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대공성 뒷문을 통해 나오는데, 수상한 마기가 느껴졌다.
메타트론 제국인들의 것과는 이질적인, 아스트라이오스의 마기.
그 아이가 떠오르는 기운이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오기라도 한 걸까.
내가 그 아이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아……”
나는 성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수상한 마기는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
이복형제.
각자 다른 어미의 배를 빌어 태어난, 배다른 형제자매가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드문 동기간이 바로 나와 그 아이였다.
본부인에게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후계를 위해 급히 정부를 들여 낳은 딸.
불임인 줄 알았던 본부인이 뒤늦게 잉태한, 귀하디귀한 아들.
우리는 평범하게 서로를 미워할 수 있는 사이였다.
나는 한 여인을 떠올렸다.
그 아이의 친어미, 레이웨이 오즈마.
결혼 전 이름은 레이웨이 노스위치.
아스트라이오스 왕국의 전대 마탑주이자 왕국 북부의 노스위치 후작가의 독녀.
그 아이의 어머니는 마탑주라는 직분에 걸맞은 여걸이었고, 나는 그녀를 존경했다.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 오즈마 공작의 정처(正妻)였던 공작부인 레이웨이 오즈마는 자신이 내 분신이라도 되는 것 마냥 아꼈다.
내 본명이 그녀의 이름과 같은 ‘레이웨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다음 날까지는.
건강한 남자아이였다.
내 소유였던 것들이, 마땅히 내가 가져야 했을 것들은 전부 그 아이의 것이 되었다.
작위도,
아비의 기쁨도,
심지어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공작부인의 사랑도.
그 아이를 안은 공작부인이 내게 말했다.
[내가 없으면 네가 룬웨이의 어미란다.
가신으로서, 누이로서 이 아이를 평생 지키거라.
‘레이웨이 오즈마’. 네 이름이기도 하지만 내 이름이기도 하지.
그 이름의 명예를 드높여.]
부탁이 아닌 명령이었다.
실망했다.
절망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순간에 1순위에서 2순위, 혹은 그 아래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사랑하는 공작부인이 그토록 기다렸던,
본부인의 몸에서 아들을 얻기 바랐던 아비의 소원이 이루어졌던,
공작 부부에게 행복을 안겨 준 동생이 태어난 기쁜 날이었는데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룬웨이를 보겠니?]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있다.
내 눈은 울고 있었으리라.
공작부인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보에 싸인 아기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막 태어났음에도 선명한 검은 머리카락과.
잠들었는지 눈이 감겨 있었지만, 아이의 눈동자는 진한 자색일 것이었다.
[우웅.]
아기가 칭얼대며 살짝 눈을 떴다.
예상대로 자수정처럼 빛나는 보라색이었다.
그 아름다운 눈이 내 시선을 갈구하기 위해 움직이던 순간.
나는 도저히 그 아이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안아보겠니?]
[네, 공작부인.]
공작부인은 아기를 내게 건네주었다.
신생아 특유의 높은 체온과 몸에 밴 젖내음.
그리고 나와 똑같은 마기.
그 모든 것들을 느낀 그때.
나는 룬웨이의 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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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지만 알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달라질 것임을.
오즈마 공작가의 후계가 아닌, 적법한 후계의 그림자가 될 것을.
[레이웨이 누님.]
일곱 번째 생일이 지난 날.
룬웨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하필이면 그 아이가 후계로서 어떤 하자도 없는 것이 확인되어, 내 지위가 박탈된 날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즈마 공녀라는 이름과 마법 능력이었다.
보는 눈도 없으니 그 아이의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응. 누이란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째서 룬웨이를 미워할 수 없는 걸까.
내가 가졌어야 할 것들을 빼앗아 간 아이인데.
레이웨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평생을 지켜야 할 족쇄와도 같은 아이인데.
어째서 그 아이에게 가벼운 꿀밤 하나 먹일 수 없는 걸까.
애증.
사랑하고도 증오하는, 복잡미묘한 감정.
그 감정을 안고 오즈마 공작가의 가신으로서, 룬웨이의 누이로서 살아왔다.
10년 전.
아스트라이오스 왕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훌쩍 자라 내 키를 뛰어넘은 아이는 소년이 아니라 기사가 되어 검을 쥐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쏟아 부어 수도와 왕궁을 사수하려 했다.
메타트론 제국이 아스트라이오스를 지키려 한 모두의 재능도, 노력도 없는 것처럼 만들 만큼 강했을 뿐이었다.
룬웨이는 끝까지 싸우다 죽으려고 했다.
허나 나는 그 아이의 누이로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메타트론의 늙은 황제와 어린 황녀 앞에 무릎을 꿇고 빈 결과,
오즈마라는 이름과 귀족 작위만은 지킬 수 있었다.
공작위에서 백작위로 강등당하긴 했지만, 그 아이에게 있을 곳이 남아있는 게 어디인가.
룬웨이가 좋아할 줄 알았다.
조금 서운해 하긴 하겠지만, 돌아올 곳을 남겨 줘서 고마워할 줄 알았다.
허나 그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내게 고함을 질렀다.
[어째서 포기한 겁니까!]
다 너를 위해서란다.
나는 그 말을 입에서 꺼낼 수 없었다.
그 아이가 고향을 사랑했던 마음이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아스트라이오스 왕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한 그 아이가, 그 나라에 살던 이들과 친구가 되었던 그 아이가 더 실망할 것을 알았기에.
나에게는 레이웨이 오즈마라는 이름도, 공작위도 필요 없었다.
내 적모가 내게 떠맡긴 것이 아닌, 온전한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룬웨이가 메타트론 제국에서 설 곳과, 새 고향을, 그리고 새 인연을 그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아이가 백작위를 받아들인다면 내 모든 능력을 동원해 제국의 고위 귀족 신부를 고르고 고를 생각이었다.
원래 약혼녀였던 망국의 왕세녀와 이어지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행복하지 않겠는가.
허나 룬웨이는 쓸데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아스트라이오스 왕국 재건 결사대.
그 아이가 만든 집단의 이름이었다.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니.
왜 망한 나라를 다시 세우지 못해 안달이 난 거니.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야.
너의 행복만을 생각해.
네 능력이면 메타트론에서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잖아.
무엇보다……
너를 미워하지만 사랑하는 누이가 있잖니.
마음속에 품었던 말들은 그 아이에게 끝까지 전하지 못했다.
말이 결사대 본부지, 왕국 하층민의 집보다 못한 움막에서 그 아이가 이래로 가장 밝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아스트라이오스가 재건된 이후의 미래를 말하는 룬웨이 오즈마는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
결심했다.
아스트라이오스 왕국은 재건되어서는 안 됐다.
이미 사라진 나라에 집착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을까.
그 아이가 살아야 할 곳은 아스트라이오스가 아닌 메타트론이다.
그 아이가 사랑해야 할 여인은 망국의 공주인 카트라 왕세녀가 아니라 메타트론 고위 귀족의 영애다.
룬웨이에게서 ‘아스트라이오스’를 빼앗으면, 그 나라를 재건하려 했던 모든 자들을 죽이면,
내가 이야기한 행복이 얼마나 좋은 것들인지 알게 될 것이었다.
인생의 쓴맛을 보면 자기 누이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알게 되겠지.
나는 제국에서 친분을 쌓아 두었던 라파엘로 대공에게 밀고했다.
그리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살려 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라리에트 황제 폐하께서는 놈을 증오한다.
자네의 아우가 폐하께서 황녀 시절 그토록 싸고 돌던 태경인지 뭔지 하는 이계인을 죽였으니까.
이래도 내가 굳이 폐하의 미움을 사야 하나?]
나는 대공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귀족이 명예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은 어렵다고들 하지만, 나는 처음이 아닌 두 번째여서 너무나도 쉬웠다.
특히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노예가 되라면 되고, 개가 되라면 개가 되겠습니다.
기라면 기고, 핥으라면 핥고, 죽으라면 배라도 발랑 까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룬웨이만 살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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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는 후순상의 후회 파트인 데스.
앞으로 시점을 변경할 때는 해당 인물의 삽화를 쓰는 데스야.
지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