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하아...흐읍!”

“...”

“잠깐만 누, 흡! 하! 됐다! 하하!”

“...”

“누나, 편해?”


휠체어에 앉은 누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기운 없는 끄덕임에 괜히 텐션이 쳐진다.


난 누나의 머리를 손날로 톡 쳤다.


“모처럼 밖에 산책가는 건데 활기차게 대답해야지!”

“...미안.”


죽어가는 누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울적한 물기. 아직 힘을 차리기엔 이르구나.


누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았기에, 미안함을 담아 누나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었다.


그리곤 누나의 귓가에 속삭임을 건넸다.


“오늘은 조금 더 멀리까지 데려다줄게. 기대해.”

“...응.”


그녀의 대답에는 기저에 깔린 우울과, 아주 얕은 기대감이 공존했다.



*



횡단보도를 걷다 차에 치여 반신불수가 되었다. 나는 아니고, 아는 누나가.


친한 누나인데, 중학생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생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정말 불운한 사람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녀를 돌봐줄 사람은 일당 15만원 짜리 간병인 혹은, 2살 연하 남대생 밖에 없었다.


대학생인 누나에게 간병인을 둘 돈도, 보험도 없었고, 때문에 2살 연하 남대생이 이렇게 휠체어를 끌어주게 된 거다.


“봐봐. 벚꽃 피었어.”

“...”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누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참, 휠체어 밀어주는 사람 보람 없게 한다. 원래 누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산책을 하는 우리에게 나풀나풀 벚꽃잎들이 떨어졌다.


“누나.”

“...?”


난 휴대폰을 꺼내 사진앱을 키고 셀카모드로 전환했다.


그리곤 휴대폰의 전방 렌즈가 우리를 담을 수 있게 폰을 든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이거 봐. 누나 머리 위에 벚꽃잎 올라와있는 거.”

“...”

“우스꽝스럽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진짜 예쁘다?”

“...벚꽃이?”

“누나가.”

“...”


나풀거리는 벚꽃잎을 하나 더 낚아채고 내 머리 위에 올렸다.


“히히. 누나랑 세트~”

“...하율아.”


찰칵. 빛이 잠깐 우리의 눈을 점하곤, 렌즈에 우리의 상이 남았다.


봄, 병원, 산책로, 벚꽃, 나랑 누나.


다양한 수식어가 담긴 ‘오늘’을, 사진 안에 가둔 것이다.


“진아 누나. 누나가 보기에 누나 사진 어때 보여?”

“...우스꽝스럽네.”

“그리고 예쁘지. 사진이랑 형태 안에 가두고 싶을 만큼.”

“...”

“누나한테 누나는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게 느껴질 지도 몰라. 세상 모든 슬픔이 누나를 덮친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고, 당장 죽고 싶을 만큼 힘들지도 몰라. 그리고 난 그런 누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딱히 대단한 심리상담사 납신 건 아니다. 난 기껏 해봐야 대학생이고, 내 심리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데 남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노라 자신하지 못한다.


그래도 확신하는 건 하나 있다.


“누나는 여기 피어있는 어떤 꽂보다 예뻐. 그건 내가 장담해.”

“...”

“어이쿠.”


난 내 작은 손을 누나의 눈가에 빌려주었다.


촉촉했다.



*



이 세상은 정말 이상하게도, 남자가 여자보다 유약하다. 여자는 보통 남자보다 강한 근력과 체력을 지니고 있으며, 성욕 또한 강하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다 2메다에 식스팩을 달고 다니는 건 아니고, 그냥 남자가 여자보다 체구가 작아진 느낌이라 해야하려나.


남자가 여자보다 강한 세상에서 살던 내게 여자보다 약해졌다는 건 상당한 충격이었다.


지금은 적응 끝났지만.


그럼에도 이 남녀역전 세계의 남자로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사람 하나 간병해주기도 힘들다는 것?


“흡!”


있는 힘을 다 그러모아 누나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침대로 옮겼다.


이 세상 남자라면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부계 사회에서 살고 온 경험 탓인지 힘 쓰는 요령은 있다.


푹! 누나를 침대에 눕히자 바로 팔에서 힘이 풀렸다.


“흐, 흐아...아, 후우...”


숨을 가쁘게 고르고 물을 마신다.


누나는 그런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난 땀을 닦으며 누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면 누나는 살짝 시선을 들어 내게 눈을 맞춘다.


싱긋 웃으며 말했다.


“누나, 밥 먹을래?”

“...응.”


그녀의 대답에 나는 도도도 창가로 달려가 밥차가 두고 간 밥을 병상까지 가져왔다.


“자, 아 해.”

“하율아, 그...”

“안 할 거야?”

“...”


누나는 내 닦달에 순순히 입을 열었다. 후후. 그렇지. 이게 옳게 된 환자지. 간병하는 보람이 있어.


숟가락을 누나의 입에 물리고, 누나의 혀가 숟가락의 내용물을 전부 쓸어간 게 느껴지면 빼냈다.


오물거리는 누나의 입. 그걸 보면 장난끼가 작동했다.


“오구, 우리 누나. 나한테 밥 먹여지니까 맛있어요?”

“...”

“얼굴 빨개진 것 봐, 귀엽기는.”


나 보다 강한 주제에 저러는 걸 보면 진짜 괴롭혀주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 이것이 메스가키의 기분이었구나. 메스가키는 옳게 된 장르였다.


“앙.”

“...앙.”


누나는 이 상황이 낯간지러운 건지, 음식을 받아먹은 다음 바로 얼굴을 휙 돌렸다.


돌려진 누나의 얼굴에서 보이는 희미한 미소는 내 마음을 채우고도 남았다.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있는 것보단, 이러는 게 더 보기 좋아.’


지잉-


갑자기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카톡이었다.


[한가을: 혹시 괜찮으면 내일 저녁 같이 먹지 않을래요?]


“누구시더라...아. 그 사람이구나.”


기억을 떠올려보니, 조별과제를 위해 팠던 단톡방에 있던 여성 분이었다.


이건 명백한 데이트 신청의 메시지였다.


이 세상은 여자가 먼저 대시하는 게 일반적이고, 또 이 세상 여자들한테 내 얼굴은 꽤 잘 먹히는 듯 하여 종종 이런 메시지를 받곤 한다.


‘용기 내서 보내주셨는데 미안하네.’


이성에게 대시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알고 있는 나였기에 죄송한 마음을 담아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율아. 방금은?”

“어. 대학교 동기 분.”

“여자?”

“응. 그렇긴 하지.”

“...”


누나가 고개를 다시 떨군다. 어어. 왜 이래? 기껏 웃게 해놨더니.


내가 의아해하고 있으니, 그녀는 무언가 다짐을 한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역시, 나 같은 장애인 돌볼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랑 만나는 게 너한테 좋을 것 같아.”





“진아 누나.”


누나의 말에 벙찐 난,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불렀다.


“...”


그녀는 내 부름에 눈을 꼭 감고 그 고운 눈썹을 부르르 떨었다.


“누나 목소리나 행동이나 전혀 내가 떠났으면 싶은 사람의 것이 아닌데?”

“...아니. 나 따위한테 네 귀중한 시간이 쓰이는 걸 이 이상-”

“누나가 언제부터 따위가 되었는지는 둘째치고, 난 내 시간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잘 쓰고 있어.”


방금 누나의 말을 통해 왜 누나가 그렇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누나는 나한테 미안한 거다.


자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쓰는 것도, 그런 나한테 어떤 보상도 주지 못하는 것도.


아니, 정확히는 그것 때문만은 아닐 거다.


난 남자였다. 아니, 지금도 남자긴 하지만, 남녀역전 세상에서의 여자가 있는 포지션을 가졌던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 누나가 느끼고 있을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된 나를, 매일매일 찾아와서 간병해주는 2살 연하가 있다고. 심지어 그 연하가 미인이라고.


그 미인 동생이 없는 힘을 쥐어짜내 거동이 불편한 자신을 옮겨주고, 밥도 먹여주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어떨 것 같겠는가.


당연히 좋아하게 되겠지. 인간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그리고 동시에 불안해질 것이다.



-다른 남자들한테 빼앗기면 어떡하지.



이렇게 성격 좋고 용모도 빼어난 아이가 인기가 없을 리가 없다.


분명 이성으로부터 꾸준한 대시를 받고 있겠지.


그러다 언젠가 그녀가 한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자신은 뭐가 되는 걸까.


그녀를 좋아하는 자신은. 나는 뭐가 되는 거지?


내가 그녀에게 뭘 해줄 수 있지? 그 남자랑 사귀지 말라고 말할 자격은 있나?


장애인인 주제에? 남자로서 무엇도 해줄 수 없는 주제에?


결국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남친이 생긴 그녀는 자신에게 오지 않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몇 번 오겠지만, 남친은 그걸 싫어할 테고, 남친과 아는 오빠 중 무엇이 중요한지는 바로 답이 나온다.


그녀가 사라진 병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찍어주었던 사진을 보며 공허함을 달랠 뿐.


그런 미래를 겪기 싫으니, 누나는 나를 밀어내려 하는 거다.


“누나.”


그러니, 말해주어야겠지.


“난 누나가 좋아요.”

“...뭐?”

“아마 세상에서 제일.”


난 싱긋 웃으며-


“난 지금 미래의 내 아내가 될 사람한테 시간을 쏟고 있는 거예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반응 좋으면 이어서 씀. 안 좋으면 여주가 집착얀데레 각성해서 순애쇼타남주 메차쿠차 따먹는 거 안씀.



결국 나온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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