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묘사는 없어서 창작 탭에 집어넣긴 했는데

은근한 묘사나 암시는 많음 한 15금 정도

혹시 탭 옮겨야 할 것 같으면 댓글로 말해주셈






  좆됐다. 커튼 사이로 비춰든 아침 햇살에 눈을 뜬 한수영이 제일 먼저 떠올린 말이었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한 발언이었지만, 지금의 한수영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 이유는 다양했는데, 일단 한수영이 누워있는 곳이 난생처음 보는 침대였기 때문이다. 사실 침대뿐만 아니라 방 전체가 낯설었다. 10평 조금 안 되는 방의 가구라고는 탁자, 티비 스크린, 그리고 성인 둘이 누워도 넉넉한 퀸사이즈 침대 하나.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참 진부한 도입부다. 클리셰도 이런 클리셰가 따로 없지. 만약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이 있었다면 한수영은 바로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수영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었고, 이 상황은 김독자가 읽는 웹소설처럼 화면을 끈다고 해결될 수 없었다.



 묘하게 방 안에 한기가 돌아 이불을 끌어 올렸다. 이불이 뭐 이리 얇아. 덮은 건지 안 덮은 건지 모르겠네. 맨몸으로 이불만 덮고 있어도 이것보단 따뜻하겠다… 어?



 마지막 한 음절은 속으로 생각만 했는지 아니면 입 밖으로 꺼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불을 당기자, 시선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고, 마침내 한수영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



 어 시발, 이게 뭐지. 방금 일어난 머리는 평소보다 훨씬 둔해서 한수영은 상황 파악에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바로 옆에서 나는 인기척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잘 잤어 수영아?”



 한수영보다 먼저 일어난 듯한 김독자가 말을 걸었다. 한수영과 마찬가지로 전라의 상태였다.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자다 깬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니, 미친. 이게 아니잖아!



 좆됐다. 이쯤에서 한수영은 다시 한번 상기했다. 첫째로 눈을 뜬 곳이 낯선 모텔이었고, 둘째로 자다 깬 한수영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다방면으로 해석 가능한 김독자의 말에도 간밤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수영은 꽤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과 제일 붙어 다닌 게 바로 한수영이었으니. 정작 본인은 배우보다는 작가가 더 적성에 맞는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이건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듯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의 그의 동료들은 마침내 승리한 후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모두 평화로운 일상을 낯설어했다. 진짜 끝났다고 끊임없이 되새겨도 현실감이 별로 없었다. 이젠 시나리오 박물관에 고이 모셔둔 검의 빈자리가 허전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들은 유료화가 되기 전보다 시나리오 속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처음에는 대가 없는 평화를 낯설어하던 김독자 컴퍼니의 일원들도 서서히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수영 역시 그 평화 속에 녹아들었다. 한수영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김독자는 그걸 읽었다. 그런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에 길들어 지나치게 해이해진 게 문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분명 빌어먹을 스타 스트림이 끝을 맺고, 저녁으로 유중혁한테 뭘 만들어달라고 해야 살뜰하게 부려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다였던 한수영은 지금 인생 최대의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사실 인생 최대라는 수식언이 붙기엔 한수영이 해쳐온 시나리오들이 산을 이루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지금의 한수영에게는 시나리오 때의 예리한 감과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은 풀려버린 지 오래였다.



 한수영은 천천히 어제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려 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다 같이 외식이나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안 가겠다는 유중혁을 이설화가 한참을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고깃집으로 끌고 갔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에 정희원이 소주병을 땄고, 한수영은 어차피 회사 사장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니 신나게 털어먹자는 마인드로 닥치는 대로 알코올을 위에 갖다 부었다. 그다음에는… 젠장, 기억이 안 난다.



 이쯤 되니 한수영은 현실 부정을 시도했다. 평소의 한수영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김독자와 엮일 때면 한수영은 언제나 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왜. 그런 클리셰가 있지 않는가? 갑작스러운 소나기, 쫄딱 젖어버린 두 사람, 입고 자기에 지나치게 찝찝한 옷, 어쩔 수 없이 딱 옷만 벗고 잤다던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사방에 굴러다니는 고무 쓰레기를 보며 한수영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결정적으로 한수영의 허벅지와 허리 근육은 일어났을 때부터 계속 비명을 질러대는 중이었다.



 답 없는 현실 부정이 그래도 효과가 있긴 했는지 멍하게 굳어있던 머리에서 예상표절이 빠르게 돌아가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꼬라지인지 두 가지의 가설을 내놓았다.



 첫 번째 가설. 김독자가 술에 취해서 떡이 된 한수영을 덮쳤다. 한수영이 생각하긴 했지만, 솔직히 현실성 없는 가설이었다. 김독자 저 자존감이 낮다 못해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놈이 아무리 술에 꼴아있다고 한들 한수영을 어떻게 해볼 깡이 있을까? 예상표절이 내놓은 답은 [아니다] 이다.



 그럼 두 번째 가설. 한수영이 김독자를 덮쳤다. 마주하기 싫은 최악의 가설이었다. 동시에 예상 표절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외치고 있는 가설이었다. 시발. 어제 술 좀 작작 처먹을걸. 이게 다 누가 전직 바텐더 아니랄까 봐 소맥을 끝내주게 말았던 정희원 탓이다.



 사실 김독자와 한수영의 관계는 동료라고 하기엔 좀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동료라고 하기에는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았고,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부르기엔 서로 나눌 수 있는 게 극히 적었다.



 한수영은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닐지 고민했다. 차라리 동료라고 선을 그을 수 있다면 하룻밤 실수했다고 치고 어떻게든 넘길 텐데, 이렇게 애매한 관계에 놓여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그냥 튀어버릴까? 한수영은 잠깐 고민했다. 그냥 하룻밤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면 안 되나. 물론 그랬다간 한수영과 김독자의 유대도 그대로 작살날 것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노답의 굴레에 한수영은 아침부터 정신이 아득해졌다. 대놓고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너 어젯밤 기억 안 나지.”



 정곡이었다. 고민하던 시간이 무색하게 김독자는 이미 귀신같이 한수영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 사용했냐?”


 “이 정도는 스킬 안 써도 알지.”



 너에 대한 건 말이야. 한수영이 김독자의 마지막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수영의 양팔을 잡은 김독자가 곧바로 우위를 점했다. 한수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치 김독자가 덮치는 모양새였다.



 “뭐하냐.”



 순식간에 김독자 밑에 깔린 한수영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렸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김독자가 놓쳤을 리는 없었다.



 “슬프네. 어젠 그렇게 적극적이었으면서.”


 “이런 미친…”


 “진짜 하나도 기억 안 나?”



 김독자가 한수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수영은 머뭇거리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내가 알려줄까?”


 “무슨… 읍,”



 김독자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한수영의 입술에 제 입술을 내리눌렀다. 얼굴의 각도를 조금 기울이자, 입술 사이로 벌어진 틈이 생겼다. 김독자는 그 안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김독자의 돌발 행동에 놀란 한수영이 김독자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곧 밀어내는 손에서 힘이 빠졌다. 혀가 부드럽게 얽혀들었다. 한수영이 뜨거운 숨을 입술 사이로 가쁘게 흘렸다. 호흡에 한계가 온다고 생각했을 때쯤 입술이 떨어졌다.



 “하아…”



 달뜬 숨을 내쉬는 한수영을 보며 김독자는 한수영의 오른손을 잡아 올렸다. 김독자를 두 번이나 구원한, 그의 세계를 창조한 신의 손.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읏,”


 “내가 다시 알려줄 수 있는데.”



 김독자가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생소하고 야릇한 감각에 한수영이 신음을 토했다. 밤새 들었지만 역시 듣기 좋은 소리였다.



 “싫으면 지금 말해.”



 뭐야, 이 새끼 모솔 맞아? 이게 아다 새끼의 태크닉이라고? 순식간에 우위를 점하는 스킬이 돌았는데. 한수영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무언가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너 모솔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어제 너랑 몇 번 했잖아.”



 그리고 이번엔 더 잘할 수 있는데. 김독자가 한수영의 손가락에 다시 입을 맞췄다. 숨결이 닿을 때마다 손끝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짜릿했다.



 김독자는 늘 이런 식이다. 처음부터 선택지는 하나만 줬으면서, 매번 이렇게 자비로운 사람인 척. 애초에 작가는 독자를 이길 수 없다. 이 승부의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말이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한수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촉촉한 눈동자. 지금까지 김독자가 봐온 한수영 중 제일 귀여웠다.



 “그럼 이걸 첫날밤으로 할까.”


 “...지금 처음도 아니고 밤도 아니거든?”


 “뭐 어때.”



 김독자가 여린 살결을 훑었다. 밑에 있던 한수영이 움찔거렸다. 가볍게 움켜쥐자, 입에서 반사적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수영은 새하얘진 머리로 커튼 사이로 비추는 아침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드리우는 그림자가 사라질 때가 풀려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ㄹㅇ 꼴리는대로만 써서 자신이 없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썼는데 퇴고도 제대로 안 함

참고로 기말은 던지기로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