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한수영의 작업실에서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도 역시 그녀였다. 이럴 때는 레몬사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최근에 일이 너무 바빠 나갈 시간이 없어 사오지 못한 레몬사탕이 눈에 아른거렸다. 밖에 나가기엔 좀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애써 작업에 집중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유상아 보고 싶다."

 라고 조용히 소곤거린 한수영은, 유상아를 좋아하고 있었다.
 
 생각을 이어가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싸매던 한수영의 귀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저벅- 저벅-

 자신이 온다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발소리에 한수영은 누가 들어오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유상아?"

 "글 쓸 때 욕해도 되나요?"
 
 "아 몰라. 글쓰기를 시작해야 욕을 안 쓰든 말든 하지. 그리고 그거랑 욕이랑 뭔 상관인데."

 "음."
 
 유상아가 보기에도 확실히 한수영은 꽤 스트레스를 받던 중인듯 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선명했고, 입은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갑자기 좀, 아니 많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건드려 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세게 건들면 저 고양이 같은 인간이 피할 게 뻔하니까 시작은 약하게. 툭툭 쳐보기로 했다. 가볍고 짜증나게.
 
 " '자칭' 천재작가님께서 아직도 글을 못 쓰다니, 이건 좀 충격적인데요?"

 "뭐? 이 새끼가..."

 확실히 놀려먹는 재미가 있다. 말 한 마디에도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하는데 놀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유상아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앉아있는 한수영 앞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싱긋 웃어보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하게 건드려볼까. 확실히 반응할 수 있도록.

 "아니면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무슨 제안?"
 
 "지금 세이브 쌓고 있는거죠?"

 "그치."
 
 한수영은 자신의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유상아가 말을 이어갈수록 어떤 말을 할지 예상이 가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싫어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기 하나 할래요?"
 
 "어?"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덕분에 한수영의 입에서는 이해하지 못 했다는 티를 내는 멍청한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러든 말든 유상아는 할 말을 꿋꿋이 이어 나갔다.
 
 "수영씨가 이렇게 당황한 건 오랜만에 보네요. 아무튼 내기 내용은 이래요. 오늘까지 세이브본 두편 쓰면 수영씨 승리, 못 쓰면 제 승리. 보상은, 음. 간단하게 원하는 거 들어주기 할까요?"

 "이 자식, 아예 작정을 하고 왔구만?"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외워오기라도 한 듯이 술술 나오는 말을 들은 한수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래- 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아마 자신이 질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가볍게 이겨줄지 아님 져줄지 생각하며 유상아는 방을 나왔다.

 "어떻게 해야 재밌을지는 고민 좀 해봐야겠네."

 "뭐라고 유상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김컴 멤버들은 신난 유상아를 보며 한수영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저렇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했을까요."

 이길영은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해 했고,
 
 "그러게나 말이다. 아마 또 한수영이 당하겠지? 어떻게 한수영만 보면 건드리질 못 해서 안달일까."

 정희원은 한수영의 패배를 예상했다
 
 "그러게요. 평소엔 완전 침착한 사람인데. 어쨌거나 수영이 언니 불쌍하네요."
 
 그리고 신유승은 한수영에게 짧은 애도를 표했다.

*** 
 
 그 시각 한수영은 글 쓰는데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유상아도 경계하며 글을 쓰느라 꽤 많은 체력을 소비했다. 그러면서도 아무 방해가 없어 약간의 의아함이 들며 중얼거리던 그때.
 
 "이 새... 아니 얘가 웬일로 방해를 안 하지."
 
 "전 수영씨만큼 치사하진 않아서요?"
 
 "으악 씨발 미친 깜짝이야!"

 이 새낀 또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당황한 눈으로 유상아를 바라보던 한수영의 눈에 노란 봉투가 띄었다. 그리고 그 정체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거 레몬사탕이냐?"

 "맞긴 한데... 아까 욕해서 별로 주고 싶지 않은걸요?"
 
 유치찬란한 도발에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체력 소모로 마비 된 이성과 눈앞의 레몬사탕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잠시 이성을 묻어두기로 했다. 왜 이런 인간을 좋아해서는.

 "와, 안 치사하긴 개뿔. 그거 갖다가 협박을 하고 있냐?"
 
 그렇게 말하며 한수영이 유상아를 째려보자 어째서인지 유상아의 미소는 더욱 커졌다. 그걸 보던 한수영은 미친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 놀리는건가?

 "저 따라와서 같이 나가면 드릴지도요?"
 
 "뭐? 나 글 쓰고 있잖아. 혼자 나가."

 의미심장하게 웃는 유상아의 얼굴에 생각이 쓰였다. 어차피 너는 곧 따라오게 될 거라는 표정. 그닥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한수영은 애써 무시하고 다시 글에 집중했다.

 "뭐, 싫으시면 말고요."
 
 그 말만 남기고 그녀 자신의 머리색 같은 연갈색의 코트를 챙겨 입으며 유유히 빠져나가는 유상아의 뒤통수를 진심으로 한 대 갈기고 싶다는 충동을 참으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
 
 "시발..."

 욕지거리를 내뱉었음에도 아무도 오지 않는 오묘한 분위기를 느끼던 한수영은 의자를 넣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편의점이나 가야지...'

 조용히 집을 빠져나온 한수영은 차가운 바깥공기를 느끼며 길을 걸었다. 재킷의 모자에 흰 눈이 쌓여가고 걸을 때 마다 뽀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숨을 쉴 때마다 보이는 하얀 김이 지금의 온도와 날씨를 알려주고 있었다.

 "아 씨, 추워 뒤지겠네."
 
 우여곡절 끝에(횡단보도에서 꼴사납게 넘어질 뻔하긴 했지만 어찌저찌 안 넘어질 수 있었다.) 편의점에 도착한 한수영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종업원의 친절한 인사와 후끈한 열기가 몸을 덥혀 오자 그제야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한 한수영이었다. 그런데, 빠르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조용히 사탕 코너를 돌던 그녀는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레몬사탕은 다 나갔어요?"

 믿기지 않는 사실을 재확인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이었다.
 
"거기 없으면 다 나간 거에요~ 어떤 분이 남는 재고까지 다 사가시던데... 지금 남아있는 레몬사탕은 없을걸요?"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 희망을 산산이 부수는 대답만이 들려왔다. 근데 한 명? 그 한 명은 누구인가. 그것이 제일 문제였다. 절대로 폭력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다. 완만한 대화를 통해 협의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럼 그 레몬사탕 사 간 새끼... 아니 사 가신 분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을까요?"
 
 "음... 이름은 모르겠는데 아마 긴 머리였던 걸로 기억해요. 제가 인상착의를 잘 기억 못 해서..."
 
 ".....네, 감사합니다."
 
딸랑-

 애써 억지로 감사인사를 하고 나온 한수영이 투덜댔다. 그딴 단서 하나로는 도저히 누가 사탕을 싹쓸이 해갔는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거 갖다가 뭘 특정하라는 거야?"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일단 다른 편의점에서 레몬사탕을 사고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까 어떤 연갈색 머리 여자분이 다 사가셨는데요?"

 "키 크신 여성분이 사가셔서 없습니다."
 
 "아까 갈색 코트 입으신 분이 사가더라고요. 그래서...


 없다. 위에 3군데 말고도 2군데를 더 들렀는데 하나같이 누군가가 사 갔다고 한다.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다.

 "유상아!!!"

***

 사람들이 지나가며 쳐다봤었지만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시간을 날렸다는 것과 결국에는 레몬사탕도 구하지 못 했다는 허망함이 몸을 지배한 상태로 작업실로 돌아왔다. 유상아 욕은 기본으로 깔렸다.

 "들어가도 될까요?"
 
 한수영은 들어가서 문을 닫자마자 들리는 목소리에 짜증을 느꼈다.
 
 "들어와 이 개새..."

 "아무리 그래도 오자마자 욕을 하는 건 좀 슬픈데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등 뒤로 감춰 놓은 레몬사탕들을 보여준 유상아는 한수영을 놀라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도대체 얼마를 쳐 쓴거야?"
 
 "다 사는데 한 10만원쯤? 쓴 것 같네요."
 
 "겨우 레몬사탕 못 먹게 하려고?"
 
 "아뇨. 내기에서 이겨보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계속 싱글싱글 미소 짓고 있는 상태로 말을 하는 유상아를 보면서 이번엔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실현시키지는 않았다.
 
 "아오 썅. 그래서 그건 왜 보여준 거야? 나 줄려고? 크큭, 당연히 아니긴 하겠..."

 "여기요."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레몬사탕 봉지가 한수영이 잡기 위해 황급히 움직인 손을 피해 허공을 갈랐다. 정확히는 레몬사탕이 이해할 수 없는 궤적으로 움직였다. 유상아가 순순히 줄 때 빠르게 피했어야 했는데.


 '조졌네.'
 
 팍! 하는 소리와 레몬사탕 봉지가 한수영의 얼굴에서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리고 유상아는 걱정...을 해주기는 무슨 한수영 앞에서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이 새끼가?"


 "하핫! 아니... 너무 귀여우신 거 아녜요?"

 웃음 소리 사이에 말소리가 껴서 그런가? 내가 방금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뭐라고 유상아?"

 다시 물어봤지만 당연히 대답해줄리가 없었다. 내기를 제안하고 나갈 때처럼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짜증났다.
 
 "푸흡, 네? 제가 뭐라고 했나요? 그냥 잊으세요. 아마 잘못 들으신 것 같은데. 전 가볼게요!"
 
 전에는 그냥 나가더니 이제는 손까지 흔들며 나간다. 한수영은 오늘 저 새끼 진심으로 때리고 싶다- 라는 생각만 한 횟수가 두 손으로 다 꼽지를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진짜 때린 횟수는 손가락을 펼칠 필요조차 없었다.

***
 
 유상아는 혼자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아까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봤다. 그건 분명히 감정적인 행동이었다. 되도록이면 마음이나 감정은 최대한 표현하지 않을려고 했건만.

 "뭐, 딱히 걱정은 안 되긴 한데..."

 혼자 조용히 고민하다가는 답이 없겠다 싶어서 그냥 조용히 들이대기로 했다. 완전히 대놓고는 아니게. 아니, 그냥 눈치채질 못 할것 같은데. 오늘 한수영 작업실에만 몇 번을 쳐들아가는지 모르겠다.
 
 "유상아, 또 들어오냐?"
 
 한수영의 작업실로 다시 걸어가기만 해도 들리는 목소리. 사실 그냥 알아채라고 걷는 것이기는 한데, 한수영도 그것을 알지는 의문이다. 애초에 연애에 대해서는 눈치가 단 하나도 없는 사람이니 모를거다.

 "이번엔 뭘로 놀릴지 고민 좀 하면서 왔죠."
 
"...."

 이젠 그냥 무시를 한다. 물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한수영은 상대가 잘못 됐다는 것을 느끼지 못 한 채로 태연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여자가 어떤 일을 일으킬까 생각도 못 한 채로. 이 귀여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너 그렇게 가만히 있을거면 난 일이나 한다?"
 
 골똘히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에 유상아는 대충 답했다.
 
 "네? 아, 네. 힘내세요."
 
 한수영은 그 응원의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뭔가 말로 표현 하지는 못 할, 직감적인 불안함이 온 몸을 덮쳤다. 지금 당장 유상아의 곁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뭐 잘못했냐?"
 
 "아뇨? 그런 건 딱히 없는데. 아, 평소에 늦게 자는 거, 자꾸 끼니 거르는 거...."

 그럼 그렇지. 유상아 녀석에게 느낄 이상함은 평소에 날... 대하는 태도? 아니 잠깐만. 평소에도 가끔 느꼈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녀석은 왜 나한테만 이렇게, 씨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저 여자는 나를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수영은 조용히 빠져 나갈 각을 보았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나갈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유상아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분명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아,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내기에 지기라도 하면 곤란해지실 거니까요."

 "뭐래"

  하여간, 눈치만 빠른 새끼다. 나갈려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이래서야 내기고 뭐고 세이브 한 편도 다 완성하지 못하게 생겼다.
 
 "그럼 너가 나가던가."

 "여기가 공기가 좋네요."
 
 "지랄. 환기도 안 하는데 공기가 좋기는 뭐가 좋아. 빨리 안 나가?"
 
 유상아는 축객령을 가볍게 무시하며 책상 위에 걸터 앉아 다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한수영은 그런 유상아를 째려보다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방해하고 싶었다.
 
 "여기, 띄어쓰기 안 됐네요."
 
 "어? 그렇네... 가 아니잖아! 너 왜 안 나가!"


 "책상 위에 앉았는데 아무 말도 안 해서요. 허락 한 거 아니었어요?"
 
 그러고서 유상아는 할 수 있는 최대한 쓸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억울하다는 표정.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왠지 저 표정만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무슨 사도 때의 죄책감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한수영은 유상아가 슬퍼하는 모습은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하... 그냥 있던가."

 "그럼 있을게요!"

 저저 바로 얼굴 펴지는 것 봐. 내가 이래서 얘를 들이면 안 됐는데. 하...
 
 한수영은 혼자 한숨을 내뱉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요?"
 
 "니 꼴 보기 싫어서 새꺄!"

 어디로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냥 냅두기로 했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유상아는 그 시간을 이용해 한수영의 노트북을 뒤져보기로 했다. 사실 보내준 이유가 이것 때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여기까지 모두 그녀의 계획이었다.
 
 유상아는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해 쓰던 소설이 보이는 창을 최소화 시켜두고 이곳저곳을 탐방했다. 김컴 사진도 꽤 많았고, 쓰다가 만 소설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눈에 띄는 폴더가 보였다.

 '일기?'


 아무것도 없이 그저 한수영다운 한 단어. 아마 소설을 쓰기 위해 생각을 정리 하는 것 정도로 쓰일 터였다. 유상아는 금단의 구역에 발을 들이는 느낌으로 가장 최근 파일을 열었다. 옆에 붙은 번호는 순서일 것이다.

일기1863.txt
 
 <20XX년 XX월 XX일>
 
 오늘도 좆같은 하루다. 소설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고, 재밌는 사건이 터지지도 않는다. 이제 이 일기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딱히 특이한 일도 없는데. 아, 아니다. 그래도 소설 안 풀릴 때마다 이런 거라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 좆같은 기분을 과거의 나와 함께 느끼는 거지. 씨발. 모르겠다. 시간도 늦었고. 뇌가 잘 안 돌아가는 느낌이다. 레몬사탕이나 먹어야겠다.
 
 ※ 맞다. 유상아 얘가 요즘 이상하다. 날 좀 미친놈으로 보는 것 같은데. 이것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잘 알고 싶은데. 요즘 잘 풀리는 일이나 명쾌하게 알아내는 것들이 없다. 존나 짜증나네.

 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완전히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비속어와 한탄이 한수영의 멘탈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거, 왠지 봐선 안 될 것을 본 기분이다. 아니지. 남의 일기 훔쳐 본 거니까 맞구나.


 그나저나 추신에 있는 내용은 좀 억울한데. 한수영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유상아는 킥킥 웃으며 파일을 껐다.

 "노트북 앞에서 뭐하냐?"
 
 유상아는 속으로 놀란 마음을 삼키고 한수영을 멋쩍게 바라봤다. 들어오는 발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집중해 있었나 보다. 제대로 들킨 것 같다.

 "뭐 하고 있었냐고?"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별로인가 보다. 하긴 남의 자신의 노트북을 뒤져봤다고 하면 기분 나빠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노트북을 꺼버릴 수도 없고. 일단 등 뒤로 빠르게 마우스를 조작해 보던 일기장은 껐다.
 
 "그냥 좀 봤죠?"
 
 "그니까 거기서 뭘 봤는지를 묻는 거잖아!"
 
 빽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 보이는 볼이 빨갛다. 남에게 보여주긴 부끄러웠나보다. 도대체 뭔 파일들이 있었길래. 못 본 파일들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그 와중에 붉어진 볼이 안 그래도 어두운 조명에 흰 피부라 눈에 더 띈다. 부끄러워하는 것 마저도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
 
 "귀엽네요."


 "뭐, 뭐?"
 
 "지금 볼 되게 빨간 건 알고 있죠?"
 
 "...!"
 
 한수영이 볼을 부여잡는다. 유상아는 그런 한수영을 바라보고 있고 한수영도 그런 유상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한수영이 그 기류를 끊어냈다. 


 "그래서 뭐 보고 있었냐니까?"

 "그냥 이것저것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아니다, 그냥 나와. 내가 확인하게."
 
 노트북으로 성큼 걸어오는 한수영을 응시하다가 그냥 순순히 비켜줬다. 자기 일기가 남에게 읽혔다는 걸 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3.. 2.. 1.속으로 세던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그러면 이제?
 쾅!!

 그렇지, 한수영이 책상을 내려쳤다. 눈치챘나 보다.
 
 "너... 봤냐?"
 
 한수영이 책상에 박고 있던 고개를 돌려 유상아를 노려보며 물었다.

 "뭘요?"
 
 "시치미 떼지 말고! 일기 봤냐고!"

 한수영은 지금 자신의 볼이 얼마나 빨간지 알까? 부끄러움을 없앨려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것마저도 실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진짜..."
 
 "뭘 쳐 웃어!"
 
 한수영은 그 웃음을 비웃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유상아가 더욱 짜증났다. 그 와중에도 유상아의 얼굴이 예뻐보인다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것 같다. 


일단은 여기까지.

존나 지친다 그냥. 이것만 너무 오래 잡고 있었음. 필체 바꿀려고 노력했는데 피드백 좀 주면 고마울듯.


잘 읽었으면 개추랑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