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녀석, 정말 공작이 맞는 걸까?"


멀어지는 그리고리의 뒷모습을 보며, 장하영이 중얼거렸다. 타고난 친화력 덕분에 장하영은 상대의 속내를 파고드는 데 능숙했다. 대화를 나누면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물 수 있었다.


천진한 소녀는 지금까지 수많은 벽을 허물었고, 그렇게 사람마다 가진 벽의 두께가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생각했을 때, 그리고리는 두터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일단 자기 입으로 공작이라고 했으니까."

"흐음, 내 감이 틀린 걸지도 . . ."

"아니면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아일렌이 머리맡의 시나리오 창을 바라봤다.


<서브 시나리오 - 마계 관광>


분류 : 서브

난이도 : ??

클리어 조건 : 73번째 마계로 복귀하시오.

제한 시간 : 48시간

보상 : ??

실패 시 : ??


73번째 마계의 메인 시나리오에 묶인 두 화신을 데려오기 위해, 그리고리가 내린 서브 시나리오였다. 마계 공작이 성좌처럼 시나리오도 내릴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뭐,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


약속한 코인만 받으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아일렌이 컵에 물을 받을 즈음.


쿠웅!


마왕성 전체가 진동했다.


". . . 뭐지?"


장하영이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까 싸우러 간다고 했잖아. 지금쯤 붙었겠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지평선에서 번갯불이 튀기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저게 마왕이구나. 껴들었다간 자신은 순식간에 흙으로 돌아가리라.


압도적인 전장을 줄곧 바라보던 장하영은 문득 73번째 마계를 떠올렸다. 우리도 저렇게 강했다면, 그 개 같은 혁명 시나리오도 단박에 헤치울 수 있었을 텐데.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장하영이 입을 열었다.


"아일렌."

"왜?"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 . . . "


함께 창가에 선 아일렌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뒤늦게 변고를 알아챈 마계 주민들이 투기장과 홍등가로 대피하고 있었다.


매일 밤 처형관이 돌아다닐 때면 가게 문을 닫고 몸을 웅크려야 하는 자신들과 달리 저들에겐 피난처가 있었다. 망설임 없이 투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엔 저들이 섬기는 마왕을 향한 신뢰가 뚝뚝 묻어나왔다.


그것이 아일렌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광경이야말로 아일렌이 바라는 일상이었으니까.


누군가를 보호하고,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삶.

서로를 향한 선의에서 피어난 자유. 


'부럽다.'


자신의 이상성을 마주한 아일렌은 순간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회의감은 곧 질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저들과 다른 게 뭐지?'


무엇이 다르기에 이곳 화신들과 자신의 삶이 극명하게 갈리게 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다른 것은 '어디에 정착했냐' 정도였다. 저들은 운 좋게 이곳에 떨어졌고, 아일렌은 운 나쁘게 73번째 마계에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렇다. 운, 또는 운명 때문이었다.


더 크게 보면 아일렌을 추방시킨 시나리오 때문이고. 전부 아일렌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거참 . . . 불공평하네.'


막연한 사무침을 아일렌은 씁쓸한 미소로 털어냈다. 절망에 안주하지 않은 까닭은 모든 마계가 여기처럼 살만한 곳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하에서,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일렌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일렌은 마도 공학자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최근 들어 답 없는 시나리오에 봉착하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 따위 하지도 않았겠지. 잠시나마 감정에 휘둘린 것은 . . . 그래, 아마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할 정도로.


장하영이 몽롱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까?"

". . . 한번 부탁해볼게. 대신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응."


아담한 체구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품은 아스모데우스를 떠올리며, 두 화신은 제각기 생각에 잠겼다.


쿠웅!


그리고 또다시 울린 충격음에 장하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격하게도 싸우네."

" . . . 거기가 아니야."

"응?"


아일렌이 외성의 입구를 손가락질했다. 대다수의 주민들이 대피해 한산해진 거리의 저편에서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 츠츠츳!


육중한 격에 아일렌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내 남자의 몸에 붉은 반점이 솟아오르더니, 푸른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일련의 변신이 끝났을 땐, 정제된 분위기가 일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일렌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남자의 몸을 차지한 자가 이 마계의 주인과 동등한 지위라는 것을.


"우왓!"


아일렌이 장하영의 어깨를 잡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아일렌의 머리가 건물 외벽에 가려지기 직전, 마왕과 아일렌의 시선이 교차했다. 아일렌이 헛숨을 들이켰다.


마왕의 입가에 사특한 미소가 맺혔다.


[그래, 아직 쥐새끼가 남아 있구나.]


내 너를 이 땅에서 벌어질 비극의 시작으로 삼으마.

가죽을 벗겨 성꼭대기에 매달면 좋은 효시가 되겠지.마왕성에 거주하는 것을 보니 아스모데우스와 긴밀한 관계일 터. 그렇다면 양동작전의 효과는 배가 된다.


그렇게 판단한 57번째 마왕, 오세가 땅을 강하게 박찼다.


콰앙!!


충격을 버티지 못한 지면이 박살났다. 오세의 신형이 미사일처럼 쇄도했다. 단 한걸음에 마왕성에 도달할 기세였다.


- 까앙!


허나 마왕성에 다다르기 직전, 오세는 누군가가 던진 술잔에 격추당했다.


[큭!]


불안정한 자세로 어느 골목길에 착지한 오세는 자신을 맞춘 투사체가 술잔임을 깨닫고 당황했다.


[이 몸이 고작 술잔에 당했다고?]


마왕 망신이 따로 없었다. 수치심에 분노한 와중에도 오세의 눈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술잔을 응시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은 한낱 술잔이 아니라 누군가의 성유물이란 사실을.


영롱한 금빛 광채. 방금까지 술을 담고 있던 술잔은 파르르 떨더니만, 이내 골목에 들어선 누군가의 손에 회수되었다. 후드티를 뒤집어 쓴 남자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나 참, 이래서야 마음 놓고 즐길 수가 없잖아.]


남자, 디오니소스가 한낮의 밀회를 다시 읽었다.


- 마왕 한 명이 그쪽으로 갔으니 처리 좀 해 줘요.

- 귀찮아.

- 이번에 도와주면 홍등가 무료 이용권을 선물하죠. 기간은 30년.


[하여튼 약아빠져가지고.]


코웃음을 친 디오니소스가 격을 발출했다. 


[성좌, '술과 황홀경의 신'이 '안락과 흉포의 마신'을 바라봅니다.]


드디어 남자의 정체를 알아챈 오세가 경악했다.


[약조를 어길 셈인가, <올림포스>의 주신?!]


디오니소스가 귀를 파며 딴청을 부렸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중요한 건 . . . ]


그리고 술잔을 야구방망이처럼 잡았다. 갑자기 홍등가로 들이닥친 피난민에 짜증이 솟구친 지금, 디오니소스의 분노는 온전히 눈앞의 마왕만을 향하고 있었다. 긴장한 오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졌다는 거지.]


[설화, '술의 제전'이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책임져.]



*



까앙.


검 끝으로 땅을 두드리자 꽉 막힌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 아닌가? 정신사나운 마왕들의 연격 때문에 방향감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 무렵, 마왕성 인근에서 마왕의 격이 느껴졌다.


츠츠츳!


진명이 오세였던가. 마찬가지로 성마대전 때 내게 화신체가 꿰뚫린 마왕이었다. 내가 뒤를 흘깃 바라보자 방금까지 공세를 주고받던 엘리고스가 씨익 웃었다. 내가 함정에 빠졌음을 확신하는 환희의 미소였다.


[눈치채는 게 느리구나.]


뭐래. 양동작전인 거 이미 알고 있었는데.


- 다섯, 아니 여섯인가.


기척을 숨겨봤자다. 마기를 풀풀 풍기고 다니는 데 어떻게 안 들키고 배기겠나. 디오니소스에게 부탁했으니, 아마 지금쯤 오세는 디오니소스에게 복날의 개처럼 처맞고 있을 테다.


디오니소스가 약한 화신체를 들고 왔다지만 그것은 오세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격을 숨기기 위해 권속에 강림한 것 같은데, 직접 현현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기는 건 무리다. 또 현현했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어서 좀 두들겨 맞다가 물러날 미래가 훤히 보였다.


[큭! 일개 공작따위가!]


[그 일개 공작한테 지고 있는 게 당신입니다.]


그리고리도 잘해주고 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사복검을 한 바퀴 돌려 회수한 순간, 엘리고스의 깃발이 펄럭였다.


[설화, '전장의 광기'가 휘몰아칩니다!]


강대한 격이 실린 바람이 단단한 벽이 되어 접근을 막았다. 나는 바람의 결을 따라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사복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동시에 설화를 운용했다.


[설화, '목숨을 건 사투'가 사납게 웃습니다.]


[현재 전장이 해당 설화의 무대와 유사합니다.]


['질풍의 마신'에게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전장의 광기'가 파훼됩니다!]


승리 설화에 의해 엘리고스의 설화가 맥락을 잃었다. 강인하게 이어지던 문장이 툭 끊어지자 공백이 생겼다. 찰나의 빈틈. 사복검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쯧, 망할 패배 설화 같으니라고.]


작게 침음을 흘린 엘리고스가 흑마의 고삐를 잡고 공중으로 회피했다. 카가각! 사복검이 애꿎은 지면을 갈랐다. 그때 47번째 마왕, 하겐티가 지원에 나섰다.


콰득.


제 뿔을 꺾은 하겐티가 그것을 촉매 삼아 연금술을 발동했다. 공중으로 쏘아진 불씨가 하늘을 수놓았다.


콰콰쾅!


멀리서 보면 불꽃놀이라 오인할 정도로 수려한 폭발은 그 파편이 지상으로 낙하하면서 재앙으로 돌변했다. 그것은 꺼지지 않는 화염구. 범위에 휘말린 자들을 잿더미로 화하는 악마의 불꽃이었다.


나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불덩이를 피했다. 핏빛 손아귀로 쳐 내고 사복검으로 방어했다. 눈동자를 굴리니 마왕들과 오이디푸스는 하겐티의 연금술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러니까 저기가 안전지대라는 소리였다.


타앗!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렸다. 날개를 펼치면 화염구에 닿을 확률이 높아 그냥 달렸다. 핏빛 손아귀를 뻗어 주변 바위를 붙잡고 그것을 당겼을 때의 반발력으로 몸을 가속시켰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 . . . 안 되겠군.]


보다 못한 마왕들이 다시 불지옥 속으로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내게 불리한 환경에서 싸우겠다는 취지다. 


점점 가까워지는 신형에 나는 속도를 늦췄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바알의 지도에 기록된 히든 피스의 위치를 되세길 무렵, 67번째 마왕, 암두시아스가 기습적으로 지옥나팔을 불었다.


[설화, '지옥의 연주자'가 이야기를 시작 - ]


[시끄러워요.]


[설화, '마계의 이단아'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츠츠츳!


암두시아스의 설화는 '마계의 이단아'에 의해 무력화됐다. 산만한 음악이 사라지고 다시 크고 작은 폭발음이 귓가를 스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왕성을 바라봤다. 마왕 오세의 격이 차츰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를 인지했는지 마왕들의 표정도 썩 좋지 못했다.


[미리 대비했군.]


[좋은 친구를 둔 덕분이죠.]


엘리고스가 아직 불지옥 속으로 진입하지 않는 오이디푸스 왕을 힐난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관망은 할지언정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기로 했는데.]


오이디푸스 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같은 성운 소속 성좌의 격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바쿠스가 훼방을 둔 모양이군. 그대들은 계속 싸우기나 하세나. 저자는 내가 처리할 테니.]


[누가 보내준다고 했나요?]


내 겁박에 오이디푸스 왕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당장 마왕 셋도 떨쳐내지 못 하는 주제에 말이 많구나.]


[말은 제대로 합시다. 떨쳐 내지 못한 게 아니라 떨쳐 내지 않은 거지.]


[뭐라?]


나는 검 끝으로 지면을 두들겼다.


터엉.


아까와 다르게 소리에 공명이 실려 있었다. 땅밑이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찾았다.


나는 주저 없이 '핏빛 손아귀'를 지면에 박아 넣었다. 마기를 흘려보내자 땅이 쩌저적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지면이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가 드러났다.


['히든 시나리오'를 발견했습니다!]


이윽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골짜기로 흡입되었다. 운나쁘게 발밑에서 골짜기가 열린 오이디푸스왕은 일련의 반항조차 하지도 못한 채 비명을 길게 늘어뜨리며 맥없이 추락했다. 놀란 마왕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비상했다.


나는 그들을 비웃었다.


[늦었어.]


관리가 되지 않을 뿐 마계 전역엔 수많은 히든 시나리오가 있다. 나는 일찌감치 바알의 지도를 입수해 기연들을 독식했지만, 몇 개는 건들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대개 난이도에 비해 얻는 보상이 짜거나, 다수의 참여좌가 입장했을 때 발현되는 경우였다. 32번째 마계에 숨겨진 시나리오는 둘 다 포함됐다. 보상도 짜고, 혼자서는 시도할 수 없는 구조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에 한해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2번째 마계에 침입한 자들을 단죄하기에 이것만큼 적당한 게 없었다.


[새로운 히든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나는 골짜기로 몸을 던졌다. 잠시나마 공중에 체공하던 마왕들도 시나리오를 거역하지 못하고 결국 추락했다. 아득한 골짜기에서 마왕들의 욕지거리가 메아리쳤다.


그렇게 한참을 떨어졌다. 체감상 5분은 넘게 떨어졌을 즈음, 지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흡입력의 기세가 줄어 날개를 펼쳐 낙하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바닥에 발을 딛자 시나리오 창이 갱신되었다.


<히든 시나리오 - 악마 신전>


분류 : 히든

난이도 : ??

클리어 조건 : 먼 옛날, 악마 신봉자들이 고대 악마들에게 제물을 바치던 땅입니다. 피에 굶주린 골짜기가 참가좌들의 비명과 고통을 원합니다. 하나 이상의 생명을 제물로 바치고, 최후의 생존자가 되십시오.

제한 시간 : 1시간

보상 : SSS급 아이템 랜덤 획득

실패 시 : 영혼체가 소멸합니다.


한마디로 데스매치다.


나는 이제 막 도착한 마왕들을 향해 말했다.


[한때 악마였던 자들이여. 제물이 된 기분이 어떠신가요?]


하나 같이 똥 씹은 표정이었다. 나를 죽여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한명뿐이니까. 어기적어기적 걸어온 오이디푸스 왕이 지팡이로 땅을 쿵쿵 찍으며 발악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시나리오야!!]


[성좌, '자기 눈을 찌른 자'가 시나리오 이탈을 요청합니다.]


허나 답변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마계에는 도깨비가 없기 때문이다. 빌거면 혹부리들에게 빌어야지. 물론 혹부리들도 올 수 없다. 시나리오 청소부들과 함께 다니는 놈들이 멀쩡한 시나리오에 나타날 리가 없으니까.


고로, 우리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엘리고스가 입을 열었다.


[1시간 동안 우리를 전부 죽일 수 있겠나?]


나는 설화를 운용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설화, '마계의 이단아'가 이를 드러냅니다!]


[설화,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 포효합니다!]


[설화, '즐거운 미식가'가 입맛을 다십니다.]


[설화, '목숨을 건 사투'가 흥분합니다.]


내가 발출한 격이 마왕들을 찍어눌렀다. 하위권 마왕, 암두시아스가 움찔했다. 일단 한놈부터. 


콰앙!


땅을 힘껏 박차자 파편이 튀었다. 그 반발력을 통해 나는 한줄기의 바람처럼 쇄도했다. 하겐티의 쇠창이 목을 겨누고 달려들었으나 내게 닿지 못했다.


하겐티의 움직임은 굼떴고, 나는 하겐티보다 빨랐다. 사복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서걱. 그리고 툭.


땅바닥에 떨어진 암두시아스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반으로 쪼개진 지옥나팔이 텅그렁 소리를 내며 연주회의 종언을 고했다. 


[마왕, '연주하는 일각공'이 사망했습니다.]


푸슉! 목에서 검은 설화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머리를 잃은 화신체가 맥없이 스러졌다. 나는 사복검에 묻은 설화 파편을 털어내며 말했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