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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사람들이 그렇듯, 종종 꿈을 꾸고는 한다.

한낮에 잠깐 눈붙이는 사이에 꾼 꿈.

열대야에 지쳐 뒤척이다 꾼 꿈.

첫 눈이 내리는걸 지켜보다 잠는 날에 꾼 꿈.

일어나면 사라질 꿈들을 종종 꾸고는 한다.


그러다 언젠가 너의 꿈을 꾼 적이 있다.

운명과 같이 꿈속 너를 사랑했고,

일어난 뒤에도 꿈의 잔향이 남아 가슴뛰게 만들었다.


운명이란걸 믿지는 않지만,

어쩐지 너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일어난 직후의 감정은 강렬했지만,

시긴이 지남에 따라 점점 퇴색되어갔다.

단지 특이했던 꿈을 꾸었구나, 하고 말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단지 학생일 뿐이였고,

꿈에 집착하기에는 내 눈앞에 있는 시험과 입시가 더 중요했기에

꿈에 대한건 점점 잊혀져갔다.


*

그렇게 꿈이 대한건 잊고있었지만,

너를 만난 순간 잊었던 꿈과 그때의 감정이 흘러넘쳤고,

우린 운명이라 직감했다.


네게 홀린듯 다가가서는 사귀자고 말했다.

다른 남자아이들과 막 운동을 마치고 땀을 닦으며 웃고있던 너는

잠깐 당황하더니 나를 받아줬다.


너무나 기뻤다.


*

학생들간의 연애가 그렇듯,

우리는 서툴렀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나면

부끄러움에 새빨갛게 변한 네 얼굴을 보여 웃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며 손을 잡고 걸어갔다.


이어폰 하나를 나눠 끼고, 어깨를 붙인 채 노래를 틀면

서로의 심장박동 소리만 들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이였기에 모든게 서툴렀지만,

처음이라는 것은 그것마저 풋풋함으로 바꿔주었다.


모든 순간이 사랑스러웠고,

모든 순간이 운명적이였다.


*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

너무 당연한것이였다.

우린 운명이니까.


*

네게 그 꿈 얘기를 해줄때면 너는 항상 웃었다.


*

언제부터였을까.

네가 해주는 모든게 당연하다 느껴졌다.


우리집과 너희집이 꽤 멀었음에도 항상 우리집 앞까지 바래다 준 것.

기념일에는 네가 나에게 선물을 주는것.

내가 원하면 언제든 네가 만나러 와주는것.

만나서도 내가 싫으면 

내 앞에서는 싫은소리 하지 않았던것.

...


운명의 상대인 나에게 네가 헌신하는게 당연하다 생각했던걸까.


*

내 사랑을 네가 알거라 생각했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거라 생각했다.

우린 운명이니까.


*

그러다 네가 나에게 이별을 말하더라.


우리를 엮어준 꿈 얘기에 항상 웃었던 네가

씁쓸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게 너무나 낯설었다.

단지 미안하다는 말을 할 뿐인 네 앞에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

차라리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잊어버린채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꿈이니 운명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지우고 남은 것은

나는 단지 네게 반했다는 사실 하나뿐이였음을.

그 단순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대가는 컸다.


이제와 후회해도 너와의 기억들은 단지 백일몽이 되어갈 뿐이였다.

내가 수없이 꾸었던 다른 꿈들처럼

이제는 닿지 못할 저편으로 녹아내려갔다.


한번이라도 더 사랑한다 말해줄걸.

조금이라도 더 너와 시간을 보낼걸.


운명이라는 핑계로 네 모든걸 당연하다고 치부해버렸다.

아무 의미 없는 꿈일 뿐이였는데...




운명의 상대라고 많은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다

결국 다 잃어버리고 후회하는게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