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기뿐인가요."


한 소녀가 청아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 어둠이 깔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

소녀는 그런 환경이 조금 신경질이 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저벅저벅.


콘크리트 바닥을 밟고 있는 듯한 소리지만, 소녀가 밟은건 분명 유리조각이였다.

소녀는 익숙한 듯, 그런 부조화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계속 멀뚱히 서 있었다. 


" 여기는 또 왜 왔냥?"



어둠 한 켠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 여전히 기분 나쁜 등장이네요. 엿보는게 취미인 고양이 씨."


그거 또한 익숙하다는 듯, 간단히 매도하고 넘어가는 소녀.

고양이는 못 말린다는 듯,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그렇게  날 세우지 마. 내가 잘못했다냥."

" 기분나쁜 냥체는 그만두고,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죠?"

고양이가 가볍게 넘어가는걸 원치 않는듯, 소녀는 자신의 녹안을 더더욱 좁히며 고양이를 더욱 쏘아붙였다.

고양이는 그런 소녀가 안타까운듯, 한숨을 쉬었다.


" 에휴. 난나르. 니가 그런다고 해서 최후가 변하는건 아니라고."

" 그 입 닥치세요."


고양이의 말에 격분한듯, 난나르는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녹안은 점점 흉흉하게 빛나고, 살벌해졌다.


" 질문에 답하세요. 뭘 하고 있었죠?"

고양이는 난처한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말을 돌려도 소용없다는건 그가 더 잘 알리라.

" 나야, 뭐 주인 기다리고 있었지. 그거밖에 할 일이 있나."

" 단서를 찾았나요!? "


마지못해 뱉은 말에, 난나르는 지금까지의 무심함이 무색하게 바로 화색을 띄었다.

고양이가 그 이후 입을 다물고 있자, 난나르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그러고서는 고양이를 잡아 마구 흔들었다.


" 빨리, 빨리 , 빨리 "

" 잠, 잠깐잠깐, 잠깐, 이거부터 놔봐!"


난나르는 그제서야 이성을 찾은듯, 고양이를 놓아주었지만 고양이는 한동안 어지럼증을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 미안해요. 하지만 이제는 말해주셔야 겠어요."

" 기대하진 마. 그저, 평행 세계의 마녀가 왔을 뿐이야." 

" ...! "


난나르의 녹안에 생기가 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고양이는 살짝 놀랐다.


" 너가 그렇게 들뜬 모습은 4년전 이후로 처음인거 같은데."


고양이는 4년 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날 선 모습을 보고는 재차 한숨을 쉬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아직도 날이 서 있었다. 고양이는 그런 그녀를 보고 살짝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차분하지만, 부산스럽다.

체념했지만, 희망차다.


한떄의 모습과는 정말 상반되었다.

단 4년만에.


" 당신의 모습을 보면 대략 예상이 가요. 평행세계의 마녀가 온다고 해도 역부족인거겠죠."

" 맞아. 이 엿되버린 세계는 돌이킬 수 없어."


고양이는 나지막하게 진실을 고했다.

난나르 또한 예상했으므로 큰 반응은 띄지 않았다.

그저, 위를 바라보았다.

기괴하게 뒤틀려있는, 푸른색은 온데간데 없고 갈색으로 변색한 하늘이 보였다.

균열이 나 지금도 이 세계의 마력이 외부로 노출되고 있고, 이 세계는 지금도 소멸하고 있었다.


감상에 젖어 있는 난나르를 깨운건 고양이였다


" 따라 와. 마지막으로 마녀랑 만나게 해줄테니까."


난나르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다 잡은 듯 고양이에게 걸어갔다.

그녀가 움직이는걸 확인한 고양이는 저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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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분명 크로노 타워인데...'


마녀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모험을 마치고, 에리나가 차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악몽에 시달리는건 익숙했지만, 이렇게 현실감 있는 악몽은 처음이였다.


뒤틀려있는 갈색 하늘, 구름 대신 있는 균열.

누가봐도 다른 세계로 마력을 뺴앗기는 중이였다.


' 막아야 돼.'


처음 와보는 세계, 또는 비록 꿈일지라도, 마녀는 그 세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녀가 움직이려하자, 마력이 응축되는게 느껴졌다.


" 야옹. 그만두는거냥."

" 쿠로네코? 이게 어떻게 된..."


거울이 생기고, 거기서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이어 난나르도 튀어나오면서 마녀는 한번 더 놀랐다.


" 난나르? "

" ... 마음의 준비는 한 줄 알았는데."

" 에?"


마녀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그야, 반가운 면면이 보였는데, 기억속에 있는 난나르와는 상이하지 않은가.

그녀가 알던 난나르는 자신을 보자마자 쭈볏되면서도 강아지마냥 앵겨붙어왔는데, 저건 그냥 깜장이같았다.


난나르의 탈을 쓴 깜장이.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영원과 같은 정적이 이어지고,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먼저 말문을 튼 건 고양이였다.


" 뭐, 혼란스러운건 이해한다냥. 이쪽 세계가 도움을 요청했고, 넌 무의식적으로 세계와의 연결을 시도한거 아니겠냥."


" .. 진짜 기분나쁘네요. 고양이 씨. 그 말투 어떻게 안되나요?"


" 저 시간대의 마녀는 날 아직 고양이로만 알고있거든!?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정적은 꺠졌지만, 마녀 입장에선 갑자기 둘이 콩트를 찍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마녀는 쿡, 웃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둘 덕분에 삭막한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느낌이였다.


" 그래, 알겠다. 나는 평행세계의 위기 요청 신호를 받아 무의식적으로 포탈을 열었고."


" 그래, 맞다냥."


" 여기 평행세계의 쿠로네코와 난나르는 사이가 좋고?"


" 이 음습한 고양이랑 제가 사이가 좋다고요?  못 본 사이에 농담이 늘었군요. 마녀 씨."


....

삭막한 분위기가 풀어진.. 거겠지?

마녀는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마녀는 난나르의 매도를 못 들은체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돕는다. 

그건 마녀가 어떻게든 하고 싶은 일이였다.


하지만, 


" 별 거 없다. 이 세계의 최후를 맞이하게 해줘."


돌아오는건 절망적인 답변이였다.


" .. 어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마녀는 모험의 피곤함이 다시 몰려왔다.

그 근간은 압도적인 절망감.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상들.


죽거나, 죽여나간 생명에 있었다.


" 대충 눈치챘겠지만, 여기에도 평행세계의 너가 있었어. 어디 갔을까?" 


이미 쿠로네코가 하는 이야기는 다 알았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 그 마녀보다 내가 더 강할 수 ㅡ "

"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어. 너가 할 일은 그게 아니야."


큰 탈력감이 마녀를 덮쳤다.

어째서인지, 쿠로네코는, 이 세계의 정상화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난나르도 말은 안했지만, 쿠로네코의 말을 반박하고 있진 않았다.


" 너가 할 일은 이 세계의 '미련'을 끊어내는 것. 세계는 그걸 원하고 있어."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세계가 원하는 걸 해야했다.


" 미련?"

" 세계를 부수거나, 인간을 몰살하거나."

" .. 미쳤어?."


마녀는 눈을 부릅떴다.

학살은 자기가 제일 싫어하던 수호자의 방식과 다를게 없었다.

그 이유가 합리적이여도, 절대로 생명을 가볍게 여기어선 안된다.


" 염려하실 필요 없어요. 세계는 이제 여기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마녀의 안색이 나빠지자, 그동안 가만히 고양이를 긍정하고 있던 난나르가 입을 열었다.

마녀는 머리 속이 냉정해졌다. 난나르의 말이 그만큼 충격적이였다.


" 여기밖에라니? 무슨 소리야?"

" 세계는 전부 빨려들려갔어요. 저 빌어먹을 균열에 말이죠. 크로노 타워는 왠지는 몰라도, 제일 마지막이더군요."


마녀의 기억과는 다른, 차가운 난나르.

이 세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겠지.

앳된 모습이 남아있음에도, 어리광이 없어진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악몽과 같은 모습이였다.


" .. 할게."


그래서인가, 이 악몽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결단이 빠르네?"


마녀는 침묵했다. 괜히 말을 했다간, 자신의 결심이 꺠질것 같았기 떄문에.


고양이는 그걸 보곤, 조금의 그리움을 느끼면서, 재차 말문을 텄다.



" 뭐, 끝내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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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 타워 내부.

소환의 샘 앞, 마녀는 이제 세계의 생명을 끊내기 위해 샘 앞에 섰다.


" 누군가를 소환했던 감각, 그 반대로 하면 돼."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그대로 반대로하면 생명이 꺼져간다.

간단한 원리였다.

그 점 또한 마녀는 석연치 않았다.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은 어려운데, 파괴하는 과정은 쉬워보였다.


" .. 한 가지 물어봐도 돼? 쿠로네코?"


쿠로네코는 결단을 앞두고 자신에게 길을 묻는 마녀를 보며 향수를 느끼면서, 마녀의 말을 긍정했다.


" 모두는 어떻게 되었어?"


하지만, 다가온 말에 속으로 크게 놀랬다.

하지만, 이내 그 모습마저 긍정하게 되었다.


" 그래.. 뭐, 너가 구원한 세계는 잘 살고 있지. 몬테니아나 루니아 같은 칠룰라만이 운명을 같이했어."


" .. 살아있어?"


마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면 웃고, 떠들며 말썽피우는 얘들이 여기서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당장 난나르만 해도 저렇게 변하였는데, 그 애들은 어떨까.


" 걱정 마라. 개냬들은 강해. 죽지 않았어. 뭐, 당장 너가 여기 있다는걸 알면- "


하늘을 가르는 소리, 이내 크로노타워가 조금 흔들리면서 하늘에서 뭔가가 내려온다.


누군가에겐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 누군가에겐 신앙의 대상.


드래곤이 마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마녀는 그런 드래곤이 익숙했다.


" 엘.. 라..?"


" 느낌이 조금 다르지 않느냐."


엘라가 다시 폼을 변환해 용인의 형태로 돌아오자, 비명이 피어올랐다.


"" 꺄악!""

" 끝까지 소란스럽군요. 조용히 최후를 맞는것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난나르가 매도한 그들은 메타모포스, 녹투르나,  마터웨이브.


마터웨이브는 비명소리도 내지 않았기에 억울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떄가 아니였다.


" 마녀? 정말 마녀인건가요?"


그토록 원하던, 바라던, 마녀가 눈 앞에 있었다.


4년.


마녀가 사라지고 4년이라는 시간.


겨우 14살이던 마터웨이브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세계가 무너지고, 좋아했던 사람마저 죽어나가고.

자신의 능력으로도, 파장을 맞출 수 없었다.


" 아니.. 난"

" 감정의 색깔이 좀 달라. 우리가 알던 마녀와 굉장히 유사하지만 달라."


엘라의 등에서 내팽겨쳐진 메타모포스.

어느새 둥둥 떠다니며 부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녀의 말을 끊은건 아쉽지만, 마녀의 뜻을 더 명확하게 정했기에 다행이였다.


녹투르나가 몰래 옆에 와서 마녀에게 살짝 몸을 기댔다.


다른 사람인걸 본능적으로 알아도, 그 느낌이 굉장히 유사했다.

편안했다.

4년만의 편안함.

녹투르나는 드디어 잠에 들 수 있었다.


" 봤지? 녀석들은 쉽게 죽지 않아. 강한 영혼임은 너가 더 잘 알잖아?"


" .. 그렇네."


마녀는 자신에게 기대어 잠이 든 녹투르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 하지만, 우리도 지친건 다름없지. 너가 없어진 세계는 멸망할 수 밖에 없으니까."


" 당신은 수호자예요. 수호자가 없는 세계는 무조건 멸망한다는걸 당신도 알고 계실테죠. 여러 평행세계에서 그걸 보았잖아요?"


여운에 잠길 채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걸 허용해주지 않는 듯 했다.


" 수호자? 내가 ?"

" 시공간 간섭능력을 가진, 사실상 제일의 능력인데 말이죠. 에레시키갈은 과거의 당신이라고요."


난나르가 넌더리난다는 듯, 모든 사실을 실ㅇ토해버린 것이다.

기억과 비슷한 이들, 기억과 다른 이들.

마녀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 .. 날 원망하니?"

" 원망? "


난나르의 분위기가 싸해지더니, 마녀 쪽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아무리 마녀라도 조금 쫄 수 밖에 없었다.


" 원망? 하죠. 당연히 하죠. 갑자기 없어지고선, 없어지니까 세계 멸망? 그런 사람이 가볍게 없어져?


그럴거라면 정을 주지 말던가. 다른 세계는 구해놓고, 은혜란 은혜는 다 입혀놓고, 정작 자신의 세계는 지키지 못하고 사라져?"


" 잠깐, 난나르. 거기까지.."


" 당연히 밉지. 당연히 원망하지! 기댈 곳이 없다는건 정말로 가슴 찢어지게 아프거든! 괴롭고, 힘들고!"



 "... "


마녀는 조용히 비판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님에도, 자신이 없어진 세계는 이렇게 되는구나, 실감헀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 또한, 헤아릴 수 없으리라.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열변을 토하는 난나르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다.


" 왜 이제서야 온거예요... "


난나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연약했던 마음은 굳세졌다.

다치고, 찢어지며.

굳은 살이 배기고, 거칠어졌다. 흉터졌다.


마녀도 그 길을 모험을 통해 걸어왔으니, 모를리가 없으리라.


마터웨이브도, 녹투르나도, 모두 난나르의 폭주를 막지 않고 있었다.

비단 엄청난 압 뿐만 아니라, 조금씩이나마 자신을 대변하고 있기 떄문이겠지.


" 미안.."

" 그만, 너는 잘못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투영하면서 너에게 화풀이하고 있는 얘가 잘못한거지."


마녀의 사과를 고양이가 일축했다.

눈 앞에서 서럽게 울던 난나르도, 이제는 마음을 다 잡은듯 했다.


" 맞아요. 당신은 잘못 없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난나르도 순수히 인정하고 사과했다. 앞서 고양이의 말이라면 어떻게든 반박하던 난나르였지만, 지금만은 그러지 않았다.


" 빨리 의식을 시작해야겠어요. 종말의 파장이 점점 가까워져가요."


어느 정도 정리되자, 마터웨이브가 본론으로 돌렸다. 

그렇다. 인정하긴 싫지만, 마녀는 이제 모든 마력을 크로노 타워의 샘으로 환원해야했다.


" .. 모두들 그걸 원하는거야?"


이 샘에 이 세상의 마력을 모두 환원한다면, 세상은 무너지게 되고.. 

남은 이들 모두 없어진다.

고통스럽게 죽지 않는다는게 유일한 장점일 것이다.


근데, 어째서인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번째는 엘라, 두번째는 녹투르나, 세번째는 마터웨이브..


그리고 마지막은 난나르였다.


마녀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결심하고 생명의 샘 앞에 섰다.

마력을 조작하여 생명의 샘에 마력을 부었다. 하나, 둘 영혼 결정체가 서서히 생겨났다.


뒤틀렸던 세계가 갑자기 질서정연하게 샘 하나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먼저 가봐야겠다. 저쪽 세계에선 행복해, 언니."


엘라에게는 언젠가, 마녀에게는 불과 몇 시간전에 들은 '언니'의 칭호.

엘라는 손 시원하다는 듯이, 미소를 띄었다.

그렇게 점점 옅어지며 사라졌다.


다음은 메타모포스가 점점 사라져갔다.


" 감정이란거, 상대방의 감정은 그나마 쉽게 알아낼 수 있더라. 근데, 자신의 감정을 오히려 자신이 모르는 경우가 많아. 마녀, 감정을 억제하지 마. 꼭 발산해야 돼."


그리고 녹투르나.


" 배고픔은 서러워. 잠 못 이루는 밤도 서러워. 녹티는 맛있는 사과를 못 먹는 것도 서러워.

근데, 친한 사람이 없어지는게 제일 서럽더라.

저쪽 세계에서의 녹티랑은 잘 놀아줘.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테니까."


녹티는 후련한 듯이 사라졌다. 어느샌가 깨어나고 , 사라졌다.


그 다음은 마터웨이브.


" 하고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당신은 우리 마녀와는 다른 존재니까요. 제가 가끔 틱틱대고, 별나기도 하지만, 당신이 찾아오는건 항상 기뻤어요.

그 쪽 세계의 저는 분명 행복한 파장을 띄고 있겠죠? "


마녀는 조용히 끄덕였다. 마터웨이브 또한 후련한 얼굴로 사라졌다.


그리고 고양이. 마녀에게는 제일 처음 만난 친한 존재.


" 그래.. 뭐, 그쪽 세게에선 쿠로네코..라고 부르는 듯 하군? 암튼, 나 사실 냥체 쓰는거 컨셉이니까, 그거 알아두라고. "


할 말은 그게 끝인지, 그 뒤로 쿠로네코는 침묵했다. 

서서히 사라지는 찰나, 고양이가 다시 말문을 텄다.


" 아 , 참. 아까 미련이라고 했었지. 미련이 덜 남은 얘부터 사라지는 거니까, 저 미련 덩어리를 좀 부탁해."


참 중요한 말을 나중에 한다. 쿠로네코의 특성이였다.

마녀는 거기서 친근감을 느끼며, 웃으며 배웅해줬다.


그리고, 난나르.

특유의 녹안이 마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 고양이 말대로네요. 저는 미련 덩어리예요."

"... "


마녀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기 떄문이였다.

세계가 점점 무너지고, 크로노 타워도 상층부터 점점 사라져갔다. 이제는 까만 암흑이 크로노 타워를 매꿨다.


마녀의 눈 앞에는 수 억개에 달하는 영혼 결정체가 있었다.


" 당신이 사라진 뒤, 허공의 영역은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외부의 침입이 점점 잦아지고, 공간이 찢겨나가 소멸하고. 어떻게 할 수 없나.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나 했죠.


세계를 정상화시킬려고 별 짓을 다했어요. 그 좋아하던 집도 무려 1년가까이 가지도 않았죠.

하지만, 어림도 없었어요.


깜장이도 분주히 활동했지만, 결국 거울 속의 존재. 허공의 영역이 사라지면 깜장이도 결국 사라져요.

허공의 영역이 소멸하는데는 채 2년이 안걸렸죠. 깜장이가 없어지고, 저는 계속 혼자였어요.


고독을 미련으로, 상실감을 분노로. 당신을 만나면 내 모든걸 부어서 죽일 생각으로."


난나르는 다시 마녀를 주시하였다.

녹안에는 평온이 가득하였다.


" 하지만.. 다시 만나니까 그러지도 않네요. 분노보단 그리움이, 미련보다는 책임을 내려놓았다는 해방감이 밀려오네요.

점점 편해지는게 느껴져요. 저는 곧 사라지겠죠."


마녀는 슬픈 표정으로, 그런데도 웃음을 지었다.

이 기특한 아이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 그 쪽 세계의 난나르는 행복한가요? 깜장이가 해주는 스위츠를 먹으며 낮잠이나 자면서 게으르게 지내고 있나요?"


" 응, 깜장이의 별 파이도 먹고, 다 먹고는 잠들고. 정말 속 편한 아이야."


마녀는 저 쪽 세계의 난나르를 회상했다. 소심하고, 게으르고, 백치미에, 귀여운.

눈 앞에 있는 기특한 아이와는 정말 상반된 모습이였다.


" 다행이네요!"


분명 부러웠을텐데, 정말 얼굴을 쫙 펴며 화색을 표하는 난나르를 보니, 별 파이를 먹고 즐거워하는 난나르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자신의 별 파이를 다른 얘들에게 나눠주고 행복해하기도 했었지.

태생이 착한 아이다.


어느새. 정적만이 남았다.

난나르도 떠났다. 크로노 타워는 이제 10층이 없어지고 있었다.


세계는 점점 암흑으로 채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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꺠질듯한 두통. 세계의 목표를 이룬 뒤 강제 전이의 흔적이다.


" 마스터, 꿈자리가 좋지 않으신가요?"


깨질듯한 두통을 딛고, 들려오는 에리나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정말 정상적인 크로노 타워, 마치 방금전에 모습은 꿈같은 상황이였다.


아니, 실제로 꿈이였다. 악몽이라고 하면 악몽이였다.


" 차를 준비할까요?"


곁에는 자신의 용태를 걱정해주는 에리나가 있었고, 어느새 자신의 옆에서 놀다 지쳐 누워있는 녹투르나, 엘라, 메타모포스가 있었다.


그리고 마주하고 있는 거울에는 난나르의 모습이 비췄다.


" 고마워. 차 좀 마실까? 소중한 꿈을 꿔서 말이지. 차분히 생각해보고 싶어서 말이야."


에리나가 고개를 끄덕인 뒤, 마녀가 좋아하는 홍차를 만들러 갔다.


그리고 어느새, 마녀 또한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