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왔다.


26살.


평범하게 사회의 쓰디 쓴 맛의 끝부분을 맛보던 어른을 시작하려는 어정쩡한 놈에서. 10년전.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나오던 시간회귀를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이다!


가장 먼저 닥쳐온 것은 내가 행했던 일들이 전부 없었던걸로 사라져버렸다는 허탈감과, 정체모를 현상에 휘말렸다는 미지의 공포.


'...잠깐.'


확실히. 내가 17살 이후에 만난 인연들을 아예 없었던게 되어버린것은 안타까웠지만, 좀만 더 생각해보니,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에 대한 이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철저하게 내가 지금부터 할수 있는 최선의 '미래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야."


학교 뒤편의 공터에서, 머리에 피도 덜마른 선배들에게 둘러쌓여 집단 린치를 받고있었다.


"진짜 얘가 그랬다고?"

"..."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학기초 특유의, 긴장감이 멤도는 분위기.


어느 고등학교나 그러했겠지만,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진짜 꼴통중의 꼴통들만 다니는 똥통학교였다.


물론, 나는 그런 시시한 기싸움에 휘말려서 일을 그르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솔직히 옛날엔 뭣모르고 좀 꿈툴대다 몇번 얻어맞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사내 새끼들 특유의 센척 정도는 미래의 계획대로 흘러간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볍게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기억하던 유치하지만 그래도 낭만은 있던 그들만의 리그는 어디가고.


-헐. 뭐야? 너 설마 속눈섭 붙인거야?

-...? 응?


뭘 붙여?


또래 애들에 비해, 유독 남자답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던 나였다.


평균의 키. 평균의 체격이지만 여자애들이 내 옆에 설때마다 하는 얘기는 항상 같았다.


-.... 너 은근 키 크다?


그런 애들 있지 않은가, 키나 체격이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유난히 작아보이는.


소위 남자들 사이에서 놀림받기 쉬운 기생오라비 관상이었던지라, 이 똥통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꽤나 고생좀 했었는데.


뭔데. 이건.


귀찮은 일에 역이기 싫어 대충 고개를 내젓자.


-대박. 뭐야? 그럼 이게 그냥 속눈섭이라고?

-지랄. 존나 늑대짓하네?


이 세상은 내가 알고있던 세상과는. 많이 달랐다.


교복을 넥타이를 풀어헤치던 가오충들은 어디가고, 어디서 호리호리하게 생긴 멸치새끼들이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게 얼마나 좆같은 경험인지는,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차라리 빵셔틀이라도 시키는게 낫지. 


거기에 계집애들은 어째서인지 속이 비치는 하얀 교복에 새까만 브래지어를 입곤, 단추를 3개나 풀어헤치고 다니는걸 '멋'이라고 알고있다.


어딘가 이상함을 느낄새도 없이, 사건은 일어났다.


쉬는시간.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손을 씻던 나에게, 멸치남 A가 다가와 어깨빵을 갈긴 것이다. 


툭!


푸샤아아악-!


덕분에 물이 튀어 오른쪽 팔부분과 앞머리가 흥건하게 젖었는데.


-큭. 미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존나 무섭게 생긴 근육돼지면 모르겠는데, 어디 이태원 트랜스젠더처럼 생긴 젓가락 새끼들이.


-야.

-뭐. 한대 치겠다?


녀석의 의문을 현실로 만들어 주기 위해, 나는 곧장 아구창을 날려버렸다.


뻐억-!!


하지만 녀석은 토쏠리는 외관 뿐만이 아니라, 하는 행동까지 씹게이 그자체였다.


곧바로 녀석은 2학년인 여자친구에게 일러바쳤고.


결국. 방과후 빡세게 아이라인을 그린 여자선배 두 명이, 양쪽으로 나를 잡아끌고 학교 뒤편 공터로 끌고왔다.


그런데...


"응? 뭔가 말했어?"

"...아뇨."


무언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됐다.


공터는 이미. 공공장소가 아니었던 것.


-후우... 응?

-뭐냐. 니들?


먼저 공터를 점거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리더격으로 보이는 여자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그래~? 이상하다... "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가 고개 들어야할 정도로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큰 체격을 이용해 자연스레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친구야. 이름이 뭐야?"

"....."


익숙한 '그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참고로 정작 나를 데려온 두 년은 저기 구석에 찌그러져있다.


'여자가 뭐이리...'


커.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려보지만, 여자는 싱긋하고 웃으며 재잘댈 뿐이었다.


강렬한 향수냄새로도 지울 수 없는, 카라 깃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퀘퀘한 담배냄새.


키 차이가 키 차이인지라, 내 눈높이에는 여자의 얼굴이 아닌 살색의 뽀얀 가슴골이...


휙-!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전생의 남자라면 뼛속에 새겨진 미투에 대한 공포라는 모른채, 그저 쑥쓰러워 고개를 돌린 것으로 착각한 여자가 쿡쿡하고 웃어댄다.


어째서일까. 대답하면 안될 것만 같아 입을 다문다.


10초.


"응?"


30초.


점점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입가의 실려있던 미소가 점점 사라진다.


"...친구야?"


조금 전보다 더 낮게 깔린 목소리.


그러거나 말거나.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워야하나 고민하던 그때.


"그. 언니... 김..."


보다못해 나선 나를 이곳으로 끌고온 선배A가 내 이름을 입에 담자.


짜아악-!!


선배A의 고개가 급격하게 왼쪽으로 꺽였다.


"...?"


어느샌가 시야에서 사라진 여자가, 선배A의 뺨을 후린 것이다.


얼얼한 뺨을 부여잡고 허망하게 여자를 올려다보는 선배A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한치의 미동도 없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씨발년아."

"어.. 언니?"

"내가 지금. 너한테 물어봤냐?"

 

장난기 넘치던 조금 전과는 명백히 다른 말투.


"내가."


짜악-!


"이딴거."


짜악-!


"하지. 말랬지. 니네가. 벌써. 1학년 조인트 깔 짬이야?"


짜악! 짜악-! 짜아악-!


한마디. 한마디 목소리는 작았지만.


내뱉을때마다 선배A의 뺨에서 강렬한 파열음이 터져나왔고.


털썩-!


결국 견디다 못한 선배A가 다리에 힘이 풀려 공터 바닥을 굴렀지만, 여자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뭘 잘했다고 쳐 자빠져?"


'...미친년.'


제대로 인생 막장인 년들이었다.


그리고 난 이런 어찌되건 상관없는 녀석들 때문에 꼬일 시간이 없었다.


빡세게 공부도 해야하고. 코인도 사둬야 하기에 알바도 찾아봐야한다.


그저. 지금 상황 자체가 그냥 시간낭비 같이 느껴져.


"그만해요."


요구에 답해주기로 했다.


이름이야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명찰에도 적혀있었으니까.


"...용건만 간단히 해주실 수 있나요? 저 학원가야해서."

   

그리곤. 황급히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사까지 표현하자, 여자가 '이놈봐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나에게 다가온다.


커다란 여자의 뒤로, 흙바닥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던 선배A가 되려 나한테 고마워하는 눈빛을 보내는게 퍽이나 웃기다.


'진짜 지랄났네.'


혹시. '쟤가 왜 나를...?' 같은 이상한 망상이나 하는건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 다시 다가온 여자는 조금전 살벌한 모습은 어디가고, 발정난 개새끼마냥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는데.


"야. 너 좀 귀엽다. 누나랑 같이 다니자. 응?"

"싫어요."

"아. 왜에...!"


내가 계속 단호하게 거절하자, 모든 정황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꼴초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다뒤졌네. 이제 남자 하나 못꼬시는데?"

  

비웃음이 섞인 조롱이 들려오자, 약간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쿵-!


어떻게든 자리에서 벗어나려던 나를 더 강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벽에 박아 넣은것도 모자라, 무릎을 가랑이 사이에 넣어올려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야." 


아무리 개 엠생에다, 존나게 크더라도 여자는 여자였다.


말랑말랑한 종아리가 사타쿠니에 닿으니 기분 묘해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흠칫!


하지만 이미 점점 화가 오르던 여자는 그것을 눈치 못챈 채, 표정을 와락 구기며 나를 압박한다.


"내가 뭐 나랑 자자고했어? 그냥... 시간 좀 날때 같이 노래방도 가고. 노가리도 좀 까고. 그러자고~"


무겁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여자의 온기와 숨결이 피부를 타고 전해져온다.


솔직히 말해서,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정신차려야한다!'


달콤할지라도, 이 성배는 독이든 성배였다.


이대로 가다간 모처럼 얻은 두번째 인생이 나락행 직행열차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에, 억지로라도 거대녀를 떼어내려 하는데.


꾸우욱-!


'...?'


아무리 힘을 줘봐도, 몸이 밀쳐지기는 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너무 가까워서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한걸까 싶어, 온몸을 이용해 저항해봐도.


바둥 바둥.


그저 무릎에 들어올려져 허벅지를 바짓자락이 몇번 스치기만 할 뿐. 그렇다할 반응은 끌어내지 조차 못했다.


갑작스레. 현재 놓여진 상황에 대한 현실감이 뒤늦게 샘솟는다.


나는 여태까지, 과거로 돌아온 나를 '주인공' 처럼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두번째 '삶'일 뿐. 나의 뜻대로 흘러가는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소용은 없었지만, 내가 힘 주고 있다는 사실을 신체가 이어진 상대가 모를리가 없었다.


그녀는 일부로 조롱의 뜻을 담아, 나의 귓가에 쿡쿡대며 도발한다.


"응? 너도 좋으니까 가만히 있는거 아니야? ... 설마. 힘좀 쓴다면서 애들 패고 깝치더니. 이게 힘 쓰고 있는건 아니지?"


이때. 그녀의 끈적한 숨결에서. 나는 욕정의 편린을 느꼈다.


이런 이상한 세계에 와버리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섬뜩하면서도. 과하게 현실적인 감각.


오싹-!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더더욱 더 밀착해온다.


와이셔츠의 단추끼리 압박되며 느껴지는 미세한 고통과, 그 고통 너머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덩이의 감촉.


평소에는 휑한게 당연했던 목가에 느껴지는 머리카락이 간질이는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귓가도 아닌 고막근처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입김과 끈적한 혀의...


'그만!'


극도의 흥분감과 함께, 더 이상은 아랫쪽이 버티지 못하겠다 판단한 나는.


"아..알겠으니까! 좀. 비켜봐요!"


다급하게, 여자의 뒤통수에 원하던 말을 뱉어줬다.


혹시나 이상황에서 발기한걸 들키기라도 했다간...


'안돼.'


내 코인대박 영앤리치라는 탄탄대로에, 절대 미투가 끼어들게 둘까보냐!


최대한 민감한 부위에 닿지않도록 손을 파닥거리며 등을 두드리자,

다행히도 여자는 금세 나에게서 떨어졌다.


스윽.


거리가 멀어지고.


미세하게 남은 온열만이 남았다. 


두근. 두근-!


쓸데없이 심장소리가 시끄럽다.


혹시나 여자에게 들켰을까. 괜스레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노려보자.


"..."

"오케이~ 니 입으로 알겠다고 한거다? 야. 봤지?"


나름 정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랑곳 하지도 않은 채 헤실헤실 웃더니 뒤쪽에서 조롱하던 녀석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모습.


그리곤, 교복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헤헤. 너 인스X해? 맞팔하자!"

"안하는데요."

"헐. 그럼 페이X북은?"

"그런거 할 시간 없어요."


사실. 전생에서라면 비록 눈팅이지만 깔긴 했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멸치 새끼들의 꼴같잖은 몸매 부각 사진만 올라오길래 지워버린 것.


순간. 다시 한번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던 여자였지만.


"자. 봐요."


스마트폰을 켜 메뉴에 정말로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은걸 보여주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진짜 아무것도 없네?"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신기하다는 듯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 이것저것 살펴보는 여자였지만, 딱히 캥길만한 것은 넣어두지 않았기에 가만히 지켜봤다.


"흐응... 이래놓고. 너 뒷계정 같은거 있는거 아니야? 설마 막 거기다가... 는. 농담!"


현역 여고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음흉한 미소.


"..."

"농담이라니까. 그렇게 정색빨면 내가 뭐가되냐."


이쁘고 말고를 떠나, 그냥 이 상황과 맞물려 장난감 취급 당하는 것 같아 뭣같다.


빨리 돌려주기나 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던 여자가 스마트폰을 넘겨준다.


혹시나해 전화번호부를 확인해보니, 어느새 자신의 번호를 넣어놨다.


그뿐만 아니라, 뻔뻔하게도 이름뒤에 하트까지 붙여놨다. 검은색 하얀색으로 두개나.


"앞으로 연락하면 바로 튀어나와야된다? 안나오면... 음. 아니다! 안나오면 내가 찾아가지 뭐! 1학년 3반이랬지?"


그렇게 번호도 모자라, 주소까지 꼬치꼬치 캐묻던 여자와의 문답이 계속되고.


핸드폰을 받은 순간 재빠르게 몰래 설정한 알람으로 전화 받는척 쌩쑈까지 더해 겨우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혹시나 내가 생각보다 몸상태가 안좋았던건 아닐까. 하며 하굣길의 오르막을 단번에 뛰어올라갔지만.


"허억... 허어... 흐."


약간 숨이 찰 뿐이었지, 체력적으로 약해졌거나 한건 아니었다.


'그럼 대체...'


조금 전 그 여자는. 어째서 전력으로 밀어도 미동조차 없던걸까.


땀에 젖어 눅눅해진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자.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발신인은 당연히도 그 여자. 이따가 저녁먹고 뭐하냐는 내용이었다.


"...빠르네."


연락하다고는 했어도, 설마 이렇게 당장 연락할줄은 몰랐다.


달리는 사이 주머니 속에서 멋대로 눌렸는지, 차마 비행기모드로 전환하지 못해 문자 옆의 1이 사라져 내가 읽은 것을 확인하자.


띠링-! 띠링-! 띠링-!


계속해서 대화창이 올라간다.


세상이 미친건지. 내가 미친건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건.


나는. 제대로 미친년한테 물린 것 같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계속해서 답장을 하지 않자, 핸드폰이 울린다.


"씨X..."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어?"


액정에 떠오른 것은 뜻밖의 이름이었다.


"이XX?"


떠올렸다. 


잊고 있었지만 10년 전. 나는 이 시기쯤에...


띠링!


-왜 전화 안받아?


전학 후. 시간이 지나 결국 헤어졌던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받아.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