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물 쓰고 지우다 쓰고 지워보고,

얀데레채널도 가서 보고

이것 저것 봐보고 하다가 따라 써보는데 쉽지가 않네.

글 잘 쓰는 게이....존경


일단 지름.


완결 내도록 노력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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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예전에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훨씬 더.

내가 알고 있는 과거에 그녀는, 이런 짓 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추위에 차가워진 손으로, 그녀에게 남긴 메신저를 확인한다. 

옆에 있는 숫자 1은,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화면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 이 업계에는 늪처럼 어둠이 많아.

회사 이사의 말이었다.

이런 갑질도 그 중 하나겠지.


*****


난 후순이라는 아이돌이 있는 소속사에서 일하는 것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부터 매니저는 아니었다.

허름한 건물, 지하의 노래방이 딸린 건물을 급조해서 만든 소속사에 서류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로 들어갔을 뿐.

사장이 대타 구할 때까지만 장기 계약직을 맡아 달라는 간청에 2년 정도 더 일했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 후순이와 함께 울고 웃으며,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구른 결과.

대한민국 여자 톱 가수 후순이의 전속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아이돌 시장에서 나와 후순이는 정말 별짓을 다 해보았다.

애초에 노래방 사장 출신인 사장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었지.


후순이를 얼굴 가린 스트리머로 올려보기도 했다.

타 스트리머 방송에서 노래경연대회 열리면 참가하게 한 적이 있었다.

같이 CD를 굽고, 케이스를 포장해본 적도 있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다중이짓을 한 적 있었다.

대학로에서 버스킹도 해보았고, 홍보용 노래 영상 주소를 QR코드를 변환해 벽에다가 도배하다가 걸릴 뻔해서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녀에게 줄 곡을 받기 위해 프로듀싱해주는 사람에게, 또는 작곡가에게, 작사가에게, 뮤직비디오 만들어줄 사람에게.

그들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어보기도 하였다.


후순이는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냐며, 눈물 흘리며 울었다.

하지만 그녀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간신히 빌린 안무 연습실에서, 밑창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미친 듯이 연습했다.

지하 노래방을 개조해서 만든 연습실에서 온종일 보컬을 연습했다.

그녀의 열정이 담긴 모습을 보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고 싶었다.


하늘이 감동한 걸까.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의 노래가 맘에 들었는데, OST로 써도 되겠냐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나와 후순은 서로 부둥켜안고 하루 종일 울었다.


코피 터지도록 법률책들과 사이트를 뒤져서 저작권 보호 조항들을 어설프게나마 강조하여 메일을 보냈다.

방송사에서는 쿨하게 OK 사인을 보냈다.


행운은 연이어서 온다고 했는데 사실이었다.

어느 BJ방송에서, 그녀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영상이 올라왔다.

시청자들에 반응이 좋았고, 원곡 링크를 따라서 온 사람들에게 이 가수 누구냐며 음원 순위가 역주행을 달리기 시작했다.

곧 음악 전문방송 채널에서 연락이 오길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그리고 매번 후순이가 먹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후순이는 내 지갑 사정이 걱정되는지 날 쳐다보며 말했다.   

- 매니저 오빠, 이거 비싸지 않아요?

그녀에게 씩 웃으면서, 방송 출연 제의 메일을 인쇄한 서류, 

그리고 유명 작곡가에게서 곡 주고 싶다는 문자를 보여주었다.


후순이는 그 자리에서 냅킨 3통을 다 쓸 정도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큰절이라도 할 기세라서, 말렸다.


제대로 된 코디조차 없던 소속사라서, 

내가 발로 뛰면서 어떻게든 모은 인맥으로 의상을 받아내었다.

대형 소속사에서 버려질 낡은 의상이었음에도, 후순이는 매우 들떠 있었다.

방송국을 가기 위해 렌트한 차로 벌벌 떨면서 들어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떠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후순이는 긴장도 하지 않은 채, 드디어 자신이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차가워진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아이돌은 아이돌이구나.


방송 출연은 대성공이었다.

얼굴 없는 가수를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줄지어 쏟아졌다.

립싱크도 아닌 라이브였기에, 반응이 더 호평이었다.

물론, 악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거라도 있어서 좋았다.

예전에는 아예 무플이었으니까.


거지 같던 노래방 딸린 소속사 건물을 버리고, 새로운 건물로 이사했다.

내가 사실 아직도 계약직이라는 사실에 분노한  후순이가 사장에게 욕설을 퍼부어서 전속 매니저로 계약이 되었다.

경영해줄 이사를 뽑았고, 그 외 트레이너들을 뽑았다.

드디어 연습실과 음반 작업실이 생기자 나와 후순이는 또다시 울고 말았다.


*****


- 뭐해? 빨리 가지 않고. 등신이야?

옛일을 회상하며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무언가가 내 뒤통수에 부딪힌다.

후순이가 이제 내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오빠라고, 매니저라고도 부르지도 않는다.

이제는 7년 차 징크스마저 극복해버린, 국내 솔로 여자 탑 가수 자리에 오른 그녀였으니까.


이 모든 것은, 후순이가 스스로 이룬 것.

자수성가의 상징.

흙수저 성공의 상징.

소형 기획사를 대형 기획사로 끌어올려 버린 여제.


TV와 연예계에서 만들어낸 소형 기획사 아이돌 성공 스토리에 먹혀 버려, 

자신감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뒤에서 내가 어떤 짓을 하는지 모르고, 말이지.


- 야.  차 좀 바꿔. 차 내부 꼬라지가 이게 뭐냐? 벌써 2년 되지 않았어?

- ...알았어. 알아볼게.


후순이는 변했다.

우리가 고생한 추억이 깃든 차라며 바꾸기 싫어하던 밴을 2년도 되기 전에 바꾸자고 했고,

핸드백도 '하나만 있으면 되지', 라고 말하던 그녀가 명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다주는 식사 배달에 대해서도 점점 트집을 잡으면서, 나에 대해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매니저들은 깔끔하게, 말쑥하게 차려입고 다니는데 넌 뭔데 후줄근하게 다니냐면서, 

외모 관리는 하는 거냐고 욕하기 시작했다.


돈 많은 셀럽들, 유명 배우들과 어울려 놀며 밤늦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연습으로 다른 아이돌과 격차를 메웠던 그녀는, 

탑이 되자 이제는 돈으로 그 격차를 벌리고 있었다.


[위잉]

메신저 알림 진동이 울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알림.

-...후순아. 오늘 다른 협력사와 미팅이 있어. 숙소에 데려다주고 먼저 갈게.

- 그러던가. 내가 맘에 안 드는 거 가져오기만 해봐? 넙죽넙죽 가져오지 말라고. 내가 누군 줄 알고. 어?

폰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운전석을 발로 걷어차며 말한다.



차를 몰아 인천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공항 야경의 화려함과 밤바다의 우울함이 공존하는 호텔.

와인병을 손에 들고 호텔 프런트에서 그녀에게 전화한다.

 

- 무슨 용무라도?

[기뻐하는 목소리로 좀 받아주는 게 어때?]

- 당신 목소리를 듣고 기뻐한다면 미친 인간 아니겠습니까?

[후후. 변함없네. 1505호 방이야. ]


- 똑똑

노크를 하자, 문이 열린다.

속옷 위에 샤워가운만을 두르고 있는 중년의 여성.

메이저 언론사에 임원인 여성이다.


- 몸에 뭐 좀 걸치지 않겠습니까.

- 어머, 내 걱정이라도 해주는 거야?

- 안 좋은 소문을 몸으로 퍼뜨리지 좀 말라는 겁니다만.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근다. 

그리고 난 침대에 떠밀려 눕혀진다.


- 원하는 게 있으면, 일단 날 만족 시켜주는 게 어때?

   자, 날 사랑한다고 말해 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이 바닥에 끈적끈적한 오물들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

난 후순이를 위해 이 여성에게 -

몸을 바쳤다.


정말 후순이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내 욕심이었는지.

성공한 아이돌의 매니저가 되고 싶다는 야망 때문이었는지.


- .....사랑, 합니다.

쥐어짜 내듯 말을 내뱉자마자, 그녀가 내 옷을 벗기고 올라탄다.

거칠게 내 입에 키스를 퍼붓고, 쓰다듬는다.


- 넌 내가 가져본 장난감 중 정말 최고야. 

  어째선지 알아?

 그 괴로운 얼굴, 공허한 얼굴... 그러면서 날 사랑한다고 해준다는 그 표정.  정말 좋아... 후후후


한 마디로, 미친 여자다.

도와주겠다고 맘씨 좋은 누나처럼 접근해서, 

약점을 잡고, 가지고 놀다 질리면 망가뜨려서 버려버린다.


- 난 남자가 망가져 가는 걸 좋아하거든.

- 그러다 언젠가 칼 맞지 않겠습니까?

- 나한테 몸 대준 남자들, 전부 그렇게 말했어. 

  근데 어떻게 된 줄 알아?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 자존심도 버리고 마지막에는 내 발 핥으면서 매달렸거든?

  후후후....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그걸 생각하니, 나 달아올랐어...


그녀의 음부가 내 얼굴을 향한다.

입으로 애무를 하고, 그녀를 품에 안는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다.



새벽까지의 정사가 끝나고, 그녀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 점점 와인 고르는 눈이 좋아지네?

- 누구한테 배운 거라서.

그녀가 내 몸에 자신의 몸을 가져다 댄다.

- 원하는 거라면.

- 상대 소속사에서 신인 걸그룹 기획이 있더군요. 몇 년 동안 독하게 연습시킨 애들을 데뷔시키는 건데, 약 좀 풀어주시죠. 

   최근 이슈인 학폭 논란이면 좋을 거 같군요. 브로커 통해서 조만간 사진 합성한 자료들을 보내겠습니다.

- 좋아.

간단히 수락해준 그녀는, 내 몸을 다시 눕히고 위에 와인을 뿌린다. 

그리고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내 몸에 흘러내리는 와인을 핥는다.


*****


가요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있다.

예능 방송 출연 제의가 왔지만, 당분간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는 후순이 의견을 듣고 거절하였다.

그렇게 2집을 준비해서 내었지만-.

결과는 대실패.

너무 의욕이 생겼던 걸까, 

아니면 너무 자신만만했던 걸까.


우울증에 걸린 그녀를 다독이고, 다른 음악가들을 찾아다녔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며 내치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참아내며, 

후순이를 위해, 그녀의 음악 스타일을 살려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녀 역시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으며 열심히 연습했다.


그렇게 3집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타 소속사로부터 표절 의혹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곡을 준 사람이 표절 의혹을 제기한 소속사와 짜고 친 악의적인 공작이었다.


악플과 악평, 언론 보도들에 의해 후순이의 멘탈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누군가 찾아왔다.

유력 언론사의 재직 중이라는 중년의 여성.

내가 좀 더 나이가 많았다면 한눈에 반했을 여성.


그녀는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원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처음에는 단순 헤드헌팅이라 생각했다.

단순하게 업무 외주를 무급으로 하는 거 정도로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난 이 업계에 대해서 무지했고, 순진했다.

- 이 바닥, 조심해야 된다.

이사가 하던 말이었지만, 무시했다.


그 대가를, 철저히 치뤘다.

지옥을 맛보았다.

창남이나 다를 바 없이 그녀에게 범해졌고, 때론 다른 중년 여성에게도 범해졌다.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버틴 게 기적일 정도로.

지금도 자살충동이 생길 때면, 자해와 담배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다만, 적어도 언론계 임원이라는 그녀는 약속만큼은 지켰다.

후순이에 대한 악의적인 언론이 뒤집어졌고, 상대 소속사와 합의를 하여 위자료를 받았다. 

양다리 걸친 작곡가는 이 업계에서 매장되었다.

후순이는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그거면 됐어, 라고 생각했다.

후순이가 웃는 거 하나면 돼, 라고 생각했다.

후순이가 최근 나에게 웃어준 적은 있었나.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

- 벌써 돌아가는 거야?

- 미팅이 있어서요.

- 내가 선물해준 옷은, 아직 안 입네?

- 제게는 맞지 않는 너무 고급스러운 옷이라서요.


내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난 당신 것이 아니라는, 그런 거.


- 당신이 매니저 맡고 있는 그년, 성격 나쁘다는 소문이 돌거든? 어떻게 좀 해. 자꾸 이런 식으로 소문 돌면 나도 감싸기 힘들어.

-...명심하겠습니다.



차에 오르기 전 편의점에서 타이레놀과 생수를 샀고, 담배를 마저 태웠다.

여자 냄새를 지우려면 담배가 최고였다. 

폰에 진동이 울린다.

사장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미팅 전 회사로 출근하라는 내용.

분명 좋은 내용은 아니겠지.

나와 후순이도 언제 갈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관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사장은 손에 들린 서류를 내게 집어 던지며 역정을 내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주변 사람들에게 욕 얻어먹고 다니냐고, 

업계에 소문이 다 났다고 했다.

처신 좀 잘하고 다니라는, 밑도 끝도 없는 훈계였다.

특히 후순이가, 내가 하는 모든 게 하나같이 맘에 안 든다고 했다.


그랬구나.

이제 너한테는 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 되었구나.

이제 후순이에게 난 가십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삿대질하는 사장을 내버려두고, 자리로 돌아가서 사직서와 인수인계, 그리고 1년 일정 계획을 인쇄하여 사장에게 제출했다.

사직서만 빼고 나머지는 내 앞에서 좍좍 찢어서, 얼굴에 집어 던졌다.

군말 없이 주워서 문서 세단기에 넣어 갈아버리고,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후순이에게 그만두었다는 문자를 보낼까 말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냥 내가 없다는 것 만으로도 기뻐할 테니까.


후련하면서도, 허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