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여."


"오랜만에 뵙습니다.황녀님."


"공작위도,용사로써의 명예도,그리고...짐의 약혼자 자리마저 내버리고는 향했다는게 고작 이런 벽지인가."


"제국에 비하면 모자란 점이 있을 수 있어도 한적하게 지내기에는 나름 괜찮은 곳 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제국으로 돌아와 줄 생각은 없나?"


"거절하지요.저는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듭니다."


"부디 다시 한번만 생각해주게.이 나라는 아직 자네를 필요로 하고있네."


"키리에."


"...!"


"저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는 ...질렸거든요. 제국의 선전탑 역할도, 허울뿐인 약혼자 신세도."


"......."


"하나만 묻겠습니다. 도대체 제국이 저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뭡니까? 용사파티의 위명이 필요한 거라면 아직 반절도 넘는 파티원들이 제국에 머물고 있고, 공작위도 제 누이가 계승했을 텐데요."


"....사...."


"예?"


"사랑,하니까...."


"......허."


"비,비록 어릴 적의 치기로 그대를 밀어내긴 했지만 짐은,나는-"


"누굽니까?"


"-이제야 내 마...응?"


"황제입니까?아니면 교황? 시키는데로 마왕의 목을 쳤는데도 아직 잘드는 검이 필요하답니까? 아니면 필요없어진 사냥개를 솥에 넣으라덥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게 아니면,이제와서 당신이 저를 사랑한다 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아니다.용사여. 나는-"


"제 이름은 휴고입니다.용사가 아니라."


"......."


"당신은 단 한번도 저를 '휴고'라는 사람으로 봐주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공작가의 후계자나 용사라면 몰라도.

그런 당신이 제게 사랑을 속삭인다고 제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내가 정말,정말로 잘못하였다. 그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정략혼으로 묶인다는게 싫어서,그래서 그랬을 뿐이야. 내게 다시 한번만...기회를..."


"....뭐,설령 당신의 마음이 진짜라 하여도 받아들일 생각은 없지만요."


"...어째서,어째서냐? 내가 과거에 저지른 과오 때문이라면 내 평생에 거쳐서라도 속죄를-"


"그런건 아닙니다. 그때는 저도,황녀님도 어렸으니까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러면,대체 무엇 때문이냐..?"


"저,결혼했습니다."


"...뭐?"


"한 2년쯤 됐나요. 여기 정착하고 나서 만난 아가씨랑 결혼했습니다. 제 모든걸 털어 놨는데도 저를 그저 저로 보아주던 여인이었죠."


"......"


"그래서 저는 당신을-키리에? 갑자기 손은 왜-"

 

"어,어떻게.....그대는 나의 약혼자이지 않은가...날 사랑한다 하지 않았나...."


"....."


"그 모든건,거짓말이었나..?"


"그럴리가요."


"그럼 대체 왜...?"


"...말씀드렸었죠,저는 이제 지쳤다고.


당신을 향한 감정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0년,자그마치 10년이었습니다. 당신이 절 투명인간 취급하며 제 마음을 거부한 기간이.


아무리 격렬하게 타오르던 감정이라도, 그정도면 식기에는 충분한 시간 아닙니까?


그 와중에 용사로 선택되어 마왕과 싸우고 겨우 살아 돌아오니 이제는 순 살아있는 선전탑 취급을 하고....이미 식어가던 불씨에 찬물이 끼얹어진 격이였죠.


그래서, 그 모든것에 염증이 나서 제국을 떠나 방랑하던 도중 그녀를 만난 겁니다.


제게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보내주는 이를 만나니, 반쯤 관성으로 버텨오던 마음에도 한계가 찾아 오더군요.


그래서,그런 것 뿐입니다.


만일 당신이 조금만 일찍 저를 만나러 오셨다면 또 어떻게 됐을 지 모르겠지만 뭐,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랬,던가. 아아.나는...."

.

.

.

.

.

"휴고. 평소보다 늦었네요?무슨 일 있었어요?"


"미안,아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 좀 하고 오느라."


"아는 사람? 잭? 칼? 누구에요?"


"그냥,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


"으음,술마시고 온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그럼 됐어요. 저녁 차려놨으니까 와서 드세요."


"오.맛있겠는데"




-으득


"저 자리는 내것이었는데...내것이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는 쓸모가 없는 법이지."


"..!!!"


"자신의 손에 있을때는 그 소중함을 알지도 못하면서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애원하고 갈망하는 모습이라, 어리석음의 극치로군."


"넌,누구냐!!"


"이야기꾼.원래 서술자가 이야기에 개입하면 안되는데...너무 답답해서 한소리 하러 나왔다."


"그게 무슨-"


.

.

.

어떻게,이번 이야기는 마음에 들었는가?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다음번에는 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오도록 하지.


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