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과거와 지금을 모두 따져봐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포지션과 그렇지 않은 포지션은 분명 존재한다.

화려한 드리블, 강력한 슈팅, 대지를 가르는 패스, 철벽같은 수비 능력, 팀을 구해내는 슈퍼 세이브.

각 포지션 마다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들은 가득하다. '보이는' 플레이가 멋질때, 그 선수의 인기는 더욱 올라간다. 

90분간의 기나긴 공놀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선수들이다. 스타를 배출하는 포지션의 특성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졸음을 참는 시간으로 허비될 90분을 명장면으로 연출할 책임을 가진 포지션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임팩트가 전술적인 가치로 바로 귀결되는 요소는 아니다.

'보이는' 플레이가 화려하지 않더라도 필드 위의 스타는 분명히 존재한다. 

비르투오소 보다는 작품의 지휘자에 가까운 선수들이다. 보이지 않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역할을 지닌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보이는' 플레이를 잘 하는 선수들은 수없이 배출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플레이의 거장들은 소수다.

어쩌면 단순히 보여주기식 플레이로 90분을 망칠 수도 있는 스타들과는 다르다. 막대한 부담 아래에서도 묵묵하게 필드를 뛰는 진정한 스타들이다.







바르셀로나로 보자면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그런 선수에 가깝다.

리오넬 메시, 차비, 이니에스타, 다니 알베스, 수아레스, 네이마르, 피케 등등..

바르셀로나에서 화려한 플레이와 꾸준한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들은 과거나 현재나 꽤 다양하고 가득했다.

허나 단 한자리,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자리만은 그리 다양하지 못했다.

야야 투레의 수비력과 피지컬 없이도 필드를 휘어잡는 능력을 보여준 부스케츠는, 그를 밀어내고 09/10 시즌부터 바르셀로나의 핵심이 되었다.


4-3-3 대형의 바르셀로나 축구에서 생기는 결정적인 이슈는 뒷공간의 노출이다.

수비-중원-공격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패스맵에 있어서 부스케츠의 패스 능력과 대형에 대한 이해도는, 빌드업의 시작이고 끝에 가까웠다.

혹자는 단순히 "메시, 이니에스타 등의 선수에게 볼을 뿌리기만 하는 쉬운 역할이 아닌가?" 하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허나 그렇다면 현대 축구는 왜 공격 작업에 있어서 치밀한 세부 전술이 필요하겠는가? 전방으로 패스를 뿌린다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 공간에 대한 이해와 이를 뒷받침하는 패스 능력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테크닉이다. '부스케츠 롤' 이라는 단어는 허상이 아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보이는 맛은 없는데 책임은 막중하고, 실수 한번이 팀을 나락으로 이끄는 막중한 위치에서 그는 포지션의 정의를 정립했다.


축구 역사를 뒤흔들었던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부터 주춤하기 시작한 바르셀로나의 포스트 메시 시대까지, 부스케츠는 지울 수 없는 이름이었다.

펩 과르디올라, 티토 빌라노바, 루이스 엔리케, 에르니스토 발베르데, 차비 에르난데스에 이르기까지.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부스케츠에게 진 빚은 가히 압도적인 값이었다. 유행을 넘어선 하나의 당연한 흐름에 가까웠다.

그가 데뷔 이후부터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까지, '부스케츠 신드롬'은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놓고 보아도 막대한 비중이다.

그나마 리오넬 메시의 전술적인 변수 창출 정도가 부스케츠와 비슷한 수준에 있을 것이다.







허나 부스케츠에게 짊어진 막대한 짐이 마냥 바르셀로나의 밝은 측면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말년이 되어 갈 수록 떨어지는 그의 기동력과 수비에 대한 소극적인 모습은, 현대 축구에 들어선 바르셀로나에게 큰 주홍글씨였다.

뒷공간과 중원의 활동량을 커버 해야만 하는 미드필더들의 입장에서는 부스케츠의 나이가 야속하게만 느껴질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 단점들을 등에 지고도 부스케츠는 여전히 말년까지 대체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의 패스맵과 전술적 이해는 다른 선수들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부스케츠를 쓰자니 뒷공간이 불안하고, 부스케츠를 안 쓰자니 빌드업 과정이 불안하다.

여태까지 '부스케츠 신드롬'에 편승했던 감독들이 애써 외면했던 '부스케츠 딜레마'의 시작이었다.








부스케츠가 떠난 23/24시즌, 프렝키 더용과 일카이 귄도안이 애써 그의 빈자리를 채우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오리올 로메우는 수준 미달의 선수고, 더용과 귄도안은 정통 피보테라 보기에 무리가 있다.

세르지 로베르토도 마찬가지고 마르크 베르날같은 유스 선수는 아직 너무 어리다.


기어코 차비 감독은 센터백인 크리스텐센을 피보테로 기용하고 수비형 미드필더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르셀로나 축구를 진두지휘했던 세르히오 부스케츠는, 그가 떠나자 마자 바르셀로나 축구의 가장 큰 숙제로 남았다.








 리오넬 메시의 빈자리를 새로운 영입과 전술 수정으로 어설프게 채워낸 바르셀로나는, 이제 더 큰 문제에 직면했다.

라민 야말같은 신성이 꽤 나오는 윙 포지션이 아닌, 소수의 베테랑만이 살아남는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의 대체자를 구해야만 한다.

선수 말년에 전술적으로 딜레마를 던졌던 부스케츠는 이제 그의 빈자리로도 바르셀로나의 딜레마로 남았다.


'보이는' 플레이가 화려한 선수는 가득하다. 라마시아라는 시스템을 등에 업은 바르셀로나에 그런 선수는 드물지 않다.


허나 '보이지 않는' 플레이가 훌륭한 선수는 다른 얘기다. 

보드진과 구단의 처참한 안목은 아르투르 멜루같이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버린 전적이 있다.


향후 바르셀로나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지금을 위해서, 부스케츠의 빈자리는 반드시 새로운 이름으로 채워져야만 한다.

생각만 해도 머리 아팠던 '부스케츠 딜레마'가 다시한번 '부스케츠 신드롬'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