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사태 / 1만자 임박 / 초보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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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가 뛰놀았었던 흙바닥 부근에선 벌레 만한 발자국의 흔 조차 찾지 못했다. 


해가 머리를 따스히 비추는 시간은 항상 이곳에서 뛰놀며 굴러가는 공만 쫓아갈 것이라 고문방에서 단언하던 경우의 수를 버리기로 했다. 


몇번을 발걸음을 멈추며 이동하다, 시가지 중앙을 지키던 이끼 낀 분수를 마주치게 되었다. 


“녹조… 없네?”


분수를 조금 바라보다가 시가지에 뻗친 석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헤진 누더기 차림으로 북적한 시가지에서 빳빳한 차림의 아카데미로 향하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눈에 보일 필요조차 없는 바닥이 알려주었다.


순수 돌 끼리 뭉쳐져 만들어진 바닥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듯한 곳에서의 균열은, 걷다 보면 이윽고 푸른 강 위로 놓인 석다리 입구의 경계선까지 당도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저 작고 작었던 기억의 편린은, 이 곳을 지나가는 순간을 매우 커다란 극사실의 일부분으로 바꿔놓았다.


저벅-...


정문 양쪽으로, 높게 떠있던 태양에 쉽사리 반사되기 쉬운 갑옷으로 무장한 문지기가 서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묵묵히 걸어오는 내 모습에 조금씩 경계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쯧.”


저벅-...


“...오랜만이ㄴ-”


“루, 루이…!”

“도, 돌아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뭐야.”


석다리의 중간 쯤을 짧은 발재간으로 천천히 지나가던 중, 뒤에서 누군가가 날 불렀다.


여학생이었다.


“멀리서 봐도 너인걸 알아보겠더라구..”

“...근데 그 탈은 뭐야?”

“얼굴, 보여주면 안돼…?”


미세하게 내저은 고갯짓에 여학생은 수긍한 듯 했다.


“...누구였더라?”


허리까지 단숨에 내려가는 흑발,

짧은 흑색 스커트와 스타킹 위로 흰색 와이셔츠에 연갈색의 자켓을 입고 있으며,

유난히 밝고 커다란 진홍빛 눈빛에 함께 발그래진 볼을 두 뺨으로 붙잡고 있는 한 여학생.


여학생은 자신의 볼에 갖다 댄 한 손에 붉은 하트를 찍어 밀봉한 편지지를 쥐고 있었다.  


“...”


이내 어색함이 풀리기라도 했는지 얼굴을 붙잡던 양 손을 내린 여학생이었다.


“...아, 회장님이었나?”


스스로 이런 상황에 죽닥치거나 입을 벌릴 일이 없도록, 그들이 밀집할 평일이 아닌 주말에 온 나였다.


주말의 밤낮을 헌신짝으로 공을 차는 남자아이와, 포화된 공부의 압박으로 아카데미에서 벗어났을 학생들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역시 망상인 듯 했다.


“할 말 없으니, 일 보세요.”


“잠깐!”


뒤에서 급박하게 다가온 소리에 한번 더 뒤돌았다.


“내, 내가 얼마나 널 찾아다녔는데…!”


“...”


“...루이… 보고싶었어…”

“나, 너를 계속 찾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러십니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너가 돌아와줘서 정말 기뻐.”

“이것도 준비하고, 저것도 준비하고…”

“마, 많이 준비했으니까아…”


“...”


“같이 있으면 안될까…?”

“불편하면 자리 옮겨도 되고…”


“...”


“불편하면 말해줘…”

“나, 정말 실망시키지 않을테니까.”

“5년동안 쭉 기다렸어.”

“사람들이 만류해도 난 널 기다렸으니까!...”


준비된 대사집을 펼쳐 읽는 듯한 어조에, 속사포로 이내 말을 끊거나 개입할 순간조차 없게 이야기를 꺼내는 여학생. 


“...회장님.”


“으, 응?”


“...기쁘네요. 기다려 주셨다니, 영광이네요.”


“...!”


“회장님이 절 기다려주신 것처럼, 저도 회장님을 만나길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그런 낯짝으로 겸허히 아카데미 회장직을 꿋꿋이 지키고 계신 면모도…”

“...뭐 여기까지.”


“...아, 응응! 맞아! 루이 널 다시 그때 그 모습으로 만나려고! 그럴려고!...”


“...”


“계속 버텼었어… 끕…”


이내 간신히 눈이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여서는 갈 곳 잃은 두 손을 편지지와 함께 맞 붙잡고 왔다갔다 하는 여학생. 


역시 그때 그 모습이다.


“...대사집은 누구한테 받으신건가요?”


“...어? 그게 무슨 소리-”


“차라리 창녀 대사집이 더 잘 어울리겠네요.”


“루이야…? 그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루이…?”


“쥐새끼.”


“...응?”


“손잡았던 흔적, 매달렸던 흔적, 업었었던 흔적, 껴안은 흔적까지.”

“언젠가 쥐한테 묻은 흔적을 조사했었는데, 차마 입술까지 조사는 안했어요. 역겨워서.”


“...으.”


“부럽네요~ 그렇게 물고 빨고, 다 하셨나보네?”


“으아, 으아아…”


동공이 떨리고,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양 손으로 붙잡아 보지만, 이내 떨리는 팔에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


전신이 미세하지만 강렬하게 떨린다 표현해도 무색했다.


“어떻게든 밝혀질 사실인 걸 아셨으면서, 무슨 낯짝으로 그러신거지?”

“뇌가 장애인가?” 

“쥐가 병신연기 펼치니까 주변에서 오뚝이 마냥 어떻게든 툭툭 치다가.”

“정신력이 병신인 연기를 해야했으니 뭘 시키든 다 따랐겠지.”


“루이! 제발! 그 다음은-”


“그러다가 서로 물고 빨고, 다하고, 원하는것도 다 줬겠네?”

“넌 쥐새끼랑 한거라고 이 창녀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두다다-.


땅을 울리는 굉음 사이로,


퍼억-.


“끄흡!...”


이내 조용히 무릎을 꿇기 직전인 여학생은 매우 심하게 걷어차이기에 이르렀다.


왼팔이 땅바닥에 질질 끌리면서 점차 자켓이 해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럴걸.”


“커흑… 루이… 루이…”


땅바닥에 질질 끌리는 무릎으로 내게 다가오는 여학생.


내 다리와 맞 닿은 그녀의 머리칼 위로 허리에 감기는 두 손.


다리와 맞 닿았던 머리와 상반신, 하반신을 비롯하여 허리에 감긴 두 손과 팔을 향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얼추 괜찮아진 자세였는지 껴안기에 조금 더 힘을 싣는 여학생.


회장으로 불리울만한 힘이 있는 듯, 그저 감정실린 껴안기일지라도 복부가 터질듯한 느낌이 뇌리에 강하게 박히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루이!... 내가 경솔했어. 바보같이 그랬어.”

“힘들어하는 모습에, 계속 손목을 붙잡아서, 그래서… 내가…”


“하하…”


“며, 몇십배로 갚을게.”

“얼마든지 때려도 돼.”

“회장으로서 모두 지원해줄게..!”

“원한다면 회장직도 줄 수 있어..”

“아니면, 화나면… 날 때릴래?”

“때려도, 날 때려도 괜찮아,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제발. 응?”


“...”


“날… 때려줘”

“그럼 풀리는거지?”


지익-.


“아? 어? 루, 루이? 아니야. 아니야. 루이.”


여학생은 이제야 깨달은 듯 했다.


자유로운 내 양손이 내 귀를 잡아뜯고 있는 중인 것을.


“루이!!!! 안돼!!!!”


퍼억-.


“...컥!”


어떻게든 풀지 않으려던 팔을 기점으로 몸을 위로 올릴때의 틈을 노려 다리로 복부를 가격했다.


“루, 루이…”


덜그럭-...


“...아파라.”


손으로 애매하게 잘려나간 종이마냥, 투박한 모양의 귀의 일부가 여학생에게 던져졌다.


여학생에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 쪽 귀는 아직 말끔하게 붙어 있었다.


여학생은 고통에 몸서리 칠 겨를도 없이 바닥에 내 던져진 귀의 일부를 붙잡았다.


“아니야!! !!! 내, 내가 다 되돌릴게, 그러니까 루이…!! 이럴게 아니라 당장 회복실로!-”


직후 내던져진 귀 근처에 함께 떨구어졌었던 편지지를 쥔 채 일어섰다.


엎드린 채 무언가를 쥔 양손을 가슴에 갖다 대는 여학생.


“...이름으로 불러줄 생각 없어, 까먹었으니까.”

“어짜피 당신은 내게 있어서는 그냥 회장인거야.”


“자, 잠깐만!! 루이!”


“나보다는 그 탈쓴 놈이 더 좋았나보네.”


그대로 정문 깊숙이 들어갔다.


이내 여학생이 다시 일어서서 내게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씨발, 작작하지, 좀.”


나는 그대로 들어간 정문 속 일직선으로 이어진 아카데미 중앙의 풀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찰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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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서 전신에 뿌리처럼 흐르던 핏물 때문이었을지,


5년이라는 억겁의 시간을 탈을 쓴 채 벗어났다는 사실에 그런건지,


모두가 몇줄 씩 모여 조용히 풀을 딛고 서있을 때 뛰어다녀서 그런건지,


앞서 나온 그 모든 이유를 총합해서인지.


주말에 아카데미에 남아 풀밭에서 휴식하던 학생 모두가 일제히 나를 관음하기 시작했다.


그저 동물원에 뿌려 놓은 동물을 일제히 관음할 뿐인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헉… 헉…”


내 뒤를 바짝 쫓아오는 회장과, 내 앞으로 조금씩 모여드는 학생들.


“루이…?”


“뭐야, 루이 돌아왔네.”


“근데 저 탈은 뭐지?”


“오자마자 어디 가는거야?”


“...개씨발.”


내 앞으로 악수하려는 듯 손을 내민 남학생의 하반신을 넘어뜨리고,


“꺄악!”


뒤에서 집요하게 쫓아오던 여학생에게 넘어진 학생을 굴렸다.


잠깐의 순간에 터져버린 비명이 결과가 좋음을 얘기해주는 듯 했다.


그 후 그대로 교장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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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루이… 학생???”

“아니… 그 피는…!”


어느덧 교장실에 당도했기에 급히 열려 흔들리는 문을 한번 발로 툭 건드려 닫았다.


“날 기억하고 있네?”


단정한 옷차림에 백색 단발머리를 하고 계신 한 여자.


교장.


“원래 장발이셨다가 단발까지 하셨네.”

“결혼은 하셨어요? 저번에 나한테 좋은 연인 만났다고 뜬구름 잡는 소리 하더만.”


“...그 부분은, 그쯤 하고.”

“근데 그 탈은-”

“맘에 안드시나, 근데 또 기억은 하고 있었네?”


“...당연히, 내 학생이였으니, 꽤나 입소문으로 돌고 돌았으니.”


“...큭.”

“이제 학생 아닌데.”


“그게 무슨…”

“그보다, 그 귀는 어디로!...”


텁.


이전에 한 여학생이 떨궜던 편지지와 비슷한 모양의 편지지를 내려놨다.


“알거 없고, 그냥 제가 아카데미에서 사라지면 그때 읽어보세요.”

“방송실도 좀 빌려주시고.”


“...꽤나 당돌하게 행동하는군, 루이.” 


“당신은 날 닦달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학생들끼리 분개할때 당신은 입닫고 있던건 알겠더라고.”


“...우리에게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건가, 루이.”


“개소리 싸고있네, 큭…”

“...당신이 싸질러놓은 문제라도 회개하고 싶은거야? 그런거야?”

“그럼 방송실로 안내하면 돼.”

“더 많은 피가 보고싶으면 여기 있고.”


“...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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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아아.


소리가 들려.


“애초에, 시발 이거 회장이 우리한테 까발려서 이렇게 된거 아니냐?”


“그렇지? 아무리 가짜든 뭐든 그따위로 알릴 이유는 없었는데.”


“회장이란 새끼가 남 괴롭히는거 독촉하면 어떡하냐…”


날 괴롭히는 소리가 덧없이 들려오고 있어.


““회장 탓이지, 큭큭..."”


“루이가 저렇게 된건, 어찌보면 선동질한 회장 탓이지 큭큭…”


“으, 으아아…”


루이.


루이.


살려줘.


스스로 붙잡은 머리채가 놓이질 않아.


아아.


루이…


딩-. 딩-, 딩-....


“...어?”


방송…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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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은 놈팽이들끼리 마녀사냥 하는거 역겹다.

즐길때는 난교하는 짐승처럼 꼴값떨더니, 어거지로 회장 욕하고 있냐?

욕할거면 차라리 내 복부에 칼넣고 이리저리 비튼 용사한테나 그래.

어짜피 난 여기서 꺼질거고, 다신 안올 곳이니까 그렇게 알ㅇ-

]


딩-. 딩-. 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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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루이! 그게 무슨 말이니…!”


“흐… 그 종이 쪼가리가 자퇴서인건 진즉에 눈치챘어야죠.”


“루이… 안돼… 안된다…”


“왜 오지랖이지? 교장 선생님?”


“부디 생각을 재고해주게나 루이… 그런 불성사나운 소식을 지레짐작해서 침묵한건 큰 내 큰 실수였어 루이…”

“내 직급을 걸고 책임을 질 테니, 부디 사과할 기회를-”


“아까 오지랖 떨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


“봐봐. 아무도 몰라.”

“지들 저지른 짓은 사과라는 행동으로 다 끝난다고 생각하나 본데.”

“교장.”


쿵.


쿵.


쿵!


교장에게 매섭게 다가갔다.


서로 비슷한 체구였으나 미약하게 더 컸던 난 더욱이 발을 빨리 딛기 시작했다.


쿵!


“...”


“...루, 루ㅇ-”


“난 이미 죽었다고.”


“...”


“니네들이 죽였어. 니도 날 죽였어.”


“루이…..!”


교장의 멱살을 잡고.


“니들이!!!”


콰앙-!


교장 뒷편에 있던 문으로 날려버렸다.


“끄헉!...”


“교장선생ㄴ-! 어, 어.. 루이..!”


덕분에 피했어야 할 망할 회장도 만나버렸다.


“아까 방송에서…!”


콰직-.


“윽!...”


즉시 빠르게 다가오던 회장의 목을 잡고 벽으로 밀쳤다.


“끅… 난… 괜찮아… 너만… 괜찮으면… 루이만 괜찮으면…”


탓.


“컥… 끅...”


어설프게 대목을 되풀이하고 있는 회장을 놓아버렸다.


“헉… 응? 응! 들었는데!...”

“그, 근데 간다니…?”


갑작스럽게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회장.


“이짓도 마지막이라, 특별히 지랄한거지… 큭..”

“언제 내가 뜯어버린 귀는 잘 갖고 있네?”

“...역겨우니까, 따라오지 마.”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다른 쪽도 다 잘라버릴 거니까.”


저벅-.


“...루이… 안돼… 너가 가면…”


저벅-.


“루이!!!... 제발!!...”


저벅-.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저벅-.


“...남자아이나 찾으러 가련다.”


이후 단숨에 따라 올라온 학생들에게 똑같이 경고하며.


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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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너!”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와 석다리를 건너고 보니, 그 경계에서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 늘 그랬듯이 연거푸 해진 신으로 공을 벽에 차고 놀던 남자아이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래. 나 기억나지?”


“네! 당연하죠!”

“엇, 근데 그때 봤을땐 아저씨 같았는데, 이제 보니 형이었네요…”


“...하하. 뭐, 그렇지.”


“음… 아카데미에서 나오셔서 이제 형인거 알았으니 걱정없어요!”

“근데 아카데미 안에서도 제 종이탈을 쓰고 계셨던 거에요?”


“응.”


이내 난 팔을 최대한 넓게 들어올려 뻗었다.


“크아. 난 괴물이다.”


“괴물…!”


“어때, 무섭지?”


“형은 괴물 아니잖아!”


“하하, 그런가?”


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서일까, 말을 놓기 시작한 남자아이였다.


이내 잠시 탈을 벗었다.


“우와. 형을 이렇게 보는건 처음이야!”

“근데 내가 더 멋지지롱!”


“...그럴지도, 이제 보니 너가 더 멋지네.”


“응! 맞아!”


“아, 오늘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허리춤 구석에 쟁여놨던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언젠가부터 허리춤에 주머니 하나가 있던 것을 까먹었었으나, 아까 그렇게 뛰어다니며 찰그락 대는 소리에 조금 인지할 수 있었다.


“형한테 물건 하나가 있는데, 너한테 선물로 주려고.”


“와! 뭔데 형??”


철그럭-...


“직접 펼쳐봐.”


“...와! 이거 광물이라는 거잖아! 이건 황금이라는 거고! 이거는!... 어어…”


마치 늦은 밤 숨겨진 간식을 발견한 듯 하며 기뻐하던 남자아이였다.


곧이어 지식의 한계가 왔는지 새롭게 꺼낸 광물에 대해 추리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그건 그냥 다이아몬드라고 불러.”

“잡다한 게 많으니까, 가서 팔면 돼.”


“음… 이쁘고! 형이 준건데, 팔고 싶지는 않은데…”

“...푸흣. 괜찮아. 팔고 싶지 않으면 안팔아도 돼.”


“...응!”


“모처럼 오랜만에 만났는데, 난 바로 가봐야 해서. 아쉽게 됐네.”


“아… 그럼 그 종이탈은? 계속 쓰는거야?”


“응? 어어. 그럴려고.”


“그래. 잘 가 형! 나중에 또 보자!”


“그래~”

“...탈, 고마웠다.”

“...하…”


슬프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리곤 다짐했다.


더이상의 감정을 부추기는 모략 따위 저지르지 않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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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발긴 계보를 들고 대저택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대저택 속에 나를 위한 진수성찬이 차려짐과 동시에 그런 성대한 만찬에 취기를 덧씌운 만담이 오간다 한들, 들어갈 마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럴거면 성검도 같이 들고 나올걸.”


순수 대저택에 놔두었던 물건이 떠올라 돌아왔을 뿐이다.


이제부턴 독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사실 들켜도 유혈사태 등의 극단적인 일까지는 아닐지언정, 분명 우리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라면 떠나지 않게 붙잡아둘 것이 뻔했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분노 속에, 아카데미에 처음 떠날 것이라는 소식은 일파만파 퍼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십중팔구 다른 곳에도 이 이야기가 퍼지는건 직접 확인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집을 어슬렁 거리는 행위 자체도 위험하다는 소리였다.


“망할 성검…”


만약 그때 성검을 들고 나가려 했다면 나의 만류가 있었다 할지라도 따라올 사람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현재로써는 찢어진 계보 하나만을 들고 움직이려던 내게 저항을 위한 물건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으니 의심을 덜 수 있던 것이었다.


“...루이?”


“...에이 씨발.”


더이상 생각해볼 것도 없이, 도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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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루이! 여보! 루이가 돌아왔어!”


“하하…”


조금씩 발을 옮기며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던 중, 어머니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아니 루이!!”


“아들!...”


“...동생!”

“야 레이! 리에! 루이가 돌아왔!-”


“아 좀 닥치고, 뭐 때문에 이렇게 까지 반응하는 건지...”


“아들이... 아카데미에서 네가 방송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그만...”


그 순간 아버지가 나서서 깔끔하게 이야기를 요약하셨다.


“그 바람에 아들 찾는다고 영지 사람들이 다 움직이고 했지…”


“...내가?”

“그런 거짓부렁을 누가 믿어?”


저벅-.


“아무 일 없었으니까. 그냥 보던 일 보세요.”

“방에 나 혼자 있을거야.”


끼익-... 쿵.


“후우…”


해가 저물기 시작한 시간에 돌아온 대저택은, 나로 인한 얘기로 술렁이다 이내 잠들기 시작했다.


예상 외로 모두 내 방에서 이미 떠나간 뒤였고, 성검은 그대로 있었다.


“...이제 됐다. 계보는 여기다 놔두고…”


내 책상 근처에 찢어진 계보를 올려놓았다.


“남은건 나가는 건데…”


분명 그들이라면 내 방 창문, 정문 등을 비롯하여 대저택의 모든 출입구에 일종의 장치를 해 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슬렁 거리던 내게 바로 왔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출입]… 개념인건가?”


어정쩡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


“그게 있겠구나.”


비록 이 방법은 이전의 다짐을 망치는 결정이었지만.


당장에 이 방법이 아니라면 생각나는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법도, 검술도 안되는 내가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은 그들에게 의심의 종자를 심어주는 짓에 불과하다.


“그러면…”


똑똑-.


“누구야?”


“...나.”


쿵쿵쿵.


“어, 어..! 오빠..!”


급히 문을 연 여동생 레이가 내게 안긴다.


“오빠아…”


내가 검을 휘둘렀을 때의 두려움은 어디가고, 이젠 부둥켜 안길 생각 밖에 보이지 않는 여동생.


“...괜찮은거야? 오빠?”


“아마도.”

“...그보다, 부탁이 있어.”


“어? 으응! 말만 해! 들어줄게!”


나보다 비교적 마법에 선천적인 자질과 재능이 있던 여동생이었기에, 힘을 빌려보려 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인데, 바깥으로 나가야 해.”


“응..? 그럼 부모님이랑 같이-”


“아아, 그건 안되고, 이유는 나가면서 말할테니 그냥 나가.”


“근데 바깥에 마법이 걸려있는데…”


“...해제 가능해?”


“으, 응. 엄마가 걸어놓은 마법인데,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래. 알겠다.”


“...지금 당장?”


“...응. 지금 당장.”


“정말 지금 해야… 해?”


“왜 그래? 도대체.”


“나랑… 그…”

“...”

“…리에 언니랑… 할 말이 있어.”


“...하. 알겠다. 알겠어.”


“마침 언니 저기 누워 있으니까…”


“...”


이네 여동생 레이는 누나인 리에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난 그녀들의 방 문앞에 조금 다가가 섰다.


누나는 귓속말을 하는 듯했던 레이의 이야기를 듣기라도 했는지, 급히 일어나 방문 앞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


누나에게는 눈물 자국이 가득해 보였다.


날 바라보던 눈은 이내 몇 센치만 남겨둔 채 바라보고 있었다.


“끄흡… 루이…”


육중한 검으로 산등성이와도 같은 궤적처럼 베어버렸던 리에 누나의 복부에는 붕대가 덧 씌워져 있었다.


“...그래, 그래.”

“리에… 누나.”

“...됐지, 레이? 이제 좀 도와주지 그래?”


“...응? 뭘 도와줘?”


“레이, 내 일좀 도와주기로 했어.”


“그, 그럼 나도 도울게!”


“...뭐?”


“뭐가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마법을 쓸 생각이라면 레이한테는 내가 필요해!”


“...확실히, 그렇겠네. 그럼 누나도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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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임의로 처리해둔 [경계] 마법을 지나쳐서는 대저택에서 내려왔다.


난 또다시 그 시가지로 향하고 있었다.


“루이…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이내 뒤따라오던 누나가 내게 물었다.


“...응.”


직후 나는 들고있던 성검을 조금 더 단단히 붙들어 맸다.


“하나만 물어보자. 그때 내 흉내냈던게 쥐새끼였다고?”


“...응. 맞아.”


리에 누나가 긍정했다.


“뒷공작한 사람은… 나도, 언니도 같이 합세해서 찾고 있어…!”


이에 레이가 조목조목 말을 이어갔다.


내 뒷모습에 드리운 그림자를 밟으면서 걸음을 맞추었던 동생은, 이윽고 딛고 있던 발을 땅에 소음이 날 정도로 팍 찍어 멈춰버린 내게 부딪혔다.


“으앗!... 아, 오빠 괜찮아…?”


“...응.”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응…?”

“대저택을 비롯해서, 우리 영지가 이리도 넓은데, 누구 하나 쥐 조련할 수 있다 호언장담한 사람 본 적 있어?”


“물론, 그런 사람은 없었는데 루이…”


“봐서 알텐데? 50년 해먹은 부모조차 그딴 교활한 쥐한테 속았는데, 누가 쥐를 조련하려 들겠어?”


““...””


“인간은 인간끼리 상생하고, 괴물은 괴물끼리 상생하는건 당연한거 아니야?”

“쥐도 예외는 아닐테지.”


“!”

“그러면 루이 넌… 그 뒷공작을 한 사람이…”

“...숲으로 갈 필요도 없어. 그냥 이 영지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고.”


콰직-!


“...루이…?”


“오빠??...”


직후 얇은 천으로 감싸두었던 성검을 꺼내들어, 분수를 바닥에 고정시킨 고정판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콰직-!


“...하… 이거, 이동식 분수였지.”

“나 좀 도와줘.”


“아, 으응.”


“...다 하수도로 쏟아보내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계속...


.

.

.


*후기*


이게 왜 1만자...?

난 무엇을 쓴 것인가...

아무튼 여기까지 와주셨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