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렸던 글인데 결말이 급전개에 별로라는 의견에 공감해서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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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도 평소와 같았다


나는 그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가족인  남동생조차 구하지 못한 내가 감히 타인을 구할  있을거라는 나의 무지한 착각이 나를 곤경에 빠지게 만들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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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다녀올게"


  아침도 이렇게 평범하게 일어나서 평범하게 학교를 갔을 뿐이다.


 달전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앞에서나를 보며 반갑다고 달려오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어버렸다.


  이후 우리집은 우울이 가득차게 됐다.

 마음은 후회와 자학으로 범벅이 됐다.


"너때문에 수현이가 죽은거야!!! 니가 한눈 팔지만 않았어도!!"


" 그게 오빠한테 무슨 말버릇이야오빠가 일부러 그랬겠어너희 둘이 이렇게 싸우는거 보면 하늘에 있는 아빠하고 동생이 얼마나 슬퍼하겠어"


엄마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울고여동생인 예지는 처음엔 나를 탓했다그러다가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운명은 우리 가족을 싫어하는지 처음에는 암으로 아버지를 앗아갔고 두번째로는 동생을 데려갔다하늘도 무심하시지우리 가족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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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미안해오빠도 많이 슬플텐데 내가... 너무 슬프고 화가나서 그랬어"


"괜찮아 알고있었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하지마가서 엄마 옆에 있어줘"


전화기가 울린다.


'현서'


"여보세요 ?"


" 집에 놀러가도 심심해서... 보고싶어서"


"언제는 물어보고 왔던가올거면 빨리와 저녁  차릴거니까 와서 먹어"


여자친구 현서현서네 아버지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수현이가 하늘로 가기 전엔현서도 수현이와 예지를 자기 동생마냥 끔찍히도 아꼈다이제는  말이지만.


수현이가 떠난 뒤로 현서가 우리 집에 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고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현서는 나와 같은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고 있다운명의 짝이 아닐까?




"예지야 언니 왔어!"


"언니!"


"온다는  나한테 전화하고 와서는  예지밖에 안찾냐  섭섭한데"


"나는 땀냄새 나는 사춘기 남고딩은 별로 안좋아해서"


"어이고우리 예비 며느리 왔어?"


땀냄새 안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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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종이 울린다.



"김현우  먼저 집에간다?"


" 오늘 당번이라 늦게 가야돼"


항상 같이 가던 현서를 먼저 보내고 나도 주섬주섬 짐을 챙긴  학교를 나왔다


해질녁의 동네내가 항상 좋아하는 시간대다수현이도 있었다면 옆에서 오늘 저녁은  먹고 싶은지 재잘재잘 떠들었겠지 


익숙했던 골목길을 지나고 당번을 하느라 늦어 저녁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평소 가지 않았던 해가 잘들지 않는 외딴 지름길로 들어간다


불법 도박장이 같은 것들이 숨어있어 사람들이  가지 않은 으슥한 건물 사이사이의 길이다.


터벅터벅 


"꺄아아아아악!!!!"




어두운  구석어떤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소리를 듣자마자 본능에 이끌린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사람 같이 보이는 무언가가 보인다.


어떤 사람이 구석에 쓰러져있다설마 사람인가공격당한건가?


점점 다가갈수록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나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진다


"저기요괜찮아요무슨 일이에요?"


여자는  몸이 피투성이에 상처로 가득했다.

 늘어진 몸은 힘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없었다.


특히 머리뒤에서 공격을 당했는지 뒷통수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옷은  여자에게 몹쓸 짓이라도 하려했는지 하늘색 원피스는 이미 곳곳이 찢어져 옷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지경이 됐다.


"..."


"저기요!! 무슨 일이에요정신  차려봐요!"


감겨있던 여자의 눈이 서서히 뜨기 시작한다.


"...누가...저를...어떤..아저씨..."


"뭐라고요일단 119..."


"싫어!!!!!!!!! 살려줘!!!"


"아니 일단 구급차부터...!!"


여자는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인지 아직도  순간에 잡혀있는  같았다 머리를 잡고 발악을 하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손을 여자가 후려쳐 핸드폰이 바닥에 꽂혀버린다.


여자의 손톱이  얼굴에 박혀 아래로 힘을 주어 긁기 시작한다피가 줄줄 흐른다여자의 발이  배를 걷어찬다아무리신체 건강한 고등학생이라지만  정도의 고통은 참을  있을리가 없다.


나는 고통에  소리를 지른다


 옷은 여자의 피로 범벅이 되기 시작한다.


여자는 힘이 다했는지  하고 기절해버렸다나도 정신이 혼미한  신고를 하려 핸드폰을 찾으려 바닥을 더듬거렸다핸드폰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얄상한 손잡이가 잡힌다.  


피가 묻은 망치다


이걸로 공격한건가그것보다 일단 빨리 신고를...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거구나다행이다.

늦지 않은  같아살릴  있겠어.


"...저기빨리 신ㄱ..."


" 뭐하는 새끼야 애들아 빨리 제압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제압하는거지?

차가운 아스팔트의 감촉이 얼굴에 거칠게 느껴진다.


엄청난 무게감이  몸을 짓누른다.

팔이 꺾여 움직일  없다.


말을 하고 싶지만  얼굴을 손으로 짓누르고 있어 입이 열리지 않는다.


남자들의 옷에 유도부라고 써져있는 글씨가 보인다.우리학교 유도부였구나.


제가 하지 않았어요 그저 도와주려   뿐이었는데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당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며 지금부터 당신은 묵비권을..."


 정신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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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서에서 조사를 받는 내가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학생 여자   공격한거야그런  하려고?"


"...저는 그저 도와주려고 갔던  뿐인데...  오해에요... 그런 짓을 할리가 없잖아요"


"학생여자가 방어하려고 학생 공격해서 몸에 상처  남아있고여자가 살려달라고 소리도 지르고 현행범으로 제압되서잡혀왔으면서 이제와서 발뺌할거야 그랬어?"


"망치에서도 학생 지문밖에 안나왔어이거 어떡할거야 이거"


"그럴리가... 제가 하지 않았어요...  여자 여자가 아니라고 말해줄거에요"


"피해자 지금 입원해서 혼수 상태니까 진술도 불가능해학생 얼른 자백하고 쉽게쉽게 가자"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도와주려고   뿐인데 어째서우리 가족과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


"학생오늘 일단 부모님한테 연락해 놓을 거고 다시 출석 요구하면 나와서 그때는 성실하게 조사 받도록 "


터벅터벅


경찰서 입구에는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엽총 소지자 면허 재신고 기간 안내에 대해...'


'공익제보자 포상금  신변 보호..'


'불법 도박 특별 단속  자수 기간 운영 안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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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야 그게 사실이니?"


"...오빠 그게 사실이야?"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의뭉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옷은 피범벅에 얼굴에는 손톱으로 긁힌 상처가 가득하다.


진실조차 모른 채로 지금  꼴을 본다면 나는 누가 봐도 몹쓸 짓을 하려다 실패한 강간미수범겠지


"아니야... 나는 그저 도와주려다가 그렇게 된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어째서 내가..."


"...일단 씻고 오렴저녁은 따로 남겨놨어 밥부터 먹어라"


 다들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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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교에는 내가 여자를 공격한  몹쓸 짓을 하려했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학교에   얼굴에는 온갖 상처와 멍이 가득했다.

소문만 듣고  본다면 소문을 믿을  밖에 없겠지


사물함을 열었더니 우유 범벅이 되어있다페인트로


'죽어 병신 강간마새끼'


'애비없는 새끼가 그렇지'


'학교 다니기 안쪽팔리냐?'


어디가서 나의 결백을 주장해야 할까


 여자...  여자만 깨어난다면  괜찮아  것이다


현서가 보고싶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서는   아니까 믿어줄거야.


현서네 반으로 찾아간다현서와 눈이 마주친다.


"현서야잠깐 얘기를..."


현서 주변에 친구들이 모여있고  보며 수근대기 시작한다현서가  보더니   것이라도  듯이 도망친다.


너는 그러면 안되는거잖아세상이 등을 돌려도 너는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잦은 출석조사에 지칠 무렵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고 가족들도 점점  믿어주지 않는 눈빛으로 변했다.


현서는 매일같이 문자와 전화를 해도 전혀 받지 않는다.


"예지야... 혹시 엄마 어디갔는지 알아...? 연락도 안받고 어디 갔는지를 모르겠네... 검찰에 보호자가 같이 출석을 해야한다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꼴도 보기 싫으니까 말도 걸지마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어떤 취급 받는지 알아 그런거야도대체나중에 죽어서 수현이랑 아빠 보기 부끄럽지 않아아니   없겠구나지옥에 떨어질거니까  같은 쓰레기는어떻게 너같은  오빠라고 따랐는지"


"엄마도 직장에 소문  나서 정상적으로 일을  수가 없다잖아 때문에성욕에 미쳐 여자를 공격한  때문에제발이미 슬픈 우리 가족인데  때문에  상처주지마제발 어디가서 뒤져버렸으면 좋겠어"


"...예지야  정말로 그런 일은"


 고개가 갑자기 돌아간다또다시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느껴진다입에서는  맛이 느껴진다 사건 이후로 다시는느껴보지 못할  알았는데

뺨이 얼얼하다.


"제발 꺼져집에서 나가든지 눈에 띄지마"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에게 고통만 주었구나


수현이를 지켜내지 못했고돌아가신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  해내지도 못했다든든한 장남이자 가정의 버팀목이 되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저 범죄자가 되었을 뿐이다


 좋은 사람이 아닌데 괜히 팔자에도 없는 착한 짓을 하려다가 벌을 받는 것이다.


체질에도 안맞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면 탈이 나듯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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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쫓겨나듯이 나와버렸다.


현서와 연락이 안된지 거진 2주째다차단이라도  것인지 1이라는 숫자조차 사라지지 않는다이제 나는  곳이 없다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챙기지 않은  후회하며 무작정 현서네 집으로 찾아갔다


띵동-



"누구세요?"


"아주머니저에요 현우"


"...  왔니?"


"현서랑... 잠시만... 잠시만이라도 이야기   있을까요... 연락을 받지 않아서"


"  받았는지는 생각 안해봤니?"


"..."


"잠시 기다리렴"


잠시 철컥하고 현관문이 조심스럽게 열린다.


"...현서야연락이  안되서 찾아왔어"


"꼴도 보기 싫어 찾아와서  괴롭게 하는거야비라서 쳐맞고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오면 내가 불쌍히 여겨주리라 생각했던거야앞에서는 착한 남자친구인척 하더니 뒤에서는 그러고 다녔어내가 느낄 배신감은? 20 가까이  믿었다가 배신당한  감정은 생각하지 않는거야?"


"현서야 정말로... 정말로 아버지와 수현이 이름에 맹세코 그런 짓은 하지 않았어 그저 집에 가는 길에 쓰러진 사람을 도와주려 한거야... 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잖아"


설득되지 않을 결백을 설득되어 줬으면 하는 마지막   사람에게 간절히 호소해본다.


"평소에 다니지도 않던 길로 가면서갑자기 그런 날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고너무 지나친 우연 아니야너랑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이  갉아먹어서 힘들어 죽겠어... 눈물이 난다고다시는 찾아오지마 나는  잊을테니 너도  제발 잊어줘마지막 부탁이야"


"...나는.. 정말"


현서가 급히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려고 한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현관문을 잡아본다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나의 몸은 빠르게 닫히는 현관문을 막지못하고 그대로 손가락이 끼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겠다마지막 모습이 추하게 보일까봐이를 악물고 참는다.


"이거 마지막까지 추하게 굴지마"


"미안해미안해미안해..."


어떻게하든 추한 모습이 되는  똑같았구나

피가 줄줄 흐르는 손을 붙잡고 뒤돌아선다.


거리를 걷는다 길을 현서와 같이 학교를 오고 가며 걸었던 길인데 지나가는 가게에서 나오는 티비에서는 뉴스가 나온다


"...동에 위치한 숨겨져있던   규모의 불법 도박장을 익명의 제보를 받고 경찰이 급습해 도박장을 운영하던 조직폭력배  모씨 등을 검거해... 도박장에 위치한 CCTV 긴급분석해 이용자들을 검거 예정..."


비를 피하기 위해 조그마한 굴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띠링문자가   날아왔다.


'담임쌤'


'현우야학교 징계위원회에서 조만간 퇴학 처리  예정이니 이번주 안으로 와서 물건들을 챙겨가면 좋겠구나'


".. 하하..."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생각으로  여자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여자가 진술 해준다면... 다시  일상을 원래대로 돌릴  있을 것이다.


그러나병원에서 들려온 소식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였다.


"해당 환자는 이미 이틀 전에 사망했습니다."


머릿 속에  마지막 희망의 끈이 끊기는 소리가 들린  했다.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 것이들어올  병원 장례식장 안내 화면에 그녀의 이름 석자가 있었으니까내가 설마하고 지나쳤을뿐이지.


이젠 모르겠다.


결백을 주장해서 무엇하지믿어주는  하나 없다.

진실을 밝혀서 무엇하지이제는 늦어버렸다.

포기하면 편하지 않을까포기하고 싶다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될대로 됐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잊었으면 좋겠다.


몸은 만신창이고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누군가  마음에 진통제를 가득 주입한  처럼 이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다.


내일 학교에 돌아가서 짐만 챙기고 떠나야겠다.

마지막까지 민폐를 끼칠  없으니까


수현이와 아버지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와  착한 동생은 알고 있을거야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결백한지


어떻게 만나러 갈지는 차차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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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경찰서 영상분석실


"도박장 입구 감시영상 돌려보고 있는거야 나왔어?"


" 나오진 않았는데 죽겠습니다팀장님, 8시간  가만히 앉아가지고 화면만 쳐다보고..."


"이새끼들 지능범들이여 우리가 입구에 씨씨티비 있는걸로 지들 사업장 찾아내는거 아니까 이번엔 숨겨서 설치했던데날이 갈수록 발전하는구만 개양아치같은 새끼들"


"...어어  저거 뭐냐다시 돌려봐!"


모니터에는 길을 가던 여성이 괴한에게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지고 폭행을 당하다


주변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도망가는


그리고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다가와 여자를 끌어안고 핸드폰을 꺼내 신고하려는 장면이 잡혀있었다.


" 이거 강력계 저번에  사건 아니야빨리 가서 호출해생사람 잡았다고!"












"아침 뉴스입니다. **시에서 발생한 강간미수 폭행 사건은 경찰 측이 불법 도박장 감시카메라 영상을 분석하다 진범을 검거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기존에 체포되었던 고등학생  모군은 무혐의 처분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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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하다.

평소에 바라보던 혐오에  눈빛과는 다르다.


무슨 상관이야  이제 여기 학생도 아닌데.


그저 땅을 쳐다본 반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지금쯤이면 점심시간이겠지.



드르륵뒷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최대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다들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귀신이라도   마냥

내가 그렇게 불쾌했어

미안해짐만 챙기고 빨리 사라져줄게


사물함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그때 뒷문에서 우당탕탕 누군가 거친 숨을 내쉬며 넘어지는 소리가 난다


현서가 보인다.


"현우야...? 정말 현우야어디 갔었어 전화 안받았어?"


전화 


전화기를 확인해보니 


-예지 부재중 전화 118

-내사랑현서 부재중 전화 214

-엄마 부재중 전화 22


전화기를... 신경조차 쓰지 못했네

 사이에 기억이 없다분명 집에 들어가지는 않았는데상관없겠지.


"아니...  정신이 없어서 확인을 못했나봐... 확인을... 학교에   거슬리면 미안해눈에 띄지 말라고 했는데 짐만 챙기고 빨리 없어질게정말 미안해마지막까지 민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근데  연락 한거야...?  이해가  안돼.."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자세히보니 현서의 눈은 퉁퉁 부어있고 눈물이 범벅이다무슨 슬픈  있는거야그래도   사랑했던 사이인데 내가기억하는 너의 마지막 모습이 그런 모습이면조만간 내가 수현이를 보러   마음이 아플  같아.


"현우야정말 미안해... 아침에 뉴스보고 무슨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어내가내가... 내가..  배신했어  봐봐 그때  많이 나던데 괜찮아?"


현서가 무릎을 끓은 채로 걸으며 나에게 점점 다가온다현서가 말한  손을 바라본다  이후로  돌아본 적이 없다손가락은 이미 곪아 고름이 차서 진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손가락의 아픔보다 현서가 다가올수록 누군가  목을 조르는  마냥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무섭다현서가 무섭다 나에게 상처를   같다도망쳐야 한다현서가 말한  처럼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는게 좋은 것이다도망쳐야지근데 어디로


"현우야... 미안해 니가 받은 상처... 내가내가 나만큼은 믿어줘야 했는데... 어떻게... 나는  여자친구였는데... 아니 여자친구인데... 18년을 같이 지냈는데..."


숨이 막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을  같았다만신창이가  몸을 이끌고 현서를 지나쳐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했다현서가    없을 때까지


"...현우야 잠깐만...!"


현서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분명  착각일 것이다그럴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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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다


예지가 현관문 안에서 우두커니 서있다.


"...오빠 어디갔다 왔어?"


학교에서 퇴학 당했다고 말하면  경멸스런 시선으로 쳐다보겠지너무나도 부끄럽고 고통스럽다.


"...  학교  잠시 다녀왔어  가지러..."


"...오빠 미안해미안해 정말  그런 일이 있을줄은... 오빠 몰골이 말이 아니잖아... 어떡해어떡해... 밥은 먹은거야손가락은   그래얼굴은  퉁퉁 부었어"


아까부터 현서도 그렇고 예지도 그렇고 '그런 '이라고 하는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무슨 일을 말하는거지도대체 무슨 그저 빨리 아버지와 수현이를 보고싶다


"손가락얼굴... 이거 손가락은 현서가... 현서가 연락이 안되길래 집에 찾아갔다가... 현서가 현관문을  닫길래잡았는데 거기 찧였지 뭐야... 진짜 바보같지얼굴은... 얼굴은... 얼굴은 언제지예지 니가   때려서 바닥에 얼굴박았을 ... 생긴거야 걱정하지마이제 괜찮으니까 하나도 안아퍼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느껴져 이제"


그저 담담히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이제 정말로 아무렇지 않으니까.


예지의 눈에서 내가 집에서 쫓겨난 날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빠미안해  때려서 미안해 내가... 오빠오빠 말을 한번이라도 들어줬어야 했는데미안해   잘못이야 가족인데... 가족인데내가 미친년이야 내가 죽일년이야오빠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으니까 그런 표정 짓지마 제발 미안해돌아와 수현이하고 아빠에 이어 오빠마저 떠나면  버틸 자신이 없어... 잠은 잔거야밤에 집도 안돌아 왔잖아오빠당장 죽을  같은 모습이란 말이야"


띠링문자가   왔다.


[**지방검찰청]

귀하의 사건은 무혐의 처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래서 다들 오늘

그래서 현서하고 예지가 이렇게 슬퍼하는거구나


그랬구나그랬던거였군


수현이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예지야... 잠깐 나갔다 올게금방 안걸려누구  만나러 갈게너도 아는 사람이니까 걱정하지마"


"...누군데누군데 오늘 돌아오긴 하는거야나도 따라가면 안돼오빠 걱정되서 그래..."


'지금말고    걱정 한번이라도 해주지'

라는 말이  끝까지 차올랐지만... 


사랑하는  동생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마너도 아는 사람이라니까?"


라고 말한  팔을 붙잡으려는 예지를 뒤로한  

수현이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빠...!! 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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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에게 30초마다 한번씩 전화가 걸려온다.

이제와서  찾아봤자 서로에게 상처만 될텐데


니가 나에게 모질게 했으면 끝까지 모질게 대하지.

그래야 나도 미련이 없을텐데 

수현이가 죽었던내가 지키지 못했던  도로 앞에 있는 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수현이가 죽었던 장소에서 죽으면 빨리 우리 동생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차에 뛰어들기엔 민폐기에이런 방법밖에 선택   없었다.


난간을 잡고  멀리아스팔트를 쳐다본다저기 닿을  쯤에는 사랑하는  동생과 아버지를 다시   있다는 생각에전혀 두렵지 않았다.


사색에 잠기다 난간에 올라가려고  하나를 올렸을 무렵옥상 문이 벌컥 열린다.


"오빠 뭐하는거야 지금!!!"


"현우야거기 올라가면 안돼!"


"아들엄마가 잘못했어!"


익숙한 얼굴의  여자들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몸을 붙잡는다 손길들은 마치 가시가 달린  해서 닿을  마다  마음에 구멍을 내는  했다.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다예지가 뒤늦게 쫓아다가 찾은  했다무서운 나머지 현서와 엄마에게도 연락했겠지중요한 사실은 그게 아니다.


"오빠... 오빠 미안해... 내가 죽일년이야...  때려서 미안해 제발 용서해줘...  평생 오빠만 보고 살테니까제발 자살하지마... 미안해"


"아들... 아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무관심했어... 엄마가  믿어줘서 미안해 엄마는 예지하고 너밖에 없는데... 세상이 우리 아들 등져도 엄마는 끝까지 우리 아들편이어야 했는데... 미안해 아들..."


"현우야미안해 현우야 정말로 미안해 정말로 내가 미쳤나봐친구들이...  쓰레기라고 빨리 헤어지라고... 부추겼어아니야   잘못이야걔네들 말에 휘둘린  잘못이야미안해 정말 앞으로는  말만 듣고 살게 때려도 좋아 죽일정도로 때려도 좋으니까 제발  곁에 있어줘"


갑자기  밀듯이 밀려온 감정의 파도에 나는 그만 세상이 잿빛으로 물들더니 의식이 끊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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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심신이 많이 지쳤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극심하고요. 일주일 동안은 절대안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 여자들은 의사에게 허리를 연신 굽히기 시작했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현우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서인지 살이 빠져 야위어 있었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혼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원망과 멸시를 떠안고 살면서 갈 일 없을거라 생각했던 경찰서에 혼자 들락날락하며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라는 생각만이 세 여자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세 여자들은 그저 세상에 지쳐 잠든 현우를 바라보며 깨어나면 다시 한번 용서를 빌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모든 것을 바쳐 평생을 헌신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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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가 입원한지 한달이 지났다. 


현우는 눈을 떴다. 어째서일까, 낯선 기시감이 마음 속을 후벼판다.

현우는 지금까지 겪은 일이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함께 이겨내고 믿어주는 것, 

그것이 가족이고 연인이고 친구라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단 한번도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믿어주지 않은 이들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또 원망할 것이다.


가족이면서 왜 믿어주지 않았냐고

사랑한다면서 그렇게 내칠 수 있었냐고


하지만, 현우의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망가질대로 망가진 마음.

동생에게 엄한 화풀이를 당해도 다 받아주던 착한 오빠.


남편을 잃고 홀어미가 된 엄마를 위해 투정 한번 부리지 않던 착한 아들은

남을 원망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사소한 것으로도 사랑하는 이들을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못난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예지에게 더 잘해주었다면

내가 평소에 엄마에게 좋은 아들이었다면

내가 평소에 현서에게 더 사랑을 주었다면


날 믿어주었겠지, 내 말에 귀 기울여줬겠지

모든게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긴 잘못이다.


내가 경찰서를 왔다갔다 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손가락질을 받았을까


가슴이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현우의 마음은 심연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그저 떠나고 싶었다. 혼자이길 바랬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날 잊었으면 좋겠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시같은 존재이다.

가시는 필히 빼서 없애버리는게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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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티비에 뉴스가 나온다.


'...경찰서 부실수사로 서장 직위해제 및 관련자 중징계 

억울하게 누명을 쓴 김 모군은 현재 연락두절 상태로...'


'판결이 나지 않았음에도 퇴학처리를 강행한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교육부의 강도높은 감사 예정...'


티비에 뉴스가 나온다.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 것인지 어떠한 감정의 파편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나운서가 나오고, 입을 움직인다. 소리가 나온다. 영상이 나온다.


그저 그 뿐이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저녁인 것이다.


저 멀리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현우야? ...일어난거야?"


"..오빠? 언제... 언제 일어난거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그러나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 아픈 사람들


머리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지만

가슴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나 정말로 망가진걸까


기뻐야 하는데, 기뻐야 하는데, 기뻐야 하는데, 기뻐야 하는데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어봐도 전혀 기쁘지 않다. 오히려 반대일 뿐이다.


"...현우야 괜찮아? 몸은 좀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배는 안고프고?"


"오빠, 나 오빠 좋아하는 바나나 사왔어... 오빠 바나나 있으면 혼자 다먹고 그랬잖아... 어?

바나나 마트에서 잔뜩 사왔어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먹어봐... 기운나게"


"..."


"현우야?" "오빠?"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나 때문에. 많이 고통받고 손가락질 받고... 정말로 미안해 내가... 내가 처신을 잘했더라면

평소에 너희들에게 잘해서 믿음을 주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내가 평소에 잘하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


현서와 예지는 울먹이기 시작한다. 

잘 모르겠다. 왜 울먹이는 것인지.

잘못은 내가 한 것인데.


"현우야, 현우야. 니가 왜 미안해해..? 우리가... 널 믿어주지 못해서... 니가 이렇게 된건데... 넌 그냥 평소처럼... 남을 도와주려고 한건데

우린 그런것도 모르고... 그냥 사람들이 니가 나쁘다고 하니까... 그거에 휘둘려서, 널 20년이나 봤는데. 사랑한다고 했는데. 내가 죽일년이야

내가 정말 쓰레기보다 못한 년이야, 그러니까 현우야 니가 한 잘못은 하나도 없어... 정말로 미안해 평생 옆에서 사죄하면서 살게...

널 마지막까지 믿어줬어야 하는 사람이 나인데 널 제일 먼저 내쳐버렸어, 평생 갈 상처를 줘서 미안해..."


"오빠, 오빠 그런 말 하지마... 응? 그런 눈으로 그런 말 하지마.. 왜 어디 떠나가려는 사람처럼 그런 말 하는거야? 한달 전처럼 우리 버리고 멀리 떠나려고...?

아니... 아니지 오빠는 우리 버린 적 없어... 우리가 오빠를 버렸지... 오빠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 엄마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돼? 오빠... 내가 진짜 미안해

가족인데... 가족인데... 오빠는 항상 내가 잘못해도 잘해도 듬직한 오빠였는데... 나는 병신같은 동생이야... 동생 자격도 없어..."


현우는 그 말이 들리는 듯 안들리는 듯, 그저 끔찍할 정도로 아무 감정이 없는 눈동자로 두 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나의 침묵이 지났을까


"... 집에 가고싶어"


"어? 현우야 집에 갈까? 집에 가서 아주머니한테 맛있는거 해달라고 하자 응? 뭐 먹고 싶어? 나도 아주머니 도와서 뭐든 다 해줄게"


"오빠 나도 도울게! 그러니까 뭐든 말해 정말 뭐든지 좋으니까, 오빠 잘 굶고 다녔잖아 그때"


그의 한마디에 두 여자는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본 것일까, 마치 간식에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반응할 뿐이었다.


그의 퇴원수속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게 다친 것도 없었을 뿐더러 한달 동안 입원해 몸 상태도 호전됐기 때문이다.



현우는 모든 것을 포기한지 오래였다. 모든 것을,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다만 그녀들은 현우가 당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냥 그가 점점 예전의 그로 돌아와주길 바라면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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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현우는 갓 스물이 되었다.


현서와 예지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하는 한 현우와 붙어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항상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다니고, 심지어 화장실조차 같이 가려는 것을 친구들이 말리기까지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그런 일을 겪었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저녁 밥상도 예지가 좋아하는 메뉴가 올라온지는 까마득하게 되었다.

엄마는 그 이후로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만 차렸기 때문이다.

예지는 당연히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질리가, 오히려 좋아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항상 아들 눈치를 보게 되었다.


자신이 변호사라도 찾아주었다면

조사 참석할때 한번이라도 손잡고 가주었다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지 않았다면

그냥 한번이라도 믿어주었다면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후회하며 평생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 실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건 이후, 학교에 돌아와서 현우에게 사과하는 이들은 많았다.

그럴때마다 현우는, 다만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현우는 정말 필요한 말 이외에는 일체하지 않았다.

마치 말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같았다.

마치 실어증에 걸린 것 같았다.


현서와 예지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들은 언젠가 그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예전의 현우로 돌아와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왔던 것이다.


"현우야, 우리 이번 주말에 영화보러 갈까? 영화보고 한강이라도 놀러갈까? 응? 준비는 내가 다할게 너는 그냥 오기만해""

 

"오빠, 나 쿠키 만들건데 옆에 와서 거들어주면 안될까? 응? 혼자서 하기 힘들어서 그래, 오빠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현우의 대답은 항상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어떤 부탁을 하든지 말이다.

그냥 꼭두각시 인형마냥 그녀들이 가자하면 가고, 먹자하면 먹고, 쉬자하면 쉴뿐이었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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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 주민등록증이 우편으로 날아왔다.

엄마와 예지는 현우에게 축하의 말을 건냈다.


"우리 아들, 이제 다컸네? 이제 친구들이랑 술도 먹고 다녀야지? 용돈 필요하면 말해 엄마가 얼마든지 줄게"


"오빠는 좋겠다. 친구들이랑 술도 마실 수 있고, 그래도 담배는 피지마! 아빠처럼 암 걸리면 안돼!"


현우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현우는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병원에서 눈을 뜬 날, 아니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결심한 날

그 날 이미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나의 존재로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받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성인이라는 증거도 있다. 어디가서 굶어죽지는 않으리라.

그거면 된 것이다. 그거면 됐을 뿐이다.


그는 편지를 한 장 남겼다. 


근 몇년만에 해보는 의사소통이었다. 일방적일뿐이지만.


그저, 많은 내용이 있지는 않았다.


미안하다는 내용, 사랑하니까 사랑하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때문에 더이상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

떠나겠다는 말, 찾지 말아달라는 말


아직도 그때 현서와 예지가 한 말들이 가슴에 비수로 박혀 마음속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



'꼴도 보기 싫어, 왜 찾아와서 날 괴롭게 하는거야? 비라서 쳐맞고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오면 내가 불쌍히 여겨주리라 생각했던거야? 앞에서는 착한 남자친구인 척 하더니 뒤에서는 그러고 다녔어? 내가 느낄 배신감은? 20년 가까이 널 믿었다가 배신당한 내 감정은 생각하지 않는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꼴도 보기 싫으니까 말도 걸지마, 너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어떤 취급 받는지 알아? 왜 그런거야 도대체? 나중에 죽어서 수현이랑 아빠 보기 부끄럽지 않아? 아니 볼 일 없겠구나? 지옥에 떨어질거니까 너 같은 쓰레기는, 어떻게 너같은 걸 오빠라고 따랐는지.

엄마도 직장에 소문 다 나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잖아! 너 때문에! 성욕에 미쳐 여자를 공격한 너 때문에! 제발 이미 슬픈 우리 가족인데 너 때문에 더 상처주지마, 제발 어디가서 뒤져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구하려고 했던 그 여자처럼 나도 아직 그 시간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


매일같이 악몽을 꾸고 있어 잠드는 것이 두렵다는 말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이상 호의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


마지막으로, 혼자 살다 혼자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말


그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아침이 되자 현서와 예지는 그 편지를 발견했다.

그녀들은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돌아올 줄 알았다. 그래도 최소한 자신들을 내치지 않았다.

시간이 그를 치료해줄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자신들을 향해 웃어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들의 크나큰 오만이었다.

그가 가진 상처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파악하지 못한 오만


시간따위로 치유될 상처가 아니었다.

그 사건 이후로 그의 마음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린 것이다.

마치 한번 접은 종이를 영원히 다시 완벽하게 펴지 못하듯이 

그의 마음은 망가져버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는 일은 필연이었던 것이다.

죽음까지 각오하며 편해지고 싶었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사랑하는 이들을 손가락질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던 그였기에.


"...현우야 미안해... 돌아와 줘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오빠... 오빠 미안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그녀들의 마음속 그의 빈자리는 어떤 것도 다시 채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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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이 맘에 안든다 하셔서 복수엔딩을 할까 고민하다가 희망고문엔딩을 써봤읍니다.

저도 사실 전편쓰면서 결말 급전개가 아쉬워서 다시 써야지 했는데

맘에 드셨으면 좋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