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 이 친구야, 또 뭘 심각하게 쳐다보는 겐가? 나는 왼쪽을 들겠네. 자네는 오른쪽을 맡게나.”

 

로드가 왕세녀 저하의 관에 손을 대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경계심이 풀릴 것만 같았지만, 수상하기 짝이 없는 자가 저하의 관에 손을 댔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경계를 풀 수 없게 했다.

 

“곧 장례 행렬을 시작하겠소이다!”

 

좀 더 그를 지켜보고 싶었지만, 야속하게도 행정원이 장례의 시작을 알렸다. 

 

장례는 메타트론 제국 식으로 치러질 것이었다. 

 

망자의 관을 든 장례 행렬이 가묘까지 행진하고, 행진이 끝나면 묘에 모인 가족들이 망자를 추모한다.

 

가묘에는 망자의 친인척과 배우자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내가 카트라 왕세녀 저하와 같이 갈 수 있는 곳은 딱 가묘 앞까지만이었다.

 

그 후부터는 저하의 남편인 대공 혼자서 그녀를 기리겠지.

 

생전에도 저하를 귀히 여기지 않은 놈이 죽은 후에서야 잘 대해줄 리 없었다. 

 

가묘까지 가시는 길은 외롭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겠군.

 

“준비되었네, 로드.”

 

“그래. 그럼 하나, 둘 하면 들게나! 하나, 둘!”

 

로드가 구령을 외치자 나는 관 오른쪽에 서서 멀쩡한 왼팔로 관을 들었다.

 

라파엘로 대공령의 특산품인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관.

 

온몸에 그 무게가 전해져 왔다. 

 

긴 시간 동안 추운 바깥에 있어서 관이 차갑게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기꺼웠다. 

 

의수로 바뀐 오른팔로 관을 들었다면 그 감촉조차 느낄 수 없을 테니.

 

“어이쿠……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니 무겁기 짝이 없구만. 윈드, 자네는 괜찮나?”

 

“나는 괜찮네.”

 

“당신들 둘 다 정말 힘이 장사인가 보오. 그 무거운 관을 번쩍 들다니. 혹시 전직이 소드마스터였소?”

 

“행정원 자네, 농담도 참 잘 하는구만! 마음에 들었어. 이름이 뭔가?”

 

“아이고, 통성명을 못했군요. 내 이름은 리스요. 둘 다 알다시피 메타트론에서 가장 거대한 용병단인 그랑 용병단의 행정원이오.”

 

“이름도 참 마음에 드는군, 리스! 잘 부탁하네.”

 

어느새 로드는 행정원과 친해져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정말 부담스러운 자다.

 

카트라 저하의 장례식만 끝나면 헤어져야겠다. 

 

나는 아스트라이오스 왕국이 무너진 이래로 가장 무서운 이들이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 놈들이라는 것을 배웠다. 

 

저런 꺼림칙한 자와 어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곡(哭)-!”

 

“아이고, 아이고오……”

 

장례를 선두에서 이끄는 귀족이 크게 외치자, 용병들이 통곡하는 척을 하기로 했다. 

 

아마 진심으로 슬퍼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짜 통곡도 통곡인지,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차디찬 관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장례 행렬을 따랐다. 

 

“아이고, 아이고오오-”

 

곡소리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라파엘로 대공에 널리 울려 퍼졌다.

 

“저하,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시기를……”

 

+++

 

 그날 밤.

 

카트라 저하의 시신이 라파엘로 대공가 가묘에 안치되고, 관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활짝 열려 있었던 가묘의 석문이 굳게 닫혔다.”

 

불쌍한 저하.

 

역겹기 짝이 없는 남편과 단둘이 있어야 한다니 얼마나 괴로우실까.

 

차라리 동방 대륙처럼 화장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영원히 메타트론의 영토에 묻혀 있을 필요도 없으실 텐데.

 

바람 가는 대로, 물이 떠다니는 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실 텐데……

 

내일부터는 라파엘로 대공령의 귀족들과 황가가 헌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모레는 평민들이 헌화하고, 글피에 장례식이 끝나 온 대공령이 탈상한다.

 

평민도 어릴 때 죽지 않는 한 7일장을 치르거늘.

 

성인식까지 마친 대공비의 장례가 고작 3일이라니.

 

“아니야, 오래 잘 됐다. 왕세녀 저하의 장례식에 살생을 할 수는 없으니.”

 

날이 추워져 결국 여관을 잡았다. 

 

방은 허름했다. 

 

허나 여관 주인장이 말하기를, 내일부터는 평민이고 귀족이고 헌화를 위해 몰려들어 자리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방이라도 구한 것을 감사하라나 뭐라나.

 

어쨌든 나는 단검에 일일이 내 마력을 감쌌다. 

 

그리고 암시장 비슷한 곳에서 와이어를 구매해 와이어에도 내 마력을 감았다. 

 

내가 와이어를 당기기만 해도 빠르게 단검을 회수할 수 있었다. 

 

‘나’를 이루는 마력이 룬웨이 오즈마의 마력 뿐이었다면 대공에게 금방 들키겠지만,

 

현재 내 몸에는 의수와 의족을 통해 라리에트 황제의 마력이 주입되었다.

 

“‘룬웨이’와 ‘라리에트’가 합쳐진 키메라와 다를 바가 없군.”

 

나는 혀를 차며 단검과 와이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똑똑똑!

 

“안녕하신가! 옆방 투숙객분! 나는 용병 로드라고 하네! 같이 술 한잔하지 않겠…… 어? 자네 윈드 아닌가?”

 

“쯧.”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면 술이 운다네, 윈드. 마시겠는가?”

 

“되었네. 카트라 왕세녀 저하의 상중일세. 자네도 자중해 주게나.”

 

“그럼 수다라도 떨지. 술 대신 육포를 뜯는 건 어떤가?”

 

“사양하겠네.”

 

더 이상의 이유 없는 호의는 사양이었다.

 

그를 떼어내기 위해 일부러 심한 말을 골랐건만, 로드는 못 들은 척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단검을 그자의 목에 들이댔다.

 

“로드. 더 이상 다가오면 벨 걸세.”

“어이쿠!”

 

제대로 정신이 박힌 자라면 이쯤에서 부리나케 도망가겠지.

 

“이건 무슨 장난인가, 윈드? 검 거두고 이거나 먹게.”

 

하지만 로드는 놀라기는커녕 내 입에 육포를 쑤셔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의 향에 취해 버릴 것만 같았지만, 나는 육포를 뱉어내고 단검을 회수한 뒤 놈의 멱살을 잡아 벽에 몰아붙였다. 

 

콰앙-

 

“내게 접근한 목적을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꺼져. 동료 따위는 필요 없다.”

 

“크크크……”

 

소드마스터가 목을 조르다시피 멱살을 잡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숨을 쉬지도 못했을 텐데.

 

로드는 숨을 헐떡이기는커녕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옮겼다. 

 

이 무슨 괴력이란 말인가.

 

물컹-

 

이 자의 힘에 감탄하기도 전에 손에 익숙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어릴 때 만진 어머니의 젖가슴과 비슷한 느낌이……

 

“어어?”

 

나는 종자였을 때 마냥 어리버리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흠흠. 이 비밀을 알린 자는 윈드, 자네가 처음이야. 자기소개를 다시 하겠네. 내 이름은 루치아 데스포이나. 소왕국 데스포이나에 살았던 자라네. 줄여서 LD, 로드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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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삽화의 주인공은 로드상인 데스.


저런 미모를 보고도 철벽친 후붕상의 눈은 옹이구멍인 데스 데프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