르다.

[그래서 하나 더 준비했죠.]

안드레스의 설화가 발출한 격이 바르바토스의 존재감을 잠시나마 지웠다. 어지간한 최상위권 마왕에겐 씨알도 안 먹힐 속임수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지금 아가레스는 네 마왕을 동시에 상대하는 중이다.
자연히 신경이 우리 쪽으로 쏠릴 수 밖에. 나는 불길에 가려진 장총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디 그대 마음에 들기를.]

- 타아앙!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


- 타아앙!

한 발의 총성이 들렸다.

나를 포함해 <게티아>의 마왕들이 숨을 죽였다.

성공했나? 

[설화, '가장 오래된 악'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쿠구구 . . .

아니네, 망할. 

[방금은 좋았다. 꽤 아프군.]

나는 아가레스의 화신체를 샅샅이 훑어봤다. 바르바토스의 격이 담긴 탄환이 왼쪽 어깨죽지에 박혀 있었다. 바르바토스는 분명 심장을 노렸을 터. 그렇다면 빗맞은 것은 순전히 아가레스의 솜씨였다.

꿀럭!

깊게 페인 상흔에서 검은 설화가 흘러나왔다. 허나 그것만으로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피했군 . . . ]

[보다시피.]

엄격의 물음에 답한 아가레스가 뒤를 흘깃 바라봤다.

[네가 마지막 쥐새끼구나, 바르바토스.]

격을 들킨 이상, '은둔자의 망토'는 쓸모가 없었다. 바르바토스가 시원하게 망토를 벗으며 말했다.

[끌끌, 용캐 눈치챘군.]

[성가신 총을 다루는 마왕은 너밖에 없으니까.]

4명의 마왕과 대치하며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기행에 감탄할 무렵,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담배 연기의 방향을 틀었다. 하필 그 쪽에 내가 있었고, 가뜩이나 독한 궐련 냄새에 기침이 절로 나왔다.

[콜록!]

망할. 무흡연자 배려 안해?

나는 짜증난 심정을 기침에 담았다.

[콜록!콜록! 어우, 홀아비 냄새.]

[. . .]

이를 악문 채 '가장 오래된 악'을 방어하던 마왕들이 실소를 흘렸다. 모략스가 대표로 말했다.

[네 년도 참 . . .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오나?]

확실히 지금 상황은 위기 일발이었다. 비장의 한 수도 무효로 돌아갔고, 나이만 겁나 처먹은 설화에게 짓눌려 펜케이크가 되기 일보 직전이니까.

[설화, '가장 오래된 악'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역전의 가능성은 아직 충분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여기서 벗어나야 했기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아가레스와 눈이 마주친 순간, 천년동안 남몰래 변안한 '핏빛 손아귀'를 휘둘렀다.

[담배 좀 꺼주면 . . . 안 될까요?!]

금연 캠페인은 덤이고.

[. . . !]

채찍처럼 휘두른 성흔은 눈 깜작할 사이에 궐련 두 개비를 꺾었다. 성흔에 집중하느라 설화 발동을 잠시 중지시킨 탓에 힘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졌다. 고로 내 공격이 성공하는 순간 우리는 팝콘처럼 이리저리 튕겨 나갔다.

- 파앙!!

가장 가까이 있던 나는 하늘로 솟구치고, 아몬은 백덤블링을 했다. 모략스는 바닥을 쓸고, 부에르는 괴성을 지르며 볼링핀처럼 쓰러졌다.

요약하자면 나빼고 전부 꼴사납게 나가떨어졌다. 벌떡 일어나 옥좌 멀찌감치에서 태세를 정비하는 우리를 아가레스가 공허한 눈빛으로 흘겨봤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지?"라는 표정이라 수치스러웠다.

아몬이 핀잔을 주었다.

[. . . 예고 좀 해라.]

잠시 빗자루가 됐던 모략스가 이마를 감싸며 말했다.

['한낮의 밀회'는 뒀다 뭐 하냐?]

결투에 앞서 우리는 수월한 의사전달을 위해 소통방을 새로 팠다. 방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쓸 타이밍을 놓쳤다.

- 일단 모이죠.

내 말에 안드라스와 바르바토스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아가레스는 전열을 정비하는 우리를 가만히 관망했다.

[그나저나 방금 어떻게 한 거지?]

[네?]

아몬이 질문했다. 질문을 던지면서도 시선은 아가레스를 향하고 있었다.

[네 성흔은 본래 그런 형태가 아니었을 텐데.]

[아. 개량을 좀 했죠.]

[개량?]

나는 팔에 붕대처럼 감긴 '핏빛손아귀'를 바라봤다. 긴 실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무수히 많은 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외형이지만 효과는 발군이었다. 유연하고 예측할 수 없는 궤도는 기습에 유리했다.

[사정거리가 짧아서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거기다 개량 중에 염룡이가 자기 붕대와 세트로 맞추자고 떼를 써 이런 형태로 자리잡았다.

내 대답을 들은 마왕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나는 따지듯이 물었다.

[왜요? 뭔가 잘못됐나요?]

답변은 의외의 곳에서 돌아왔다. 

[성흔은 . . . 적어도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아가레스가 천천히 다가왔다. 마왕들이 경계하자 그는 입에 물고 있던 궐련을 미련 없이 버렸다. 공격의사가 없다는 시위이자 궐련 없이도 <게티아>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명이었다.

[걱정 마라. 해치지 않을 테니.]

[그 말을 어떻게 믿지?]

[간만의 도전자다. 벌써 끝을 보기엔 아까워.]

음, 더 가지고 놀겠다는 소리군. 
아무튼 휴전은 휴전이었다. 
아가레스는 소리 없이 다가오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새로로 쭉 갈라진 동공.

원작에서 안나 크로프트가 착용한 대악마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역안은 아니었으나 바라볼 수록 소름 끼치는 악의가 느껴졌다.

정작 입술은 미묘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군. 네가 . . . ]

[왜 웃는 거죠?]

내 질문에 아가레스가 되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네.]

딸깍. 아가레스가 주머니에서 연초를 꺼냈다. 그리고 입에 갔다 대자 저절로 불이 붙었다. 안드라스의 불꽃이었다. 우리는 단체로 그를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니가 제 시다바리냐?"라는 뜻을 담아서. 그러자 주눅 든 답변이 돌아왔다.

[어차피 쓸데도 없는데. . .]

하긴. 50위권 마왕이 끼어들기엔 버거운 전장이었지 .
방금 행동의 의도도 분위기를 좀 유하게 만들어 성운 <게티아>가 평화적으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저 나름대로 도운 것이었다.

나중에 적당한 아이템이라도 줘야겠네.

나는 이상야릇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아가레스의 말문이 트이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흘러나온 문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예언이 있었다.]

[. . . 저와 관련된 것인가요?]

[아마도.]

예언. 

돌을 위로 던지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진리에 비유될 정도로 강한 운명을 강제하는 수단. 

원작에서 김독자를 수어번 엿먹일 정도로 골치 아픈 이야기.

거기서 내가 왜 나와?

[. . . 내용을 듣고 싶군요.]

그러자 아가레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맨입으로?]

나는 그 미소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흑염룡을 골려 먹을 때 자주 써먹는 표정이다. 능글맞은 웃음과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똑같았다. 

물론 나는 흑염룡처럼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뭐, 좋아요. 예언에 대해선 나중에 <명계>의 여왕님께 물어보도록 하죠.]

[. . . ]

[설화, '불패의 협잡꾼'이 키득거립니다.]

이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가레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정도 협박에 내가 굴복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랴.

설화를 쌓기 위해 이곳저곳 들쑤시다 보니 인맥도 자연스럽게 넓어진 상태. 아가레스가 대답하지 않아도 알아낼 방도는 차고 넘쳤다.

[그럼, 계속할까요?]

팔에서 풀려나온 붕대가 한데 뭉쳐 꽃을 피웠다.
꽃잎의 색은 짙은 선홍색이었다.

- 꾸드득.

꽃잎이 오므라들었다.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움직임. 꽃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렸다.

- 꾸드득.

찰나가 흐르고 한때 꽃이었던 봉오리만이 홀로 남았다. 지나칠 정도로 날카로운 그것은 씨앗을 잉태한 보금자리 보단 생명을 앗아가는 대검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손들의 집합체.

관계를 갈구하는 마왕의 원념이 담긴 '정욕'의 헌신이었다.

[설화,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미소 짓습니다.]

- 쿠구구 . . . 

아가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격을 발출했다. 개전의 신호였다. 삽시간에 고요해진 궁전. 전운이 감돌았다. 적막한 공기를 나눠 마시며 우리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것이 너의 전력인가?]

[네.]

[그것은 너의 이야기인가?]

[네.]

[마지막으로 묻지. 그것은 '너'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나의 일부죠.]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설화는 맞다. 허나 그것이 곧 내가 될 수는 없었다.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자 '마계의 이단아'.
'마계의 이단아'이자 '불패의 협잡꾼'.
'불패의 협잡꾼'이자 '즐거운 미식가'

그 수많은 이야기의 집합이 '나'라는 존재였으니까.

나는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지만, '격노와 정욕의 마신'은 내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단순한 문장으로 간추렸다.
나는 사기꾼 김 모씨처럼 말했다.

"나는 아스모데우스 입니다."

그러자 아가레스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너무 오랜 세월을 보내온 탓에 '가장 오래된 악' 그 자체가 되어 버린 남자는 내 호방한 대답이 기꺼운 모양이었다.

씁쓸한 미소가 길게 늘어졌다.

[너는 나처럼 되지 마라. 마계의 특이점.]

마왕들의 신형이 사라졌다. 궁전이 다시금 요란해졌다.



*

전투는 점점 격해졌다. 설화와 신화가 격돌할 때마다 마왕성이 뒤흔들렸다.

쨍그랑!!

스테인 글라스가 터지고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구름 한점 없는 실내에서 뾰족한 강우가 내렸다. 창을 타고 넘어온 햇볕이 파편에 닿아 부서졌다. 그 반짝임은 마치 하늘에 알알이 박힌 항성을 닮아 있었다. 

우리는 그 별을 발밑에 둔 채 격전을 이어갔다.

- 띠링띠링!!

한낮의 밀회에서 메시지가 폭주했다. 발신자는 대게 아몬이었다.

- 오른쪽 옆구리를 조심해라.
- 함정이다. 달려들지 마라.
- 궐련을 노려라. 바르바토스.

원전설화에서 아몬은 미래와 과거를 투시하는 악마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성흔을 통해 짧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 오른쪽이다. 아스모데우스.

왼쪽으로 피하니까 오히려 주먹이 가까워졌다. 음, 이건 맞아야겠네.

대비를 했음에도 볼에서 아릿한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 콰앙!!

[큭!]

다행히 팔다리는 잘 붙어 있었다. 곧바로 먼지를 털어내곤 전장에 합류했다. 설화파편을 쳐 내며 멀찌감치 보이는 아몬을 추궁했다.

- 오른쪽이라면서요.
- 미안하군. 내 기준에서 오른쪽이었다.

저 새대가리 새끼가 . . . 라고 원망하기엔 나도 아몬도 정신이 없었다. 아까부터 아가레스가 미카엘처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 일변도에 급소를 노려드고 달려드는 마왕은 재해 그 자체였다.

- 쿠구구!!

펄럭! 검은 날개를 두른 채 비상하자 핀치에 몰린 부에르가 보였다. 아까부터 각종 버프를 부여하는 부에르가 성가신지 아가레스의 공격이 자못 매서웠다.

나는 다급히 핏빛 손아귀를 휘둘렀다. 채찍처럼 쇄도한 성흔이 벽을 갈아버리며 쇄도했다.

쿠웅! 끝머리가 아가레스를 들이받았다. 타격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제대로 들어갔다.

- 콰콰콰!!!

실처럼 늘어졌으나 엄연히 '손'이다. 당연히 접지력도 뛰어났다. 벽과 혼연일체가 된채로, 아가레스의 화신체가 파도에 휩쓸린 듯 밀려났다. 나는 바르바토스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부에르를 구조했다.

[고맙도다.]

[그럼 버프나 더 걸어주시죠.]

이러다 우리 다 죽어요.

고개를 끄덕인 부에르가 지팡이를 땅에 박았다. 불경한 주문을 외우자 검은 오망성이 마왕성 바닥에 그려졌다. 딱 염룡이 취향이네. 데리고 올걸 그랬나?

[성흔, '연옥'이 발동됩니다.]

[마왕, '별과 논리학의 군주'기 지정한 대상이 버프를 받습니다.]

[능력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성운 <게티아>의 일원들이 바르바토스를 중심으로 모여 들었다. 모략스가 부러진 팔을 문지르며 볼멘소리를 뱉었다.

[썩을. 더럽게 강하네.]

[강하니까 마계 2인자겠지.]

아몬이 이가 나간 검을 내팽개쳤다. 나는 아공간 코트에서 검을 꺼내 건넸다. 바르바토스가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무슨 도깨비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군.]

[만반의 준비를 했죠.]

각종 성유물을 담은 아공간코트도 이번에 새로 맞춘 아이템이었다. '양산형 제작자'에게 직접 받아왔지. VIP고객이 된 느낌이었다.

[하아, 빨리 끝내려고 했는데 . . . 오늘 저녁은 늦어지겠군요.]

아몬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메뉴가 뭐길래?]

[죽은 자의 사념이 깃든 스파게티 . . . 였던가요? 대충 그랬던 것 같군요.]

[재료는?]

[1세대 설화입니다. 경매에서 특별히 공구했죠.]

[맛있겠군.]

[그쵸.]

이야기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안드라스가 대화의 맥을 끊었다. 내가 준 방어복의 효과 덕분인지 용캐 팔다리가 다 붙어 있었다.

[그쯤 하시오. 아직 싸움도 안 끝난 마당에 . . . ]

- 쿠구구 . .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길한 격이 피부를 찔렀다.
먼지 속에서 아가레스의 신형이 서서히 드러났다. 

['가장 오래된 악'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대화는 다 끝났나?]

간만의 도전에 기뻐하는 기색과 상반되게 그의 화신체는 만신창이었다. 총상을 입은 어깨는 독에 중독된 듯 검게 변색되었고 몸 곳곳에는 자상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그의 격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강함을 방증했다. 우리는 하나 같이 질린 눈빛으로 아가레스를 바라봤다.

[저거 마왕 맞나요? '이계의 신격'이 변장하거나 그런 거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몬이 핀잔을 주며 검날을 세웠다.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이내 기가 차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번걸로 결판을 낼 생각이군.]

[뭐가 보이길래 그러나?]

바르바토스의 의문에 아몬이 담담하게 답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미래.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곧 있을 공방에서 아몬은 의식을 잃는다. 혹은 화신체가 소멸하거나. 둘 중 뭐가 됐든 우리의 패배가 확정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 파지직!!!

나는 아가레스를 바라봤다. 여태껏 본적 없던 개연성 스파크가 허공에 만발했다. 개연성이 충만한 마계에서 저 정도의 스파크라면 . . . 준비 중인 공격은 일대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바르바토스가 혀를 찼다.

[쯧! 야단 났군. 이제 어쩔 건가, 아스모데우스.]

[어쩌긴요. 최선을 다해서 - ]

[농담하지 말고.]

바르바토스가 장총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저건 못 피해.]

[. . . 압니다.]

- 쿠구구!

2번째 마계의 모든 개연성이 일점에 집중된다.  그 바탕이 되는 설화는 '가장 오래된 악'이었다. 

스타스트림이 탄생했을 때, 하나의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눈 태초부터 존재해온 설화.

시간에도 질량이 있다면 저것은 만근추 그 이상의 무게를 자랑할 것이었다.

우리가 가진 설화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에르.]

[음?]

[버프를 제게 몰아줄 수 있나요?]

[. . . 가능하도다.]

내 발언에 마왕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 사태의 장본인이 혼자 도망칠 생각은 아닐 테고(애초에 도망치기엔 늦었다).

그럼 남은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방파재 역할.

[자살 행위다.]

아몬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낱 마왕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딱딱하지만 그것은 분명 걱정 어린 조언이었다. 
문득 아몬과 첫 만남이 떠올랐다.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식탐과 발악으로 쌓은 모래성이 우리의 관계를 이루는 전부였다.

하면 어째서.

어째서 지금 아몬의 입에서 흘러나온 문장엔 나를 향한 걱정이 존재하는 것일까.

. . . 시간. 그래 시간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랑비에 옷 젓듯, 어쩌면 그것보다 더 천천하고 은밀하게. 한때 그의 식탁에 올랐던 내 이야기가 아몬의 이야기에 스며든 것이다.

이제 슬슬 친구로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다소 낮부끄러운 단어를 머릿속에 꾹꾹 눌러담은 채, 나는 차분한 어조로 속삭였다.

[감당 못하죠. 태초부터 존재해 온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무슨 수로 막겠나요. 하지만 . . . 그것을 뒤트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엄격이 의심스러운 투로 다시 물었다.

[. . . 정말인가?]

나 또한 질문했다.

가능하지?

[전용 스킬, '벽을 넘은 자'가 흥분합니다!]

야. 김칫국 마시지 말고. 가능하냐고 묻잖아.

[전용 스킬, '벽을 넘은 자'가 자신이 넘지 못 하는 벽은 없다고 말합니다.]

[전용 스킬, '벽을 넘은 자'가 '선악을 가르는 벽'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나는 아몬을 향해 싱긋 웃으며 '핏빛 손아귀'를 전신에 둘렀다. 

[나는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요.]

[성흔, '연옥'의 효과가 당신에게 집중됩니다!]

[남는 개연성이나 보태줘요.]

나는 전신의 격을 끌어모았다. 이 방법 말고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왕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내게 개연성을 보탰다. 

[갑시다.]

여섯 마왕이 일제히 날개를 꺼냈다. 내가 선두에, 다른 마왕들은 후미에. 언뜻 보기에 화살촉처럼 보이는 하나의 성운이 12장의 날개를 펼친 채 돌격했다.

[성운 <게티아>가 '마계 동부의 지배자'를 바라봅니다!]

- 츠츠츠츳!!!!

아가레스에게 다다를 수록, 공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 허용되는 모든 개연성을 끌어모아 원기옥을 준비한 아가레스가 얄밉게 미소 지었다.

[버텨봐라. 이게 마지막이다.]

그 한마디를 던지며, 아가레스가 활시위를 놓았다. 제자리에서 소용돌이 치던 '가장 오래된 악'이 잔혹한 어둠을 흩부리며 쏘아졌다.

주위의 모든 것을 검게 물들이면서.

내 눈앞에 무저갱이 재현되었다. 

- 쿠구구!!!!

신화와 설화가 충돌하는 순간.
나는 손을 뻗었다. 

- 우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타인이다.

- 그리고 오직 나만이, 타인을 넘어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전용 스킬, '벽을 넘은 자'가 발동합니다!]

시간이 멈췄다.

인물의 외관이 투명해지고, 이야기가 범람했다.

익숙한 광경. 

나는 다시 눈앞의 설화를 바라봤다.

라파엘 때는 제 키만 한 도서관이 있었다면, 지금은 조각난 벽이 그곳에 있었다. 

선악을 가르는 벽.

세상 모든 선악이 기록된 이야기. 

그 한구석에 우리의 이야기도 적히고 있었다.

- 마왕 아몬은 생각했다. 이 년을 만난 뒤로부터 마왕생이 꼬였다고.
- 마왕 바르바토스는 생각했다. 이건 미친 짓이라고.
- 마왕 부에르는 생각했다. 그냥 성에서 별이나 세고 있을걸.
- 마왕 안드라스는 생각했다. 내가 미쳤다고 따라와서!
- 마왕 모략스는 생각했다. 아까운 화신체 다 날리게 생겼네.

. . . 조금 적나라하게 적히고 있었다. 다들 본심은 이랬다 이거지? 누가 마왕들 아닐까. 히라구모 속성이 아주 제대로 였다. 

"이건 . . . "

그러나 구겨진 표정은 다음 문장에 가서 맥없이 풀어졌다.

- 하지만 성운 <게티아>는 멈추지 않았다.

망설이고 고뇌하되 멈추지 않았다. 그 문장이 마음에 들어 읽고 또 읽었다. 질릴 때까지 곱씹고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리고 이어진 문장에 눈썹을 찌푸렸다.

- ■■■은 생각했다.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

아마도 전생의 이름.

필터링 처리된 세글자는 내가 이 세계의 외부인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보였다. 

[몰입도가 약해집니다.]

순간 지독한 외로움이 몰려왔다. 나는 외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내가 쌓아 올린 이야기를 되세겼다.

'마계를 등지고 천사와 벗한 마왕'

'내기에서 진적 없는 마왕'

'관계를 갈망하고 정해진 비극에 격노하는 마왕.'

.
.
.

낯선 세상은 언제나 외로웠다. 저 설화들은 내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친 증거였다. 저들이 곧 나이자 내가 곧 저들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니 필터링에 겁먹지 마. 너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스스로에게 되네이며 벽에 적힌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적히다만 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 '가장 오래된 악'은 성운 <게티아>를 배제 . . . 

나는 벽을 넘은 자에게 말했다.

"완성한다."

['벽을 넘은 자'가 당신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새하얀 여백이 활자들을 토해냈다. 갓 태어난 활자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배열했다. 

- 가장 오래된 악은 성운 <게티아>를 배제하지 않았다.

난데 없이 스파크가 튀긴 것은 그때였다.

- 츠츠츳!

['선악을 가리는 벽'이 침입자를 감지했습니다!]

역시 최후의 벽의 파편인가. 라파엘 처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허나 내 볼일은 이미 끝난 상태. 나는 미련 없이 퇴장했다.

"좀 봐줘라. 오늘은 낙서만 했으니까. "

['선악을 가르는 벽'이 분개합니다!]

"화내지 마. 격노는 내 몫이라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눈을 감았다. 

"나중에 또 봐."

[전용 스킬, '벽을 넘은 자'가 '선악을 가르는 벽'을 비웃습니다!]

[원고가 수정됩니다.]

- 츠츠츳!!!

그렇게 개연성 폭풍 사이로 뛰어든 내 의식은 점멸했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아가레스를 포함한 마왕들이 무슨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듯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입가가 침범벅이라 조금 쪽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