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만났던 것은 오늘처럼 비가 왔던 날이다.


사이가 좋지 않던 엄마와 아빠의 싸움에 질려버려


정신없이 비가 내리던 바깥으로 뛰어들던 그날,



옷은 흠뻑 젖은 상태로 공원의 그늘에서 손을 비비며 차가운 몸을 조금이라도 녹이려던 나에게



그가 나에게 왔다.



그는 나를 걱정하며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혼자 있고 싶기에 나는 매몰차게 그를 내쳤다.



하지만 그는 내말을 듣지 않았다.


날카롭게 날이 서있던 나에게 찔리면서도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계속 여기 있으면 신고할거야!"



널 신고할거라며 버티던 나에게 그는 그러라고 

하였다.



날 신고한다면 적어도 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내 곁에 있을 거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결국 난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나에게, 그는 자켓을 벗어 

나에게 덮어주었다.


방금까지 입었던 그의 온기가 전해지듯이, 


내 몸은 천천히 열이 들었다.

몸이 따뜻해지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아빠...보고싶어...흑...흑"

"집에...가고싶어..."



내가 내뱉던 말을 듣고 있던 그는,

손을 내밀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럼 집에 가자."



보기만 해도 따뜻함이 느껴지던 그 손을 잡으며,

나는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나는 그곳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는 내 기대에 부응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와주었다.


그와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와 있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와 있는 시간을 상상한다.



그와 나는 서로 많은 것을 알았을때, 그는 내 전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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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대체 이게 어떻게 된일이야?"

"여동생이 했던 말, 전부 사실이야?"


"..."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봐!"



처음엔 우연이었다.


그의 생일을 위해 선물을 사러가던 날.



그가 경찰서에서 나오는걸 보게되었다.


그는 길에서 카드를 주워서 갖다주려 했다고 둘러댔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또 경찰서에서 본 순간,

뭔가가 이상했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줘."

"정말 아무일 없었어?"



그는 아무일 없다고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기에 나는 그를 믿었다.



하지만...



"여보세요?"

"어...저기.."

"언니? 언니 맞네요. 무슨 일로 전화 하셨어요?"

"그...오늘 네 오빠를 경찰서에서 봤거든...그이는 나에게 아무일 없다고 하던데...혹시 진짜로 아무일 없니?"


"아...혹시..오빠가 말 안했나요?"



그렇게 모든 것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가 경찰에게 조사 받는다는 사실보다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왜 거짓말 한거야?"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라고 말했잖아."

"넌 내 전부인데, 넌 나를 못 믿는거야?"


"그런거 아니야..."

"그럼?"

"너가 그저...충격 받을 까ㅂ"


"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게 더 충격이야!!!"


순간 카페의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로 쏟아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시선은 상관없었다.




"난 널 믿는데 너는 날 믿지 못하는거야?"

"미안해..."

"사과는 됐어. 네가 그러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니까."

"하지만...두 번 다시 나에게 거짓말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또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면...난 정말 실망할거야."



그 이후로도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그가 조사를 받는다는 것을 뺀다면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날, 누군가가 그의 신상을 공개해버렸다.



그에게 상상도 못할 욕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요,

애인인 나에게도 험담이 돌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빨리 그를 정리 하라는 충고까지 돌았다.



하지만 난 모두 거부했다.

그를 험담하는 것은 곧 나를 험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와의 만남을 이어나가자 나에 대한 험담도 심해졌다.

살인자와 연애하는 창X이라며 말이다.

부모님에게는 헤어지라고 뺨까지 얻어 맞았다.




상관없었다.

난, 그가 나를 좋아해주기만 한다면 좋으니까.




하지만...




힘겹게 그와의 만남을 이어가던 날



갑작스럽게 사정으로 해외로 나가야 할일이 생겼다.



그와 몇 주간 만나지 못한 다는 것이 괴로웠지만,


그를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해외에서의 일이 끝나고 그를 만났을때, 

그는 놀랍도록 수척해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며 붙잡고 물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의 입에서 듣고 싶었다.

그가 나를 믿어주기를 바랬기에.


아무리 부탁하고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자,


순간 내 머리속에 무언가가 끊어졌다.




"왜 날 믿어주지 않는거야....."

"됐어 이젠. 나도 지쳤어"

"너도 찔리는게 있으니 나에게 숨기는 거겠지."

"안 그래? 이 살인ㅈ






어?



방금 내가...무슨 말을




쾅!




정신을 차리자 내 앞에 보였던 것은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빗 속으로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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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도망쳤다.



처음엔 그저 밤이 되면 돌아올줄 알았다.




하지만 밤이 지나고 하루가 또 지나도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받던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도주했다는 소식은 금세

퍼졌고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경찰들은 CCTV와 휴대폰 위치를 추적해가며 오빠를 추적했다. 



오빠가 나오는 뉴스를 보며

오빠가 빨리 잡히더라도 무사했으면 좋겠다.

오빠가 미웠지만 오빠가 죽어버리는 것 까진 바라지 

않았으니까.

오빠가 미워도 여전히...내 오빠니까.



오빠가 도망친지 며칠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자신이 살인사건의 진범임을 자처하며 자수했다.




끝까지 숨기려했지만 두 명의 죄책감에 짓눌려 

못 버틸것 같다고 말하면서.



뉴스는 금세 오빠가 아닌 진범의 자수로 뒤덮였다.




아,



뭐가 오빠가 무사하기를 바란다는 거야.



그럴 자격도 없는 병신 같은 년이.



누가 누구를 걱정...ㅎ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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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자.



가족에게 경멸당하고 모든 것에게 경멸당하면서,



더 이상 살 가치가 있을까?



죽기로 결심하니 뭔가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죽기위해 걷고 버스를 타면서 도착한 곳은 한 산이었다.



예전에 가족과 와봤던, 추억이 담긴 산.



적어도 아무것도 없는 허름한 곳에서 죽기 보단

손길이 닿았던 곳에서 죽기를 바랬으니까.



산을 올라가며 등산로를 벗어나 이리저리 걸으니,

한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죽기 딱 좋은 높은 나무까지.



허리띠를 벗어 밧줄을 만들고 나무에 걸었다.

이제는 목에 걸고 뛰는 일만 남았다.



마침 해가 지는 노을을 보니 딱 그때가 생각났다.



힘겹게 동생을 업으며 정상에 도착해 보는 멋진 노을.



아, 생각해보니 그때 찍은 사진이 아직도 있으려나?



핸드폰을 킬려고 버튼을 눌렀다.

전원을 키면 바로 추적이 들어오겠지만.

뭐 어때, 곧 죽을텐데.



"어?" 



핸드폰을 키자 제일 먼저 뜨는 것은 뉴스 속보 한가지.



"살인사건의 진범이 잡히다."





원망스럽다.



절벽을 붙잡고 버틸 때는 도와주지 않던 그 손이

내가 절벽을 붙잡던 손을 스스로 놓으려 할때

그제서야 나를 끌어올려 줬으니...





"돌아가자..."



이대로 죽는다면 날 경멸하던 그들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절망만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절망보다는 희망으로 위장한 절망이 더 좋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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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그동안 밥도 먹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던 나에게 부모님이 조심스레 알려주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그를 좋아했던 나다.



그리고,



그를 무참히 난도질 한것도 나다.




나는 그를 볼 자격이 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병신같은 내 심장은 그를 생각하면 떨려왔다.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일단 가자.


그가 날 때리건 욕하건 무시하건

난 그저 그가 무사하기만 하면 된다.

용서? 용서는 내가 비는게 아니라 그가 해주는 것이다.


그저 그를 

보고싶다.




그가 있다던 경찰서로 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들과 예전에 보았던 그의 친구들.

그리고...그의 가족까지. 



부모님과 함께 30분을 있었을까.



그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의 모습보다는 좀더 나아보였다.



그가 경찰서 정문을 나오자 나와 기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그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며,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이다.



나는 멀리서 그를 보았다. 



그는 가족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집으로 가자고.

그와 가족들은 차에 타며 멀어져갔다.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생각했다.



아아


그래도 

그래도 


그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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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솔직히.


오빠가 화를 내길 바랬다.


그럴 가치도 없다면 무시해주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오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배가 고프다고 저녁을 달라며,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가 무서워졌다.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게

아닐지.



하지만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오빠는 정말로

평소와 똑같았다.


오히려 오빠를 대하는 우리가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어쩌면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희망을 잡아보았지만,



그 희망이 박살나는 것은 하루도 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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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당신들마저 저를 경멸하였을때는 괴로웠습니다. 

제게 있어 유일한 발판마저 없어지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당신들을 이해합니다
저 뿐만이 아닌 당신들 모두가 괴로웠을테니까요.
다만 이해할 순 있어도 용서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당신들을 용서할 수 있을때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찾지 마십시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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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보는 후회물 소설이라 어려웠다.

결말 부분은 용서받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주고 싶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