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은⋯ 안해




[이게 우리 세계선의 의지다. 더러운 스타스트림의 노리개들아.]


우리엘의 말이 심기에 거슬린다는 듯, 세 도깨비 왕이 잇달아 반응했다.


[의지라⋯]


[어이가 없네.]

[말같지도 않은 소리나 하네요.]


다소 엉뚱하게도 그들의 신경에 거슬렸던 단어는 자신들을 폄하하는 ‘더러운 스타스트림의 노리개들’이 아니라 ‘의지’란 단어였다.


[우리가 파괴했던 여느 세계선의 존재든 한 번쯤 그 말을 뱉었었지.]


대장 격으로 보이는 도깨비 왕의 말에 다른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놈의 의지 타령, 이제는 지겨워서 못 들어주겠네.]


우리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창공에 펼쳤다.


<에덴>의 ’대선‘을 계승한 존재의 가장 고고하고 찬란한 상징이 세 도깨비 왕의 눈앞에서 마치 태양처럼 환한 빛을 드리웠다.


[대천사 놈⋯]


정오의 태양인 라를 비롯해 신화의 몇몇 고위 성좌들은 그런 우리엘의 모습에 다소 불편한 기색을 내뿜었다.


대부분 ‘태양’과 관련된 대표 설화를 가지고 있던 성좌들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성운의 존재가 자신의 설화보다 더 거대하고 환한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게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불편한 기색을 내뿜을 뿐, 별 다른 반응은 하지 못했다. 


어차피 그들의 적은 도깨비 왕들이었기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을 테지만, 우리엘의 설화가 이 세계관의 어떤 태양보다도 강렬하게 빛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눈을 뜬 우리엘의 주위로 백색의 불꽃이 플레어처럼 뿜어져 나왔다.


언제나 고고한 자태를 뿜내던 그녀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는 마왕의 것보다도 섬뜩하게 눈앞의 적들을 향해 불타고 있었다.


나는 분명 저 눈빛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숙적을 찾아 수많은 세계선을 떠돌아 다니며 ’재앙‘이자 신격의 ‘왕’으로 강림해 세계를 파멸로 뒤엎던 한 존재의 눈빛을.


우리엘은 이제 <에덴>의 마지막 ’가장 오래된 선‘이지만, 사실 그녀를 나타내는 수식언은 따로 있었다.


[일전에 너희에게 처발렸다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게 좋을 거야. 이제는 제대로 마음 먹었거든.]


어디선가 아찔한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별들이 저마다의 기합을 내지르는, 그 섬뜩하고도 찬연한 소리가.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너희를 찢어 죽이기 위해서라면 기필코 나는 선을 저버리고 악마가 될 것이다!]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 자신이 심판할 마지막 대적을 찾은 심판자가 악마 같은 형상으로 세 도깨비 왕에게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강한 파열음과 함께 순간 주변의 공간이 크게 진동했다.


공격의 후유증으로 우리엘과 도깨비 왕을 뒤덮은 모래먼지 때문에 성좌들조차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는지 눈을 찡그렸다.


다만 우리엘만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방금의 충격파는 자신의 공격을 도깨비 왕이 막음으로써 생긴 것이 아니었다.


실룩거리는 한 도깨비 왕의 웃음과 함께 불온한 기운이 우리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잇-!]


지축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우리엘이 지상으로 [업화의 불꽃]을 쏘아내며 불온한 기온의 진격을 막아냈다.


불꽃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내려앉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우리엘의 두 눈이 아찔하게 떨렸다.


도깨비 왕이 펼쳐낸 설화에서 나타난 저 기운은 서서히 이 섬을 뒤덮으며, 또 거대한 무언가의 형상을 만들기도 했다.


오만하고 방자하며, 고고한.

여느 성좌들과 다름없는 눈빛을 한 그것.


우리엘은 분명 언젠가 저 설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



[우리엘, 거기 있는 문서 좀 줄래요?]

[응!]


우리엘이 메타트론을 도와 <에덴>의 서고를 함께 정리했을 때의 일이었다.


메타트론의 부탁으로 집어든 양피지에 적힌 글들은 마치 마왕의 것처럼 지독한 설화를 가진 문장들로 빼곡했다.


[이건 <에덴>의 기록은 아닌 것 같은데?]


문서를 받아든 메타트론이 답했다.


[<에덴>의 서고에는 다른 성좌나 성운의 설화에 관한 기록들도 많습니다. 예컨대, 지금은 제대로 전승조차 되지 못하는 것들도 많죠.]


[으엑. 그런걸 굳이 하나하나 보관할 이유가⋯]


[잊혀진 것들의 기록이 그렇지 않은 것들의 기록보다 가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늘의 서기관이 안경테를 올리며 우리엘의 표정을 관찰했다.


[우리엘, 궁금합니까?]

[헤헤.. 응!]


메타트론이 싱긋 웃었다.


[좋아요. 이런 지식도 교양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이 문서는 지금은 잊혀진 한 성운의 설화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때 성운 <명계>와 대립했었던, 아 이 표현이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명계와 올림포스가 아직 분화하기 전이라.]

[신화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한 신화급 성좌를 필두로, 동양의 지옥설화를 모두 독식했던, 지금의 <베다>나 <아스가르드> 같은 강대 성운들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름이 없던 성운이었죠.]


[<에덴>이 속된 말로 ‘천국’이라면, 이 성운은 지옥. 그 중에서도 심연의 나락이라고 할 수 있었겠죠.]



*



[너희들, 대체⋯]

[대천사, 악마가 되겠다고? 너는 아직 그것의 의미를 모른다.]


우리엘과 눈이 마주친 존재의 눈빛은 오만했으며 지고했다.


동양의 대표 지옥설화를 계승한, 한 성운의 절대자.


[거대설화, ‘???’이 포효합니다!]


[우리엘!]

[비둘기!]


우리엘을 향해 달려온 제천대성과 흑염룡, 그들도 우리엘과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


설화의 정체를 확인한 하데스가 분노와 함께 침음했다.


[너희는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성운, <저승>이 심연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성좌, ‘염마라사‘가 자신의 설화를 개방합니다!]


나, 염라가 이곳에서 너희의 죄지은 업보를 청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