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


"아.오셨어요.아버지."


"또 카렐의 방에 있다가 왔느냐?"


"네.매일 청소는 해줘야 하니까요."


"청소라면 이미 메이드들이...아니다. 말린다고 들을 거였으면 진작에 그만뒀겠지."


"헤헤."


"이건 넘어가더라도 하나 말해야 할 게 있다."


"뭔가요?"


"저번주 비오던 날 밤에 카렐의 묘 앞에서 너를 봤다는 사람이 있다."


"....집사장인가요? 비밀로 해주기로 했으면서..."


"내 생각엔 그런 사안을 1주일이나 감추고 있던 것 만으로도   집사장은 너와의 신의를 지켰다고 보는데."


"으음.그것도 그러긴 하네요. 아참. 이번에 카렐 방을 청소하다가 또 다른 일기장을 찾았는데-"


"말 돌리지 말고."


-저벅저벅


"이리나. 또 목숨을 끊으려 했느냐?"


"아뇨. 그런 건 아녜요. 그냥 그날따라 카렐이 보고싶어서.."


"설령 그렇다 한들 병상에서 일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몸으로 겨울비를 그대로 맞고 있던 것이냐? 그러다가 어떻게 될 줄 알고."


"......"


"너마저 카렐의 뒤를 따르면 나는, 이 아비는 어찌 살라고 그러느냐. 내가 죽어 너희 어미 얼굴을 어찌 보라고 그러느냔 말이다. 제발 네 몸을 소중히 여겨라."


"죄송해요.아버지. 하지만......"


"말해보거라."


"..제가,무슨 염치로 살아있을까요."


"....이리나..."


"그저 병약한 몸을 타고났다는 이유 하나로 가문의 관심을 독점하고, 또 그걸 즐겨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이나 하며 카렐에게 향할 애정과 관심을 빼앗은 제가,


그런 누나를 낫게 해주겠다고 전 대륙을 돌아다니던 카렐을 내심 비웃은 제가,


여정 도중에 병을 얻어 죽어가는 카렐을 보고 나서야 제 과오를 깨닫, 아니. 그런 와중에도 제 속 편하자고 카렐이 저를 욕하고 증오하기를 바라던 제가, 도대체 어떻게 속편히 살아있을까요."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저 내가 부덕해서, 이 아비가 모자라서 카렐은 떠난거다. 이리나 네가 잘못한 일이 아니야."


".....그냥 그렇게 믿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리나...."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지만요."


-스륵


"제가 이번에 새로 찾은 카를의 일기장 인데, 어디더라. 아. 여기 한번만 읽어보세요. 여기랑 여기도."


○월○일  날씨:맑음


어제 수련하다가 비를 맞은 탓인지, 감기 기운이 돌았다.


치유사 말로는 꽤 심하는 것 같던데, 부디 증상이 오래 안 갔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누님과 가문 때문에 신경쓸 게 많은 아버지께 걱정을 끼치긴 싫다.


그래도 가끔은 나도 신경을 써주셨으면


 ...아프긴 아픈가보다. 이상한 생각도 막 나고.


오늘은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월☆☆일. 날씨:흐림.


누님의 병을 고칠 방도를 찾아 대륙을 누빈지도 1년이 다되간다.


..쉽지 않을거란건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할 정도로 정보가 없다.

.

.

.

가끔은 그냥 다 놓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평생을 병상에 누워 산 누님의 고통이 이보다 덜할까.


대륙을 돌아다니며 풍경이 아름다운 곳도 여럿 찾았으니, 누님이 나으면 함께 그곳들을 여행하고 싶다. 물론 아버지도 같이.


그러려면 일단 누님이 완쾌해야겠지.


내일은 또 어디로 가볼까.



■월 ■일. 날씨:비.


드디어,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처음부터 인간의 것이 아닌 병을 인간의 방식으로 치료하려니낫질  않을 수 밖에.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지만, 더 이상 치료가 늦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약재를 구해서 돌아가야 한다.


..일단 마족령에 잠입부터 해야겠지. 혹시 모르니까 약재만이라도 가문으로 보낼 방도도 마련해야겠다.


□월 □□일. 날씨:모름


...약재를 구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마족의 저주에 당하고 말았다.


해주는 불가할 듯 하고, 저주의 내용은...아마 착란과 쇠약이 겹친  듯 하다.


지금도 환영이 들리고 환청이 보이는- 어째서,어째서 내가 죽어야 하는거지? 어째서-제길.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기다니.


가문에 돌아갈 때 까지만이라도 버텼으면 좋겠는데.


-털썩


"아.아아...."


"심지어 이거, 불태우려던 흔적이 남아있었어요. 아마 우리가 읽고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없애려고 한 거겠죠.

정말 미련할 정도로 착한 아이에요."


"아아...카렐...카렐..."


"....저는, 제가 정말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미워요. 가능하다면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


"하지만 이제 제 목숨은 저만의 것이 아니니까, 그럴 일은 없을거에요. 절대로."


"......하지만, 그렇다면 '너'는 죽은것과 다름없지 않느냐."


"......"


"목숨만 붙은 시체로 살아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더냐...?"


".....제가 저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 라고나 할까요.

아버지 앞에서 할 말은 아닌거 같긴 하지만요."


"....."



-

오랜만에 로무원 정주행 하다가 루이제 언니 이야기 보고 문득 생각나서 쓴 글.


제목은 진짜 뭐로할지 생각이 안나서 대충 적어놓긴 했는데  생각나는데로 수정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