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파격적인 제안이군요.]


미친 제안이었다. 황당하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공간 코트에서 가장 최근에 수납한 아이템을 꺼냈다. 새빨간 과실이 창문틈새로 새어든 햇볕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어쩌면 이브도 뱀의 속삭임이 아니라 '선악과'의 탐스러운 빛깔에 홀린 것은 아닐까.


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의 메타트론을 향해 속삭였다. 제 3자가 보면 영락없는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이걸 복용하라는 건가요?]


[맞습니다.]


나는 선악과를 위로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손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질 때마다 고민이 깊어졌다. 저 미친놈이 내게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자고로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지만, 메타트론 성격상 떡에 독을 발라놨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떠봤다.


['32번째 마계'를 <에덴>에 옮겨 준다면 고려해 보죠.]


[ . . . 미치셨습니까?]


메타트론이 욕했다.


상당히 진귀한 광경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메타트론을 향해, 나는 말했다.


[흐음, 실망이군요. 누구는 손가락 하나로 그 짓을 하던데.]


[농담하지 마십시오.]


농담 아닌데. 신화급 성좌 포세이돈을 단칼에 썰어 버리는 이계의 신격의 왕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메타트론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진지하게 답변해주시죠.]


[으음 . . . ]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기관.]


[네.]


[일단 나를 회유하려는 이유는 알겠어요. 내가 성운 <게티아>를 이끌고 성마대전을 난장판으로 만들까 봐 불안한 거군요.]


[ . . .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나는 대천사의 입장을 헤아려 봤다. '존재 맹세'로 고삐를 쥐고 있지만, 아스모데우스라는 마왕은 제어하기 어려운 말이다. 


갑자기 성운을 세운 것만 봐도 그렇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겠지. 내가 천사였어도 상종 못할 미친년이라 생각하고 진작에 손절했다.


허나 그런 망나니 같은 행보를 잘 이용한 덕에 절대선은 지난 성마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이다.


그럼, 여기서부턴 도박 중독자의 심리나 다름없다.


'이 정도면 됐지, 이제 끝내자.' 라는 마음과 '더 딸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망설임이 충돌한다. 나는 여기에 메타트론을 대입했다.


메타트론은 수만년 동안 선을 위해 살아왔다. 때문에 아가레스 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의 역할의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상태다. 불안하고 절실하겠지. 절대선의 승리만이 그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발로인 셈이었다.


자연히 변수를 차단하고 싶을 터. 하면, 굳이 내치는 쪽이 아니라 포용하는 쪽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사유가 길어지는 사이, 메타트론이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 그것 말고도 이유는 여러 가지 입니다.]


[예를 들면?]


[. . . 제가 조사한 게 맞다면, <게티아>의 활동은 다음 성마대전에서 <에덴>에 전례없는 위기를 초래할 겁니다.]


아무래도 메타트론은 게티아의 첫 번째 목표, 하나의 마계를 눈치챈 기색이었다. '게티아'라는 이름 자체가 72악마 전부를 다루는 마도서를 의미하니 어려운 추리는 아니었겠지.


나는 홍차를 따라 마시며 메타트론의 말을 들었다.


[저는 절대악의 승리도, 성마대전의 혼돈도 바라지 않습니다.]


[알아요. 선의 승리가 그대가 바라는 전부겠죠.]


선의 승리.


그 단어를 들은 메타트론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추측하건데, 그것은 광기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격노와 정욕의 마신, 저는 당신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제가 공들여 세운 탑이 당신 앞에 서면 흔들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직설적인 표현의 나열이 다소 당혹스러웠다.

메타트론이 이렇게까지 말한 적이 있었나?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식어 버린 홍차를 들이켰다. 해가 진 탓인가, 공기가 싸했다.


[ . . . 솔직하군요.]


[여기까지 와서 숨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메타트론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통쾌해 보이기도,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 모든 감정이 집약된 광기가 두 눈에 서렸다.


나는 문득 익숙한 클리셰를 떠올렸다. 말없는 악당이 갑자기 말이 많아지는 경우, 뒤이어 벌어질 전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주인공이 악당을 죽이거나, 아니면 악당이 엑스트라를 죽여 입막음을 하거나.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보다 엑스트라에 가까운 존재였다.


[마음 같아선 당신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물론 엑스트라라고 순순히 죽어 줄 의향은 없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를 다짐하니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편해졌다. 오히려 폭언을 뱉은 메타트론이 더 당황한 모양새였다.

대천사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반듯한 얼굴에 다크 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 . .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나는 태연히 홍차를 마시며 말했다.


[피곤하면 그럴 수 있죠. 물론 피곤하다는 게 협박의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 제안은 . . . ]


[거절합니다. 대신 '존재맹세'가 유효하니 성마대전에서 나는 <에덴>에 대항하지 않을 겁니다. 그 정도로 만족하죠.]


메타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 . . 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동시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덜컥덜컥.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메타트론.]


- 츠츠츳.


진명을 불린 대천사의 날개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메타트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밖을 오시했다. 메타트론을 쫓던 나도 의도치 않게 밤하늘을 눈에 담았다.


검은 장막에서, [별자리의 맥락]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 모양입니다. 하늘이 맑네요.]


[하핫. 천사들은 날씨가 좋으면 상대방을 감금하는 취미라도 있나 보군요. 마침 홍등가에 그런 쪽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만나볼래요?]


[사양하죠. 애욕은 금기인지라.]


[협박과 감금은 금기가 아니고?]


계속되는 추궁에 메타트론이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음영진 얼굴에 능글맞은 미소가 걸렸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마왕이여. 나는 그대를 보호하려는 겁니다.]


도저히 문을 열어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의자에 다시 착석했다. 티끌만큼 남은 홍차를 비우며 메타트론 몰래 가지고 온 아이템을 확인했다.


마검 3자루와 연막탄 비스무리한 것 1개.

도서 4권과 선악과 1개가 전부였다.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여의치 않으면 '선악과'라도 씹어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변신을 해제했다. 한 줌의 마력도 아까운 상황이었다.


못 죽인다고 감금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일까. 어쩌면 이새끼가 사탄 아닐까.


메타트론이 약 올리듯 말을 덧붙였다.


[변장을 풀었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면 정말 죽습니다.]


[누구에게요?]


질문한 순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에덴>의 정문이 대낮처럼 밝게 빛났다. 마력등을 킨 줄 알았건만, 생각해 보니까 입구에는 등불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빛의 출처는 다름 아닌 성좌였다.


그 세기와 소름 끼치는 격으로 가늠해 보건대 웬만한 대천사의 위계를 초월한 존재.


신화급 성좌였다.


그리고 <에덴>에 신화급 성좌는 단 둘뿐이다.


['타락의 구원자'.]


진명 미카엘.

마왕 학살자로 악명 높은 대천사가 복귀했다.

허나 그게 왜 내 죽음으로 이어지는 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아무리 '타락의 구원자'라 하더라도 '존재 맹세'에서 자유롭지 못할 텐데.]


성마대전은 휴전 중일 뿐 아직 '끝'나지 않은 사니리오. 고로 천년 전 맺은 존재맹세 또한 아직 유효했다.


계약자 중 누군가가 존재맹세를 어기는 순간, 막대한 개연성이 이를 저지할 터. 때문에 존재맹세는 상식적으로 어기는 게 불가능한 맹약이었다.


허나 메타트론은 내 상식을 비웃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맞습니다. 다만, 미카엘에겐 저희보다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 . . . 미쳤군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메타트론이 꾸민 계략이 짐작갔기 때문이다. 미카엘은 <에덴>이 존재하는 한 무한히 부활할 수 있다.


그럼 만약에, 미카엘이 나를 죽이고 존재맹세에 따른 개연성 후폭풍을 모두 떠안으면?


미카엘 본인은 계약위반으로 인한 죽음을, 아니 어쩌면 연쇄적인 죽음을 맞이 하겠지만 <에덴>은 무사할 수 있었다.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미카엘의 고치 위로 보존된 선.


그것은 희생이라 보기엔 괴이한 무언가였다.


[ . . . 아무리 <에덴>을 위해서라지만, 그가 순순히 따를까요?]


내 의문에 매타트론이 답했다.


[미카엘은 타락의 구원자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에덴>의 구원이 된다는 타당한 이유만 있다면 그는 행동할 겁니다.]


[ . . . ]


[저는 그의 희생으로 이룩한 절대선의 승리를 밤하늘에 기록할 겁니다. 예, 제가 하늘의 서기관이기 때문이지요.]


[ . . . ]


[저희에게 선은 모든 것, 영원하며 무궁합니다. 저희는 언제나 선을 위해 순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조각난 설화의 파편을 거름삼아 믿음의 백합이 싹튼다면, 순결한 코스모스가 자랄 수 있다면, 안온한 성화가 타오른다면, 그 대가를 묵묵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의입니다. 나의 믿음입니다. <에덴>의 설화입니다.]


나는 대천사의 광신 때문에 어질어질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반론을 제기했다.


[희생으로 이룩한 평화는 다시 희생을 요하는 법이죠. 결국 또 다른 순교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당신이 쌓은 선은 찰나에 그칠 겁니다.]


반론은 반론으로 돌아왔다.


[찰나가 모이면 순간이, 순간이 모이면 영원이 되는 법이죠. 믿음은 영원합니다. 마왕이여, 이야기의 맥락을 타고 이어진 선악의 이중주는 <스타스트림>에 영원히 기록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시발, 메시아가 이런 걸 바랬을까?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전 세계 인류의 4분의 1이 크리스트교를 믿는데, 이딴 놈이 메시아의 대리자면 인류의 앞날이 존나게 어둡다. 아, 이미 어두워서 상관없나?


아무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마왕의 정신을 헤이하게 만드는 대천사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러다 대 천사로 타락해 버리겠네. 실제로 '타락의 구원자'가 코앞에 있어 이제 웃음도 안 나왔다.


물론 어이없는 심정과는 별개로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 메타트론이 명령만 내린다면 미카엘은 나를 추살하기 위해 지옥 끝까지 찾아올 터. 당장 신화급 성좌 두 명의 경계를 뚫고 '32번째 마계'로 도망치는 것도 무리였다.


하필 아가레스와의 전투로 화신체도 정상이 아니고. 요컨대 빙의 첫날 성마대전에 내동댕이 쳐진 이례로 최악의 위기였다.


고민이 깊어져 갈 무렵, 메타트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내게 활로를 제시했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들어나 보죠.]


[첫 번째는 이대로 미카엘에게 살해당하는 겁니다.]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두 번째는?]


[선악과를 섭취하고 성운을 해산하십시오. 그럼 아까도 말했듯, <에덴>이 당신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까 회개 제안에 성운 해산이 더해졌다. 마찬가지로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세 번째는?]


[성마대전이 끝날 때까지 <에덴>의 참회동에 감금되는 겁니다. 숙식은 제공하죠.]


[. . . 세 번째로 하죠.]


내 선택에 메타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마음이 바뀌신다면 선악과를 먹으세요. <에덴>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감옥에 가둬놓고 열리네 마네 이런다. 한숨을 푹 내쉬며 코트 자락을 여맸다. 문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까 내가 전력으로 당겨도 꿈쩍도 안한 문고리가 가볍게 돌아갔다.


뒤이어 낯익은 대천사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서기관 . . . 나 반성문 다 썼어. 이제 . . . 하암 . . . 자러가도 되지?]


[한 가지만 더 하고요. 가브리엘.]


[아, 뭔데.]


눈을 비비며 졸린 눈을 부릅 뜬 가브리엘을 향해, 메타트론이 말했다.


[이 분을 참회동 지하에 데려다 주시면 됩니다.]


순간 가브리엘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잠옷 귀엽네요, 가브리엘.]


[. . . 뭐여 ■발?]


거 반응 한번 격하네


.

.

.


[들어가.]


나는 가브리엘의 인도에 따라 참회동 가장 깊은 곳. 빛조차 세어들지 않는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가브리엘의 헤일로에서 나오는 빛이 유일한 전등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수감자는 나 혼자.


독방이었다.


- 철컹.


내가 들어가자 가브리엘이 자물쇠를 체웠다. 동시에 시나리오가 갱신되었다.


+


<서브 시나리오 - 참회의 무게>

분류 : 서브

난이도 : ??

클리어 조건 :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시오. 탈옥은 실패로 간주합니다.

제한 시간 : ??

보상 : ??

실패 시 : 죄업에 따른 페널티 적용


가브리엘이 열쇠를 돌리며 말했다.


[탈옥은 꿈도 꾸지 마. 너는 마왕이라 죄업이 쌓였으니까. 나오면 즉살이야.]


그리고 열쇠로 목을 긋는 시늉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가브리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


[시간 날 때 촛불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왜, 어둠이 무섭나?]


눈살을 찌푸리는 가브리엘을 향해,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둠 속에서 나 혼자밖에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 두렵죠.]


[ . . . 그게 네 업보야, 아스모데우스.]


[흐음, 그래도 최근 천년은 자중했는데. 내가 지은 죄가 그렇게 큰가요?]


가브리엘이 완전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요피엘처럼 죄의 총량을 볼 순 없어. 하지만 죄의 경중은 잴 수 있지.]


여섯 장의 날개를 펼친 가브리엘의 손에 신창이 들렸다. 그것은 천칭이었다. 한쪽 저울대엔 나의 죄업이, 반대쪽 저울대엔 가브리엘의 죄업이 담겼다.


일순, 저울은 내 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가파른 경사는 최상급 스키장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가브리엘이 진언을 발했다.


[보이지. 네가 지은 죄는 무거워. 천년 같곤 텍도 없지.]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진 말라. 뭐 그런 말이 있지 않나요?]


[■댕, 꼭 죄 지은 놈들이 그딴 소리를 해요.]


나는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마냥 웃었다.

가브리엘은 말없이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할 말 있나요?]


[. . . 어떻게 알았냐?]


[항상 뭔가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머리카락을 베베 꼬더군요.]


[관음증 ■끼.]


[관찰력이 좋은 걸로 하죠.]


짧게 일갈한 가브리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내 그녀가 말했다.


[아까 말한 대로 너는 죄업이 많아. 전부 씻기 위해선 한참 걸리겠지. 하지만 . . . 그렇다고 네가 한 노력이 헛된 건 아니다.]


[ . . . ]


예상치 못한 위로에 머리를 한대 맞은 듯했다.


[천년 전에 쟀을 때보단 가볍다고. 아직 한참 멀었지만 절반은 온, 아니 한 반의 반 정도는 . . . 에이 씨. 모르겠다.]


머리를 벅벅 긁은 대천사가 헤일로를 빛내며 말했다.


[너 선악과 받았다며.]


[어, 네.]


[햇빛 보고 싶으면 빨리 처먹어. 풀이 죽은 표정으로 촛불이나 가져다 달라 하지 말고.]


[ . . . 하핫!]


[■발, 왜 웃냐?]


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가브리엘을 향해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가브리엘.]


[걱정한 거 아니거든!]


그렇게 한동안 지하 감옥에는 내 웃음소리와 격분한 가브리엘의 고함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나는 그제야 이 지하 감옥에 등불이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감옥 구조는 커다란 우물. 그러니까 천장이 뻥 뚤린 형태였다.


그럼 어제는 왜 별이 보이지 않은걸까.


나는 태양처럼 발광하던 가브리엘을 떠올렸다. 그저 가깝다는 이유로 다른 별들의 빛을 삼킨 태양처럼, 눈앞의 가브리엘이 천장의 별빛을 지운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눈을 깜박였다.

쇠창살에 부서진 햇볕이 볼을 간지럽혔다.


나는 오래간만에 성류 방송에 들어갔다. 그새 그린존을 다 부쉈는지 긴급 방어전이 한참이었다. 유중혁 이 새끼는 지 혼자 극장 던전을 깨부수고 있고. 나머지 일행들은 공필두에게 자동사냥을 맡긴 채 쉬고 있었다.


지혜가 각성하는 장면이 나오려면 좀 남았다. 나는 그때까지 이 시나리오나 깨야겠네.


당연히 혼자서는 무리다. 회귀자 유중혁도, 멸살법 오타쿠 김독자도, 멸살법 작가 한수영도, 혼자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전위는 이현성과 정희원이, 서포터는 이길영과 신유승이, 해상전은 이지혜가, 물량전은 공필두가, 그밖에 많은 설화들이 모이고 모여 김독자 컴퍼니라는 거대 설화로 거듭났다.


고로, 나도 동료가 필요하다. 머릿속에 몇 명이 떠오른다. 솔직히 그들이 내 동료인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 그래도 도와달라고 말해 보기는 해야지.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 멍청한 짓이 없으니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청한 것도 처음이군요.]


처음 보내는 장문인 만큼 정성을 가득 담았다.


나는 한수영, 유중혁, 정희원에게 삼다리를 걸친 오징어 김독자 선생을 본받아 5700자의 하소연을 각각 <흑운>, <게티아>, <명계>에 보낼 계획을 짰다.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면 안 올 것 같아서 살짝 과장을 보탰다.


나중에 검토를 해 보니 장문 속 나는 <에덴>에 놀러 갔다가 메타트론과 미카엘에게 처맞고 어두컴컴하고, 냄새나고, 춥고, 깜깜하고, 벌레 나오는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사지가 묶인 채로 7일을 굶고 있었다.


거기에 평소 <성류게시판>에서 썰풀던 실력으로 글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이 정도면 천재 미소녀 작가 가능?


[전용 스킬, '벽을 넘은 자'가 묘사를 조금 완화시키는 건 어떻겠냐고 조언합니다.]


[설화,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지금, 이대로가 딱 좋다고 조소합니다.]


하필 두 놈 다 평소 내 말은 죽어도 안 듣는 새끼들이라 난감했다. 의견이 통일되면 거르기라도 하지, 완전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중이었다.


이럴 땐 가장 믿을 만한 놈의 말을 따르는 게 맞다.


[설화, '마계의 이단아'가 이대로 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좋아. 그럼 이대로 가는 걸로.


나는 메시지를 전송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화신체를 수복하는 데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탓인지 순식간에 수마가 몰려왔다.


- 띠링!


- 띠링!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잠결에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 . .



*


그날 오후, <에덴>은 전례없는 공황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