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경기였지만, 유종의 미는 거뒀다. 김도훈 임시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6월 월드컵 예선 2연전을 연승으로 마무리하면서 조 1위로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김도훈 임시감독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비단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두 경기를 통해 대표팀과 후임 감독에게 많은 메세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중국전을 마치고 많은 축구팬들은 생각만큼 우리가 경기를 잘 풀어내지는 못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는 지당한 반응이다. 중국은 싱가포르와는 달리 애초에 '지지않기 위해' 경기를 준비했으며, 동시에 우리가 준비해온 시스템 변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도훈 감독은 울산시절과는 달리 임기응변을 보여주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번 중국전 후기를 통해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고 왜 잘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어떤 임기응변으로 중국전을 승리할 수 있었는지 다뤄보자.
1. 선발 라인업
싱가포르전과 비교해 공격진에서 변화가 있었다. 중앙공격수에 주민규가 빠지고 황희찬이 선발 라인업에 들었다. 중원은 같은 조합으로 나왔으며 수비진에는 우풀백으로 지난 경기 교체로 출전했던 박승욱이 선발 라인업에 들었다.
2. 후방점유
후방점유는 싱가포르전과 같은 구조였다. 황인범이 한 칸 내려와서 4-2 대형을 만들어줬다. 중국이 투톱을 앞세워 센터백을 압박할 준비를 하면 정우영이 센터백 사이로 내려와 수적 우위를 만들어줬다. 중국은 이날 442 대형으로 로우블럭을 갖추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때문에 간격이 벌어질 위험이 있는 압박에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표팀은 후방에서 큰 문제없이 상대진영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3. 전진과 공격, 그리고 이강인 프리롤
대표팀은 이날도 기본적인 공격대형은 싱가포르전과 같이 235 대형을 큰 틀로 준비했다. 중국은 싱가포르에 비해 좀 더 수비사이 공간유지에 신경쓰면서 후방에서 중앙으로의 전진패스를 막는데 집중했다. 때문에 대표팀의 공격퀄리티는 측면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싱가포르전과 중국전은 선수들의 동선과 접근방향성이 달랐다.
이날 우리 대표팀이 준비했던 공격옵션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좌측 과밀화'와 '이강인 프리롤'이었다.
첫번째로 '좌측 과밀화'이다. 위 장면을 보면 좌측지역에 우리의 선수가 8명이나 빽빽하게 밀집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강인이 있는 우측 중심으로 볼을 돌리다 좌측의 손흥민에게 공간이 나면 전환 후 전진하던 싱가포르전의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손흥민과 황희찬을 동시에 기용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손흥민과 황희찬 두 선수 모두 좌측에서 뛸 때 좋은 결과가 있는 선수들이다. 이는 두 선수를 동시에 기용하면 둘 중 한명이 비효율적인 동선을 가져갈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날 김도훈 감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손흥민과 황희찬을 포함한 많은 선수들을 아예 좌측에 과밀화 시키면서 중국의 밀집수비를 뚫고자 했다.
이러한 좌측 과밀화 전략이 중국의 수비에게 부담을 어느정도 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좋은 전진패스까지 들어가는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전략이 골과 연결되지는 못했다. 좌측에 우리 선수들이 많이 모인다는 뜻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수비도 모인다는 뜻이다. 때문에 대표팀은 좌측에서 상대수비를 뚫어내도 좋은 패스나 슛을 할 수 있는 찬스를 만들기 어려움을 겪었다.
때문에 과밀화 전략이 성공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반대편에서 넓은 공간을 쓸 수 있는 선수의 '아이솔레이션'이다. 그리고 이날 대표팀이 좌측에서 우측으로의 전환 후 아이솔레이션은 잘 이루어졌다 볼 수 없었다.
여기서 두번째로 '이강인 프리롤'을 다뤄보자. 이날 이강인은 싱가포르전과 비교해 매우 높은 자유도를 부여받았다. 포메이션 상 이강인은 우측 공격수로 출전했지만 종적으로나 횡적으로나 매우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져는데, 우측에서 공을 받는 것을 기다리기 보단 직접 내려와 후방에서 공을 잡은 후 좌측으로 패스를 주던가 중앙으로 들어오는 동선을 많이 가져갔다.
이강인의 후방에서 좌측으로의 패스는 분명 좋은 옵션이었다. 하지만 전진 성공 후 이강인이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좌측이 과밀화된 상태에서 이강인까지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상대의 넓은 우측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였다.
앞서 언급했던 좌측 과밀화, 우측 아이솔레이션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아이솔레이션 역할을 맡은 어느 한 선수는 끈기있게 공의 흐름과 관계없이 상대 시야각 뒤에서 기회를 노려야 한다. 당연히 공격수적인 움직임과 1대1 상황을 이겨낼 속도, 기술적 우위가 뒷받침 된는 선수에게 이러한 역할을 맡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날 대표팀은 우측에서 아이솔레이션을 해줘야할 이강인의 동선을 프리롤로 줘버리면서 경기플랜으로 준비해둔 과밀화, 아이솔레이션 전략이 빛을 많이 잃었다.
이런 프리롤의 연장선상으로 우측에서 공격을 전개할 때 문제가 있었는데. 이날 대표팀이 우측에서 공격할 때 이강인을 한 칸 내리면서 우풀백 박승욱이 폭을 벌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폭을 벌려주는 박승욱은 측면에서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박승욱은 후방에서 공수밸런스를 잡아주거나 상황에 따라 수적우위를 만들어주는 역할에 강점이 있는 선수이다보니 대표팀의 우측 공격력이 완전히 죽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4. 후반전 교체와 전술변화
김도훈 감독은 전반전의 이런 문제를 확실히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 장면처럼 후반전 킥오프 이후로 이강인의 위치를 확실히 우측에 고정시켜뒀기 때문이다.
동시에 교체를 통해 선수들의 역할과 동선을 재조정했다. 이재성을 주민규, 박승욱을 황재원과 교체하면서 황희찬은 우측공격수로써 폭을 벌리는 역할을, 이강인은 우측 메짤라 역할을 주문했다.
그리고 이 용병술은 적중했다. 이강인이 우측 메짤라로 서면서 상대의 우측 하프스페이스에서 좌측의 손흥민을 향한 전환패스가 들어가간 다음
손흥민이 패스를 잡고 박스 안으로 달려가던 주민규와 황인범에게 컷백을 주면서 상대 수비의 횡간격이 벌어졌다. 그리고 세컨볼이 수비 사이 공간으로 떨어졌고 이강인이 그 공간으로 달려들어가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득점 이후로도 이강인은 교체되기 전까지 계속 우측 메짤라로써 황희찬, 황재원과 함께 상대 우측을 흔들고 하프스페이스에서 좌측으로 전환패스를 넣어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볼 흐름에 따라 황인범과 자리가 스위칭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우측에 황희찬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로는 경기가 큰 변곡점 없이 마무리됐다. 홍현석, 박용우, 이명재, 최준 같은 자원들이 지금의 433 시스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기에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결과와 교훈 모두 남겨준 경기였음은 분명하다.
싱가포르전이 현재 대표팀 스쿼드의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를 보여주는 경기였다면 중국전은 변주를 몇가지 줘본 실험적인 성향이 보이던 경기였다. 두 경기 모두 433 시스템을 기반으로 손흥민에게 토트넘에서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맡기면 어떤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좌측에는 손흥민이 있다면 우측에는 이강인이 있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전에서 두 선수가 각자 좌, 우에서 서로의 스타일을 살려 공격을 주도하면 어떤 모습이 나올 수 있는지 보여줬다. 우측에서 이강인을 중심으로 공을 점유하면서 상대를 끌어들인 다음 이강인의 전환패스를 활용해 손흥민이 공간을 이용해 돌파해 골, 어시스트, 기점을 만들어내는 생산성은 아시아 레벨에서는 견줄 레벨이 없음을 보여줬다.
한편 433 시스템에서 손흥민-황희찬의 공존과 관련해서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여지껏 이 둘을 공존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442 시스템이 밸런스적으로 많은 문제를 보여줬기 때문에 근래들어 대표팀은 433(혹은 4231) 시스템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라인을 내린 우리보다 전력이 약한 팀 상대로 손흥민과 황희찬의 공존이 쉽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이 둘이 공존이 완전히 불가하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상대가 우리를 상대로 압박을 걸고 라인을 높힌다면 손흥민, 황희찬이 공간을 양분할 환경이 조성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동안 집중해야할 월드컵 예선동안은 라인을 내린 팀을 상대하는데 집중해야하므로 차기 감독은 이 둘의 공존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든 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다룰 이야기가 더 있긴한데 오늘은 조금 성급하게 마무리...
현생 << 이새끼 개같으면 개추