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초에 혹부리가 있었다.

- 그는 최초의 이야기꾼. 설화를 노래하는 인간.

-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 도깨비가 나타났고.

- 도깨비는, 혹부리의 노래를 가져갔다.


그것이 도깨비와 혹부리의 이야기.

기나긴 대립의 시작이었다.


넓은 턱에 혹 두 개를 붙인 혹부리 왕이 치욕의 역사를 추억하며 말했다.


[그때 이후로 혹부리는 탄생설화를 상실했다. 결국 이야기의 지평선으로 추방당했지. 나는 아직 그때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도깨비 왕.]


도깨비 왕이라 불린 사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사소한 원한은 잊는 게 어떻겠나?]


[사소한 . . . ?]


기가 막힌다는 혹부리왕. 그를 눈앞에 두고 도깨비왕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락이 없는 문장은 노래가 아닌 이야기였다.


[관리국이 없었다면 <스타스트림>이 이토록 번창할 수는 없었겠지.]


[죄를 정당화하지 마라. 너희 도깨비들은 그저 이야기의 약탈자일 뿐이다.]


[친우여, 우리는 단 한 번도 이야기를 '소유'한 적이 없다네.]


[ . . . ]


[반면 그대들은 어떠한가? 그 커다란 혹을 주인 잃은 이야기로 가득 채워 넣었지.]


도깨비 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진짜 이야기의 약탈자는 누구지? 도깨비? 아니면 혹부리.]


혹부리 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울긋불긋 팽창한 혹은 금방이라도 설화를 토해낼 것 같았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도깨비왕은 거침없이 문장을 이어 나갔다.


[내 그대들의 원한을 '사소하다' 라고 말한 이유는 . . . 정말 사소하기 때문이야.]


[. . . 날 놀리는 건가?]


[좀만 더 들어 보게나.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도깨비 왕의 미소가 짙어졌다.


[도깨비는 이 세계를 존속시킬 사명을 타고났네. 아득한 벽 넘어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런 운명을 부여했지.]


혹부리왕의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게 지금 도깨비 왕이 말하는 것은 그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나태한 신'에 대한 비밀이었으니까.


[그는 누구지?]


[나도 모른다.]


거짓말이군.

혹무리왕이 기가 차다는 듯 헛숨을 뱉었다.


['탄생설화'도 모자라 '탄생' 자체도 숨기려드는군.]


반면 도깨비왕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사소한 일이야. <스타스트림>을 존속하고 이야기를 보전하는 일에 비하면.]


이쯤 되자 혹부리왕은 도깨비왕이 <스타스트림>을 지키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정확히는 도깨비왕도 저처럼 자신의 존재의의에 대한 의구심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고 싶었다.


허나 혹부리왕의 입이 벌어진 순간, 도깨비 왕의 문장이 사담을 끝맺었다.


[서론이 길었군. 그래서 여기까진 어쩐 일인가?]


결국 원점이었다. 혹부리왕은 오늘도 비밀을 알아내는 데 실패했다. 한숨을 푹 내쉰 혹부리왕이 혹을 수염처럼 쓰다듬으며 본제를 꺼냈다.


이야기가 궤도에 올랐다.


[요새 <마계>가 시끄럽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테지.]


[안 그래도 방금 대도깨비에게 보고받고 오는 길이라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혹부리왕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마계>에 채널을 개설할 생각 없나?]


[. . . 대가는?]


[없다.]


이번만큼은 천하의 도깨비왕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관리국에게 버림받은 이후 <마계>는 혹부리의 밥그릇으로 전락했다.


눈감아주곤 있지만 불법 녹화로 얻는 수입이 쏠쏠하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이를 포기하겠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혹부리'의 제안인가, 아니면 '혹부리왕'의 제안인가?]


[딱히 상관없지 않나? 내 뜻이 곧 혹부리의 뜻일 텐데.]


[하기사.]


도깨비 왕 자신도 도깨비들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혹부리왕이 왜 갑자기 이런 선택을 내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하여, 소리내어 뱉은 질문에 혹부리왕은 이렇게 답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도깨비왕이 웃었다.


[맞아, 그건 중요하지 않지.]


혹부리왕이 툴툴거렸다.


[그래서 할 건가?]


[. . . 고민할 시간을 주면 좋겠군.]


[되도록 빠르게 결정하길 추천하지. 흘러간 시간을 되돌리는 건 제아무리 우리라도 불가능하다.]


필멸에서 벗어나 영원을 사는 두 존재에게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월의 흐름에 무감해진 그들에게 눈 깜짝할 사이 몇 년이 흘러가는 것은 일도 아니니, 혹부리왕은 이 점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도깨비 왕이 답했다.


[유념하겠다.] 


직후 혹부리왕은 소용돌이치는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도깨비왕은 사색에 잠겼다.


채널개설이라 . . . <스타스트림> 전체를 관장하는 그에겐 분명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망설여졌다.


도깨비왕의 눈이 서재로 향했다. 수천수만권의 책이 단단한 벽을 이루고 있었다. 도깨비왕은 벽 넘어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응시하며, 최근 화두에 오른 한 마왕을 떠올리며, 작게 속삭였다.


[나의 신이여, 저 아이도 그대의 꿈인 건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편, 게이트를 통과한 혹부리왕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목적지는 사방이 구로 가득하며 모난 곳이 없는 이형의 공간이었다.


은가이의 숲.


그곳에 자리한 어둠이 눈을 떴다.


[위대한 모략이여, 그대의 부탁대로 놈을 만나고 왔다.]


마왕이 던진 돌이 <스타스트림> 전체에 거대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었다.


*


유중혁이 김독자에게 일행을 짬 처리하고 가는 것까지 보고서 아몬의 초대를 받아 오로성으로 이동했다. 아가레스가 이번 모임을 주최했다는데, 어째서 집결지가 아몬의 성인지가 궁금했다.


의문은 아몬의 답변에 의해 해소되었다.


[아직 정리가 덜 끝났다 하더군.]


[무슨 정리요?]


[우리가 어질러논 거.]


[아.]


과거 <게티아> 전원이 우르르 몰려가 깽판친 흔적이 아직 성 이곳저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게 좀 봐주면서 싸우지. 진심으로 싸운 아가레스 잘못이다.


나는 그 뒤로 계속 아몬의 까마귀와 담소를 나눴다. 아몬은 가장 최근에 겪은 일로 11번째 마계의 마왕을 죽여 인장을 빼앗은 것을 자랑했다.


[인장에 무슨 특수 효과 같은 건 없었나요?]


[몸이 좀 가벼워졌고 . . . 11번째 마계가 내 손에 들어왔다.]


추정컨대 인장이 마계의 부동산 서류 역할도 겸하는 모양이다.


[신기하네요. 시나리오 창에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것의 발행연도를 따지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최근 시나리오는 과거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수정된 것들이다. 자연히 오래된 시나리오일수록 허점이 많을 수밖에.]


[흐음.]


나는 아몬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하나의 마계'는 바알, 즉 도깨비왕이 몸소 계획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며 입구에 들어서자 각양각색의 마기가 피부를 찔렀다. 개중엔 익숙지 않은 것도 있었다.


[새로운 얼굴도 있나 보군요.]


어깨에 앉은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연회장 중앙에 <게티아> 일원이 모여 있었다.


[흠, 다 멀쩡하게 . . . 는 아니지만 아무튼 살아 있군요.]


바르바토스가 눈에 안대를 끼고 있었다. 


[싸웠나요?]


[네 눈엔 이 영광의 상처가 안 보이나?]


[그래서 이겼어요?]


[마왕 놈들이 떼지어 몰려든 탓에 . . . ]


[허접이군요.]


바르바토스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반박하고 싶어도 나는 마왕 넷에 성좌 하나와 싸워 이겼으니 할 말이 없겠지. 아무튼 반응이 찰져 모략스 다음으로 타격감이 좋았다.


[뭐, 그래도 수고했어요. 설욕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니까요.]


나는 바르바토스의 어깨를 두드리고 신입 마왕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리처럼 회색 날개를 가진 마왕이었다. 분명 수식언이 . . .


[오랜만이네요, 증오의 마신.]


[성마대전 이후로 처음이구나, 격노와 정욕의 마신.]


증오의 마신.

진명 벨레드.


순위는 13위. 원작의 아스모데우스가 성마대전 직전에 도달한 순위였다. 그렇다면 원작의 벨레드는 '핏빛 손아귀'의 희생양이 됐을 터니, 눈앞의 마왕은 내가 아스모데우스에게 빙의한 덕에 목숨을 건진 셈이었다.


벨레드가 말했다.


[아가레스에게 들었다. 여기로 오면 빌어먹을 별을 족칠 기회가 온다 하더군.]


[그전에 같은 마왕부터 죽여야 할 텐데, 괜찮나요?]


[오히려 좋다.]


음, 미친놈이구만. 골라도 이런 놈을 골라온 아가레스의 선구안에 감탄하고 있자, 모략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끼리끼리 모이는구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저렇게 피에 굶주린 놈은 아니라고. 허나 어째서인지 주변 마왕들은 모략스의 말에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억울하다 억울해.


[크흠, 것보다 아가레스. 우리를 부른 이유가 뭐죠?]


내게 지목당한 아가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너희도 알겠지만 이번 시나리오는 혼자 힘으로 클리어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게티아>로 뭉친 것처럼 다른 마왕들도 협력관계를 구축하겠지.]


아가레스의 손가락에 마력이 맺혔다. 허공에 글씨가 새겨졌다.


3위 바사고

5위 마르바스

6위 발레포르

14위 레라지에

29위 아스타로트


[이하 다섯은 그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놈들, 우리처럼 성운을 창단하려는 마왕들이다. 내게도 합류할 것을 권하더군.]


[뭐라고 답했나요?]


[관심 없다고 했다.]


다행이네. 저 라인업에 아가레스가 꼈다면 정말 답이 없었을 거다. 우리도 나름 강한 마왕들이건만 상대방 역시 만만치 않았다. 다대일로 싸우다간 지옥에서 내가 죽인 마왕들과 면담하게 될지도 모른다. 몸 좀 사려야겠네.


[놈들은 자신을 <레메게톤>이라 칭하더군.]


[ . . . 그거 우리 성운명 표절한 거 아니예요?]


참고로 '레메게톤'의 첫 번째 장이 '게티아'다.


[그렇게 치면 우리도 예진작 <에덴>에게 표절시비가 걸렸겠지.]


[음. 그건 그렇죠.]


아무튼 솔로몬왕의 저작물이니까. <에덴> 측에서 눈감아준 이유는 <게티아>의 명성이 높아질 수록 솔로몬 왕과 야훼의 인지도 역시 덩달아 상승하기 때문이겠지. 하여간 이놈이나 저놈이나 설화에 미친놈들 뿐이다. 


아가레스는 그 뒤로 마왕들을 우호 세력, 중립 세력, 적대 세력으로 나눠 설명했다. 마왕 한 명을 설명할 때마다 각주가 붙었는데, 대개 설화와 약점을 다룬 정보였다.


가령 나 같은 경우 '사라'라는 여성에 빙의해 남편을 7번 목졸라 죽였다가 라파엘한테 들통나 처맞았다는 전승을 . . . 아,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진다. 아마 이게 원작 아스모데우스의 발작 버튼 아니었을까?


[ . . . 풉.]


[웃지 마요.]


귀가 새빨개진 나를 비웃던 마왕들도 아가레스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흑역사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특히 모략스가 어린아이를 산제물로 받았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을 땐 명색이 마왕인 우리조차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아, 이건 좀.]


[큭 . . . 어이, 아스모데우스. 너는 왜 당당하다는 표정이냐?! 너도 이상 성욕자잖아!]


[날 당신과 같은 선상에 놓지마요. 난 페도가 아닙니다, 망할 로리콘.]


로리콘 소리까지 들은 모략스가 의자에 힘없이 걸터앉았다. 어쩌면 나는 아가레스의 무력을 간과한 게 아닐까? 단순 입털기만으로 20위권 마왕을 한 방에 보내버리는 데, 이게 최강의 마왕이 아니면 뭐겠냐?


그렇게 한동안 지옥의 아가리를 놀린 아가레스 옹은 상대편 마왕의 정보까지 털다가 이야기를 끊었다. 내가 봤을 때, 저것도 할 이야기가 더 남았지만 적당히 끊은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정보. . . 음? 다들 왜 그러지?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미소는 정말이지 사악해 보였다. 나는 헛기침하곤 탁상을 두드리며 멘탈이 가출한 마왕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만살씩 먹고 꼴사납게 뭐 하는 짓들입니까? 정신차리고 시나리오나 분석해 봐요.]


딱히 정신 공격에 휘말리지 않은 벨레드, 부에르를 필두로 시나리오 창을 개시했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정독하며 든 의문점을 아몬이 준비한 양피지에 옮겨적었다.


[일단 이것부터 집고 넘어가죠. 여기 보면 '마왕은 인장을 강탈할 수 있다' 라고 적혀 있어요. 하지만 인장을 뺏긴 마왕이 어떻게 되는지는 불명이군요.]


여기서 인장을 뺏어본 마왕은 있어도 빼앗긴 마왕은 없어서 생긴 궁금증이었다.


아몬이 강탈한 인장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적어도 시나리오에서 이탈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페널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 . . ]


그래 봤자 심증일 뿐이었다. 우리가 제각기 고민하고 있을 무렵, 벨레드가 나섰다. 역시 조직이 굴러갈려면 신입의 패기가 필요하다.


[그럼 직접 시험해 보면 되지.]


비록 그 해결책이 단순 무식하긴 했지만 . . . 뭐라도 시도하는 게 어디냐.


다짜고짜 일어선 벨레드가 안드라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드라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요?]


[인장내놔. 나중에 돌려줄 테니.]


황당한 표정의 안드라스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안드라스를 제외한 <게티아> 일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모른 척했다.


벨레드가 쐐기를 박았다.


[꼬우면 승급전 하던가.]


아직 40위권 초반에 불과한 안드라스가 13위 마왕 벨레드를 이길 리 만무했다. 결국 안드라스는 그럴듯한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품에서 인장을 꺼냈다. 안드라스의 인장은 타오르는 불의 형상을 띈 원기둥이었다.


인장이 벨레드의 손으로 넘어간 순간, 두 마왕이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츠츠츳 - 스파크가 튀며 간접 메시지가 갱신되었다.


['13번째 마계'가 '50번째 마계'의 인장을 강탈했습니다.]


['50번째 마계'가 '증오의 마신'의 지배를 받습니다.]


['불화의 마신'의 설화가 일부 제한됩니다.]


[. . . 불쾌하군. 탄생설화가 움직이질 않는다.]


탄생설화에 제약이 걸린다니. 시나리오 실패는 아니지만 상당히 강한 페널티였다.


[공략은 둘째치고, 일단 자기 인장이나 잘 간수해야겠군요. 탄생설화가 주력인 분들은 알아서 몸 사리고요.]


[알겠다.]


[그나저나 같은 편끼리 짜고쳐도 되는 걸 보면, '강탈'에 별다른 조건은 없는 모양이야.]


[그냥 먼저 잡은 마왕이 소유권을 독점하나 봅니다. 여러모로 뒤통수 맞기 딱 좋은 시나리오군요.]


다 된밥에 재뿌리기 당할 미래가 벌써 눈에 보인다. 내분이나 제3자의 개입을 조심해야겠군. 그래도 <마계>에는 채널이 없어 타 성운의 간섭은 덜하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중립 세력 마왕들을 회유하여 아군으로 삼는 전략도 검토 중이다.


[이제 돌려주시오.]


[ . . . 여기 있다.]


벨레드가 마지못해 인장을 돌려주자 안드라스의 기세가 다시 활활 타올랐다.


['50번째 마계'가 인장을 되찾았습니다.]


[페널티가 해제됩니다.]


그때 모략스가 나를 보더니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엔 모략스의 것이 아닌 인장이 있었다.


[네 말대로 주인없는 집이더군. 여기 하겐티의 인장이다.]


그제야 안드라스와 바르바토스도 품에서 타 마계의 인장을 꺼냈다. 내가 줄창 어그로를 끄는 동안, 주인 없는 마계를 털어서 얻은 전리품이었다.


<올림포스>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바르바토스가 푸념을 읊었다.


[이거 하나 얻겠다고 개떼같이 달려들더군.]


뒤늦게 출동한 바르바토스는 '위치추적' 기능 탓에 인장을 노리는 다른 마왕들의 습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까 놀린 게 미안해지네. 내 착잡한 기분과는 별개로 바르바토스는 제 흉진 눈을 가리키며 실소를 흘렸다.


[그러니까 더 주기 싫더라고.]


역시 마왕은 마왕이다.


탁 소리와 함께 3개의 인장이 탁상 위에 올랐다. 이를 신호로 <게티아> 전원이 각자의 인장, 강탈한 인장을 올려놨다.


도합 12개.

이로써 마계의 6분의 1이 <게티아>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멈출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