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한없이 차오르는 것이 날 떠밀려가게 한다.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건 그냥 끄적인 거.


 아무리 생각해도 '전독시' 결말보다 임팩트 있는 문장을 떠올리기 쉽지 않단 말이지.




 "요즘도 소설 써?"


 곁에 슬그머니 다가온 네가 묻자 내 시선은 곧장 위를 향했다. 


 "영감 얻는 중."


 "그렇구나."


 

  반응 봐라.



  "그것은 예고도 없이... 야, 그거 어디 시 베껴온거 아냐?"


  "아니거든."



  .......예리한데.



 갑자기 쓸 맛 없어졌네. 글을 끄적이던 창을 끄고 기지개를 쭉 폈다.

  그 사이 너는 내 노트북 화면을 이리저리 훑었다. 너의 시선이 하나의 폴더에 머물렀다.


 "이게 뭐야?"


 "뭐,뭐긴. 그냥 폴더지."


 "한 번 열어봐도 돼?"



 그건 곤란한데. 저 많은 파일 중에 왜 하필 저거냐고..

제목이 너무 의뭉스러웠나.



 "천재 미소녀 작가의 순수 고전문학....한수영, 너 이런것도 모으는구나?"


 "옛날 작품들이 괜찮은 게 많잖아."


 "그건 그렇지."




 수긍하는 척 잽싸게 마우스를 사수하여 폴더를 클릭하는 비겁한 녀석. 예전에 쓰던 폴더 제목을 미처 바꾸지 못한 내 잘못이다.


 하여간 빌어먹을 자식.


 

 "잠깐만. 오해하지 말고 들어봐."


 누가봐도 "내가 범인이에요" 하고 광고하는 멍청한 대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폴더에는, 입원해 있는 너의 사진이 잔뜩 들어있다.



 "야 한수영."


 .......내 사심이 약간은 첨가된 상태로.



 "이게 다 뭐야?"


 "미안. 그..사진이나마 위안이 되려나 싶어서.."


 

 내 손에 꼬집힌 너의 볼.

 내 품에 안겨있는 어린 너. 

 클로즈업된 너의 얼굴.


 '전독시'를 쓰면서 가끔씩 찍었던 사진들이다. 네가 생각날 때마다 위안 삼아 촬영한 것들. 그럴 때면 너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크게 의미를 두진 마라 이거야.

코치코치 캐물으면 괜히 슬퍼지니까.....



 "고마워."

 "어?"


뜻밖의 답에 당황했다.

 

 "저 순간순간이 모두 네가 날 위하였던 시간이잖아."

 

 그런 낯뜨거운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치는 너. 

 진짜 사람 무안하게 만드는 데는 재주많은 놈이라니까.


 "고맙다 수영아. 몇번이고 하고 싶은 말이야."

 ".....알았으면 됐어."


 "진심으로."


 네가 천천히 손을 뻗어 내 손 위에 얹었다. 

 이건 갑자기 무슨 전갠데. 누가 독자 아니랄까봐, 난 이런 급전개는 당황스럽다고.


 양쪽 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고..  그냥..좀 더워서.

 

 정신 차려, 한수영. 




 "됐고. 너 빨리 자야하는 거 아니냐? 환자잖아."

 "이제 꽤 회복했어. 설화씨가 곧 퇴원할 수 있다는데."

 

 그건 그렇고.....


 "야."

 "응?"

 "나 이제 가야해."

 "그래. 내일도 병문안 와줄거지?"


 너 왜, 손을 안 놓는거야.....


 ".....손 안 놓냐?"

 "에?"

 

 '에'는 무슨.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데, 너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한수영 네가 잡고 있잖아."


 아.....

 가뜩이나 뜨거워진 귀가 더욱 화끈거렸다. 분명 저 자식이 먼저 잡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였지?


 황급히 손을 떼고 온기가 남아있는 손가락을 쓱쓱 문질렀다. 별 것도 아니라고 치부하는 듯한 너의 태도가 괘씸해서, 사진 속 그때처럼 볼을 꼬집었다.


 "뭐..뭐하는..."


 .....얼굴이 좀 가까웠나? 

 아무튼, 당황하는 네 모습을 보니 통쾌한 거 같기도.


 "나 간다. 푹 쉬어."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너와의 하루에 또 하나의 마침표가 찍혔다.




추신:



.....



...도와줘



도와줘 김독자.




*


 


 내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나 없는 사이에 의술도 발전해서 그런가. 


  "이제 일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겠어요."


  이설화가 말했다. 



 "축하해요 독자씨."

 "형, 이제 걸을 수 있는거에요?"

 "아저씨, 퇴원하면 한강부터 가요!"


 교대하며 병실에 찾아오고 있는 [김독자 컴퍼니] 일행들이 나를 축하해주었다. 



 장기간 행적 無, <구원의 마왕>의 재림!

 김독자 컴퍼니 측 대표이사 김독자, 현재 재활 중..


 언론사와 온갖 단체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뷰를 요했다. '김독자 부활절 이벤트'라도 준비하는 건지, 원.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가장 오래된 꿈'은 어쩌면, 이 몽상과도 같은 현실의 환각제로 쓰이는 것이 아닐까.




 "독자야!"


 간만의 단잠을 깨우는 까랑까랑한 목소리.

살살 들어오는 바람에 그 긴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윽..우리엘 오셨습니까."

 "응!"


 저 인간은..아니 성좌는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항상 나를 당혹케 한다. 본인이 아이돌이라도 된 양, 다소 민망한 기분이 드는 저 차림새만 봐도 그렇다.


 .....진짜 아이돌이었나?


 들어오자마자 내 목을 거칠게 끌어안은 그녀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기분이 이상했다.

 날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난 아직 환자라고..

 병실 문이 쾅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온 건 그때였다.


 "너 당장 안 떨어져?"


 진언이 아님에도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서늘한 목소리. 우리엘의 몸이 흠칫 떨렸다.


  "얘 환자인거 모르냐? 내가 저번에도 경고했는데."


 그 지고한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도 너의 감시망을 피할 수 없나 보다.


 "수, 수영아? 그래도 이제 포옹정도는 할 수 있ㅡ"

 "닥쳐."


 제기랄. 이러다 싸움나겠네.


  "우리엘, 마음은 정말 고맙습니다만 아직 이런건..조금 곤란합니다. 한수영, 너도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우리엘도 우리엘이지만.. 은근히 과민한 너의 반응도 피차 인상적이다. 혹시 우리엘 싫어하나?


 "아무튼, 얜 지금 회복기니까 건드리지 마라. 뒈지기 싫으면."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네 어투는 저 대천사를 물러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꽁무니를 빼는 우리엘의 뒷모습. 

 그걸 지켜보던 너는 후련한 발걸음으로 자연스레 침대 위에 앉았다.

 

 "속이 다 시원하네. 그렇지 않냐 김독자?"

 "뭐가?"

 

 너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왜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고 되묻듯이.


 "대천사 안으니까 그렇게 좋디?"

 "미안한데, 나도 원해서 한 건 아니거든."


 너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잠시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짓씹던 너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



 "야, 김독자."


 "또 맘에 안 드는 거 있어?"

 

 이렇게 말하면 너는...아마 내 볼을 꼬집으며 

'전부 다', 혹은 '그냥 잠이나 자라.' 따위의 말을 하겠지.

 그런데 네가 툭 내던진 화두는 그런 장난조가 아니었다.


 "나, 소설 다시 쓸까."

 "어?"


 갑자기 진지해진 말투에 놀랐다. 그리고 내 눈을 응시하는 너의 눈빛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 눈빛에서 그날이 떠오르더라. 언젠가 했었던, 카이제닉스 제도에서의 약속.


 네가 소설을 쓴다면..


 "내가 첫번째로 읽어줄게. 장르는 정했어?"


 나야 아무렴 좋았다. 난 소설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데 너에게서 이어진 말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번에 쓸 소설의 독자는 한명뿐이야."

 

 그렇다는 것은..


 "김독자, 너만을 위한 이야기를 써줄게."


 그 놀람의 감정은 감동으로, 곧 환희로 변하여 입체적인 감각을 만들어냈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 


 너는 이미 두 번이나, 내게 그런 기적같은 이야기를 선사해주었다.

 그것도 단 하나의 작가가 단 하나의 독자에게 보낸,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 말이다.


 나는 숨을 다스리고선 말했다.



 "괜찮겠어? 난 까다로운 편인데."



 나를 고혹하듯이 다가오던 너의 표정은, 항상 그랬듯 읽기 어려웠다. 

 너는 내 가슴께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얼굴이 무척이나 가까웠다.


 레몬 향이 났다.



 "내가 네 취향 하나 모를까봐?"

 "하긴."



 내가 너를 가만히 바라보자, 너는 배시시 웃었다.


 부드러워진 눈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가, 이내 약간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그 표정은 뭐랄까..슬픔에 잠식당한 듯, 동시에 행복에 고양된 듯. 나로서는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그 감정에 동요된 것 처럼, 너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순간적으로 방향을 잃은 너의 초점.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되돌리고 싶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너를 침식하고 집어 삼키기 전으로. 

 너만을 위한 독자가 되기로 약속하던 그때로.


 너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나부끼며, 벽에 기대있던 내 몸 위에 엎어졌다.


 "한수영!"



 「한없이 차오르는 것이 날 떠밀려가게 한다.


 진즉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네가 적고 있던 그 글. 나날이 차가워져가던 너의 손. 

 항상 의연하다고만 느껴졌던 네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두려웠다. 나로서 되찾은 너의 미소를, 나 때문에 다시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작품을 완성한 작가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이야기는 그렇게 쓰여서는 안 되었다.





*





 너의 퇴원을 일주일 남기고, 나는 입원했다. 그것도 네가 쓰는 병실의 바로 옆 침대에.


 매일같이 '김독자'를 찾아왔던 [김독자 컴퍼니]는 이제 졸지에 '한수영'까지 떠맡게 되었다. 1+1 행사도 아니고, 젠장.



 "언니, 이거 먹어요."

 

 대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는 신유승.


 "우읍...!"

 "뱉지 마세요. 뱉으면 또 먹일거니까."

 "켁, 이거 뭐 이렇게 써.. 뭘로 만든거야?"

 "몰라요. 독자아저씨가 중혁아저씨한테 부탁했다는데?"


 그럼 그렇지. 어쩐지 약 때깔부터 재수없더라.



 "꼬맹아."

 "저 이제 성인이거든요."

 "김독자 어디있어?"

 "언니는 자나깨나 아저씨 생각이시네요."


 빌어먹을 꼬맹이가. 한 대 쥐어박으려고 손을 드는 찰나, 신유승이 내 손을 꾹 쥐었다.


 "언니, 아프지 마요. 독자 아저씨 살아났다고 언니가 아프면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아이의 눈빛에 올렸던 팔이 스르르 내려갔다. 어떻게 보면 너는 참 복받은 놈이다. 주위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두었으니.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걱정 마. 이 언니 안 죽는다."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 위로 올려보았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던 신유승은 이내 자리를 떴다.


 텅 빈 병실에 혼자 앉아있자니, 너의 병실에서 '전독시'를 쓰던 기억이 파문을 일으킨다.


 김독자, 넌 또 어디간거야.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놈이.

 ........걱정되게.


 창 밖을 보니 날씨도 참 좋다. 간만에 햇빛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유상아 말대로 평소에 햇빛 좀 쐴 걸 그랬나.


 다 나으면 김독자 녀석 데리고 산책이나 하고 그래야지. 너 같이 희멀건 녀석은 광합성을 좀 해야 할 필요가 있어.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김독자!"

 

 반가웠다. 그러나 휙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던 그 사람은 야속하게도 네가 아니었다.


 "수영 씨, 잠시 나와보시겠어요?"


 이설화다. 민망함도 잠시, 몰려온 불안감이 내 전신을 옥죄기 시작했다. 어두워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서 왜인지 모를 비감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를 따라간 곳에는 무채색의 기구와 잔뜩 쌓여있는 종이 더미가 있는 진료실이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텅 빈 그녀의 눈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슬픔의 그림자가 흰 색 진료실의 벽을 가득 메웠다.


 우리는 한동안 감히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이건 잔인한 호기심인지, 힘겨운 체념인지. 

 상태의 심각성은 어제 너에게 소설을 약속하던 그 때, 그러면서 쓰러졌을 때 부각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지레 짐작하고 있던 바이긴 했다.

 낯선 불안감은 이미 내 마음을 갉아먹으며 거대하게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너를 위한 글을 써야만 했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소설을 써야만 했다.


 ......적어도 그렇게 한다면, 작가로서의 삶은 나름 성공한 것이 아닌가. 애초에 너처럼 훌륭한 독자를 가진 작가는 나 밖에 없을텐데.



 그럼 나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단순하면서 동시에 심오한 주제니 독자인 네가 딱 좋아하겠다. 


뭐, 설령 그게 무엇이 되더라도 상관 없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작가가, 

 단 한 사람의 작가를 위한 독자에게, 

 내 모든 이야기를..



 [설화, '단 하나의 독자를 위한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독자, 너에게 전해주고 싶었어. 그게 다야.

 





*





 

 병원 밖을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재활 센터에 가고, 공단에도 들릴 겸. 또 겸사겸사 네가 좋아하는 레몬 사탕을 잔뜩 사갈 겸.


 컨디션은 괜찮았다. 날씨는 좋았고, 몸도 확실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첫 외출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병원으로 돌아갈 때 쯤이 되자 온 몸이 잔뜩 쑤시기 시작했다. 내 몸뚱아리를 너무 맹신했나 싶다. 


 "네놈은 너무 나약해 빠졌다."


 나를 부축해주던 유중혁이 시비를 걸었다. 


 "네가 재활치료 한답시고 PT체조만 안 시켰어도 괜찮았을 거 같다."


 군대도 안 갔다온 자식이 이런건 어디서 배워왔나. 옆에서 뭐라 궁시렁대는 유중혁을 무시하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주머니에는 너에게 줄 레몬 사탕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한정판으로.


 입원한 너를 두고 유중혁과 희희낙락 하자니 미안한 마음이 컸다. 정작 넌 내가 돌아온 이래, 매일 병실에서 내 옆을 지켜줬는데.

  


 "다 왔군."


 유중혁이 말했다.

 


 "한수영은, 어떤가?"


저 자식, 그래도 네가 조금은 걱정되는 모양이다.


 "괜찮을거야."


 뒤돌아서는 유중혁을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한수영은 강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유중혁에게 손을 흔들고, 내 병실을 찾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보통은 네가 날 돌보기 위해 찾아왔던 병실. 돌연 입장이 바뀌어버렸다.


 갑자기 너가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너를 독살스럽게 해치고 있다. 

 그 불가항력이 네 깊은 심원 속 뿌리는 씨앗은 널 망가뜨리기 위해 자라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타자이므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어둠의 양분은 어떠한 외부적 자극보다 치명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너의 곁에는 네가 그랬듯 내가 있을 것이고, 넌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는 강한 사람이니까.


 이윽고 병실에 도착하자, 반투명의 문에 통과되어 아른거리는 단발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 왔어."


 너는 말이 없었다.

 화 났나?


 "미안. 좀 늦었지?"


 "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너는 그제서야 나를 인식하였다.

 이해한다. 나도 가끔 멍 때리다 보면 그러니까.


 "김독자 왔냐? 저녁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너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하얗게 빛나는 피부에 태연자약한 표정, 거기다 은은하게 퍼지는 레몬 향까지.


 하지만 너의 그 하얀 얼굴에 번져있는 탁한 혈색까지는 감추지 못한 듯 했다.

 네가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


 "수영아, 너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누님은 괜찮으시다."


 너는 방긋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될 때까지도.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다. 네 곁에서 병원 밥을 먹고, 가끔씩 농담을 던지며, 글을 쓰고 있는 너를 감상하였다.

 네 후드티가 환자복으로 바뀐 것만 빼면 다 똑같았다.



 "김독자."


 그리고 네가 내 침대로 찾아왔을 때까지.



 "어? 너 안 자고 있었어?"

 "할 말 있어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혼자 울었는지 얼굴에 미미하게 남아있는 눈물 자국이 신경쓰였다.


 "뭔데 그래..?"

 "그냥 누워서 들어. 너 아직 환자잖아."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네가 제지했다. 누워서 들으라는 말은, 어쩌면 내 염려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우회적인 긍정이 아닐까.

 그러길 바랐다.


 너는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들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듯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너. 

 내가 벽에 기대듯 반쯤 누워 너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을 때, 네가 입을 뗐다.



 "가끔씩 작가가 된 걸 후회할 때가 있어."

 

 너는 최대한 덤덤하게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배어있는 깊은 슬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작가가 독자의 기호를 분석하고 사유하듯, 때로는 독자가 작가를 읽어낼 때도 있는 법이다.



 "스트레스 많이 받아?"

 "장난 아니지."


 너의 미소에서 어색함이 보였다. 마치, 웃지 말아야 할 연극배우에게 맞지 않는 가면을 씌운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그 미소가 냉소적이라거나, 자조적인 웃음은 아니었다. 



 "백날 머리 싸매도 아이디어는 떠오르지도 않지, 연재처는 마감하라고 부추기지, 독자들은 악플이나 쓰질 않나."

 

 너는 누워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머리판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았다. 

 내 팔에 맞닿은 너의 다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래도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왜?"


  "독자로 너를 가진 건 후회하지 않거든."



 원래였으면 오글거린다고 하지도 않았을 말을 너는 진심을 담아서 하고 있었다.

 애달픈 눈으로 나와 눈길을 마주하던 너는 왼쪽 팔을 걷어올렸다.


 팔목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이거."


 설화팩이었다. 



 "나 좀 많이 아픈가봐."



 평범한 질병은 아니라는 것은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증세가 심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팩을 붙인 자리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너 돌아왔을 때부터 조금 이상했어."

 ".....수영아."


 "이것도 빌어먹을 개연성인건지 뭔지."

 


 너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렸다. 


「독자가 태어나기 위해, 작가는 죽어야 한다.」



 내가 널 살렸다고 생각했다. '김독자가 돌아오지 않은 결말'에서 희생한 너를, 약간의 개연성을 이용하여 되살렸다고 생각했다.

 그 개연성이 이렇게 큰 후폭풍을 만들지는 생각치도 못했다.



 "한달 남았대."


 "뭐.......?"


 "..........소멸할때까지."



 바로 앞에서 울고 있는 너는 '아바타'라든가, 그런 허상이 아니다. 

 잔인한 방식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한수영'이다.


 난 죽어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게 무슨ㅡ"


 "김독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순간, 네가 나의 어깨를 꽉 눌렀다.



 "그러지 말아줘."


 너는 내 옷깃을 잡고 나를 눕히더니, 자기도 따라서 내게 붙어 누웠다. 



 "흥분하는 거, 몸에 안좋아,김독자."



 이 상황에서도 나를 챙기고 있는 너를 보니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그 누구보다 힘든 것은 너일텐데. 



 "나만.....나만 아니었어도...."


 내가 살아나지 않았더라면, 너에게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네가 나 때문에 영원히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거칠어진 숨소리가 흐느낌으로 바뀌는 순간. 너는 내 손을 꾹 쥐고, 이렇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죄책감에 빠진 나에게 수시로 건내었던 말. 때론 냉정하고, 때론 무덤덤하고, 때론 상냥했던 그 말. 

 

 언젠가 네가 소멸할 적 전해왔던 그 말을 회고하며, 다시금 사라져가는 너에게 이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미안함도, 고마움도 넘어설,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한 감정을.


 

 나는 너를 바라보았고, 너도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내 품에 안긴 듯, 나에게로 깊숙이 들어와 내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복받은 놈이라 생각하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울어주는 사람도 있고."



 내 볼을 감싼 네 손이 차가웠다. 베고 있던 배게가 축축히 젖어갔다.


 "그러니까, 절대 네 탓이라고 자책하지 마. 

그러면 나 화날 거 같으니까."


 나는 너를 끌어안았다. 

무정한 눈물이 너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가장 오래된 꿈' 따위의 것이 무슨 소용인가. 가장 소중한 한 사람조차 지키지 못하는데.



 그 뒤의 극적인 반전은 언감생심에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너를 안고 계속 울다가 지쳐 잠들었을 뿐이다.


 몽롱한 어둠에 빠져가던 그 때, 서로에게 차마 해주지 못했던 말을 전했던 거 같기도 하다.

 아마 서로 간의 약속, 다짐, 정죄, 뭐 그런 것이겠지.


 무슨 말인들 어떻겠는가, 우린 뭐가 됐든지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인데.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들은 마치 오래된 삼류 영화의 대사와도 닮았더라.




*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렀다. 날마다 눈을 뜨면 정밀 검진을 받았고, 이설화와 상담을 했다. 

 그녀는 남은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고 조언하였다. 


 이기적이라고 지탄받던 때도 있었는데. 내가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참 웃겨.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그 무게감도 달라졌다. 무심한 듯 정직하게 쌓여가는 시간은 나날이 짙어져가는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날마다 쇠약해져 가는 나를 볼 때마다 너의 얼굴은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말라니까. 



 몸이 아프다고 해서 마냥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던 것은 아니었다. 너와 얼굴을 마주보며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면, 노트북을 꺼내 너만을 위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장르는 로맨스였다. 로맨스는 처음 써보는건데,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비장해졌다. 

 이 글을 읽어줄 네게 기대어, 한글자 한글자 정성을 다해 이야기를 써 나갔다.



 내 소설을 읽으며 너는 울고 웃었다. 한 화를 읽고 나면, 넌 네가 느꼈던 모든 감상을 나에게 표현했다. 

 이따금씩, 넌 내게 전개 방식이나 다의성 같은 것들을 조언해 주기도 했다. 나는 군말없이 그 피드백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야기는 독자와 작가가 함께 쓰는 거니까.



 소설의 초입부가 끝나갈 무렵, 넌 예정된 입원 기간이 지났다. 네가 없는 시간은 어떻게든 버텨 봐야지. 

 그리 다짐하고 매일 병문안이나 와 달라고 말했더니, 넌 퇴원하지 않고 내 곁을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이 자식 은근히 설레게 한다니까. 그렇게 너와 함께 밥을 먹고, 소설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너의 부축을 받으며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기도 했다.



 한번은 내 병세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김컴 일행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사내같던 이지혜는 나를 붙잡고 오열했고, 늘 침착하던 유상아는 이성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던 유중혁도 고개를 푹 숙인 채 과묵을 유지했다.

 난 그들을 쓱 둘러본 다음, 힘없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울지 마 이것들아. 나 아직 살아있거든?"


 일행들을 달래기 위해 최대한 다정하게 냈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자,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나 완전 헛살지는 않았나 보다.


 그들 앞에서 겉으로 멀쩡한 척 연기하고 나면, 너는 파르르 떨리는 내 손을 꽉 잡아주곤 했다. 실제로 멀쩡하긴 했다. 

아마 한 통 통째로 들이부은 진통제 때문이겠지.



 항상 고비는 밤에 찾아왔다. 온 몸이 오한에 심하게 경련했고, '나'라는 존재 설화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지속력과 강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져 갔다.

그럴 때면 너는 내 손을 잡아주기도 했고, 안아주기도 했다.

 확실히 너는 내가 조금이라도 더 견딜 수 있게 하는, 힘겨운 여생을 연명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쌓여 한 달이 되었다. 내 몸은 진즉에 맛이 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앞은 잘 보이지도 않고, 너의 부축 없이는 몇 발자국도 힘에 부쳤으며, 전신이 냉동고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이게 뭔 꼴이람.


 그 날 나는 직감했다. 속절없이 몰려온 어둠이 긴 낫을 세우며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인생의 마지막 날을 병실에서 아스피린 냄새나 맡으며 보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도 성좌인데, 이렇게 덧없이 죽는 건 좀 억울하잖아.

 



 소설의 마지막 편을 너에게 보여주고 난 다음, 자그마한 부탁을 꺼냈다. 



 "김독자."


 네가 향해있는 창문에 내 핼쑥한 몰골이 비췄다. 그나마 아침에 복용한 독한 약물 덕인지 상태는 괜찮은 편이었다.



 "나 부탁이 있어."



 너는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눈을 비비며 너에게 힘겹게 초점을 맞췄다. 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말 해, 수영아."


 "바다에 가보고 싶어."

 



 고개를 푹 숙인 너는, 잠시 후 고개를 들었다. 

 너는 울고 있었다.


 너도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한 달 하고도 며칠이 흐른 후였다.

 그렇기에 내 부탁은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통보로 들렸을 것이다. 


 할 말을 찾는 듯 입을 달싹이던 너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사람들한테 전화..."

 "독자야."


 벌벌 떠는 너의 손을 깍지를 껴 잡았다. 고통스러워 하는 내게 네가 해주었던 방식 그대로.



 "이미 유상아한테 말했어."



 잠시 숨을 고르던 너는, 곧 진정되었는지 휴대폰을 내렸다.


 "........그렇구나."



 너의 손을 잡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걷기 몹시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걸음을 옮겼다. 

 너에게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기에.





*





달빛에 비춰진 너의 잔상이 흩어져갔다. 파도가 부서지는 그 자리에, 너와 내가 있었다.


 "결국 해피엔딩이네."


 네가 써준 로맨스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여주인공이 그토록 찾던 남주인공을 만나 재회하는 것을 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들어?"


 어딘가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자, 네가 내게 기대며 물었다.



 "다 좋긴 한데.. 결말이 살짝 개연성에 안 맞잖아."

 "결말이 어때서?"

 "뭔가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튼 느낌이 들어서."



 너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차디찬 손이 내 손과 맞닿자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니까 소설인거지."


 

 속삭이는 네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무심결에 불어온 바닷바람이 우리를 훑고 지나갔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너는 그 바람조차 버거워하는 듯 몸을 움츠렸다.


 이 순간을 끝으로 영원히 너를 볼 수 없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사실이다. 

 너와 함께 있는 마지막 순간에는 이러한 생각을 최대한 지우려 노력했다. 네가 가보고 싶다던 바다의 소리를 즐기며,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활짝 웃는 너의 얼굴을 눈에 담고싶었다. 



 "김,독자."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지자, 그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지우개로 지운 듯 하얗게 지워져버렸다.


 했던 다짐들이 무색하게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미안,해. 조금 더, 견뎌보려고 했는데."


 빛이 바랜 네 몸의 말단부가 서서히 공기 중으로 기화하고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네 손의 온기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세게 쥐어봐도, 돌아오는 것은 야속한 내 손의 감각 뿐이었다.


 네게 마지막으로 할 말을 골라내고 있던 차, 네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서 다행이야."


 너는 그 작고 가냘픈 팔로 내 등을 토닥거렸다.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까닭은 시야를 덮은 눈물 때문일까, 수평선에서부터 길게 뻗은 노을의 광영 때문일까.



 "무슨....약속?"



 넌 대답하지 않았다. 또 대답하지 못했다. 힘겹게 단어를 추려내는 듯 달싹이던 입술은, 그것을 포기하고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네 자그만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물은 길을 내며 흘러나와 네 입술을 적셨고, 그것은 곧 내 입술까지 적셨다.



 차갑게 식은 몸과는 달리, 네 입술에는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




 "수영아, 한수영, 이ㅡ"


 내가 마지막으로 본 너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이.



 작가에게는 죽음이 남았다.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네가 소멸해버린 바닷가의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째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리멸렬한 몸뚱이로 행복하게 웃으며 키스하던 네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한참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해변에 쭈그려 앉아있던 나는, 파도에 밀려온 조약돌 하나를 툭 걷어찼다. 

 뒤늦게 도착한 일행들이 너를 부르짖는 소리가 귓가에 어지럽게 울렸다.





 미처 전해주지 못한 레몬 사탕이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렸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