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분노, 차게식은머리, 버려진 나.


둘.


애증, 잊을 수 없는 추억, 잊지 못하는 나.


셋.


괴로워하는 나.


목에 걸린 밧줄, 피가 돌지 않는 머리, 조여드는 목줄, 켁켁 거리면 아픔에 몸부림 치는 나, 떨쳐지지 않는 기억, 행복했던 첫키스의 추억, 첫경험. 그녀가 했던 요리. 좋은냄새. 처음벌었던 돈으로 산 선물. 건내주는 나. 처음갔던 출장, 골랐던 그녀의 기념품, 기쁜 생각으로 집으로 향한 발걸음.

그녀의 신음소리, 목줄. 처음보는 남자, 더러워진 침대, 널부러진 옷가지. 두근대는 심장, 피가 식는 나. 


암전.


-


눈이 뜨여졌다.


먹먹한 두귀는 혼란을 가중시켰다.


뜨여지는 눈에 보이는 것은 빛뿐,


목에 느껴지던 목줄의 감촉도, 켁켁거리며 필사적으로 산소를 찾던 목구멍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평화롭다.


몇시간전의 일이 수십년은 된 과거처럼 느껴졌다.


 '배가 고프네.'


그저 이런 순간까지도 태평하게 배꼽시계를 울릴 수 있는 그의 배가 부러울 뿐이었다.


 '너도 태평하다.'


혼잣말로 적막을 깨려했지만, 혹사시킨 성대에서는 그 어떤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분명 소리를 지른 경험을 없을터.


목이 졸리는 순간까지도 소리를 질렀다면, 그것도 그것나름대로 신기한 사람일 것이었다만.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신기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감정은 무뎌졌다.


아까의 일이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데도, 아무런 감상이 없었다.


단지, 그냥 그랬구나. 그러한 사건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생각이 날뿐.


무뎌졌다?라고 표현해야하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어떤것조차도.


-


 "지금.. 사진 찍은거 보시면 보이시겠지만, 이부분이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입니다."


의사는 탁상앞에 앉아서 뇌처럼보이는 사진을 들고 우리부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있었다.


 "그러니까 저희 남편이 이게 감정을 못느낀다 그건가요?"


아내는 어쩐지 흥분한 상태로 의사에게 따지듯이 물었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그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기적이라.


의사의 말이 끝나고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미안해보이는 듯했다.


 "그.. 나랑 이야기 하고싶지도 않겠지만, 정말 미안해.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그러니까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면 안될까?"


내가 울먹이며 이야기하는 아내의 표정에서는 한치의 거짓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아내는 내가 지금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듯했다.


귀는 물이 찬 듯이 먹먹해서 아직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미안한데 내가 아직까지 귀가 잘 안들려서 집가서 한번 더 말해줄 수 있어?"


아내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번진다.


 "어.. 응.. 미안해."


그러고 보니, 꽤 오랜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4시간? 6시간? 아무튼 꽤 오래지난 기분인데.


 "오늘 뭐먹을거야?"


 "그.. 오늘은 밖에서 먹으면 안될까..?"


 "왜?"


 "....그"


아내의 손이 천천히 떨려온다.


 "...아직.. 정리를.. 다 못했어.."


 "무슨정리? 그냥 집가서 먹자. 오늘은 집에서 먹고싶어."


사실 어디서 먹든 상관은 없었다. 시켜먹든 요리를 하든 집에가서 하면 될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은 집에서 먹고싶었다.


내 강한 항의에 어째서인지 아내는 계속 사시나무 떨리듯이, 부들부들 떨어댔다.


-


집은 난장판이었다.


안방의 침대는 급하게 정리한 듯한 흔적이 보였다.


이불은 대충 접혀있었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는 대충 치워져있었지만, 미쳐 치우지 못한 옷가지들이 몇개 보였다.


남자의 속옷같은거였다. 아마 아내도 정신이 없어 미쳐 치우지 못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거실에는, 내가 자살시도를 하려고했던 곳만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 여보 오늘은 뭐먹고싶어? 뭐 준비할까? 시켜먹을까? 아니다.. 역시 내가 요리하는건 어때?"


아내는 불안해보이는 얼굴로 나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아까부터 보이는 아내의 모습이 상당히 불안해보였다.


 "여보."


 "으..응... 어? 나..?"


아직 아내라고 생각해주는구나.. 같은 혼잣말을 하는 아내.


 "그럼 당신말고 여기 누가있어."


 "...."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응.. 미안해 여보 다시는 안그럴게... 앞으로는 절대로 안그럴게.."


 "응 알겠는데 우리 뭐먹을거야?"


 "내가 준비할게. 당신은 가서 좀 쉬어."


나는 쇼파에 앉았다.


머리가 가벼웠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어떠한 생각이 떨쳐나간 기분이었다.


-


몇달동안 너무 평화로운 일상이 지나갔다.


나의 순간의 일탈로 가장 소중했던 남편을 잃을뻔했다.


상간남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흔히 사람들은 행운을 찾으려고 혈안이되어, 주변에 행복을 보지 못한다고들 한다.


나는 멍청했다.


그리고 한번 잃어버릴뻔한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잘생긴 남자.


돈을 많이 버는 남자.


섹스를 잘하는 남자.


모두 의미없었다.


결핍은 원인으로부터 찾아야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맞벌이를 하면된다.


잘생기지 못했다면 수술을 하면된다.


섹스를 못한다면 많이 하면된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로부터 찾을 수 없다.


외부로부터 그것들을 갈구하는 순간,


내 안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물론 남편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만들 어 가야할 것을 정작 밖에서 찾아다녔다.


쾌락을 탐하기위해 찾았던 낙원은 실낙원이었다.


목마름에 찾은 오아시스는 신기루였다.


모두 실없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번지르르한 허상에 불가했다.


나는 너무 늦게와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욕심을 포기하고나서야, 제대로 남편을 마주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주보고 선 남편은. 내게 있어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반쪽이었다.


너무나도 눈부셔서 바라볼수 없을정도로 소중한 것이었다.


-


자살시도를 한 후로부터 1년이 지났다.


많은일이 있었다.


나는 감정을 요구받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의사의 말로는 '기적'이 있다면 내가 감정을 다시 느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해보려 노력했다.


나는 무능력하다.


누군가와 어울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감정을 되찾기위해 노력하는 아내를 보면 나또한 여러가지 일들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평생 이렇게 살 수 는 없는노릇이니까.


 '오늘 누구 만나기로했더라.'


아내는 내게 잠자리를 요구하는일이 퍽 많아졌다.


 '소희였나?'


나는 의무적으로 그녀와 잠자리를 가진다.


나는 일을 그만뒀기에 수입이 없었다.


돈은 아내가 벌어오게 되었다.


아내는 장인어른의 회사를 다니며, 우리의 일상을 지탱했다.


나는 잠자리를 가진후에 아내에게 노란지폐 한장을 받는다.


내가 그것을 요구하면, 아내는 불만없이 지갑을 꺼내어 내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내게 안겨 잠에 든다.


아내는 깊게 잠에 든다. 누가 때리고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도 모를정도로 깊게 잠이 든다.


팔로 나를 꽉 안고 자기 때문에 이것을 떼어낼때 약간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 나는 아내가 깨지않도록 몸단장을 한다. 샤워를 하고, 아내에게 받은 오만원짜리를 챙긴다.


그리고 문밖을 나선다.


새벽의 밤공기는 쌀쌀하다.


나는 어플을 켠다. 메신저 어플에는 나와 연락하고 지내는 소위 말하는 "섹프"들의 연락처가 가득하다.


한 5분가량 기다리자 내앞에 차량한대가 선다.


잘빠진 세단한대가 내앞에 멈추면 창문이 내려간다.


 "많이 기다렸어 오빠?"


 "별로 안기다렸어."


지금와서는 웃는법조차 잊어버렸다.


그러나 최대한 경험에 살려 밝게 웃었다.


- 나는 과연 어떻게 보여질까? 억지로 웃는거처럼 보일까? 아니면 정상인처럼 보일까?


약간의 고민을 한다.


 "뭐. 언젠가 알게 되겠지."


나는 문을 열고 차량에 탄다.


 "오늘 텔비는 내가 낼게."


 "헐. 내가 미안해서 어떻게 해."


여자가 내게 팔짱을 꼈다.


물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 조금만 잘게."


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걸 느끼며, 약간의 선잠에 든다.


-


 "여보."


반년이 더 지났다.


 "이년들 누구야?"


아쉽게도 내 일탈이라고 불리는 행위는 아내에게 결국 걸리고 말았다.


 "누구냐고.."


내 대화내역들을 확인한 아내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아내는 한명의 프로필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녀의 프로필이 가장 예쁘기 때문일까.


 [여보세요? 오빠?]


 "너 누군데 우리남편이랑 연락하는거야."


 [.....]


잠시정적.


 [아아~ 그 오빠 아내분?]


 "누군데 우리남편이랑 만나는거냐고!!!"


아내의 고함소리에 귀가 아파졌다.


 [그.. 이혼할꺼면 빨리 말해주세요. 쉽게 해주면 나도 편하고 좋지.]


 "너같은 년한테는 절대 안줄거야 이 더러운 걸레년아."


 [걸레는 너고요. 오빠 버리고 딴놈이랑 떡치던 년이 말이 많네~]


 "뭐.. 뭐라고..?"


 [다시 연락할때는 이혼서류 준비하고 연락해줘요. 나 바쁘니까 끊어요.]


 [오빠 다음에 만나요~]


전화가 끊어졌다.


 "...여보.."


아내가 내게 달려들었다.


 "읍."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이 약간 흔들렸다.


 "여보 제발 이러지마... 나 용서해준다면서..."


아내는 나를 꼭 안았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것 처럼.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돈 더 많이 벌어올게. 내가 더 예뻐질게. 운동도 열심히 다닐게. 관리도 더 열심히 할게. 더 기분좋게 해줄게. 그러니까 제발 나를 버리고.. 떠나지말아줘..."


아내는 미친사람처럼 울부짖었다.


그리고 나에게 꼭 안긴채로 침실로 들어갔다.


-


아내가 나를 꼭 안았다.


너무 울어서 얼굴이 부었다.


 "알겠지...? 나 버리지 말아줘. 내가 더 잘할게."


몇번째인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고집 센 여자는 끝까지도 나를 놓으려하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몸을 맞대고, 숨을 공유하려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아마 평생이 가도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내뿐만 아니라도 그 누구도.


나는 감정을 아마 평생 찾을 수 없을테니까.


그도 그럴것이


애초에 '기적'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출장을 가고, 아내가 그틈을 타서 내 침대에서.


기적이 있었다면.


내가 그걸 보는 일이 있었을까?


기적이 있었다면,


내가 그 일로 목을 매고 감정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었을까?.


기적이 있었다면, 아마 나는 기적을 평생 증오했겠지.


그러니까 말이야. 안타깝지만 나는 너를 평생이 가도 용서할 수 없었던 거야.


그도 그럴게, 나는 감정을 잃어버렸던거지.


 그 비참했던 기억을 잃었던 적은 한번도 없거든.


니가 더 슬펐으면 좋겠어.


니가 나를 더 못놓고, 니가 나로 인해서 불행해졌으면 좋겠어.


너는 단지 내 감정을 되찾기 위한 도구일뿐이야.


 "그러니까. 부디 지금은 편히 잠들길바래."


아내는 조용히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


나는 또다시 휴대폰을 열고 어플을 켠다.


어째서인지, 입근육이 경련하는것이 느껴졌다.


-end-




처음 쓴 소설인데 좆같으면 어디가 좆같다 피드백 주면 고마울거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