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널리퍼진,

그 어느 대륙에서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동그란 고무 혹은 가죽 재질 공만 있어도

모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스포츠

—— 축구.


감히 인류가 발명해낸 최고의 유희 중

하나라고 할 만한 최고의 걸작 중 걸작.


그러한 스포츠의 정점에 서있는

한 남자를 수식하기에는

사실도 진실도 없는 모욕적이기만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호칭에

몇 주째 2023년 프랑스 풋볼 발롱도르의

수상자를 두고 세뇌에 가까운 아스카의

중얼거림에 시달린 이카리 신지는

졸린 눈을 부비며 여느때나 그래왔듯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는 비린 웃음을 


네 말에 동조해주고 있다


라는 신호로 조용히 내보내었다.




“ 정말이지 … !

   어째서 저딴 녀석이 발롱도르를 여덟 개나 받는거야 … ! ”



“ … 그러게. ”




한 평생 실제로 만나 본 적도 없는 이를

증오하기에는 지나친 도끼눈을 뜨고

연신 화면 속에 보이는 모든 이들을

저주하는 아스카를 보며 신지는

이 방송만 지난다면 당분간은

아스카의 광적인 축구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마음 한켠에 품고 적당히 아스카를 상대해

주고 있었다.




“ 저 녀석이

   대체 이번에 한게 뭐야 ... !

   그냥 국제대회 하나 뛰었을 뿐이잖아 ...! ”



“ … 그러게. ”



“ 더 훌륭하고

  더 젊은 선수도 많은데

  저런 퇴물이 수상했다는거 자체가

  인기투표가 됐다는 반증아니야 ?! ”



“ 그러게. ”



“ 대체 몇 번을 강탈하는거야 ?

   지겹지도 않나 ? ”



“ 그러게. ”



“ 신지는 누가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해 ? ”



“ 그러 —— ”




아차.


그저 조립해야할 부품을 배정받은

공장 노동자처럼 단순 반복 작업은

꼬일대로 꼬여버린 아스카 앞에선

극히 지양해야할 행동.



신지는 수없이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의 방심과

1초라도 더 빨리 자고싶은 마음에

대참사를 저질러버렸다.



온다.

온다.

오고있어.


살아숨쉬는 정신병리학이 ——

신지에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카오스로

분노하며 들숨과 날숨을 격하게 전환하고 있다.





“ 너 지금 뭐하는건데 ? ”



“ 아, 응 ? ”



“ 귀찮다는거야 ? ? ”




조금.


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체계적인 가스라이팅으로 

반박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신지는 눈을 꿈뻑거릴뿐.


재빨리 전혀아니라고,

아스카와의 발롱도르 시상식 시청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아양을 떨어야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귀찮고 피곤한 신지였기에

진실의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말았다.




“ 야. ”



“ 으응 … ? ”



“ 귀찮으면 귀찮다 말을하지,

  왜 남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거야 ? ”



“ 그, 그게 아니라 —— ”



“ 그게 아니라가 아니라

  내말 하나도 귀에 담고있질 않았잖아. ”



“ 아니야, 분명 듣고 있었는데 … ”



“ 거짓말하지마.

  귀가 열려있음뭐해 분명 듣질 않았잖아 ! ”



눈썹부터 치켜올라가는

아스카의 짜증에 신지는 또 움츠러든다.



또 시작이야.



사도와 싸우는 것보다 훨씬 피곤하고

감정적 에너지 소모를 강요하는 

아스카와의 1:1 대화는


지금 이 대화가 나는 비생산적이다.

나는 피곤하다.

왜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이냐.


등의 타자의 의사를 단 1%도 반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신지를 서둘러 하던 대로 프로토콜을 발휘 해야만 했다.



아스카의 축구의 신.

아스카의 Greatest of all time.





—— Christiano Ronaldo를

단 1초라도 빨리 대화에 투입시켜야만 한다.





서둘러 마지막 대화 지점을 기억해낸 신지는

대화가 더 이상 귀찮아지기 이전에 아스카의 

입맛에 맞는 대답만을 꺼내야만 했다.


그 전에 그 눈치빠르고 배배꼬인 아스카에게

나는 너에게 맞춰주고 있다 라는 티를 내기전에

자연스러운 빌드업을 가져가야만 한다.



곁눈질로 확인한 TV에는

프랑스의 초신성, 음바페가 나오고 있었다.


아스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인물에게

발롱도르를 강탈당했다고 아스카는 분명 그렇게

확신할 터, 서둘러 그 남자를 이용해야한다.




“ 음, 음바페는 

   표, 표정이 좋지않네.

   결승전에서도 해트트릭했는데 3,3위라니 …. ”



신지의 어그로가 통한 것인가.

아스카는 눈알만 굴려 TV를 확인한다.




“ 흥, 어째서 2골따리가 3골이나 넣은

  선수를 이기는거야. ”



“ 맞, 맞아 …

  이번에는 정말 인, 인기투표인가봐. ”



“ 뻔뻔하기도 하지, 프랑스에서 뛴다고

  프랑스에서 시상하는 상을 받아가는게 말이돼 ?

  이게 진짜 매수고 강탈인거야. ”



—— 음바페도 프랑스에서 뛰는데.




“ 그리고 애초에 저런 이벤트성 대회가 대체 뭐가 중요한거야?

  어차피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따위보다

  클럽 축구가 더 중요한거 아니야 ? ”



—— 호날두는 무리하면서까지 월드컵나가서

       부상이 악화되었는데.





“ 저런 국가대표경기따위 모두 없어져버려야해. “



—— 호날두는 5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보다

        국가대표 우승이 훨씬 값지다고 했는데.



“ 발롱도르는 무슨 얼어죽을 발롱도르야.

  인기투표따위면서 … ! ”




—— 호날두는 발롱도르가

       자신에게 노벨상만큼 값지다고 했는데.






“ 백날 발롱도르따위로 정신승리해봐야

  축구 역사상 최다골 , 최다 승리는 호날두인데

  역사는 결국 호날두의 손을 들어줄거야. ”



진짜 과장안하고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중얼거리는 아스카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아스카만큼 에바 조종의 연차가 쌓이면

정말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 신지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아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아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노미네이션조차 하지 않는 시상식따위 ——


  뭐야, 너 할 말이라도 있어 ? ”




“ 아, 아니…

  아스카랑 비슷한 생각인데 … ”



“ … 너 지금 내 비위 맞춰주는거야 ? ”



“ 아, 아니야.

  정말 그렇게 생각 … ”




“ 바보신지 주제에 —— 건방지네.

  너 내가 너 따위한테 단 1초라도 떠받아지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처럼 얘기하네 ? ”



“ 난 그런 얘기 하나도 하질 않았는데 … ”



“ 시끄러워 !

  내가 바보로 보여 ?! ”



“ 아, 응 ?!

  아… 아스카는 바보가 아니잖아 … ! ”



“ 근데 왜 눈치나 살살보면서

  내 마음에 들법한 말이나 쳐하면서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거야 ? ”




“ … ”



“ 내가 그렇게 남말안듣고 속 좁아보인다는거지 ? ”




응.



신지는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다.



화려한 박수와 함께,

시대를 지배한 선수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끝나간다.




“ … 내년이면 저 녀석도 이제 나오질 않겠지. “


아스카의 바싹마른 중얼거림에

신지는 얼마나 스포츠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저 지경에 이를까 싶어 그녀가 조금 안쓰러워보였다.



그 어떤 그룹에 소속해도

가장 주목받는, 가장 눈부신 소녀인데…




” … 올해로 마지막이니

  너도 이제 내 비위따위 맞춰줄 필요 없어. “




” 그런 적 없는 … “



” 아 … 진짜 ! “



앙칼진 쉭쉭거림에 신지는 어색하게 손을 쥐었다핀다.





” … 그, 그럼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되 ? “



” 장난해 ? 내가 유치원생으로 보여 ? “



” 정말이야 … ? “



” 두 번 말하게 하지마. “



” … 화 안낼 거지 ? “



” 내가 화내는게 직업으로 보여 ? “



” 아니 … “



” 그럼 남자답게 시원하게 지르라고,

  쫌생이처럼 꿍얼거리지 말고 ! “



” … 정, 정말 ? “



” … 머리털 다 뽑혀볼래 ? “



” 아, 아니 미안 … ! “



” 내가 방금 꿍얼거리지 말라고 … ! “



” 아, 정, 정말 미안 !

   진짜 말할게 ! “




” 5초안에 말해. “



” 에 ? “




” 5. “



” 엇 ? “




” 2. “





아스카의 입술이 1을 말하기전에

신지는 재빨리 묵은 사실과 의문을 토해내었다.


아스카가 정말 사실대로 말하라 했으니까.

사실대로 말하는건데 화내진 않겠지 ?



설마.



그 정도로 축알못일리는 없잖아.













” 아, 아스카.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은건데 … “



” 뭔데 ? “











” —— 진지하게 월드컵 토너먼트 8경기에서

  0골 0어,어시를 기록한 사람을

  GOAT라고 생각하는거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