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후붕이는 후희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잠이 든 후희를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아무런 미련조차 남지 않는다는 듯이 나가버렸다.



달려나가 바지가랑이라도 붙잡아야 했지만,



후붕이가 너무 충격적인 말을 한 덕분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후붕이가 나를 버린다니,



연애기간까지 포함해 8년의 세월동안 한번도 내 옆을 떠나지 않았던 후붕이가 나를 버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후붕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아무리 돌아다녀도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항구처럼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언제나 내가 있을 자리를 만들어 줬었는데,



그렇게나 나를 좋아했던 후붕이가 나를 버릴리가 없었다.



그래, 내일이 되면 돌아올거야.



후희와 함께 평소의 후붕이가 되어 돌아올거야.




*     *     *




하지만, 돌아온 것은 후붕이가 아니라 합의 이혼 신청서였다.



그때 후붕이가 했던 말, 이제 결혼 생활은 그만하자던 말이 욱해서 나온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만하자는 말이었다.



더 이상 나와 살기싫다고 했던 말이었다.



이해는 갔다.



집에 들러 붙어있지 않고, 집에 들러 붙어 있다면 마음대로 초대남을 들여 즐겼었다.



후희가 보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에게 안긴 것 자체도 후붕이에겐 문제였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네토플 중에는 후붕이도 즐겼었다.



후붕이도 나처럼 쾌락에 잠긴 신음을 흘렸었다.



그 후엔 꼭 울고 있긴 했지만, 즐긴게 아니라면 그런 신음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럼 후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결혼 관계만 그만두자고 한 것일까?



중간에 자기도 즐겼으면서 이제와서 나를 내치겠다고 하는 게 괘씸하긴 했지만, 처음엔 후붕이가 싫어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후붕이가 정말 싫어하면서 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것도 정말이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나랑 이혼하자고 했던 걸까?



다시 생각해보자. 



후붕이는 분명 내 성벽을 더 이상 받아줄 수 없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후붕이는 그렇게나 싫어하던 네토플을 좋아한게 아니라 나를 좋아해서 묵인해 줬던 걸까?



내가 좋아하니까, 후붕이는 싫어도 내가 좋아하니까 그걸 받아들여 줬던 걸까?



그럼 그때 후진이를 불러서 스와핑 비스무리한 행위를 했을때 흘리던 신음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마음을 쿡 찔러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아파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아팠다.



정말 안맞는 네토플을 오로지 나를 위해 양보해줬는데, 난 그걸 모르고 후붕이에게 강요했었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할 때 마다 얀순씨가 가르쳐줬던 후붕이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억눌렀다.



내가 후붕이에게서 혐오의 시선을 느꼈을 때처럼, 



후붕이는 내가 하는 말에서, 내가 쾌락을 쫓아 했던 행위에서 고통을 느끼고 겁에질려 부들부들 떨었던 걸까?



내 말을 들어준게 아니라,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걸까?



내가 몰래 다가갔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도 단순히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내가 무서워서 그랬던 걸까?



그럼에도 나에 대한 사랑과 애정으로 내 곁에 있어줬던 걸까?



그런데도 나는 그걸 모르고 후붕이를 밀어내며 거칠게 범해주길 바라면서 네토플을 이용해 후붕이를 도발했던 걸까?



아닐꺼야.



아니어야만 해.



후붕이도 분명히 중간에 즐겼을거야.



후붕이도 나중에는 분명히 싫어하지 않았을 거야.



그게 정말이라면 난 후붕이의 애정을 내다 버린 거잖아.



자기가 싫어하는 것 까지 받아들여가면서 나를 아껴준 후붕이를 상처입히고 내던진 거잖아.



고작 욕망이나 분출할 줄 아는 다른 남자에게 정신이 팔려서 후붕이를 밀어 버린 거잖아.



후붕이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서 가장 중요한 후붕이를 내던진 거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후붕이가 정말로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게 되는 거잖아.



그럴리가 없어.



이것도 네토플의 일종이겠지.



후붕이가 해주는 네토플의 일종이겠지.



에이, 아닐꺼야.



후붕이는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을거야.



항상 나를 좋아해 줬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좋아해 줬잖아?



후희를 잠깐 방치했다고 날 내던질리 없어.



아무리 밖으로 나가서 후붕이를 밀어내도 끈덕지게 달라붙던 후붕이가 날 버릴리 없어.



이 서류도 조작된 가짜일거야.



어디 플레이 도구점에서 발행하는 그런 걸거야.



그러니까, 이건 가짜일거야.



후붕이가 나랑 이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걸.



후붕이는 아직 나를 사랑하고 있는걸.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이혼이라니 있을수도 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후붕아?



그런거지?





*     *     *





후붕이가 보내온 합의 이혼 신청서를 돌려보내지 않자, 이번엔 이혼 소송 출두 명령서가 날아왔다.



후붕이는 정말로 나와 찢어지려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부정했다.



해당 네토플은 상호 합의하에 진행된 것이며, 남편 또한 받아들인 사실이었다고 주장했다.



이혼 소송에 대한 반대 의견을 냈고, 후붕이가 참고 받아들여준 것을 근거로 이혼 소송은 무효처리 되었다.



하지만, 후붕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바꿨는지 생전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로 연결되었다.



후붕이가 조금씩 끊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달라붙어있던 후붕이가 조금씩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후붕이의 옷가지나 후희의 옷가지들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찾으러오지 않았다.



기다리다보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지만 후붕이가 다시 현관문을 후희와 함께 열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몸은 계속 달아올랐다.



한달에 네 번은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녔었는데,



후붕이와 이혼 소송을 하던 넉 달 동안 한번도 후붕이는 커녕 남자와 몸을 섞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내게로 쏟아지던 관심이 사라지고, 후붕이가 항상 보내오던 애정이 사라지니 외로움이 사무쳤다.



후붕이와 나의 침실은 계절이 여름이었음에도 덥지 않고 추웠다.



항상 옆에 있던 후붕이가 없으니 얼어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동사해버릴 것 같아서,



후붕이를 기다리다가 외로움으로 죽어버릴 것 같아서 다른 남자를 또 들였다.



이번 한번만이라고, 후붕이가 오기 전까지 온기를 채우기 위해서라고,



음습하고 격렬한 욕망이지만, 후붕이가 보내줬던 사랑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한 것이지만,



얼어죽지 않으려면, 완전히 버려졌다는 고립감에 죽지 않으려면 누구의 품에라도 안겨서 이 기분을 해소해야 했다.



후희가 생겼을 때, 처음으로 찾아갔던 남자를 불러들였다.



아무리봐도 후희의 친아빠일 것으로 생각되는 남자, 금태양을 불렀다.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남편이 집에 없어서 외롭다고 하니 곧장 달려와 다른 어떤 대화나 교감은 일절 하지 않고 나를 안았다.



이제 결혼해서 집에 아내가 있을텐데, 다른 남자의 여자가 외롭다니 단박에 달려와 나를 품에 안고 격렬하게 박아댔다.



욕망을 배출시키는 자위기구처럼 거칠게 나를 범했다.



몸이 달아올랐다.



점점 격렬해지고 거칠어지는 행위만큼 추워서 얼어죽기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몸이 불타올랐다.



어떤 말도 없이 서로의 욕망을 분출하며 몸을 섞고 온기를 탐했다.



짐승처럼 쾌락에 잠긴 신음을 토해내며 허리를 흔들었다.



짜릿했다.



후붕이 대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나를 보면서 울고 있을 후붕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머리가 망가져버릴 것 같은 쾌감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후붕이가 항상 있던 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의자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울고있는 후붕이의 모습도,



입에 재갈이 물려서 윽윽대며 눈물을 흘리던 후붕이의 표정도,



후진이가 위에 올라타서 꼼짝도 못하고 덜덜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후붕이의 몸도,



후진이에 의해 강제로 고개를 들어올려 입이 범해지자 눈물 한 줄기를 흘려보내며 신음하던 후붕이의 얼굴도 무엇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텅 빈 의자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터져나오던 쾌락이 사라졌다.



달아오르던 몸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차오르던 온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격렬한 행위로 인해 온 몸에 땀을 흘렸음에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눈 앞의 금태양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나를 탐하는데만 집중했다.



나를 후붕이에게서 빼앗는데만 집중했다.



나를 무너트리기 위해 쾌감을 느끼는 곳을 계속해서 자극해왔다.



쾌감이 멈추지 않았다.



후붕이가 없으니 기분나쁜 쾌감만 계속해서 몰려오는데도 눈앞의 이 남자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분출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쾌락에 찬 신음이 나오지 않았다.



불쾌한 쾌감에 의해 비명만 튀어나올 뿐이었다.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랫도리 관리를 못하는 이 놈은 내 목소리가 변했다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욕망을 쏟아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낸 금태양은 내 몸에 자신의 욕망을 흩뿌리고 사라져버렸다.



후희를 가졌던 그날처럼 날 버렸다.



자위기구처럼 날 이용해먹고 내던졌다.



분명 후붕이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보겠다고 벌인 일인데, 어떻게든 후붕이와 살기 위해서 벌인 일이었는데,



도리어 후붕이의 빈자리만 확인했다.



완전히 식어버린 후붕이의 사랑만 확인했다.



금태양을 포함해 내게 관심을 가지던 남자들이 보낸 것은 사랑도, 사무치는 외로움을 해결해 주던 온기도 아닌,



나와 후붕이를 찢어놓은 음습한 욕망이었다는 것만 확인했다.





*     *     *





갑자기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사옥으로 찾아오라고 전화가 왔다.



매번 들어오기만 해도 내쫓던 아빠가 사옥으로 부르시다니 별일이다 싶었다.



지금까지 근처에 오는 것도 혐오하고 싫어하던 아빠가 무슨 일로 나를 부른걸까?



그래도 이번엔 자기가 불렀으니 돈다발 던지면서 사람 내쫓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아빠가 나를 싫어해도 그런 일을 벌일 정도로 상식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옥으로 찾아가니 익숙한 구면들이 나를 반겼다.



"어서오십시오, 사장님."



그들은 나를 사장이라며 떠받들었다.



분명 아빠의 사람이었던 자들이, 아빠 편에 서서 나를 혐오했던 작자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태도를 바꿨다.



"제가 왜 사장님이죠? 사장은 아빠가 계시잖아요."



"그게... 전 사장님께서 후순 건설은 후순 아가씨에게 넘기겠다고 임원진과 결정하셨습니다."



"갑자기요?"



의심스러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그렇게나 싫어했던 아빠가 내게 사장자리를 넘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게 분명했다.



덜미 잡힌게 있어서 나에게 떠넘기고 도망쳐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거절하고 도망치려했다.



사장이라는 직함이 있다면 확실히 후붕이를 붙잡을 힘이 생기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가 무상으로 넘긴 자리는 하자가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꼬리자르기를 당하는 자리였으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 회사는 얀진 그룹에 의해 인수합병을 당할 예정이었다.



아빠가 나를 사옥으로 부른 그 날은 회사의 인수합병 담당자가 오는 날이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를 인수합병하기위해 온 사람은 나도, 후붕이도 잘 아는 구면이었다.



"어머, 후순씨. 오랜만이에요? 후붕이 잘 지내죠?"



"네,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후붕이의 소꿉친구이자, 우리를 인수합병할 얀진 그룹의 후계자, 얀순씨였다.



처음 결혼식장에서 봤을 때, 축의금을 천만원이나 내기에 부자인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얀진 그룹의 후계자일줄은 몰랐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얀진 회장을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지만, 



그때는 회사 쪽으로 관심이 없던 때였으니 그냥 어마어마한 부자인가 보다 했는데,



고작 건설사 사장으로는 비빌수도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인수합병 절차는 순식간에 끝났다.



아빠가 이걸 위해서 판을 마련해 둔 것 처럼 정말 딱딱 맞춰서 흘러갔다.



아빠 휘하에 있던 사람들은 인수 합병 절차가 끝나자마자 도망쳐버렸다.



그렇게 기존 건설사 임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인수 합병 회담장에는 나와 얀순씨 밖에 남지 않았다.



얀순씨도 자리에서 일어나 회담장을 나가려했다.



이제는 내 윗사람이니 내가 문을 열어주는게 맞겠지 싶어서 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하지만, 얀순씨는 내 손길을 거절하고 본인이 직접 문을 열었다.



"후순씨, 다시 한 번 물을 게요. 정말로 후붕이랑 잘 지내요?"



"네, 잘 지내고 있어요. 후희도 유치원 잘 다니고 있..."



얀순씨가 붙잡고 있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람이라도 분 것인가 싶었지만,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얀순씨였다.



문고리를 붙잡은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괘, 괜찮으세요?"



"...거짓말."



"네?"



"거짓말 하지마, 이 가랑이가 헤픈 걸레년아."



얀순씨는 갑자기 폭언을 쏟아냈다.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무례한 말이었기에, 아무리 상사라 하더라도 제대로 항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하지만,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얀순씨가 따귀를 때려올린 탓이었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쳐 올리는 힘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맞은 부위의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분명 청각에 손상이 생겼을 것이다.



사람이 옆으로 쓰러질 정도로 세게 때렸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리 없었다.



그러나, 얀순씨의 구두가 도각거리며 다가오는 소리는 잘 들렸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거야. 후붕이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니까 잘 보듬어 달라고. 네가 후붕이를 잘 보살펴주길 바라면서 후붕이가 가진 상처를 알려줬었잖아, 그렇지?"



얀순씨는 겨우 몸을 가눠 상체를 일으킨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런데, 그 뒤에 붙였던 말은 기억이 안났나봐? 내가 분명 뭐라고 했었는데, 후붕이의 상처를 들쑤시면 어떻게 된다고 했었는데, 기억 안나?"



"이젠 남의 가정사입니다. 아무리 이제 당신이 제 상사여도 간섭하실 권리는 없... 아아악!!"



얀순씨, 아니 얀진 그룹에서 파견된 새로운 상사는 주저앉아있는 내 머리채를 붙잡고 끌어 올렸다.



머리카락이 생으로 뜯겨져나가는 고통에 강제로 일으켜진 나는 얀순씨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난 말이야, 널 믿었어. 니 년이 후붕이를 감싸주고, 내가 입힌 후붕이의 상처를 보듬어주길 바랬어. 그래서 후붕이가 가진 아픔도 알려줬었어. 그런데 넌 그걸 후붕이를 통제하는데 썼더라?"



얀순씨는 머리카락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반격을 해보려 했지만, 점점 더 세게 틀어쥐는 얀순씨의 악력 때문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니 추악한 면을 전부 봤어. 그것 때문에 후붕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도 봤고. 그런데도 후붕이는 복수를 원치 않았어. 후붕이는 정말 착한 애니까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얀순씨는 이제 내 머리를 자기 눈 앞으로 가져왔다.



증오와 분노, 혐오감과 살의가 담긴 눈빛이 내 눈을 향해 쏘아졌다.



마치 맹수를 만난 사냥감처럼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난 복수할 의무가 있어. 왜냐면 말이야, 네 년에게 후붕이의 상처를 말해줄때, 이걸로 후붕이 괴롭히면 내가 혼내러 간다고 약속했었거든."



"상황이 이렇다고 막 지어내시면..."



얀순씨는 대답 대신 나를 던져버렸다.



손아귀에서 해방됐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머리도, 귀도 만신창이었지만 얀순씨가 다가오는 소리,



도각거리는 구두소리는 저절로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었다.



"막 지어낸게 아니라, 네 년이 기억을 못하는 거겠지. 후붕이한테 들었어. 네 년은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창놈새끼들하고 몸을 섞는다고 후붕이와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했다며?"



얀순씨가 점점 다가왔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열심히 양 팔과 다리를 움직여 뒤로 물러났지만 벽에 막혀버렸다.



더 이상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구두소리가 멈췄다.



얀순씨는 어느새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형광등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그림자가 져서 씨익 웃고있는 그 모습을 더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후붕이가 어떻게 얀순씨 쪽에 있는지, 우리 결혼을 축복해줬던 얀순씨가 왜 나를 죽이려고 드는지 도저히 물을 수 없었다.



"복수는 내가 해야돼. 후붕이가 너무 착해서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난 약속을 이행해야하거든. 사업가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약속을 잘 지켜서 신뢰를 깨지 않는게 중요하잖아?"



얀순씨는 덜덜 떨고 있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 증오와 살의가 깃든 눈을 내 눈 앞에 들이 밀었다.



"후붕이는 내 꺼야. 내가 네 년에게서 빼앗아 버릴 거야. 너같이 후붕이를 상처입히고, 괴롭히고, 죽기 직전까지 내몬 쓰레기 같은 것들은 내가 분리수거 해버릴거야."



얀순씨는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넌 후붕이 인생의 실수도 아니고, 지워져야할 오점이야. 후붕이는 살인같은 불법은 저지르지 말라고 했지만..."



얀순씨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하필이면 그 대상이 나라는게 두렵고 무서웠다.



아빠나 엄마가 보내오던 시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살의와 증오와 혐오감이 섞인 시선.



나를 사람으로 보는게 아니라 잡아먹을 사냥감으로 보고 있는 시선.



얀순씨는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성욕에 미친 짐승을 처분하는걸 살인이라고 부르기엔 살인의 의미가 너무 무겁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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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순이는 얀순이가 패야합니다. 그게 국룰이고 올바르게 된 세상 아니겠습니까?


내일 상태를 봐서 가져오려 했습니다만, 문제가 생겨서 연재 못하는 것 보다는 한편 더 써오는게 낫겠다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만족하실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